월-E의 인간측 주인공 맥크리 선장
일단 두 영화은 분위기와 상황이 몹시 다름.
더 웨일은 성적 지향 때문에 가족을 버렸다지만, 정작 애인은 애인 자신의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 죽고, 본인은 이에 폭식으로 272kg 초고도비만으로 전락한 주인공의 마지막 순간을 다루고 있음.
월-E는 두 로봇, 월-E와 이브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월-E의 인간들은 액시엄 호에서 기계의 보살핌 + 무중력이라는 환경 때문에 고도비만 체형이 되었고, 맥크리는 두 주인공인 월-E와 이브의 모험을 조력하려고 함.
전자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후자는 두 로봇의 사랑과 모험을 다루고 있음.
찰리와 맥크리 둘 다 고도비만이 되어 보조기구도 없으면 움직이기 힘들지만, 그렇게 된 경위가 다름.
하지만 두 명이 마지막에 소중히 여긴 덕목이 있으니 바로 책임감
찰리는 인생 막바지에 자신이 버린 가족, 특히 딸에 대한 앨리에게 사과하고자 했고,
맥크리는 인류의 방주를 담당한 선장으로서, 최종보스인 AUTO에게 맞섬.
이 때문에인지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영화임에도 비슷한 구도의 명장면이 최후반에 펼처짐:
찰리는 고도비만으로 몸의 상황이 악화된 상황에서 자신의 죽음을 직감함.
AUTO는 비밀리에 받은 지령에 따라 인류가 지구로 돌아가는 것을 막고, 영원히 우주를 떠돌며 자신에게 사육되도록 획책함.
고도비만 때문에 제대로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한 두 주인공이지만,
마지막에 스스로 일어나서 걸어가는 장면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선사함.
카타르시스는 통쾌함은 뜻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분출을 뜻함.
전자는 비극, 후자는 희극적인 상황이지만 저 두 장면은 같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함.
바로,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카타르시스.
찰리는 인생도 몸도 망가질대로 망가져서, 자신의 본모습을 남에게 숨기고 어두운 집에 틀여박혀 사는 삶을 살고 있었고,
맥크리는 아무 고민도 없이 기계에게 사육당하는 삶을 살고 있었음.
이 둘은 마지막 순간에 자기 발로 일어나 걸어감으로써 스스로의 존엄을 회복시켰음.
작품 밖으로는 더 웨일이 주연배우인 브랜든 프레이저의 인생사를 반영한 작품이여서, 더한 감동을 주었음.
브랜든 프레이저는 미이라 시리즈를 찍으면서 성공가도를 달리는가 했지만, 아내와의 이혼 및 위자료 폭탄 그리고 헐리우드 고위 관계자의 성추행 등으로 인생이 나락으로 갔었음.
그러다가 둠 패트롤의 로봇맨으로 공백기를 벗어나서, 더 웨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완전히 부활하게 되었음.
사실 더 웨일처럼 영화 자체가 주연배우의 인생사를 반영하고,
몰락하거나 잊혀가는 주연배우의 화려한 부활을 안겨주면서,
작품 안팎으로 관중에게 감동을 주는 명작들은 이외에도 있음:
미키 루크의 더 레슬러
마이클 키튼의 버드맨
데미 무어의 서브스턴스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호평하고, 그 영화와 같은 주연배우의 화려한 부활에 환호해주는 이유는 사람들은 마음 속에 어딘가에 자신들도 똑같은 것을 바라기 때문임.
추억으로 미화된 것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조금씩 눈부신 과거, 좋았던 시절을 간직하고 있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음.
젊은 날의 열정이든, 화려했던 성공가도든, 지금은 현실에 굴복해서 접은 꿈이든,
그 시절을 다시 재현하고 싶음.
단, 저런 영화들의 주제는 화려한 과거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님.
저 영화들은 주제는 과거에 매몰되지 말고, 현재 자신의 존엄을 긍정하며, 미래를 나아가라는 것이라고 생각함.
마치 이상이 쓴 날개의 마지막 구절처럼: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