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전편 보러가기: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546/read/2686642#cmt )
현재 시현의 필드에는 바렐로드와 컨트롤이 옮겨진 DRA가 있다. 그리고 류의 필드에 남아있는 카드는 전무. 라이프 역시 각각 1900, 1100. 언제 승부가 결정되도 이상하지 않은 수치다.
"전 카드 2장을 세트하고, 턴 엔드합니다."
당장은 승기를 가져온 시현. 지금 걱정이 있다면 리볼부트 섹터나 리차저의 부재다. 만일 한 번 더 밀려나면 그때는 라이프가 남아도 승기를 되찾을 자신이 없다.
이렇게 되면 지금 이 흐름을 굳히는 수밖에. 상대에게 역전의 여지를 용납해선 안된다.
{유시현 LP 1900, 패 0장 류해운 LP 1100, 패 2장}
《TURN 4》
"내 차례다, 드로우!"
이때 류의 드로우는 평소보다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덱 위에 손가락을 올렸을 때에 두드러진 이두박근과 드로우하면서 팔을 휘둘렀을 때의 풍압이 그의 체격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묘지의 벤α의 효과로 패의 라스β를 릴리스하고 자신을 특수 소환. 그리고 덱에서 [드라이트론 메테오니스-QUA]를 패에 넣지.
그리고 묘지의 라스β도 벤α를 릴리스하고 특수 소환, 그 후 제외 상태인 르타δ를 묘지로 되돌린다.
이어서, 르타δ의 효과도 발동. 라스β를 릴리스하고 특수 소환, 그 후 패의 QUA를 보여주고 1장 드로우."
류는 DRA의 효과가 자신의 몬스터를 겨누고 있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건지, 몬스터를 2장 이상 꺼내지 않고 계속 깔짝거리고 있었다.
".... 패에서 마법 카드 [드라이트론 노바]를 발동. 체인은?"
".... 없습니다."
"그럼 체인 2로 [금지된 일적]을 발동! 패의 QUA와 발동 중인 노바를 묘지로 보내고, 그 묘지로 보낸 카드 수만큼 상대 몬스터의 효과를 무효로 하고 공격력을 절반으로 하겠어."
카드 2장이 묘지로 보내지고 필드 한가운데에 불길한 보라색 액체가 담긴 잔이 떠오르자 시현은 DRA의 효과를 발동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DRA는 반응하지 않았다. 저 잔에서 나오는 기운 때문인건가...?
"또한, 이 효과 발동에 대하여 상대는 방금 묘지로 보낸 카드와 같은 종류의 카드 효과를 발동할 수 없어."
묘지로 보내진 카드는 몬스터와 마법. 따라서 DRA로 체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시현에겐 몬스터만 있는 것은 아니였다.
"체인 3, 함정 카드 [트랩 트랙]을 발동합니다! 파괴할 카드는 DRA!"
저 카드를 보고 장기 쌤은 눈이 커지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금지된 일적은, 발동을 위해 묘지로 보낸 카드 수가 상대 필드 몬스터 수 보다 많으면 효과가 적용되지 않아... 그래서 시현은 묘지로 보내지지 않은 종류인 함정 카드를 발동해서 일적의 체인 불가 효과를 뚫고 DRA의 효과까지 쓰려는 셈이군...."
그리고 류는 또다시 남은 패 1장을 바라보며 3초 정도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따로 체인은 없어."
"그럼 체인 4로 DRA의 효과도 발동합니다. 묘지의 공격력 400인 체크섬 드래곤과 공격력 1600인 트레이서를 제외하고, 르타δ를 묘지로 보냅니다."
DRA가 르타δ를 향해 레이저를 조준하려는데... 또다른 레이저가 바렐로드를 겨누었다.
"체인 5, [드라이트론 아스테리즘] 발동. 르타 δ의 공격력을 상대 턴 종료시까지 1000 내리고, 바렐로드 드래곤을 파괴하지."
".......!"
DRA의 견제 효과를 빼낼 것만 예상했는데, 여기서 바렐로드를 저격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은 수단도 쓰는 수밖에.
"체인 6, [택티컬 익스체인버] 발동합니다! 파괴할 카드는 바렐로드!"
"아니, 저것도 피한다고?"
"이렇게 체인이 많이 쌓이는건 처음 봐...."
금지된 일적을 함정 카드로 피하고, 대상 지정을 대상 지정으로 받아치는 진풍경에 학생들의 고개가 코트를 왔다가 갔다가하는 테니스 공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체인 쌓기가 끝나고 효과 처리가 시작되자 2개의 레이저가 빛나면서, 필드의 남아있던 3개의 몬스터가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금지된 일적의 효과가 담긴 잔은 효과를 적용할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자 그대로 깨져버렸다. 그리고 시현의 필드에는 아네스바렛이 특수소환된 후, [트랩트랙]의 효과로 [매직 실린더]가 세트되었고, 류의 필드에는 [드라이트론-알ζ]가 특수소환되었다.
"묘지의 엘γ의 효과로 알ζ를 릴리스하고, 자신과 벤α를 특수소환. 그리고 알ζ의 효과로 벤α를 릴리스하고 자신을 특수 소환, 그 후 덱에서 [메테오니스 드라이트론]을 패에 넣지.
