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쉐량
장쉐량은 위안스카이의 북양 군벌 중 한 파벌이고 동북 3성을 다스리는
봉천 군벌인 장쭤린의 6째 아들로 1898년에 태어남
아버지인 장쭤린이 마적으로 시작하였지만
곧 마적을 잡는 마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정식으로 군에 편입됨
이후 끝없이 군을 확대하며동북 3성을 중심으로 만주를 꽉 잡은 군벌이 되었고
중국 대륙 천하 통일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평가 받는 중국 군벌 끝판왕급 인물임
하지만 장쉐량은 완전 호부견자로 군사적 재능, 지도자 소양 모두 빵점에 약까지 손대는 놈임
여기서 장쉐량이 대체 뭘 했기에 중국 현대사를 바꾼 인물임? 할텐데
장쉐량이 트롤짓 할 때마다 중국의 역사가 바뀌었음
( 저 위에 만주에 있는 장작림의 중국 이름이 장쭤린으로 봉천군벌의 영역임 )
장쉐량의 위대한 업적은 1928년 국민당이 앞서 봉천군벌을 정벌하겠다고 달려들었던
2차 북벌 전쟁이 벌어지던 때부터 시작됨
아버지인 장쭤린은 1차 북벌로 궁지에 몰리자 뒤로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만주의 여러 이권을 내주는 밀약을 맺었지만 딱히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음
( 사실 아무리 군벌이 왕이라고 하지만 일본과 협력하면 주변 군벌과 백성들의 지지가 날아갈 수 있었음 )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를 통해 만주의 이권을 더 빼먹으려 했던 일본 관동군은 장쭤린에게 사기당하자
눈이 돌아서 철로에 폭탄을 설치해 그대로 장쭤린과 기차를 함께 날리며 암살시도를 함
장쭤린은 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원수부로 급히 이송되었고
마지막에 아들인 장쉐량을 후계로 지정하고 사망함
당시에 일본은 너무 어설프게 사건을 위장 하기도 했고 장쭤린이 사망하자마자
내정간섭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장쉐린은 일본이 사건의 원흉임을 알고 있었음
하지만 전쟁이 한참 벌어지고 있었고 마적 끼리의 의리 빼면 자신의 파벌이나 지지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봉천 군벌의 수장이 되고자 국민당에 항복하는 동시에
일본의 지원을 받으며 바짝 엎드리고 각종 이권을 넘겨주는 친일 행보를 보임
어찌나 바짝 엎드렸는지 일본군에게 전쟁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일본군이 와서 도발하거나 군사 행위를 할 경우 아예
아무런 저항을 하지 말라 명령을 군에 내림
이 결정은 만주사변의 가장 큰 치명타로 작용했는데
기습적으로 시작된 만주사변 초기에 진짜로 봉천 군벌 병사들이 아무 저항을 하지 않아 완전히 밀려버림
만약 장쉐량이 아버지인 장쭤린의 군사적 능력이나 지도자 소양이나 카리스마의 반절만 있었으면
일본은 베이징은 커녕 한참을 만주에 발이 묶여 돈좌 되었을 수 도....
만주 사변 이후 만주국이 탄생하면서 봉천군벌 땅을 거의 다 빼앗기고
유일하게 남은 거점인 열하성 (러허성, 지금의 청더시 위치)에서 다시 시작 하려고 했음
하지만 1932년 터진 열하사변으로 남은 거점마저 일본군에 다 뜯기고 중국 내에서 엄청 욕 먹은 뒤
장제스에게 직위 사임을 요청하며 독군에서 내려와 끈 떨어진 낭인 신세가 되어버림
하지만 장쉐량의 트롤링은 여기서 끝나지 않으니...
열렬한 반공이었던 장제스는 중공을 끝내기 위해 초공 작전을 세워 공산당을 멸살하려 했고
실제로 엄청난 화력과 공중 화력으로 밀고 오자 동네 깡패 수준이었던 공산당은 박살났으며
홍군이 살아남기 위해 붉은 빤스 휘날리며 역사적인 역돌격 사건인 < 대장정 >이 끝났을 때 이야기임
대장정 끝에 홍군은 겨우 4만명만 살아남아 옌안에 둥지를 틀고 겨우 한숨 돌리고 있었고
장제스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장쉐량을 기용해 옌안 내 공산당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림
하지만 장쉐량의 능력이 너무 후달려서 그랬을까, 아님 홍군의 게릴라전이 너무 잘 먹혀서 였을까?
장쉐량이 지휘하면 그냥 패배해버리며 연전 연패를 기록하자 군사의 사기가 바닥을 쳤고
거기다가 화가 난 장제스는 ( 물론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알지만 ) 장쉐량에게 무작정 돌격하라고 닥달했음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수중에 있는 자신의 나와바리인 만주, 동북 3성을 되찾아와
자신에게 안겨주지 않는 장제스에게 좋은 감정 없었던 장쉐량은 역대급 트롤링을 시작하는데...
장쉐량은 빡쳐서 그대로 공산당과 비밀리에 협약을 맺어 휴전을 하고 공격을 중단하게 됨
협약 이후 장제스가 빨리 공격하라고 닥달하자
장쉐량은 오히려 중공과 강화를 맺는 것이 어떻냐? 면서 반문을 하였음...
개 빡친 장제스가 그렇게 초공이 싫으면 한직으로로 빠지라며 사실상 죄천이 확실시 되는가 싶었는데
장제스에 반기를 품은 장쉐량이 장제스를 시안으로 불러들여서 납치 감금하고
8개 요구 조건을 강요한 그 유명한 시안 사건을 일으킴...
결국 마지막에 소련의 지령을 받은 저우언라이와 장제스의 담판으로 동북군, 서북군의 지위인정,
정치적 자유 확대, 내전 중단, 항일을 위한 국공합작 등에 동의를 하며 국공합작이 이뤄짐
덕분에 중국 공산당은 완전히 부활하게 되면서 훗날 중국 공산당의 대륙 통일 기반을 마련하게 됨
시안 사건의 중심인 장쉐량은 이후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으나 장제스에 의해 즉각 사면되었는데
당연히 모든 것을 망친 대가로 무기한 가택 연금 조치를 취함
이후 장제스가 대만으로 런을 친 1949년 국부천대 사건 때
장쉐량을 대만으로 친히 끌고 갔고 대만에서도 무기한 가택 연금 조치는 계속 되었음
가택연금은 장제스, 옌자간, 장징궈 순서대로 총통이 바뀔 동안에도 유지 되었는데
1954년에는 외출까지는 허용된 가택 연금으로 바뀌었고 리덩후이 총통이 1993년이 되어서야 가택 연금을 풀어줌
가택 연금이 풀린 후에 하와이로 이주해 아예 거기서 여생을 보냄
그리고 참 어이없게도 이렇게 트롤링과 삽질은 다 해놓고 천수를 누리고 갔는데
2001년 10월 14일에 하와이 저택에서 103세에 사망함
장제스와 가장 밀접했던 100세를 넘긴 두 사람 중 하나지 다른 한명은 부인인 쑹메이링 (10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