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님이랑 가지고 상관있는건 3번쟤 이유임
여러 책에서 이르길 공이 파묻은 원소의 군사가 8만 또는 7만이라고 한다. 무릇 8만 명이 흩어져 달아나는데, 이들을 8천 명으로 능히 포박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원소의 대군이 모두 순순히 죽임을 당했으니 어떤 역량으로 그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 군사가 심히 적을 수 없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다.
조조 병사가 적지않을거라는 이유로 조조 군재과장시킨이유로 8천으로 7만을 어케포박하고 순순히죽이냐 이거니
그래서 조조 숫자가 말나온 보다 많을거라는말이 조조전 파성넷에 있더라고요
신 송지가 보건대, 위무(魏武-위무제)가 처음 군을 일으켰을 때 이미 군사 5천이 있었고 그 후로 백전백승하고 패한 것은 열에 둘, 셋뿐이었다. 단지 황건적을 한번 격파하여 항복해 온 병졸만 30여 만이었고 나머지 병탄한 것은 일일이 기재하지 못할 정도다. 비록 정벌전에서 손상된 군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처럼 적은 숫자일 수는 없다. 무릇 둔영을 연결해 서로 지키는 것은 적의 예봉을 꺾고 결전하는 것과는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본기(本紀-무제기)에서 원소의 군사가 10여 만이고 그 둔영이 동서로 수십 리에 이르렀다고 하니, 위태조(魏太祖-조조)가 비록 기변무방(機變無方-임기응변에 뛰어남)하고 지략이 불세출이라고 하나, 수천 군사로 어찌 이때에 서로 대치하는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었겠는가? 이치로 말하자면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원소가 수십 리에 걸쳐 둔영을 세우자 공 또한 능히 둔영을 나누어 서로 대치했으니, 그런 군사가 심히 적을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원소에게 만약 10배의 군사가 있었다면 이치상 응당 전력을 기울여 수비하며 출입을 단절해야 하나, 공은 서황 등을 보내 원소군의 군량운반 수레를 공격케 했다. 공 또한 친히 출전하여 순우경 등을 공격하고 깃발을 휘날리며 돌아오는데 일찍이 저지된 일이 없었다는 것은 원소의 역량으로 능히 제압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니, 그런 군사가 심히 적을 수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여러 책에서 이르길 공이 파묻은 원소의 군사가 8만 또는 7만이라고 한다. 무릇 8만 명이 흩어져 달아나는데, 이들을 8천 명으로 능히 포박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원소의 대군이 모두 순순히 죽임을 당했으니 어떤 역량으로 그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 군사가 심히 적을 수 없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다.
님이랑 가지고 상관있는건 3번쟤 이유임
여러 책에서 이르길 공이 파묻은 원소의 군사가 8만 또는 7만이라고 한다. 무릇 8만 명이 흩어져 달아나는데, 이들을 8천 명으로 능히 포박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원소의 대군이 모두 순순히 죽임을 당했으니 어떤 역량으로 그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 군사가 심히 적을 수 없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다.