2장을 소재로 파프υβ를 엑시즈 소환하고, [메테오니스 드라이트론]을 발동. 소재를 2개 제거하고.....
머나먼 두 별이 하나될 때, 잊혀져 있던 또다른 은하의 면에서 나타나라! [드라이트론 메테오니스-QUA] 강림!"
이번에 나온 몬스터는 DRA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완전 푸른색인 그것과는 달리 하얀 색 위주의 갑옷을 입은 기계룡이였다.
"그리고, 묘지의 [메테오니스 드라이트론]의 효과로, 파프υβ의 공격력을 1000 내리고 자신을 패에 넣는다. 그 후, 다시 의식 마법을 발동! 파프υβ를 릴리스하고, 묘지에서 [사이버 엔젤-나사테이야] 강림!
이어서 QUA의 기동 효과 발동. 의식 소환에 사용한 레벨 합계가 2이하이면, 상대 필드의 마/함을 전부 파괴한다."
지난 번에 겪었던 [해피의 깃털]처럼, 대상을 지정하지 않는 효과이기에 녹토비젼의 효과는 쓸 수 없었다.
"나사테이야의 효과로, 자신 필드의 의식 몬스터 1체의 공격력 절반만큼 라이프를 회복한다. 대상은 QUA, 따라서 2000 회복하지.
{류해운 LP 1100-> 3100}
배틀, QUA로 아네스바렛을 공격! 그리고, 나사테이야로 플레이어에게 직접 공격!"
아네스바렛의 갑옷이 산산히 부서지며 폭발한 연기를, 나사테이야가 말 발굽 소리와 함께 헤집고 돌진해왔다.
"끄윽...."
{유시현 LP 1900-> 900}
"난 이걸로 턴 엔드."
"엔드 페이즈, 파괴된 아네스바렛의 효과로 덱에서 [바렛 트레이서]를 특수소환합니다..."
{유시현 LP 900, 패 0장 류해운 LP 3100, 패 0장}
《TURN 5》
"드로우 페이즈... 드로우!!"
시현은 듀얼디스크를 장착한 왼팔을 힘 없이 떨어뜨린 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드로우한 카드를 바라보았다.
-"너가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는건 처음 보네."
-"여태껏 말 없다가 웬일이야....?"
-"사실 지금까지 에너지를 음미하느라 입을 열기 바빴다고."
-"아, 내가 이 꼴이 되고도 넌 지금까지 팝콘을 뜯느라 말이 없었단 말이지...?"
-"아니, 넌 지금까지 내 도움 없이도 잘 했으니깐 이번에도 잘 해낼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상대는 만만치 않은 건지 너가 거의 1분 동안 드로우한 카드만 보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잖아."
-"잠깐,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어?"
듀얼 디스크에 뜬 화면이 '남은 시간 60초'라며 경고를 띄웠다.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장착 마법, [바렐 리로드]를 발동해 묘지의 매그너바렛을 특수소환하고 이 카드를 장착합니다! 그리고 트레이서의 효과로 매그너바렛을 파괴하고 [실버바렛 드래곤]을 특수소환! 또한, 바렐 리로드를 장착한 몬스터가 효과로 파괴되었으니 1장 드로우합니다!"
시현은 오른손으로 드로우한 카드를 슬쩍 확인하고는, 엑스트라 덱에서 카드 1장을 꺼냈다.
"....레벨 4인 트레이서와 실버바렛으로 오버레이!
하늘을 달리는 웅장한 고동. 두 개의 뇌명이 되어 교차할 때, 십만억토의 문이 열리고, 그 힘을 드러낸다! 엑시즈 소환! 나타나라, 랭크 4! [바렐로드 X 드래곤]!"
"저 몬스터는...."
류도 저 카드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정말 존재만. 설마 이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말투였다.
"X 드래곤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엑시즈 소재를 1개 제거하고, 상대 몬스터 1장의 공격력을 600 내립니다. 안티 에너미 엑스차지!!
그 후, 묘지의 바렐 몬스터 1장을 특수소환합니다. 돌아와라, [바렐로드 드래곤]!!"
"뭔가 보여주려는 건가....?"
"하지만 나사테이야의 효과로 공격이 막힐 텐데..."
학생들 역시 시현의 패색이 짙어진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시현.... 어쩔 셈이야?"
-"........"
시현은 대답 없이 듀얼 디스크의 화면을 눌러 배틀 페이즈로 전환했다. 남은 시간은 30초.
"배틀, X 드래곤으로 나사테이야를 공격합니다."
X 드래곤이 바렐로드보다도 더 큰, 막대처럼 기다란 2개의 포신을 전개해 겨누었다.
"소용없는 짓이야.... 나사테이야는 자신의 의식 몬스터가 공격 대상이 되었을 때, 그 공격을 무효로 할 수 있어..."
"결국 포기한건가?"
시현은 구경꾼들에게 일일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말에 침묵으로 긍정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 이 순간, 공격 선언 시, 바렐로드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나사테이야의 공격력을 500 내립니다! 안티 에너미 바렛!"
