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아는 형님이 사진 봉사를 하시겠다고 하시더니, 저소득층 노인들의 영정사진 찍어주는 봉사를 하신다고 하더라. 갑자기 장례를 치르게 되면 곤란한 것 중 하나가 괜찮은 영정사진을 못 구하는 거거든. 그리고 우리나라 속설에 수의나 영정사진 같은 걸 미리 준비하면 더 오래 산다는 얘기도 있고. 그런데 이게 가난한 사람들은 쉽게 생각 못 하는 거라 나름 큰 도움이 되는 일이지.
다들 좋은 일 하신다고 격려도 하고, 도울 일 있으면 돕겠다고 해서 훈훈했는데, 몇 달 뒤에 그 형님께 여쭤보니 이러시더라.
"그만뒀어."
"왜요?"
들어보니 정이 떨어질만한 일이 많았더라고.
보통 이런 봉사는 지역의 자원봉사단체에 얘기하면 지자체랑 협의해서 그 지역 저소득층 노인을 대상으로 영정사진 신청을 받는거래. 그렇게 명단을 만들고 날짜를 정해서 주민센터 회의실 같은 곳에서 찍어주는 거지. 형님이 하실 때는 대학자원봉사단체도 같이 하게 됐는데, 대학생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메이크업을 해드리는 걸 맡았다는군. 아무래도 사진에 잘 나오려면 화장이 필요하니까.
형님은 사진을 찍어주는 거 외에도 직접 포토프린터 준비해서 현장에서 큰 사진을 뽑아서 주는 거까지 하셨다네. 거기다 그 날 본 학생들도 자기들이 좋은 일 한다는 거에 들떠서 분위기도 참 좋았고.
그런데, 현실은 많이 씁쓸했었다네.
일단 약속시간 맞춰서 안 오는 사람들이 다수 생겼다는군. 뭐 돈 받고 하는 건 아니니 안 온다고 뭐라할 건 아니지만, 나름 일정과 시간을 내는 건데 기분 좋지는 않지.
그리고 두 번째가 사실 더 심각한데, 노인들이 오면서 주변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거였어. 그게 뭐 나쁜가 싶은데, 이 같이 온 노인들이 자기도 사진 찍어달라고 현장에서 요구하는 거지. 당연히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준비된 것들이 있으니 그걸 해줄 수도 없었는데, 곱게 포기하는 경우가 드물었다나.
마지막으로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난리치는 경우까지 만나니까 그냥 봉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어졌다고 하시더군. 그러다가 노인들이 메이크업 해주는 대학생들에게 되도 않는 음담패설까지 하면서 낄낄거리는 거 듣고 나서는 사람에 대한 혐오까지 생기더래.
아무튼 약속은 약속이니 그 날 일정은 다 소화를 했고, 원래는 몇 번 더 촬영일정을 잡으려던 건 죄다 포기하셨다더라.
물론 그 날 온 노인들이 죄다 그런 나쁜 사람들만은 아니었다지만, 원래 멀쩡한 사람 열 명은 기억이 안 나도 이상한 인간 하나는 잊혀지지 않는 법이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 그 형님이랑 연락이 됐어. 뭐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그 형님이 예전에 영정사진 찍어줬던 얘기를 하시더라고. 그래서 그 때 고생한 얘기를 하시려나 싶었는데 이러셨어.
"얼마 전에 이메일 한 통을 받았는데, 몇 년 전에 영정사진을 찍어준 할머니 딸이라는 거야. 그 할머니가 지난 달에 돌아가셨다네. 그런데 평소에 워낙 사진 같은 거 안 찍은 분이라 고생했는데, 몇 년 전에 내가 찍어드린 그 사진을 발견해서 영정사진으로 잘 썼다고 고맙다고 하더라."
그 형님 요즘 다시 사진봉사 시작하신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