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은 장제의 말에 따르지 않았고, 과연 패했다. 조인이 죽고, 다시 장제를 동중랑장(東中郎將)으로 임명하여 그의 병사들을 대신 인솔하도록 했다. 조서가 있었다.
- 그대는 문무의 자질을 겸하였고, 강개한 기상과 절개가 있으며, 항상 강호를 넘어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장한 뜻이 있다. 그러므로 다시 그대에게 장수의 중임을 수여하겠다.
오래지 않아 그를 불러 상서(尚書)로 임명했다. 문제의 수레가 광릉(廣陵)으로 행차하려 하자, 장제는 표를 올려 물길이 통행하기 어렵다고 말했고, 또 삼주론(三州論)을 올려 문제를 풍자했다. 문제는 장제의 건의를 따르지 않았다. 그 결과 군용 배 수천 척이 모두 멈춰 나가지 못했다. 논의하는 자들은 이 기회에 병사를 남겨 놓고 둔전하도록 했는데, 장제는 동쪽으로는 호수를 가까이 두고 있고, 북쪽으로는 회수에 직면하고 있으므로 물이 많은 시기에는 적이 침략하기 쉬워 안정되게 둔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말을 따랐고, 수레를 즉시 출발시켰다. 정호(精湖)로 돌아오니, 물이 점점 다했으므로 배를 전부 남겨 장제에게 주었다. 배는 본래 수백 리 사이에 배열되어 있었으므로, 장제는 땅을 파서 너댓 개의 수로를 만들어 배를 밀어 모이도록 했다. 동시에 그는 사람들에게 우선 제방을 수리하여 호수를 끊도록 하며 배를 당겨 모두 뒤로 하고, 한번에 열어 회수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문제는 낙양으로 돌아가며 장제에게 말했다.
“일을 깨닫지 못할 수는 없을 것이오. 나는 산양지(山陽池) 안에서 배의 절반 정도를 태워 버리기로 결심했는데, 경은 뒤에 남아 이것을 보냈고, 대략 나와 함께 초현에 이르렀소. 또 매번 진술한 것을 얻었는데, 실은 나의 생각을 말한 것이었소. 지금부터 적을 토벌할 계획을 세워 잘 생각하고 의견을 서술해 주시오.”
원정 끝나니깐 배 절반정도를 태울 생각했음
배를 유지해서 나올 이득은 군사적 용도 말고 없으니깐
자연스럽게 원정끝나면 태우고 끝나는게 당연한 귀결
그러니 대규모 수군은 그런거 없음
장판교에서도 관우가 배 300~400척을 가지고 왔다는 걸로 보아했을때 아마 땟목이나 보트, 소형범선정도로 추정되는 걸 끌고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 당시 배 라는게 휘황찬란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다만 이게 배가 있다 없다라 판단하기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까 그 글에서 봤듯 좀 편의주의적인 해석인 느낌인게... 봐라 배 필요없다잖느냐 그럼 배가 없는거다라는건데 역으로 배가 있다고 기록 되있으니 배가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고... 강릉 소실했으니 배가 필요없다는 주장도 이해를 못하겠음;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닌데 말야
배 유지보수도 쥰내빡세고 수군훈련도빡세고
ㅇㅇ 그건 알고 있음, 다만 이게 배가 없다는 근거를 나타내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많이 든다는 것
잘 모르겠는데요... 아무래도 근거가 크게 와닿는 편들은 아닌지라... 수로교통 지역이라면 뭐 상선이 오가는건 당연한 거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근데 이러면 위군에도 배가 있다는 근거가 되는거 아닐까 싶은데...
배 유지보수도 쥰내빡세고 수군훈련도빡세고
근데 이러면 위군에도 배가 있다는 근거가 되는거 아닐까 싶은데...
일시적으로 쓰는거에 가까운 소리임 호수에 배를 놓으면 대규모로 유지할 이득이 나오는게 아니니깐
루리웹-6278762111
아까 그 글에서 봤듯 좀 편의주의적인 해석인 느낌인게... 봐라 배 필요없다잖느냐 그럼 배가 없는거다라는건데 역으로 배가 있다고 기록 되있으니 배가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고... 강릉 소실했으니 배가 필요없다는 주장도 이해를 못하겠음;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닌데 말야
황초 3년(222) 대사마(大司馬) 조인(曹仁)과 함께 오나라를 정벌하고, 장제는 따로 선계(羨谿;羡溪이계)를 습격했다. 조인이 유수(濡須)의 중주(中州)를 공격하려고 하자, 장제가 말했다. -장제전 이거 이전에 조비가 남정했으니깐 당연히 배 만들어야 하고 만든 배 버리기 아까우니 임시방책을 썼다는 내용입니다.
루리웹-6278762111
ㅇㅇ 그건 알고 있음, 다만 이게 배가 없다는 근거를 나타내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많이 든다는 것
적벽전때도 뗏목동원했단거보면 쥰내 주먹구구일 확률도있어
기본적으로 군사적 용도로 쓰고 유지 안하면 배가 적다는게 합리적인 추론 같내요. 그의 정병들을 모두 배 안에 숨겨두고, 백성들에게 노를 젓게 하여, 상인의 복장을 해 입고 밤낮으로 가서, 관우가 강변에 세워둔 둔영의 관측소에 이르러, 모두 잡아 포박해 버리니, 이 때문에 관우는 알지 못했다. 마침내 남군에 도착하자, 사인(士仁)과 미방(芳)이 모두 항복했다. -여몽전 오나라 보면 상인이 쓰는 배로 위장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런게 일반적이고 이게 군사적 용도로도 쓸 수 있는 것을 보면 위나라 배가 적다는게 맞다도 생각해요
루리웹-6278762111
잘 모르겠는데요... 아무래도 근거가 크게 와닿는 편들은 아닌지라... 수로교통 지역이라면 뭐 상선이 오가는건 당연한 거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 상선이 유사시에 군용으로 징발가능한 물건
루리웹-6278762111
장판교에서도 관우가 배 300~400척을 가지고 왔다는 걸로 보아했을때 아마 땟목이나 보트, 소형범선정도로 추정되는 걸 끌고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 당시 배 라는게 휘황찬란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다만 이게 배가 있다 없다라 판단하기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에 비추가 박히는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