나사테이야가 4개의 팔을 원형으로 모아 보호막을 형성했으나...
-타앙!-
바렐로드가 쏜 대포알만한 크기의 붉은 탄환이 보호막을 그대로 관통해버리며 보호막이 -쨍그랑- 소리와 함께 산산히 부서져 나사테이야에게 우박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그 쏟아진 파편은 나사테이야의 몸에 긴 자상을 남기면서 그것의 공격력을 낮추었다.
"받아라, 광천의 바렐 캐논! FIRE!!"
귀를 두 손으로 막아야 할 정도의 강한 포격과 함께 류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과 장기 쌤이 눈을 질끈 감았다. 계속 눈을 뜨고 있다간 눈알이 타들어갈 것처럼 주위 공기가 뜨거웠다. 열기가 천천히 식으면서 X 드래곤의 몸에서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나자 다시 천천히 앞을 바라보았는데, 나사테이야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아슬아슬했군. 자,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냐."
{류해운 LP 3100-> 100}
류는 듀얼디스크에 표시된 자신의 라이프를 힐끗 쳐다보고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시현을 응시하였다. 사실 그는 시현이 X 드래곤을 꺼낼 때부터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것이였다.
"....바렐로드 드래곤으로 QUA를 공격하고, 자신의 (3)번 효과로 QUA의 컨트롤을 얻습니다."
DRA에게 그랬던 것처럼, QUA가 입자로 흩어졌다가 시현의 필드로 다시 모였다. 남은 시간은 10초 남짓, QUA가 레이저 포에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정말.... 류 선배를 이긴다고? 저 신참이?"
"설마 그럴 리가...."
그러나 QUA는 주인을 알아 봐서 그런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류의 필드를 보고도 발사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발사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뭐야.... 그럼 이제 직접 공격만 하면 이기는거 아니야?"
"여기서 이걸 역전한다고....?"
"그나저나, 나사테이야 효과는 왜 안 쓴거지?"
학생들이 하나둘씩 술렁이자 장기 쌤이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여 말하였다.
"나사테이야의 효과를 쓸 수 없었던건 공격 선언 시의 우선권 때문이야. 턴 플레이어가 먼저 효과를 발동할 권리가 있단 뜻이지. 그리고 바렐로드의 (2)번 효과에 대하여 상대는 체인할 수 없기에, 바렐로드의 효과 사용 후 공격 선언 시 라는 타이밍을 놓쳐서 나사테이야의 효과는 발동할 수 없었지.
그리고 QUA로 직접 공격하지 않은 것은... X 드래곤의 효과를 발동한 턴에 직접 공격은 불가능해서....."
"우선권이라니... 그건 또 뭐야? 그럼 저것도 진작에 계산 안에 넣은 거야?"
"정말 아깝다, LP 100을 못 깎아서 여기서 스톱이라니...."
그렇다, 이 카드가 안 쓰이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효과를 쓴 후 직접 공격 불가, 특수 소환 불가, 소생한 몬스터는 엔드 페이즈에 제외라는 큰 디메리트가 붙기 때문이였다. 바렐이라는 대형 몬스터를 소생시키는 것에 대한 대가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3....
2.....
1.........
-"시현, 시간이 없어!"
시현은 다급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분을 이기지 못한 건지, 평소처럼 듀얼디스크를 가볍게 터치하지 않고 키보드를 내려치듯 화면을 강타하며 페이즈를 옮겼다. 그냥 게임일 뿐인데, 상대가 보통 강하다는걸 알고 있는데도 시현은 듀얼에서 질 것이란 두려움을 견딜 수 없었다. 꼭 '목숨이 걸린 상황'인것 양.....
"그리고... 카드 1장을 세트하고 턴 엔드입니다.
엔드 페이즈 시, X 드래곤의 효과로 특수소환된 바렐로드는 게임에서 제외됩니다...."
{유시현 LP 900, 패 0장 류해운 LP 100, 패 0장}
《TURN 6》
"내 차례다, 드로우."
"스탠바이 페이즈, [퀵 리볼브]를 발동해 덱에서 [바렛 트레이서]를 특수소환합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류도 트레이서를 보고 무슨 짓을 할지 짐작한 모양이다.
"묘지의 나사테이야의 효과 발동. 상대 필드의 몬스터 1장, QUA를 대상으로 발동, 묘지의 [사이버 엔젤-벤텐]을 제외하고, 자신을 특수소환. 그 후, 대상이 된 몬스터의 컨트롤을 얻지."
"체인, 트레이서의 효과로 QUA를 파괴하고 덱에서 [바렛 리차저]를 특수소환합니다!"
이로서 나사테이야가 특수소환되었지만, QUA가 류의 필드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QUA의 효과 발동, 의식 소환한 이 카드가 파괴되었으니, 공격력 합계가 2000 또는 4000이 되도록 묘지의 드라이트론을 특수소환한다! 돌아와라, [드라이트론 메테오니스-DRA]!!"