조조 병사가 적지않을거라는 이유로 조조 군재과장시킨이유로 8천으로 7만을 어케포박하고 순순히죽이냐 이거니
총 인원수가 8만인진 모르겠는데 반란어쩌고도있던거보면 조조군이 감당하기 힘든체급의 수였을 확률이높지
조조의 황건적 30만 흡수는 너무 곧게 들으면 안댐 물론 5천은 적은 숫자 일순 있는데 그 도적떼를 사병으로 만든 청주병이 얼마나 찐빠를 일으켰는지 생각해보면 30만이면 군량만 관리하다 조조군 망했을듯
님이랑 가지고 상관있는건 3번쟤 이유임 여러 책에서 이르길 공이 파묻은 원소의 군사가 8만 또는 7만이라고 한다. 무릇 8만 명이 흩어져 달아나는데, 이들을 8천 명으로 능히 포박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원소의 대군이 모두 순순히 죽임을 당했으니 어떤 역량으로 그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 군사가 심히 적을 수 없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다. 조조 병사가 적지않을거라는 이유로 조조 군재과장시킨이유로 8천으로 7만을 어케포박하고 순순히죽이냐 이거니
총 인원수가 8만인진 모르겠는데 반란어쩌고도있던거보면 조조군이 감당하기 힘든체급의 수였을 확률이높지
8만명이 얌전히 죽어줬다는게 뭔가 이상해서 하는 말
그래서 조조 숫자가 말나온 보다 많을거라는말이 조조전 파성넷에 있더라고요 신 송지가 보건대, 위무(魏武-위무제)가 처음 군을 일으켰을 때 이미 군사 5천이 있었고 그 후로 백전백승하고 패한 것은 열에 둘, 셋뿐이었다. 단지 황건적을 한번 격파하여 항복해 온 병졸만 30여 만이었고 나머지 병탄한 것은 일일이 기재하지 못할 정도다. 비록 정벌전에서 손상된 군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처럼 적은 숫자일 수는 없다. 무릇 둔영을 연결해 서로 지키는 것은 적의 예봉을 꺾고 결전하는 것과는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본기(本紀-무제기)에서 원소의 군사가 10여 만이고 그 둔영이 동서로 수십 리에 이르렀다고 하니, 위태조(魏太祖-조조)가 비록 기변무방(機變無方-임기응변에 뛰어남)하고 지략이 불세출이라고 하나, 수천 군사로 어찌 이때에 서로 대치하는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었겠는가? 이치로 말하자면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원소가 수십 리에 걸쳐 둔영을 세우자 공 또한 능히 둔영을 나누어 서로 대치했으니, 그런 군사가 심히 적을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원소에게 만약 10배의 군사가 있었다면 이치상 응당 전력을 기울여 수비하며 출입을 단절해야 하나, 공은 서황 등을 보내 원소군의 군량운반 수레를 공격케 했다. 공 또한 친히 출전하여 순우경 등을 공격하고 깃발을 휘날리며 돌아오는데 일찍이 저지된 일이 없었다는 것은 원소의 역량으로 능히 제압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니, 그런 군사가 심히 적을 수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여러 책에서 이르길 공이 파묻은 원소의 군사가 8만 또는 7만이라고 한다. 무릇 8만 명이 흩어져 달아나는데, 이들을 8천 명으로 능히 포박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원소의 대군이 모두 순순히 죽임을 당했으니 어떤 역량으로 그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 군사가 심히 적을 수 없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다.
조조의 황건적 30만 흡수는 너무 곧게 들으면 안댐 물론 5천은 적은 숫자 일순 있는데 그 도적떼를 사병으로 만든 청주병이 얼마나 찐빠를 일으켰는지 생각해보면 30만이면 군량만 관리하다 조조군 망했을듯
진리는 라면
님이랑 가지고 상관있는건 3번쟤 이유임 여러 책에서 이르길 공이 파묻은 원소의 군사가 8만 또는 7만이라고 한다. 무릇 8만 명이 흩어져 달아나는데, 이들을 8천 명으로 능히 포박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원소의 대군이 모두 순순히 죽임을 당했으니 어떤 역량으로 그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 군사가 심히 적을 수 없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다. 조조 병사가 적지않을거라는 이유로 조조 군재과장시킨이유로 8천으로 7만을 어케포박하고 순순히죽이냐 이거니
청주병 흡수한건 단순 병사가 아니라 거기 섞인 부양인구같은것도 포함했을지도 모름
8천으로 7만 몰살 시킬 정도면 이미 항우나 백기 재림이라 봐야되긴 하겠지
조조군 1만설은 씹구라고 4~5만정도로 보긴함
근데 원소튈때 서술보면 존나 혼란스럽고 장합따라서 귀순한놈들도있을테니 8만명 풀로채우진않았을거임 애초에 오소에서 1만 5천이 녹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