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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쓰지 못했던 이스칸다르 의 의 일화들을 소개해보고자합니다.
이스칸다르 의 애마 부케팔로스는 "황소의 머리 " 란 뜻을 가진 말로 워낙 조련사나 사육사들 조차 길들여지는것을 거부했다는 말로
헤라클레스가 신들로부터 받은 과업중 하나인 디오메네스왕이 키우던 식인말 들의 후손이 아닌가 라는 말도 있었을정도로 매우 난폭
한 성격 이였다고합니다 하지만 이스칸다르 (알렉산드로스 3세 ) 는 이런 부케팔로스 를 길들여서 자신의 애마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둘의 인연은 인도원정에서 부케팔로스가 30세의 고령에 나이에 숨을 거둘때까지 함께 했습니다.
이스칸다르 의 부왕 필리포스 2세는 이스칸달의 스승으로 아리스토텔레스 를 왕실교사로 초빙하여 이스칸달을 가르쳤다고합니다
필리포스 2세가 자신에게 생명을 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 는 이스칸다르 에게 자신에게 고귀한 삶을 살수있도록 해준 은인이라고 하여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다고합니다. 하지만 그의 조카 칼리스네테스가 이스칸다르 에게 자주 직언을 올리던 사람이였는데 어느날 이스칸달이 그를
죽여버림으로서 한때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교류를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이스칸다르 는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요약한 필사본 " 일리아드 " 를 늘 가지고 다녔는데 트로이왕국과 그리스 연맹의 싸움을
다룬 일리아드 는 그런 이스칸다르 에게 엄청난 충격이였습니다. 오죽하면 배게 맡에 일리아드를 두고 잘 정도로 엄청난 일리아드 덕후 였다고
하지요 성격은 배짱도 강하고 자신감에 늘 넘쳤으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였다고 전합니다 야망도 매우 커서 부왕이 승리를 하고 돌아
올때면 울적해져서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 아바 마마 께서 나라들을 정복하시면 나와 너희들이 커서 펼칠수 있는게 있을까 ?
"라며 우울해하자 친구들은 올림픽 경기에 나갈것을 권하자 그제서야 마음이 풀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포에 떨거나 두려워했던일도 있었다고 합
니다 인도정벌당시 파우라바왕조의 왕 포루스가 이끄는 코끼리 부대와 진영을 보고 두려워 했으며 말년에는 불길한 징조 와 점쟁이들의 좋지않은
예언탓에 공포에 떨었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늘 선두에서서 적군과 맞서 싸웠다고 하지요
다른 지배자들과는 다르게 물욕과 육욕 식욕 을 무척 자재했으며 호화로운 음식보다는 병사들이 먹는 소박한 음식을 주로 먹었다고합니다.
거기다 점령한 국가의 지배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배치하고 등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병사들과 관료들은
불만이 가득했다고 하지요 이 때문에 반란이 터지기도 했고 심지어 이스칸다르 의 암살사건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자제력이 충분했지만 의외로 충동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대표적인 것들이 페르세폴리스 를 불태운일이나 에우메네스의 막사에 불을
지르거나 자신의 은사 이자 지지자 였던 클레이토스 와 파르메니온을 죽인것이 대표적인 일들입니다 자제력이 강했던 만큼 충동적인 모습
을 자주 보여줬다고 하지요
그러나 충독적인 것과는 달리 그의 인품과 자제력과 정치방식은 후세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로마의 카이사르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
르트 와 같이 이름을 남긴 이들을 비롯수많은 이들이 이스칸달의 모습을 밴치마킹 하려 노력하였다고합니다 특히 카이사르가 33세가 되었을 무렵
이스칸다르 의 동상앞에서 울며 " 이스칸다르 대왕은 내나이 때 세계를 정복하고 눈을 감았는데 나는 이 나이에 이를 때까지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구나 ... " 라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동상 1696 니콜라 투스트 제작 )
유럽 에서는 이런 이스칸다르 의 모습에 밴치마킹 하려는 모습들을 보였다면 이슬람권 과 유대인 들은 이스칸달을
침략자 혹은 전설의 와전되서 숭배되는 경우도 있는데 특히 이스칸다르 란 이름 자체가 알렉산드로스 3세를 페르시아 어로 부르는 이름이여서
한때 이슬람권 지도자 들은 자신을 이스칸다르 의 후신이라고 외쳤던 일도 있었다고 하지요 이란쪽에서는 악의 화신으로 보거나 혹은 역사에 유명
위인으로 보기도합니다 인도에서는 이스칸다르 의 원정 탓에 그리 썩 좋게 보지 않는데 인도 공화국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 (1889~1964) 는
자신의 딸에게 이스칸다르 를 야만인 우두머리 라고 가르쳤을 정도인데 네루 총리와는 다르게 이스칸달은 인도신화의 군신 스칸다 (카르티케야)
와 합쳐저 신이 되었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전파된 불교에서 위타천 이란 형태로 변형되었고 일본에서는 이다텐 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대교 역시
이스칸다르 를 좋지 않게 보는데 구약성서 와 마카베오키 에서는 이스칸다르 를 침략자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와 반대로 알렉산드로스 가 어원인
스킨다르란 이름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스칸다르 가 전파한 그리스문화 는 이후 각 지방의 특색에 맞춰 변화된 헬레니즘 문화로 탄생되었으며 이후 인도에서 이 영향이 미쳐
간다라 영향이 한국에도 끼쳐 한국의 석굴암 역시 이 영향을 크게 받은 조각중 하나입니다
튀르키예 앙키라 에 우마차를 끌고 온 시골농부 고르디우스와 그의 아들 미노스가 앙키라에 도착했는데 그곳사람들이 일전 신탁에서
앙키라에 우마차를 끌고온 이가 왕이 될것이다 라는 예언이 있었기에 우마차를 끌고운 고르디우스 와 미노스를 반겨주며 그들을 왕으로
추대했다고합니다 이후 왕위를 이은 미다스는 우마차를 사바지오스 란 신에게 바쳤는데 사바지오스 의 신관들이 이 우마차에 끈을 복잡하게
묶어 풀기 어렵도록 해놓았습니다 이때 이후 우마차에 묶인 끈을 푸는 자는 아시아 (소 아시아) 의 왕이 될것이다 라는 에언이 내려오고 있었
는데 이스칸다르 왕이 앙키라에 도착하여 이 매듭을 보고 풀려고 했지만 도통 끈 자체가 복잡해서 결국 칼로 끈을 베어풀었는데 예언대로
대 제국을 이룩했으나 손으로 푼게 아닌 칼로 벤것 때문인지 이스칸다르 사후 제국은 분열되어 찢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칸다르 에 대하 소개할때 쓰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 쓰지를 못해 따로 작성하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