상대 몬스터의 공격력은 4000, X 드래곤의 공격력은 3000.... 그리고 류의 남은 라이프 100 역시 나사테이야의 효과로 다시 회복... 결국 시현은 어떤 짓을 해도 이길 수 없었다. 마치 전쟁터에서 만난 라이고우처럼. 공격력이 좀만 더 높았어도, 아님 직접 공격만 할 수 있었어도....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남의 몬스터를 훔쳐대다니, 손버릇이 나쁜 녀석이구나. 아, 물론 그것도 전략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 드라이트론이라는 덱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말이지. 이제 더 이상 내놓을 카드도 없는 것 같으니 끝내줄게."
류가 이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시현을 가리키자 DRA의 포신이 천천히 올라가면서 X 드래곤을 겨누었다.
"배틀. DRA여, X 드래곤을 섬멸하도록! 파이널 메테오 디스트로이!!"
조준점을 맞춘 2개의 포신에서 빛이 발산하자 시현과 X 드래곤은 마치 대멸종 직전의 공룡이 된 것처럼, 소행성같이 쏟아지는 수많은 빛의 줄기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패배를 비장하게 연출하려는듯, 빛 줄기 하나하나의 움직임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면서 점점 눈 앞이 하얗게 변할 뿐이였다.
{유시현 LP 900-> 0 듀얼 종료}
.
.
.
.
.
"시현아, 정신 차려. 듀얼 끝났어."
시현을 향해 손을 건넨 류의 모습이 하얀 형광등의 빛과 겹쳐서 마치 죽은 자의 영혼을 데리러 온 천사처럼 보였다. 아, 물론 그렇다고 시현이 죽었을리는 없었다. 사후 세계가 10년 동안 묵혀둔 가구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의 나무 재질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눈을 다시 떴을 때 처음 느껴진 감촉이 차가운 바닥인걸 알았을 때, 시현은 자신이 잠깐 의식을 잃고 쓰러졌구나, 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좋은 듀얼이였다. 장기 쌤의 수제자라더니, 역시 꽤나 상대할 만한 듀얼리스트였어."
DRA를 되찾고 막타를 날려서 기분이 호전된 것인가, 류의 표정에는 3번째 턴 때와 같은 살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현은 류의 손을 잡기를 망설였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패배한 것이 믿기지 않아서 그런 걸까.
-"뭐해, 어서 악수해라. 그래야 내가 에너지를 얻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이 듀얼하는 이유, 라이고우에게 에너지를 먹여 계약을 유지하는 것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정은 고이 접어두고 류의 악수를 청할 수 밖에 없었다.
왜 자꾸 분한 걸까. 왜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까. 대체, 왜.
"..... 저도 좋은 듀얼이였어요."
"자, 이번 듀얼 어땠어? 그래서 오늘은...."
류는 주위의 학생들을 크게 둘러보며 말하려다가, 선생님이 흐름을 끊었다.
"어머, 둘의 치열한 듀얼을 보는 사이에 벌써 수업 시간을 훌쩍 넘겼구나?"
선생님의 손목 시계의 시곗바늘이 10시에서 아슬아슬하게 몇 분 정도 남기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이번 숙제는 자신의 덱리를 완성해서 데이터베이스에 학번 이름 순으로 제목 지어서 제출하는거야. 이만 해산!"
"안녕히계세요, 선생님."
시현도 보육원장에게 혼날 생각에 발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학원을 나서려는데 류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할래?"
시간이 얼마 없는데도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류의 모습을 보자 초딩과(올해 겨울까지 지나면 실질적으로는 중딩이였지만) 고딩의 체격 차이 때문에 느껴지는 위압갑에 의해 차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설마 듀얼 한 판 더 하자는 얘기는 아니겠지.....
"아무래도 너가 쓰는 덱이 뭐랄 까나.... 좀 너의 본 실력을 살리기에는 먾이 열악해서 말이지..."
그래서 너의 덱 리스트를 잠깐 볼 수 있을까?"
시현은 디스크에 수납된 카드들을 모으던 중 엑스트라 덱에 남아있던 [바렐스워드 드래곤]을 보고는, 그것을 오른 손에 집은 상태로 망설이다 결국 옷소매 안쪽으로 넣어버리면서 숨겨버렸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알고 있는건 장기 쌤의 딸 정도 밖에 없으니, 이왕이면 치트를 쓴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카드는 빼는게 나을 것 같았다.
"음.... 이런 덱으로 계속 듀얼해 왔던 거야?"
시현도 사실 지금까지 듀얼을 하며 슬슬 덱의 한계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아는 카드가 많지 않은데다 카드를 일일이 살 돈이 없었기에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덱 안의 결과물이라고 해봐야 바렐로드, 토폴로직, 그리고 F 드래곤 정도네. 그리고 증G나 다른 견제 맞았을 때의 저점도 성각인 하나뿐이고."
그리고 토폴로직은 굳이 바렐로드를 놔두고 뽑을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아 엑스트라 덱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사실 이것 말고 꺼낼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아서요. 게다가 엑스트라 덱을 다 채우지도 못할 정도로 가진 카드가 없어서..."
"음.... 바렐로드가 좋은 카드인건 맞지. 하지만 몬스터를 최소 3장 소모하는 대형 몬스터인 이상, 플랜이라는게 이 녀석 하나 뿐이면 위험하다고. 나중에 너가 프로의 세계에 진출한다면, 다들 너의 덱의 약점을 일일이 분석하고 덱을 짤 거야. 그럼 특정 카드 한 장에만 의존하는 건 대놓고 나 저격해주세요 하는 꼴리나 마찬가지지."
