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ttle Royale Season 5 Program
실버, 골드팩에 기존 16명의 선수외 +4인의 선수 추가
다이아 +2
★ 90 BR 포인트
95 호르헤 포사다
포사다 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것 3가지가 있습니다.
1, 아들이 신생아 시절부터 아픈 것(국내 중계진 중에 송재우 해설이 자주 언급했을 정도)
포사다 아들의 병이 태어난 지 10일 만에 진단을 받은 병이라는데 어떤 병인지 찾아보니 두개(골)유합증인데요
증상이 뇌를 싸고 있는 머리뼈의 봉합선이 조기에 붙어서 정상적으로 발육하지 못하는 질환(뇌의 성장을 방해)이라고 합니다.
2,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조블 모델을 한 것.
3, 그리고 톰과 제리 같은 페드로와의 앙숙관계(인터뷰에서 서로 디스)
푸에르토리코가 배출한 많은 스타플레이어 중에 한 명이지요
아버지가 피델 카스트로 정권 때문에 쿠바를 나와(탈출) 푸에르토리코에 정착해서 도미니카 출신의 아내와 결혼해 포사다를 낳았는데요
호르헤 포사다 시니어는 아들 포사다가 태어나자 야구선수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포사다는 많은 중남미 선수들과 다르게 가정 형편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포사다 시니어가, 당시 파트타임으로 푸에르토리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를 하기도 했고, 제약회사의 영업 관련 업무도 병행하던 시기라서 포사다가 야구를 하기 시작한 유년시절에는 중산층 동네로 이사를 갔는데 뒷마당도 넓고 수영장을 설치해도 무방한 넓이였는데
시니어는 마당에 있던, 큰 망고나무도 베어버리고 뒷마당에 아들이 야구를 할 수 있게 미니 야구장을 만들 정도였고요.
포사다의 어린 시절 방에는 토론토 라인업 카드와 자신이 좋아하던 돈 매팅리, 조지 브렛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포사다 시니어는 행동이 우리네 옛날 아버지들 같은 모습들도 많습니다.(존경하면서도 어려운 아버지)
어린 포사다에게 집안일을 돕거나 페인트칠을 시키고, 일을 다하면 그제야 캐치볼을 하거나 야구장에 데리고 갔고
포사다가 12살이던 1983년 여름에는 집 진입로 근처의 흙더미를 삽과 구루마를 이용해 뒷마당 야구장으로 가져가 평탄화 작업을 홀로 시킨 일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한 달 정도 해야 마칠 양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은 2주 만에 작업을 끝낸 일도 있었고, 그일 덕분에 그 후 야구를 할 때는 큰 도움이 됐었다고 합니다. 작업에서의 근력과 손에 굳은살(맨손으로 잡는 방망이)
아버지가 계약직으로 짧게 일한 스카우트가 아니셨습니다.
정식으로 전환해 남미 지역 스카우트를 하며 42년을 근무했고, 2014년 6월 23일 스카우터 명예의 전당에도
(Scouting Hall of Fame) 헌액 되었습니다.(명예의 전당은 플로리다 포트 마이어스에 위치해 있습니다)
양키스 소속으로 일을 시작해 휴스턴, 애틀랜타, 토론토, 콜로라도등 소속팀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20년까지 근무했었고요
수많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계약으로 이끌었는데 대표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선수들은 이렇게 됩니다.
