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수신자 이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To Mary, Daughter of Arkham(아캄의 딸, 메어리에게).
04-1 Interesting Preparations
철컥, 끼이익!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 모처럼 소파에 누워 늘 보던 잡지로 얼굴을 덮고 자면서 금속 경첩에서 나는 소리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확인하던 단테는, 오늘의 첫 손님을 확인하기 위해 잡지를 잠깐 집어 들고 시선을 돌렸다.
금발의 곱슬머리를 가진 30대 후반의 여인이 평범한 외출복을 입고 있었고, 앞으로 포갠 두 손에는 가벼운 손지갑이 들려있었다. 상대를 확인한 단테는 다른 때와는 달리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딸아이는 지금 여기 없는데 무슨 일로 온 거죠, 로엘씨?”
여인―패티의 어머니 니나 로엘은 사무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그의 물음에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패티에게 자주 듣고 있지만 생각보다 넓은 사무실이군요.”
“뭐, 좁은 것보다는 널찍한 게 편하죠. 그런데 그 말 하려고 먼 걸음 한 건 아니죠?”
“음, 실은 패티를 좀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어서 왔어요.”
그녀의 말에 약간 흥미를 보이며 의자에 앉은 단테가 물었다.
“지켜달라니, 누가 노리고 있기라도 한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요, 요즘 들어 패티의 행동이 좀 이상해요.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말도 없이 나갔다가 저녁 8시 즈음에 돌아오는데, 그때마다 뭔가를 잔뜩 적은 쪽지를 갖고 와요. 그렇다고 그 애 방에 들어가면 쪽지를 어디에 숨겼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가득하였다. 그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단테는 곧 약간의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알았어요. 특별한 일이야 없겠지만 부탁을 들어드리죠.”
“아, 감사합니다.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니나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철컥!
니나가 돌아간 다음 책상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던 단테는 오랜만에 울리는 전화벨을 듣고는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데빌 메이 크라이!”
곧 수화기 저편에서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베리오입니다. 오늘은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좀 내 주실래요?]
그의 말에 단테가 투덜거리듯 대꾸했다.
“이봐, 남자랑 데이트할 시간은 없다고. 뭐, 어쨌든 끝났으면 데리러 가지.”
[농담이 아닌데, 아무튼 오늘은 굳이 안 오셔도 돼요. 장소를 잡으면 거기서 만나죠.]
“그럴 거면 돈 드는 곳보다 여기 사무실로 오는 게 낫지 않겠어? 음식이 필요하면 배달시키자고.”
상대는 상당히 진지한 목소리였지만 단테는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닌 듯 계속 농담조로 말을 받았다. 약간의 잡담이 조금 이어진 다음 사베리오가 다시 본론을 꺼냈다.
[사실 오늘 말씀드리려는 건 제 의뢰와 관련된 겁니다. 한동안 과제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가야되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말씀드렸던 수고비를 오늘 드리고 의뢰를 마치려고요. 곁들여 최근에 얻은 정보도 들려드리죠.]
“그렇다면 다른 두 명에게도 연락할 건가?”
[아무래도요. 그럼 이따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어, 어이, 잠깐….”
철커덕!
“…내 참.”
단테가 뭔가 말을 더 하려는 찰나에 상대편에서 전화를 끊는 소리가 들렸다. 한숨을 내쉬며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입고 기타 가방을 준비하였고, 2분도 되지 않아 곧바로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일전에 패티가 지냈던 고아원에 들른 단테는 원장에게서 별다른 정보는 듣지 못하고 나온 다음 광장으로 향했다. 날이 좋아 여러 사람들이 쉬고 있는 그 넓은 장소의 한가운데에는 말을 타고 있는 검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특히 아이들이 그 주변에서 많이 놀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잠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그는 곧 주변을 둘러보며 패티를 찾았다. 패티가 사무실에서 해준 이야기들 대다수가 광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낯익은 곱슬머리의 여자아이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뒤에 누가 다가왔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던 그 소녀는, 단테가 왼손을 살짝 갖다 대는 것에 화들짝 놀래며 그제야 돌아봤다.
“우왓! 어휴, 놀랬잖아!”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화풀이하는 패티를 가볍게 받아주며 단테가 물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거야?”
“비~밀! 안 가르쳐 줄 거다!”
장난스럽게 말하는 소녀의 얼굴에는 뭔가 즐거운 계획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나타나 있었다. 그걸 본 단테는 미소 지으며 패티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엄마랑 같이 하는 게 어때?”
“안 돼. 엄마에게 중요한 날이 있어서 준비하는 중이라고.”
그의 손을 치우며 약긴 삐친 표정으로 대꾸하는 패티의 말에 단테는 미소를 유지한 채로 말을 계속했다.
“알았어. 그래도 엄마가 너무 걱정하는 것 같으니까 적당히 안심시켜 드려. 아까 찾아오셨어.”
“어, 정말? 알았어.”
약간 놀라며 대답한 패티는 곧 적던 것들을 잘 챙겨서 주머니에 넣은 다음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가만히 소녀의 뒤를 바라보던 단테는 잠시 후 사무실로 돌아와 코트도 벗지 않고 곧바로 소파에 누웠다. 아까 안 가지고 나간 기타 가방은 그대로 벽 한 쪽에 세워져 있었다.
누운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단테는 재빨리 수화기를 들었다.
“데빌 메이 크라이!”
[사베리오입니다. 단테 당신이 자주 가는 그 식당 근처에 있는데 지금 그리로 와 주세요.]
“알았다. 다른 두 명은?”
[좀 전에 연락했어요. 그럼 잠시 후에 뵙죠.]
말을 마친 다음 이번에도 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단테는 곧바로 기타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는 사무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