덱 내의 거의 유일한 견제 수단인 '바렐' 몬스터가 무너지면 그것을 소환하거나 보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머지 하급 몬스터들은 가치를 잃는다. 게다가 R 드래곤은 의식 몬스터라 패말림의 위험이 있고, F 드래곤은 효과가 우수한 대신 꺼낼 방법이 제한되어 있어 결국 대부분의 상황에서 꺼내는 것은 바렐로드였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시큐리티와의 듀얼에서 패를 전부 써가며 세운 포진이 키메라테크 1방에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한계를 드러내고 만 것이였다.
"너, 내일 시간되면 8시 수업 전에 잠깐 나 좀 따라와볼래? 너가 가진 카드가 얼마 없다길래 너의 덱을 개량하는 것을 좀 도와주고 싶어서."
"개량....이요?"
"말만 거창하지, 네 덱에 어울리는 카드들을 이것저것 넣어보고 최적화시키는 작업이야. 때마침 바렛은 드래곤족이라는 축복받은 스테이터스 덕분에 커스텀의 여지가 많아서 이 작업에 딱 어울리는 덱이지. 어이쿠, 벌써 시간이.... 그럼 내일 보자!"
"가.. 감사합니다...."
시현까지 학원을 나선 후 선생님은 교실과 입구를 모두 소등하고 퇴근하려 했는데, 데스크 위에 놓인 '하얀 USB'가 주인을 기다리는듯 데스크에 올려져 있었다.
"이건.... 시현아, 혹시 이거 두고 간 ㄱ....."
선생님은 시현이를 부르려 했으나, 벌써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그를 보고는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니까 일단 내일 다시 얘기해야겠다."며 학원 문을 도어락으로 잠근 후 퇴근하기로 했다.
불이 꺼져 고요한 어둠만이 남은 학원을 빠져나오자, 눈에 펼쳐진 깜깜한 밤 하늘에 자꾸만 DRA의 모습이 아른거리며 시현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역시 프로의 세계는 지금까지의 상대와는 차원이 다른 걸까.
-"왜 그러냐, 시현? 네 표정이 꼭 나라라도 잃은 것 같네."
-"실은 나, 그 드라이트론이라는 덱이 뇌리에 깊숙히 박혀버렸어. 나는 X 드래곤까지 뽑은 후에는 더 이상 전개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는데 저쪽은 패에서 릴리스할 몬스터만 있으면 바로 공격력 4000의 의식 몬스터를 뽑으니...."
-"그래도, 너가 끝까지 최선을 다한 덕에 듀얼에서 졌는데도 이번 에너지는 지금껏 먹었던 것 중에서 가장 질이 좋더라고. 앞으로 이런 듀얼 많이 해줬으면 좋겠네."
-"그래서, 어제 하루 굶었으니 오늘은 아주 배 터지게 먹은 거야? 날 듀얼리스트가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의 특별 셰프로 보는거냐...."
-"사실 아껴 먹으려고 한 입 정도밖에 안 먹기는 했지만.... 뭐, 토요일 때처럼 돌발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팁도 잊지 않고 줄 테니까 걱정 마셔."
-"그래? 그럼 팁이 1년 동안 쌓이면 어떤 대단한 걸 해주려나 궁금하네."
-".....하하, 안 낸 팁이 1년 동안 쌓이는 일은 없을 거야.
아마도."
앞으로 어떻게 덱을 짜게 될 지 설레는 마음에, 보육원장에게 혼날 생각은 싹 잊어버린 채, 시현은 라이고우와 투닥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
한편, 모두가 잠자리에 들 무렵에도 누군가는 자정에 넘도록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 정령 보호법 위반과 공무 집행 방해죄로 구속된 '타이탄'을 유치장으로 이송시키는 시큐리티가 그러했다.
"있잖아, 그거 들었어? 아마 여기 모린팬주나 그 근처에서 전국 규모의 대회가 열린다고. 콘마이(KONMAI)가 이 대회 개최하느라 정령 연합에게 이런저런 사항 확인 받느라 엄청 애먹었다는데."
"하긴, 정령이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게 밝혀지고 나서는 듀얼에 대한 수요가 거의 반토막 났죠. 듀얼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도 덩달아 타격을 입었고. 이러다 스포츠로서의 듀얼은 사라지고 전쟁 무기라는 인식만 남....는건 아직인가?"
"그래도 수십 년동안 이어진 게임이고 팬층도 아직 두터우니까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걸. 물론 휴전 상태인 이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예전의 위상을 되찾기는 힘들어보이지만....."