이름을 보면 아~~하고 기억하실 선수들인데 빅캣 안드레스 갈라라가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갈라라가는 콜로라도 프랜차이즈 기록도 여럿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신생팀이었던 콜로라도 팀의 1호 올스타게임 출전 선수고요(1993년)
콜로라도 1호 컴백 플레이어 수상자 (1993년)
컴백 플레이어 수상을 2001년 한 번 더 수상하는데, 이때는 암 수술 후 복귀해서 인간 승리라고 했었지요 (ATL 시절)
산동네 프랜차이즈 타격 기록은 대부분 토드 헬튼과 래리 워커에 의해 기록이 바뀌었지만
1997년 시즌까지의 홈런(172개)과 타점(579개)은 프랜차이즈 1위였었고요
그리고 지금도 후배들이 산동네 버프를 받고도 깨지 못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콜로라도 프랜차이즈, 싱글 시즌 타점
1위 갈라라가 150타점 (1996년)
2위 헬튼 147타점 (2000년)
3위 헬튼 146타점 (2001년)
5위 보아빠 141타점 (1996년)
7위 갈라라가 140타점 (1997년)
8위 맷 할러데이 137타점 (2007년)
공동9위
아레나도 133타점 (2016년)
보아빠 133타점 (1999년)
●콜로라도 프랜차이즈, 타수 당 홈런
1위 갈라라가 15.5
2위 워커 15.8
5위 아레나도 17.5
6위 스토리 17.9
7위 보아빠 20.1
8위 카곤 20.2
9위 툴로위츠키 20.7
10위 맷 할러데이
12위 헬튼 21.6
21위 르메이휴 69.1
24위 후안 피에르 469.7(ㅋㅋ)
갈라라가는 이렇게 신생팀 콜로라도에서 1997년을 끝으로 FA가 되는데, 구단은 활약하던 갈라라가를 잡지 않고 쿨하게 보내줬는데 이유는 이후 콜로라도 1루수 계보를 이어가는, 유망주 토드 헬튼을 위해 1루 자리를 마련하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포사다의 삼촌이자 아버지의 동생, 레오 포사다 (Leo Posada) 또한 야구 선수였는데요 소속팀이
현재는 오클랜드인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Kansas City Athletics 1960-1962)의 선수였습니다.
터미네이터도 아닌데 돌아오신 변호사 출신 감독님도 데뷔시절의 팀이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입니다.
마이너 생활이 더길고, 감독으로 업적은 대단하지만 선수시절은 반대입니다.(6년 132경기, 35안타 7타점 타율 199)
현역 시절의 마지막이 컵스였는데요 (1973년)4월 6일 몬트리올과의 경기에서
9회말 에러로 출루한 3루수 론 산토의 대주자로 나가서 결승 득점을 올리는 것이 메이저리그 마지막 무대(컵스 3:2승)
이날 컵스의 선발 투수는 퍼지 젠킨스였습니다(8이닝 5피안타 2실점)
2020년 말에 복귀뉴스 나오기 전까지 2,728승 2,365패를 기록해서 코니 맥(통산 3,731승) 존 맥그로(통산 2,763승)에
이은 역대 MLB 감독 최다승 3위였는데 2위로 올라섰지요
음주운전, 승부치기 규칙 미숙지 (대주자 교체) 선수들과의 잡음도 있었고 한데 팀은 독주, 중부1위
화이트삭스 나오니...카를로스 로돈 대체 무슨일 인가요 단순 FA 로이드일까요?
시즌 10승을 넘긴적도 없고 3점대 평.자도 1번뿐인 선수였다고 보기엔 너무 잘하네요
다시 포사다로 돌아오면
포사다는 푸에르토리코에서 고교 시절까지 주로 유격수로 주로 뛰었는데
세간의 평들과는 다르게 내야 수비도 곧잘 했는지 2년이나 올스타에도 선발됐었네요.
1989년 드래프트 43라운드에서 양키스 픽을 받았지만, 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되는데 4년제 대학 갈 성적은 올리지 못하던
성적이라 앨라바마 주, 테너에 있는 칼혼 커뮤니티 (2년제, 우리 예전의 전문대 같은)에 야구 장학금을 받고 입학합니다.
다음 해 1990년 드래프트에서 다시 양키스의 24라운드 픽을 받습니다.
하지만 바로 계약하지 않고 학업과 야구를 병행했고 1991년 5월 24일 계약금 3만 달러에 계약을 맺습니다.
1991년 하위 싱글 A에서(숏 시즌) 71경기를 뛰었는데 성적이 홈런 4개에 타율은 235
시즌이 끝나고 1992년 한 단계 위, 싱글 A로 올린 후 양키스는 수준 미달의 스피드를 대표 이유로 들어, 본격적인 포지션 변경을 시작합니다.
(첫 포수 시즌 성적이 12홈런 타율 277)
처음 포사다는 포지션 변경을 싫어했다고 하네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리하지 않은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후 마이너에서 성장하며 1995년 잠깐 콜업되어 MLB 맛을 보고(95년의 감독은 벅 쇼월터) 1997년부터 본격적인 메이저리거가 됩니다.
