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나무 자체의 한계
차나무는 습도나 기타 환경이 받쳐만 준다면 러시아 땅에서도 자랄 수 있음.
그러나 한국은 극단적인 일교차와 장마 시기에 몰려있는 강수량, 습도 기타 등등의 한계 때문에
북방 한계선이 전남 김제 수준이 한계임. 그래서 차의 생산지가 극히 한정적이라 공급이 쉽지 않음.
2. 문화적 한계
위의 이유처럼 차의 생산력이 떨어지다보니 자연스레 고급 사치품이 될 수 밖에 없음.
고려시대야 불교 문화 덕에 백성이 굶어 죽더라도 차를 심어서 어찌저찌 보급하긴 했음.
그 덕에 다점 등 민간 계층에서도 차를 마실 수 있었으나 근본적인 한계를 해결하긴 무리였고.
조선대로 들어오면서 사치품인 차도 뒤안길로 밀려남.
3. 일본
그러나 오랫동안 차를 영유해온 고려답게 조선 초기까진 차를 마시는 문화가 살아남았음.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200년 가까이 뒈짖해버렸지만.
다행이 차나무 재배가 가능한 전남 일부에선 절을 중심으로 차가 살아남음.
이를 바탕으로 초의선사나 다산 정약용 등 새롭게 치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생겨나고 계승이 이어졌으나
일제강점기로 또 치명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뒈짖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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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덕에 동아시아 삼국 중 한국의 차는 다양성에서나 문화에서나 가장 후진 편에 속함.
검소하니 본질에 집중하니 하지만 막말로 발전을 못 했으니 뭐 할것도 없다는 소리니까.
물이 깨끗해서 맹물을 마셔도 되니까 차가 발전 안했나 했는데
야 다른건 가만히 있겠는데 김제는 전북이다, 전남이 아니라... 뭣도 없는 전북에서 그런거까지 뺏어가지마......
진짜 엄밀히 말하면 다도에서 말하는 차는 녹차랑 거기서 파생된 홍차정도…
동시에 차보다 탕문화가 더 컸기도 하고
술은 안 먹는 문화권을 찾기 힘든지라 논외로 둬야지
보리차는?
세린홀릭🎀🐾
진짜 엄밀히 말하면 다도에서 말하는 차는 녹차랑 거기서 파생된 홍차정도…
진짜 정석으로 간다면 보리차가 아니라 보리탕이 맞다. 차는 차나무 잎을 가공한걸 말하는거. 홍차,녹차등등 그 이외의 우린 제품들은 탕이 맞다고 한다.
차는 원래 녹차만을 지칭하는 한자임
커피콩 우린 가배탕 처럼 보리탕
청차에 우롱차에 보이차까진 듳어간다구
중국 : 원래 차나뭇잎으로 만든거만 차로 분류된다해. 보리차 같은 곡물차, 과일로 만든 석류차 등은 대용차다해.
술은 잘먹던데
사실 술때문이기도함 과일 약초 꽃을 담궈 차 이상의 아로마를 뽑아 마셨기에
쿠메카와 미스즈
술은 안 먹는 문화권을 찾기 힘든지라 논외로 둬야지
술은 노동 환경과 연관되어있어서
루리웹-4644527467
동시에 차보다 탕문화가 더 컸기도 하고
일제의 문화말살...
물이 깨끗해서 맹물을 마셔도 되니까 차가 발전 안했나 했는데
그랗다기엔 일본 다도처럼 말차같은 단품종 이용한 고오오급 문화도 거의 없는 거라
일본은 좀 다르다고 봄. 일본의 차문화는 걍 외국의 선진문화를 지들만의 귀족문화처럼 받아들인 결과물임. 아무나 못 즐기게 별 의미도 없는 절차를 만들고 그게 뭔가 대단한 것처럼 이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고... 그 초밥 밥알 200개 뭐 그런거임. 그렇게 지들 맘대로 받아 변형시킨게 많지. 불교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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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은고등어
일본 다도도 그래서 차보다는 격식에 맞춤 사실상 중국 다예처럼 다양한 엽저가 아니라 말차원툴로
생각해보니 토지 소설도 그가난한 농민 주인공도 차 끓여먹는다고 할정도로 중국은 차마시네
차례 茶禮 또한 원래 차를 내는 것이였지만 글쓴이 말처럼 병자호란 임진왜란 같은 전쟁으로 차가 귀해져 귀족 사회에서 술로 대체하며 불교 마저 시들 무렵 일제강점기로 싹 사라짐 일본 차 유통 기록에 중국으로 부터 배를 타고 일본으로 전파 되었다고 하지만 조선을 거치지 않고 왔다는게 말이 안되지 그리고 일제 이전 조선말 부터 일제 이후 차라는 문화 자체를 당시 정치에선 신경을 안쓴것도 크고 2017년 부터 한국에서 차문화 산업이 움직였지만 아직까지 커피 문화가 대중적이라...
중국은 예전부터 물 자체에 석회질이 많이 있고 차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이면서 문화가 끊기는 일이 없었음 일본은 전국통일 시대였나? 사무라이들이 잠잠해 질때 중국차가 하나의 사치품이면서 유행처럼 번짐 우리가 잘 아는 말차 또한 차가 귀하다 보니 남은걸 갈아서 만들어 먹었는데 그게 맛있어서 남았다는 애기도 있고 또 일본이 불교 문화가 강하고 차문화를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만들면서 일본의 차문화가 더욱 강해짐
조선에서 차문화가 쇠퇴한 건 유교식 예법이 정착되었기 때문임. 불교식의 금욕적 금주 문화가 사라지고 각종 제례에 술이 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류 상류층이 향유하는 음료가 차에서 술로 대체되었던 거지.
그것도 맞는말이지만 그당시에도 유교에서 다도를 통한 예를 교육한적도 있어서 완전히 유교 때문에 사라졌다고 보기엔 어려움
당장에 조선식 유교 예법의 끝판왕에 가까운 왕실 예법인 국조오례의에도 다도, 차 마시는 예법이 있는데 유교식 예법 핑계는 좀...
국조오례의의 편찬시기는 조선 초기이고 고려의 유풍이 남아 있었으니깐 다례가 들어간거고 주자가례가 유통되기 시작한 중종이후로 17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까지의 조선의 유교화 과정으로 사회문화적 분위기는 조선 초기와 그 성격이 확연히 달라져 가는 시기였어. 게다가 쌀농사에 진심이었던 조선의 위정자들이 재배 관리도 까다로운 차를 사치품으로 규정해서 고깝게 본 이유도 크다기.
차문화가 쇠퇴해도 다양한 가양주가 발전했고(아쉽게도 일제시대를 거치며 거의 사라졌지만) 수정과 오미자차 식혜 등등 다양한 음료가 생기면서 굳이 비싼 차를 재배해가며 차를 마실 이유가 없어진거지
효종 때였나 茶란 단어가 원래 차나무를 달여 마시는것이 맞지만 과일 곡식등을 물에 끓여 마시는것도 차라 라고 하고 난뒤 부터 허브티도 차라고 하기로 했던가..
야 다른건 가만히 있겠는데 김제는 전북이다, 전남이 아니라... 뭣도 없는 전북에서 그런거까지 뺏어가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듣기로는 한국은 물이 좋아서 발전 기미가 없다눈 말은 들었음 국사 세계사 선생님 둘다 그 이야기는 했는데 세계사 선생은 차는 반도에선 사치품이라 힘들었다 이런식으로 추가로 붙긴 했음 ㅇㅇ
물이 깨끗한것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