2명이 수다를 떠는 사이 타이탄은 붕대를 감은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으나, 차량의 바닥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웅웅-하는 미세한 진동이 그의 잠을 방해했다. 게다가 이 소음이 계속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잠시 잦아들었다가 잊을만할 때에 다시 들리는게, 꼭 그의 귀 주위에서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아 짜증은 배가 되었다. 스마트폰 진동음인가? 하지만 이미 압수당해서 그의 주머니에는 없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한건 오랜 운전동안 그의 몸에 피로가 잔뜩 쌓였다는 것.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정령을 포획해 그것들을 불법적인 경로로 판매하는 판매상에게 넘기는 '알바' 역할을 맡은 그는 그날에도 인적이 적고 CCTV 사각지대가 많은 곳을 노려 그곳에 숨어 사는 야생 정령들을 찾고 있었다. 때마침 혼자서 아무런 방비도 없이 돌아다니던 정령 한 마리를 이미 잡은 상태였는데, 겁도 없이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뒷골목에 들어온 꼬마가 막다른 길에서 멍한히 서있길래 오늘은 운수가 좋다며 그의 덱과 디스크를 뺐었는데.... 역으로 그 꼬마와 아는 사이로 보이는 개 정령에게 지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큐리티에게 발각 당해 체포당했다가, 꼬마가 어째서인지 시큐리티에게 도전하는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른 덕에 기껏 발악해서 달아났더만....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누군가가 던진 카드에 하마터면 두개골이 관통당할 뻔 했다. 여태껏 알바로 일하면서 정말 우스운 꼴로 체포당한, 그의 삶에 있어선 최고의 굴욕이였다.
왜 난 지금 여기 있는 건가.
왜 난 이런 일을 겪어야 했는가.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더 이상 생각할 힘이 없었다. 이대로 계속 눈 뜨고 버티고 있다간 그 꼬마 때문에 모든 일을 망쳐버린 것이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분함을 참을 수 없었다.
'일단 눈부터 좀 붙히고 보자. 뭐 감옥에서 썩어도 기껏해야 3~4년 정도니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데.....
-치지직.... 파앗!-
갑자기 가로등이 고장이라도 난 건지 전등 부분에 스파크가 튀는 찰나의 순간과 함께 창 밖 풍경이 검은 색 페인트로 도배한 것처럼 빛 한 점 없는 암흑으로 변했다.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람....."
"헤드 라이트만 있으니깐 좀 불안한데."
시큐리티들은 전방의 헤드라이트와 내비게이션에 의존한 채 속도를 줄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500m 전진 후, 유턴입니다."
-"300m 전진 후, 우회전입니다."
-"70m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이제 차가 비포장도로로 진입한 건지 안 그래도 거슬리던 진동이 더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성질머리라면 여기서 한 소리 했겠지만, 범죄자인 이상 차가 너무 시끄럽다고 불평을 할 처지는 못 되었기에 그는 손으로 눈을 비비고 팔짱을 끼며 끄으응, 하며 신음소리를 내는 것으로 그의 불만을 소극적으로 드러냈다.
그 순간, 일정한 시간마다 규칙적으로 일어나 그의 잠을 방해하던 진동이 쥑 죽은듯 조용해졌다. 차가 완전히 멈춘 것이였다. 그러나 시큐리티들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후에도 그를 차에서 내리게 하지 않았는데....
"뭐야, 김 기사! 네비 업데이트 안 했어? 왜 하필이면 이런 외진 곳으로.... 유치장이 후진 동네에 있다는 말은 들어도 산골짜기에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인데."
차로부터 약 30m 앞에는 [공사 중]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높이가 10m 정도 되는 절벽이 자리잡고 있었다. 절벽 아래에는 가이아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는 강이 흐르고 있었고, 저 너머로 철골이 이어지다 만 것을 보니 다리를 만드는 중인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주위는 추워지는 날씨에 파릇파릇한 잎들이 전부 떨어져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싼 산지. 이런 곳에 유치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이건 업데이트 안 해서가 아니라 네비가 고장나서 그런거 아닐까요? 나참, 이거 따로 본부에 길을 잃었다고 연락을 해야 할까요...."
"에이, 됐어. 명색이 시큐리티인데 길을 잃어서 연락을 한다니 쪽팔리게. 일단 다시 차에나 타자."
시큐리티들이 의견 차이로 투닥대던 중, 타이탄의 눈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이 보였다. 차 후부 쪽에서 붉게 깜빡이는 것으로 보이는, 후미등이라고 하기에는 바닥에 선명하게 비춰질 정도로 아래쪽에 달린 어떤 광원이였다.
그런데, 버튼을 누른 것도 아닌데 갑자기 창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붕 부우웅-하고 곤충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날씨에 곤충들은 대부분 얼어죽을 텐데....
"뭐야, 저 기분 나쁘게 생긴 녀석은...."
그를 노려보고 있었던 건 야구공 만한 눈깔에 앙증 맞은 박쥐 날개가 달린, 정체불명의 생명체였다. 아마 저렇게 생긴 곤충은 세상에 없을 테니 정령인 것으로 보이는데.... 갑자기 그 눈깔이 위협적으로 붉은 빛을 내더니 그에게로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에잇, 저리 가! 이 날파리 같은 녀석....."
타이탄이 본능적으로 눈 앞으로 팔을 들어올리자 -챙-하고 금속이 내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눈깔이 창문 밖으로 튕겨져나갔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녀석의 작디 작은 날개가 와형과는 다르게 꽤나 절단력이 강했던 건지 그의 손목과 차 안의 손잡이를 연결하는 수갑을 끊어놓은 것이였다.
