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현대 도검이나 식칼을 전근대로 가지고 가면 신검 취급 받는다는 말이 있음.
이 경우엔 '도검'이나 '식칼'의 범주가 너무 넓어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대중적이고 평균적인 품질의 물건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못 됨.
일단 신검이나 전설의 무기라고 불릴 수 있는 조건이 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조건이라면 높은 절삭력과 뛰어난 내구성 정도가 있을 거임.
여기다 현대강의 특수성을 조금 더 넣자면 내부식성 따위가 있을 테고.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현대 도검은 전근대 도검보다 딱히 경도가 압도적이진 않음. 애초에 그렇게 만들 수도 없고.
현대 도검은 일반적으로 HRC(로크웰경도) 55 +-알파 정도의 경도를 가지고, 이 정도 경도는 전근대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음.
해당 사진은 1400년 경에 만들어진 2세대 무라마사의 비커스 경도임.
흔히 알려진 일본도의 구조대로 부위에 따라 경도가 다른데, 가장 중유한 날의 경우는 비커스 경도로 700을 넘어감.
이건 로크웰 경도로 환산하면 60이 넘는데, 사실 그래서 오히려 문제임.
60이 넘는 HRC는 일반적으로 두껍고 상대적으로 약한 충격을 받는 나이프에서나 보임.
훨씬 길고, 그만큼 더 강한 충격을 받는 도검은 일부러 경도를 더 떨어트리고 대신 인성과 탄성을 늘리면서 취성을 떨어트리는 방식으로 만듬.
당연히 사진의 도검은 과도하게 경도가 높은 날을 가진 만큼 날이 쉽게 깨질 확률이 높음.
다만 저 정도로 높은 경도라도 특유의 구조로 안정성을 도모했고, 전시가 아니라면 날로 강철을 후려칠 일도 별로 없으니 충분히 도검으로서 역할은 했을 거임.
그러면 현대의 강철로 만든 도검을 가져 가서 저것과 비교하면?
당연히 현대 도검의 퍼포먼스가 더 좋음.
현대 도검은 제철 단계에서부터 치밀하고 안정적인 조직을 만들기 때문에 경도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성능을 내기 때문임.
그렇다고 현대 도검이 강철(그게 전근대에 만들어진 강철이라도)을 뚝뚝 끊어낼 수도 없으며, 강철을 막 때리고도 멀쩡할 수 있는 것도 아님.
베기장을 다녀 본 사람은 알텐데, 현대 기술로 만든 도검도 쓰다 보면 대나무를 치는 것만으로 날이 뭉개지거나 심하면 검신 중간이 끊어짐.
때로는 슴베부터 부러져나가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현대 기술로 만든 강철이라도 지속적인 충격에서 오는 피로 파괴 현상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임.
결국, 아무리 현대 도검이라도 진짜 전쟁터에 가져가서 실전에서 사용하며 몇 번 버티지 못하고 크게 손상이 일어날 거임.
물론 평복 전투 상황에서는 빼어난 퍼포먼스를 보이겠지만.
문득 생각나서 쓰느라 중언부언하는 내용이 됐는데 결론은 평균 품질의 현대 도검이나 식칼로는 전근대에 들고 가도 명품은 될지언정 전설의 무기 같은 소리는 못 들음.
물론 ZDP나 CPM사 같은 곳에서 슈퍼 스틸로 만든 괴물 나이프류는 예외임.
슈퍼 스틸은 이름 그대로 압도적인 경도와 내마모성, 내부식성을 가졌으니까.
막줄만 읽었습니다. 역시 현대문물 짱이야!
고점으로 치면 현대 물건은 과거인이 보기에 불가사의한 수준이긴 하죠.
냉병기 시절 전쟁에 활이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던 이유
사실 누구나 상대랑 가까이서 치고받기보단 원거리에서 생명의 위험을 덜 받으면서 일방적으로 때리고 싶어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