당시 팀의 포수는 양키스 감독을 지냈고 지금은 필리스 감독을 하고 있는 조 지라디가 지키고 있었죠
초반에는 멘토로서 관계도 좋았다고 하는데 선배이자 동료였던 지라디가 감독이 되어 양키스로 돌아온 후에는 관계가 썩 좋지는 않았죠
1999년을 마지막으로 지라디가 컵스로 떠나고 나서 포사다는 명실상부 팀의 넘버원 포수의 지위를 누리게 되고요
지라디가 감독이 되어 양키스로 돌아온 후에 은퇴가 다가올수록 포수가 아닌 DH 출전이나 은퇴 시즌이던 11년에는 팀 포수들이
스카우트 보고서를 토대로 전략회의를 할 때도 포사다는 제외시키고 해서, 당시 자신에게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했었다고 하는데
포수로 뛸 때 지라디의 지시를 은근히 무시하고, 스카우트 보고서를 따르지 않는 즉흥적인 볼 배합을 주문하기도 해서
그런 것부터 쌓이기 시작했다는 기사도 있네요 .
그래서 그런지 포사다는 자서전에서 조 토레를 현장의 아버지, 야구장에서의 아버지라 표현한 반면
조 지라디에 대해서는 그냥 매니저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을 끝으로 여러 팀의 제안이 있었지만 2012년 1월에 은퇴를 발표하고, 2015년 8월 16일에는 구단에서 20번을 영구결번 처리해 줬죠.
2003년 시즌 30개의 홈런을 기록했었는데, 요기 베라에 이어 양키스 포수로는 2번째의 기록이었고요
2015년에는 약쟁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발언을 CBS This Morning에서 하게 되죠 (미국 아침 뉴스 프로그램)
요약하자면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깨끗하게 플레이한 많은 선수들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논란 없는 경기를 뛴 선수만 입성해야 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포사다와 페드로(외계인)가 디스 하는 앙숙 같은 관계가 아닐 수도 있던 일화가 있었는데
1997년 양키스가 마이너리거였던 마이크 로웰3B (최희섭 말린스 시절 동료 맞습니다)과 포사다를 묶어
몬트리올의 페드로와 트레이드를 추진 중이었는데 보스턴이 먼저 트레이드를 성공했었죠
당시 페드로와 바꾼 보스턴의 선수는 칼 파바노와 추후 지명권이었는데요
몬트리올이 추후지명한 선수는 토니 아르마스 주니어였는데 시간이 지나 토니 아르마스 주니어는
2001년 다저스 소속이던 박찬호 선수와 맞대결을 벌이는데 제가 열받아 소리를 지르던 게 생각납니다.
주니어 6이닝 3피안타 1실점
박찬호 8이닝 3피안타 무실점
이렇게 박찬호 선수의 호투로 다저스가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승리 요건을 채우고 교체되었는데
9회에 올라오는 마무리가 그 유명한 트래비스의 아버지였습니다.(쇼 1이닝 2볼넷, 4피안타, 4실점)
몬트리올의 4:1 승리로 끝났고 쇼는 6번째 블론으로 3승 3패
박찬호 선수는 눈앞에 왔던 시즌 12승을 날렸습니다 한국 날짜로는 8월 15일 광복절이어서 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2000년 1월 21일 변호사 아내와 결혼했는데 베스트맨을 지터 지터가 했었네요
선수 시절부터의 인연으로 포사다가 마이애미 구단에서 일한다는 기사도 본 것 같고요
포사다가 지명받았던 1990년 드래프트에서는 더쇼20 최고 인기 카드인 그가 전체 1번으로 지명되던 해입니다.