"이봐요, 거기 무슨 일 있습니까?"
시큐리티가 다시 차량에 탑승한 후 안전벨트를 매며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자, 타이탄은 애써 끊어진 수갑을 자신이 입은 코트로 가리며 어설픈 연기를 선보였다.
"아니.... 갑자기 날벌레가 들어왔길래 내쫓은 겁니다. 크흠...."
"그리고, 누가 멋대로 창문을 열라고 했어요? 원래 뒷자석에서는 창문 못 열게 설정해놨는데.... 빨리 닫아놔요."
못마땅하다는 표정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했지만, 다행이 수갑이 끊어졌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시큐리티가 좀 더 늦게 왔으면 탈출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나저나 방금 그 정령은 무엇이였을까? 그리고 그에게 달려든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대체 누가 이 정령을 보낸 것인가? 그는 조마조마하면서도 조그마한 희망이 보이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오라고 했던 잠을 다시 떨쳐내려고 애썼다.
그렇게 차에 다시 시동을 거는 순간..... 갑자기 차의 바퀴가 -끼이익-하는 굉음을 내며 광란의 질주를 시작할 것이라는 예고를 하자 당황한 시큐리티들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야! 앞에 안 보여? 왜 지금 전진을...."
"뭐야, 난 액셀을 밟지도 않았는데?! 젠장, 브레이크도 말을 안 들어! 어.... 우와아아아아아!!"
그가 갑자기 빨라진 속도에 수갑이 차여져있던 손잡이를 잡은 사이, 차는 '공사 중' 팻말을 들이받아 날려버리고는 벌써 절벽을 넘어 앞으로 고꾸라지며 추락하고 있었고, 앞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수면이 입을 벌리는 괴수처럼, 차를 집어삼킬 듯 그들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첨버어어엉!-
차가 떨어진 자리로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새하얀 물줄기가 얼굴을 강타하고 차 전체가 물로 가득 차버리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방법만이라도.....!'
그러다가 그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떠올리고는, 절반 정도 열린 창문의 틈 사이로 70kg은 거뜬히 되는 거구를 억지로 비집고 나와 차 안에서 탈출하는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리를 앞 뒤로 휘저으며 수면 위로 올라오려 애썼으나.... 너무 깊이 가라앉은 탓인지 수면 위까지 올라오기도 전에 점점 꺼져가는 숨에 몸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싫어.... 난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 반드시 살아서... 날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 녀석을....'
그러나 아무리 몸을 허우적거려도 그의 몸은 수면 위까지 올라오기에는 역부족이였다. 오랬동안 숨을 쉬지 못하자 입에서 거품이 찔끔찔끔 나오기 시작하더니, 머릿 속에 지금껏 살아왔던 그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아, 이것이 정녕 끝이란 말인가? 스트럭쳐 덱으로 신지원이 나왔을 때부터 쭉 굴려왔던 제왕 덱도, 지금껏 알바로 벌어들인 돈도 다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한데, 난 지금 왜 발버둥치고 있는걸까. 대체 왜.....'
.
.
.
.
.
.
.
"......우웁?! 푸하!!!"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마자 그는 배가 빵빵하게 부풀 정도로 들이마신 강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실력 좀 보여주나 했더니 그야말로 망신을 당했구나, 타이탄."
그가 강물을 연신 토해대며 천천히 고개를 들자 주말에 만났던 그 꼬마와 비슷한 체격의 소녀 둘과, 후드로 머리를 가린 알 수 없는 자 1명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 그리고 타이탄에게 얻어 맞고 날아가버렸던 눈깔 정령도 곁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두워서 모습이 잘 분간이 가지는 않았지만, 저 소녀들은 몸에 작은 박쥐 날개와 키의 절반 정도 되는 길이의 꼬리를 달고 있는 등 평범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마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서 악마를 만난건 아닌가 싶어 몰려오는 공포를 느낀 그였지만, 볼살을 꼬집고 가슴에 손을 대며 점점 안정적으로 변하는 심장 박동을 느끼고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에 너무 감격했던 나머지 쉰 목소리로 '살았다....'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차에 타있던 시큐리티 두 명이 떠올라서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순간 궁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마 차에서 못 빠져나와 익사했거나 설령 빠져나왔어도 자신을 탈출시키는게 목적으로 보이는 이상 미리 제거했을 거라고 단정하고는 생존의 기쁨을 누리는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살아남으니까 그렇게 좋아? 실은 우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가라앉던 너를 구해준 건데 말이야~ 그래도 시현에게 진 얼간이치고는 상황판단력은 나쁘지 않네?"
2명의 소녀 중 삼지창을 든 소녀가 웃으며 뱃속을 마저 비워내던 그의 등을 두들겼다.
"잠깐 그럼....차를 조종해 강에 떨어뜨린 것도 전부 너희들의 소행이였던 거냐!"
"응, 주인님의 권속들에게 시켜서 공사 중인 다리로 안내하도록 네비를 조작하고 강제로 가속시켰지. 그런데 왜?"
