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자르는거나 가지를 치거나 얼음이나 여러 자재들을 자르는 등 공업용으로 주로 쓰이는
전기 사슬톱은 원래 다른 용도로 만들어졌는데...
그 용도는 바로 본래 출산을 할 때 필요한 도구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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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무슨 미친소리야! 싶겠지만... 여기에도 나름 이유가 다 있는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머나먼 고대 로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함
서양에선 고대 로마 시절부터 아이가 크거나 문제가 있어서 나오지 못하고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수술이 있었으니...
바로 제왕 절개였음
TMI * 제왕절개의 뜻 자체가 카이사르가 이 방식으로 태어났거나 산모와 아이가 죽으면 산모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 따로 장례를 치루게 하라고 해서 했다는 등 카이사르와 관련된 썰이 있어서
시저( 카이사르 ) 절개술 Caesarean section 이라 붙었다고 함
그리고 동양에 와서는 카이사르 - 시저 - 황제 - 제왕 帝王 절개이라 이름이 붙음
( 실제 시저와 절개술과의 연관이 있는지는 현재 불확실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도 있음 )
암튼 과거 서양의 제왕절개는 산모와 아이 모두가 위험할 때 쓰는 시술로
둘 중 한명은 살리고 보자는 의미지만 주로 산모들이 죽는 쪽이었음
왜냐하면.. 제왕절개는 칼과 가위 톱으로 음부부터 배까지 쭉 째는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마취도 없는 시절에 깨 있는 상태에서 배를 가르니 과다 출혈과 쇼크로 사망하던가
살아서 평생 후유증을 안고 골골대면서 살던가 둘 중 하나였음
그렇기에 서양의 의학계에서는 산모와 아이를 살리기 위한 제왕절개을 개량한 시술법이 간절했지만...
안타깝게도 도구의 발전은 물론이고 마취제 개발도 거의 미미했기에 천년이 넘도록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됨
그리고 세월이 흘러 1780년 즈음
스코틀랜드의 의사인 존 에잇킨과 제임스 제프리가
죽은 산모들의 시체를 사들여서 해부하며 연구한 끝에 새로운 제왕절개술을 개발하게 되는데
복부가 아닌 산모의 치골을 잘라 강제로 벌리고 아이를 받은 뒤 다시 뼈를 붙이고
최소 4~6주간 산모가 침상에서 골골대며 겨우 회복하는 방법을 개발하게 됨 ( 물론 현재는 금지된 시술임 )
하지만 개발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아무리 칼이 좋아도 단단한 뼈를 급하게 잘라내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고
톱을 쓰자니 톱이 너무 크게 움직이면 상처가 더 커지기 쉬웠음
때문에 두 의사는 새로운 정형외과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리고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사슬톱임
크게 앞뒤로 움직여 상쳐를 벌릴 필요 없이 뼈에 대 고정 시킨 뒤 손잡이를 돌려 갈아내는 방법을 쓰면서
상처 부위가 적어지고 빠르고 정확하게 치골을 절단할 수 있게 되었음
물론 초기였던 만큼 ( 시술 자체가 문제가 컸던것을 차치하고) 불안정하여 흔들리기 쉬웠기에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었지만
기존의 칼과 톱으로 우악스럽게 썰고 뜯어내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게 시술을 할 수 있게 되었음
그리고 사슬톱이 발명된 뒤로 현대의 전기톱의 직접적인 원형이 되는 사슬톱은 1800년대 초에 나옴
10살이었던 베른하르트 하이네 라는 소년이 정형외과 도구 제조 기술자인 삼촌 요한 하이네의 밑으로 들어가
도구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해부학 강의와 수술 시연등을 보며 의학에 입문하게 되면서 시작됨
1830년에 성인이 된 하이네는 사슬톱을 이용한 수술들을 봐왔지만 불안정한 탓에
자칫 산모는 물론이고 아이까지 더 크게 다칠 수 있는 장면들을 봐왔고 사슬톱 개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됨
그렇게 그동안 배워온 의학 지식과 도구 제작 기술 그리고 훌륭한 제작자인 삼촌의 도움을 받아
사슬톱을 새로 개발하면서 자르고자 하는 부위에 딱 고정이 되고 흔들림 없이
안전하게 절단할 수 있는 사슬톱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모든 전기톱들의 원형이 됨
제왕이 그 제왕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