(대기자가 절정일 때 500~700명이었던걸 본 것 같습니다)
1번 ATL 치퍼 존스
2번 DET 토니 클락, 선수노조 위원장
3번 PIL 마이크 리버탈
7번 CIN 댄 윌슨
10번 NYY 칼 에버렛, 셰필드만큼이나 독특한 타격 자세였죠
17번 NYM 제로미 버니츠, 밀워키에서 젠킨스와 타선을 이끌던 게 생각나네요
20번 BAL 마이크 무시나, 두뇌 명석, 무스, 스탠포드 대학 이런 게 생각나네요
24번 MON 론델 화이트, 수비가 일품이었죠
카드가 어느 프로그램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시장가격이 형성되죠(21의 경우 덜 하지만요)
19에서도 배로 보상 이어서 가격이 괜찮았고 20에서는 비치볼 팩에서 나왔는데 레어도 아니고 기본이어서
1~2만 스텁에 거래되다가 후반에는 각종 프로그램에 팩을 보상으로 넣어줘서 다이아 기본 5~8천 스텁이나
퀵셀용으로 전락하기도 했었습니다. (비치볼 팩에서는 98 에릭 가니에도 말도 안 되게 기본으로 나온 카드였죠)
카드처럼 포수이지만 골드 글러브가 아니라 아쉽게도 실버 슬러거 카드죠 발도 느리고 썩 좋은 수비도 아니고요(카드가 제겐 계륵이죠)
제가 좋아하는 BOB를 보게 되면 퍼칸테역의 배우가 나오면 포사다가 생각나기도 합니다.(비슷한 느낌, 이미지)
인기팀의 선수라 피규어도 종류가 많았습니다.
99 브라이스 하퍼
20에서 7이닝 보스로 나온 15년 어워드 카드와 똑같은 능력치, 변동 1도 없습니다. (사용 잘하셨던 분들은 좋으실듯합니다)
현재 폼을 떠나서 데뷔 전 드래프트 때부터 미국 야구판이 시끌시끌했었죠
저는 게임에서도 사용 안 하고 실제로도 성적 챙겨볼 정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아마 시절부터 대형 스타였지만 그렇게 나대는 것은 아닌데 뭔가 거만함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나르시시즘도 너무 강해 보이고 파펠본이 잘못 하긴 했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멱살 잡고 싸우던 장면도 생각나고요
비치는 모습에서 트라웃이나 오타니 선수 같은 모습이 없는 것 같아요(포효하고 하지만 차분하고 겸손한 느낌)
하퍼급의 스타도 아닌데 이상한 선수를 지난 시즌에 봤습니다.
게임에서 괜찮은 능력치로 나와 팀어피로 풀어쓰다가 늦은 개막 후부터 지켜보게 됐는데 포스트시즌에서 압권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매번 약 먹고 경기하는 선수라고 착각할 정도였어요 남미 선수들의 다혈질, 넘치는 열정, 이런 것은 먼저 거쳐간 선배들을 통해서도 많이 봤고, 다른 종목의 남미 선수들에게서도 많이 봐왔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이건 무슨 내야 땅볼이 나와도, 플라이아웃이 나와도, 이닝이 교체돼도, 삼진을 잡아도, 매번 그러니 파이팅도 아니고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보려 해도 너무 과한 것 같고 팀원이나 감독이 기분은 상하지 않게 적당히 하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지켜보는 야구팬 입장에서도 위기 상황이나 호수비, 이런 상황에서 소리 지르고 포효, 환호하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
맞지만 다른 선수들 만큼만 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99 켄리 젠슨
많이 아시다시피 네덜란드령 퀴라소 출신입니다.
퀴라소가 생소한 분들도 있으실 텐데 희동구형이 국대 감독을 하고 있어 가끔씩 뉴스에 나오기도 하지요
동구하면 주제가 무겁기는 하지만 한참 웃었던 이 영화에서 류덕환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 이름이 동구였죠 오동구.
잰슨은 3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6살 때 2명의 형들과 야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처음엔 외야수&유격수에서 뛰고 다시 3루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는데,
이유는 팀에 2살 아래 동생 안드렐톤 시몬스가(89년생) 들어와서입니다.
이후 잰슨은 1루와 포수 포지션을 보며 야구를 하게 되고 2004년 11월 17일 자유계약으로 다저스와 계약을 합니다.
포수로 마이너리그에서 플레이하며 09WBC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포수로도 뛰고, 마이너리그 복귀를 했는데
여전히 답 없는 타격 실력 때문에 포수로의 전망이 없다고 판단한 다저스에서 투수 전환을 권유, 설득해서 투수의 길로 들어섭니다.
(2005년부터의 마이너 시절 타자 성적을 보니 타율 229에 홈런 15개)
살면서 듣게 되는 말들이 있잖아요
인생에 (살면서) 3번의 기회가 (선택) 온다는 말, 잰슨이 포수를 고집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흐지부지 마이너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커리어가 끝났을 것인지 아니면 이후 폭발해서 야디급이 되었을까
아니면 마이크 매시니, 브래드 아스머스정도는 했으려나 뭐 이런 생각, 포지션 변경이 잰슨에게는 몇 번째의 선택, 기회였을까요?