"뭐....? 날 먼저 꺼내줄 수도 있었는데 왜 차를 떨어뜨릴 생각을 한거냐! 이 자식들이...."
타이탄이 욱하며 삼지창을 든 소녀의 멱살을 잡으려 하자 사슬낫을 든 소녀가 한 손으로 그의 손을 가볍게 막았다.
"그건 빠른 증거인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너에게서 듀얼 에너지를 측정할 필요가 있어서 말이야. 단순히 듀얼할 때보다는 생사가 오가는 극한 상황일 때 더더욱 마음이 간절해지기 마련이니깐.
.....아무튼, 메타에 뒤떨어진 제왕 덱이나 쓰는 틀딱 주제에 유치장에서 평생 썩을 운명에서 구해줬는데도 하는 짓이 이게 뭐냐? 너 같은 건 원래 '질 높은 제물' 따위는 될 수 없는 하등 인간일텐데 주인님은 왜 이런 자식을 데려오자고 한건지.... 에휴, 됐다. 그럼 우리 주인님이 직접 널 만나려 오셨으니 함 보라고."
그러자 두 소녀 뒤에 서있던 후드를 쓴 자가 그의 앞으로 나섰다. 체격은 저 소녀들과 비슷했지만 목소리가 좀 더 성숙한 목소리와 그들과는 다른 진중한 분위기 때문에 정말 지옥에서 온 염라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너, 시현이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아? 어차피 여기서 돌아가봤자 형량만 더 늘어날 뿐인데, 너의 운을 시험해보는게 어때? 선택권은 너에게 주지. 우리와 같이 갈 지, 아니면 너의 듀얼에 종지부를 찍을 지."
타이탄은 아직도 욱신거리는 자신의 이마를 더듬거리며 아직도 지겹도록 머릿 속을 쑤시는 그 날의 기억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어차피 이 제안을 거절해봤자 정령 보호법 위반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른 그는 적어도 수 년간은 감옥 안에서 썩게 될 것이다. 이미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타이탄이 건조한 날씨에 말라 버려 피가 맺힌 입술을 꿈틀거리며 조용히 대답하자, 그 자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 위에 덱 케이스를 도장 찍듯 올려주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악마와의 계약을."
그러나 그는 아직도 몰랐다. 자신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리는 돌아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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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전편에서 언급한 계획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1. 듀얼의 질을 올리기 위한 패치
전편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재 주인공의 덱의 문제점은 일단 에이스랍시고 꺼내는 바렐로드가 너무 강해서 원맨쇼(...)를 할 정도로 자주 나오고, 너무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죠. 사실 최선책은 바렐로드를 처음부터는 등장시키지 않는 것이지만 이미 나와버린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가에게 부탁해서 바닷가에 던져버릴 수도 없고....
그래서 차선책으로 상대가 바렐로드를 저격하는 카드를 꺼내서 제외당하다든지 아니면 컨트롤을 빼았긴다든지 해서 회수하기 곤란할 때, 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서브 에이스'를 도입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엑덱에 넣기만 하고 쓰지 않은 토폴로직이랑 꾸준히 등장은 했지만 단독 활약은 전무하고 대부분 비트 용도로만 쓰던 스카라이트도 있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카드를 넣을 지는 6화와 7화 사이에 '시현의 덱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외전 에피소드를 올릴 예정이니 그 때 자세히 설명 드리죠.
2.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패치
사실 글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글을 읽고 싶게끔 만드는 것도 필요하죠. 그리고 인터넷에 올리는 팬픽인 이상 스크롤을 하면서 작은 글씨들을 읽다 보니 어떤 카드를 썼고 필드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기가 좀 번거롭기도 하고... 그래서 앞으로 쓸 글에 적용할 개선 사항에 대해 말해보자면
-카드명, 라이프/패 상황 '볼드체 표시'
-카드 이미지 수는 적당히(웬만하면 같은 카드 이미지는 글이 전/후편으로 나뉘지 않는 이상 두 번 이상 첨부하지 않고, 디바이너로 덤핑한 아크 디클레어러처럼 필드에 나오지 않는 중요하지 않은 카드는 이미지 첨부 지양)
-몇번째 TURN인지 표시 추가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글을 좀 더 깔끔하게 보이게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에 쓴 5화와 1화 전편은 이 최신식 패치가 완료된 상태이고, 전에 썼던 나머지 글에도 이 사항들을 적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숙한 저를 위해 조언을 아끼시지 않은 'kc인증의 수행사제' 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고로 사이버 엔젤은 드라이트론의 유구한 동료인 것이었다(신 지원 이전) 대화 페이즈가 만연한 애니를 생각하니 문득 제한시간 고증이 들어간 것이 오묘하게 느껴지는군요
사실 제한시간 고증이 들어간 것은 제가 마듀를 계기로 유희왕에 입문하게 되어서 생각난 아이디어였습니다. 상대 덱을 드라이트론으로 한 것도 강하다는 인상을 주는 덱이 필요한데 그때 딱 떠오른게 마듀 초기 티어 덱인 드트였고요. (물론 현실 고증보다는 파워 조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골프공은 안 넣었습니다만...)
드라이트론... 으으윽... 마듀 초기의 악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