더쇼 유저분들도 살면서 좋은 판단과 선택을 하시길 바라고요 오늘도 밥벌이 열심히 하며 게임도 재미있게 하세요.
이때 다저스 산하의 하위 싱글A 인랜드 엠파이어 식스티식서스(Inland Empire 66ers)에서 투수 수업을 받게 되는데
당시 팀에는 MLB 통산 216승의 너클볼러 찰리 허프가 코치로 있어 지도를 받게 됩니다.(2007–2010년 투수코치)
(Inland Empire 66ers, 2011년부터 LAA 하위 싱글A 팀이고 이전에는 다저스와 시애틀의 마이너리그 팀)
2009시즌 후반기부터 등판을 시작해서 12경기를 던지고(11.2이닝)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던지고(5경기, 4.2이닝)
가능성을 확인한 다저스는 11월 19일 40인 로스터에 등록시키고, 2010년 5월 15일에는 더블A 승격, 7월 23일 MLB콜업 7월 24일 데뷔를 하게 됩니다.
2010년 데뷔 7월 24일 토요일 메츠와의 경기, 홈에서 데뷔 경기를 치렀는데요
7회말 2:2상황 팀의 5번째 투수로 등판해서 메츠의 클린업 트리오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내려왔습니다.
당시 메츠의 3-4-5
다저스 타선이 보면 기억나실 선수들도 제법 있지만 4번이 제임스 로니였네요ㅋㅋ
로니는 KBO에서는 도망자로 기억되죠.(2군행 거부, 무단이탈, 하림=출국)
잰슨의 이번 시즌은 2017년 1월 10일 맺은 5년 8천만 달러의 마지막 시즌입니다.
87년 9월 30일생인데, 시즌이 끝나면 나이가 34세가 됩니다.
다저스 프랜차이즈 순위를 보다 보니
잰슨은 어제(20일) 블론세이브를 하긴 했지만 다저스 투수 등판(G) 1위를 달리고 있네요 (33위, 박찬호 275경기)
●다저스 프랜차이즈 세이브 순위
3위 제프 쇼 선수는 통산 203세이브, 다저스 소속으로 129세이브 (다저스 4시즌, 25블론)
98년 1승 4패 25세이브 4블론 86.2%
99년 2승 4패 34세이브 5블론 87.2%
00년 3승 4패 27세이브 7블론 79.4%
01년 3승 5패 43세이브 9블론 82.7%였네요
통산은 203세이브, 51블론을 기록했고 79.9%였고요
●다저스 프랜차이즈 9이닝당 삼진
1-잰슨 13.059
2-가니에 10.381
3-마에다 9.795
4-커쇼 9.788
5-쿠팩스 9.277
6-노모 8.872
7-그레인키 8.288
8-박찬호-8.282
9-드라이포트 8.271
10-케빈 브라운 8.086
●다저스 프랜차이즈 탈삼진 순위, 돈 서튼은 1월 18일에 돌아가셨죠(RIP)
7월 7일부터 결장 중인 커쇼 선수인데요 7월 9일 캐치볼에서는 추가 통증을 느끼지 않았고 MRI 검사에서도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아
선수와 구단 모두 안도하긴 했다고 하는데 , 장기적인 접근으로 복귀 준비를 할 것이고, 로버츠 감독은 8월에는 복귀할 수 있다고 하는 기사를 봤는데 이후 소식은 못 봤는데, 복귀하면 커쇼 선수가 곧 1위 고지에 오르고 후반기에 기사 뜨겠네요
9위 라몬은 페드로의 친형입니다.
역시 어디에서(프로그램) 나오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게 되죠 (19초이스 팩/20 이닝 보스)
★ 4이닝 2차 플레이어 프로그램
미션 3개 (10, 10, 8)
카드 먹이기, 5포인트
7포인트 모먼츠 6개
4이닝 프로그램에서 콜렉 35,000XP
95 앨런 트래멀
어제 SDS 트윗에서 힌트가 재밌게 올라왔었죠 (딱 트래멀인데 관중의 유니폼, 경기장은 샌디에이고)
트래멀 고향이 캘리포니아주 가든 그로브입니다 (옆 동네가 디즈니랜드와 애너하임)
고등학교를 샌디에이고에 있는 키어니 하이 스쿨 (Kearny High school)을 나왔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디트로이트가 우승하는 1984년 월드 시리즈의 상대팀이 샌디에이고였고 시리즈 MVP 수상자가 트래멀이었습니다.
근래에도 트래멀은 중계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었죠
2003-200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감독 (3년, 186승 300패)
디트로이트가 트래멀 후임으로 2005년 10월 4일 짐 릴랜드 감독을 선임하고, 팀은 06년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죠
릴랜드 감독은 인터뷰에서 어른다운 인터뷰를 했었죠 (트래멀이 3년간 팀을 다져 놓았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고)
트래멀이 감독을 하던 2003-2005년 디트로이트의 벤치코치는 커크 깁슨이었고
커크 깁슨이 애리조나 감독을 할 때 벤치코치는 트래멀이 했었죠 (아름다운 상부상죠!!)
트래멀 디백스시절 류현진 선수도 다저스 소속이고 유난히 다저스 경기를 많이 틀어주던 엠스플이라서 양 팀의 매치업 중계방송에서
트래멀도 자주 볼 수 있었고요.
당시 다저스와 디백스가 장외 인터뷰 싸움이라던가 빈볼로 인해 벤치클리어링도 자주 일어나고 했죠
백미는 9월 21일 애리조나 원정에서 다저스가 승리후, 서부지구 1위 확정 세리머니를 일부 선수들이 외야 풀장에서 했는데
그걸로 양구단에서 짧은 설전도 있었고, 하원 의원의 다저스 디스도 있었고요
풀장에 오줌을 쌌네 안 쌌네, 이런 초딩적인 이야기 인터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2014년 다저스와 디백스는 호주 시드니 원정 2연전으로 시즌 오프닝 게임을 하게 돼서
커쇼, 류현진(1~2선발) 이 던질 때 빈볼이 나올까 하는 팬들의 관심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레인키가 작은 부상을 이유로 원정을 안 따라갔었고요)
저는 그런 것보다는 단 2경기를 위해 크리켓 경기장을 개조하며 돈을 들이붓는 MLB의 씀씀이에 또한 번 놀랬던 기억입니다.
해외 원정 시리즈에서 기억나는 게 도미니카, 멕시코, 일본도 아니고 2019년 런던에서 경기를 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야구를 하랬더니 핸드볼 전반전 스코어를 기록하기도 했었고요
호주 시리즈가 있던 2014년, 커크 깁슨이 시즌 말미 (2010~2014) 9월 26일 해임되고
남은 3경기를 트래멀이 임시 감독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1승 2패)
트래멀과 깁슨 두 선수, 사람의 우정의 기간이 상당합니다.
첫 만남이 1978년 여름 깁슨이 디트로이트에 오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깁슨, 디트로이트 1라운드 12번)
타이거 스타디움에서 운동하며 만났던 첫 만남을 기억한다고 트래멀은 깁슨이 미시간 주립 대학의 풋볼스타라서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팀메이트(타순도 2~3번 혹은 3~4번, 코치와 감독으로, 가족 간에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합니다.
트래멀 하면 키스톤콤비로 활약한 2루수, 루 휘태커 선수가 먼저 따라오지만 저는 깁슨이 먼저 떠오릅니다.
감독에서 해임되고 몇 개월 지나 2015년 4월 28일 커크 깁슨이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는 기사도 나왔었지요.
감독을 하면서 겪었을 스트레스도 한몫했을 수 있고요 쾌유를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직장 생활이나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재미로 하는 게임에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기세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1988년 NL MVP 커크 깁슨도 기억되지만
1984년 1988년 월드 시리즈에서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마무리에게 홈런을 친 것도 생각납니다.(깁슨은 반지가 2개)
1984년 디트로이트 소속으로는 샌디 고시지를 상대로 3점 홈런을 쳤는데요
5차전 첫 타석 이미 투런홈런을 기록했던 깁슨이 4번째 타석에 들어서자 타임을 거는 샌디 벤치,
주자 2,3루라서 거를 줄 알았다는 깁슨을 상대하는 고시지 (2구를 우측 2층 관중석으로 보내는 3점 홈런)
전설의 스파키 앤더슨 감독은 깁슨을 보며 아마 너를 거를 거라며 손가락 4개를 보였지만 깁슨은 아닐 거라고 10불 내기를 했다고...
1988년 다저스 소속으로는 1차전에서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에커슬리 상대로 끝내기 투런홈런
1988년 월드시리즈 중계도 빈 스컬리옹의 음성이지만 1984년 전미 중계방송은 CBS였는데, 역시 빈 스컬리옹입니다.
1984년 트래멀과 깁슨이 월드 시리즈에서 상대했던 샌디에이고에는 백업포수로 보치 감독도 있었습니다.
브루스 보치, MLB 통산 358경기, 192안타, 26홈런, 67볼넷, 177삼진, 타율 239
1998년 월드 시리즈는 양키스에게 시리즈 전적 4:0 떡실신 패배를 당하지만, 근래의 자이언츠 시절은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죠.
트래멀은 2017년 12월 10일 16인의 베테랑 위원회가 선정해서 타이거스 선배 잭 모리스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드디어 헌액되었죠
기자단 투표 시절, 최저(13.4%) 최고(40.9%)
2018년 1월 24일에 발표된 기자단 투표에서는 4인의 선수가 선정됐고요 (6명에 대한 입회 행사는 2018년 7월 29일에 있었습니다)
18년 입회자를 선정하던 베테랑 위원회의 16인 그룹에서 (선수, 감독, 기자, 야구단 단장, 임원) 7인의 친숙한 이름이 있습니다.
돈 서튼
조지 브렛
로드 커루
로빈 욘트
데이브 윈필드
데니스 에커슬리
바비 콕스 (감독)
베테랑위원회 심사에 선수 신분으로 올라온 10인 중에, 탈락한 선수 출신은 모두 더쇼에 있었거나 있는 선수들입니다.
트래멀의 쿠퍼스 타운, 헌액 행사가 있고 2018년 8월 26일 구단에서 영구결번 처리를 했고요 (16번 할 뉴하우저 카드도 안보이네요)
그전에 자신이 감독을 할 때 3번을 사용했었지만 1996년 은퇴 이후엔 게리 셰필드, 이안 킨슬러가 3번을 사용한 선수였고
2015년 현장 코치가 아닌 구단에서 일할 때 공석이 발생한 1루 코치를 잠깐 하기도 했는데요
이때 자신의 배번 3번을 킨슬러가 사용해서 트래멀은 4번을 사용했었습니다.
20에서는 7월 14일에 헤드 라이너 34번으로 업데이트됐었습니다.
21은 유니폼을 만들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예쁜 유니폼이 제법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유니폼이 좋아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 헤드 라이너 24번
96 로건 길버트
월요일 오타니 선수 34호 홈런을 날린 시애틀과의 경기에서 선발투수였죠(4승 2패, 평자 3.50)
아마추어 시절의 성적, 시애틀의 기대치도 커서 2018년 드래프트, 1라운드 14번이었고, 계약금도 388만 달러였습니다.
19년에 A, A+, AA에서 26경기 10승 5패, 평자 2.13 (135이닝 투구, 95피안타)
2020년 마이너리그 경기가 취소됐었고, 올해 트리플A 타코마에서 1경기 던지고(1승, 5이닝 투구)
5월 13일 콜업, 데뷔했는데 시즌 끝나고 성적이 궁금해지네요.
★ KIM/ RYU
김광현 선수 잘 던지고 있네요
골슈는 중계 보면 타구질도 좋고 한데, 기록으로 보면 아직이고요.
야디는 영구결번을 향해 한발 한발.
임꺽정이 나온 줄 알았습니다.
5회, 6회 시작할 때 현지 중계도 바람을 넣더라고요.
단타를 3루타로 만드는 마법을 발휘하더니, 헤헤 웃으며 기념구를 챙겨주는 네가 구리엘JR 보다는 잘하고 있다 생각할게.
★ 스케줄
선추천 후감상 하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나의이장님 고맙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랑구라구님 닉넴의 의미가 몹시 궁금해지네요 감사합니다.
아침에 트래멜 누군지도 모르고 모멘츠 완료했는데 역시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범7™ 즐쇼입니다.
더쇼 백과사전 리오듀님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 부끄럽습니다. 8단기어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역시 기다렸습니다. 새로운 카드 능력치와 함께 다른 정보까지 얻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십킬로님 매번 칭찬, 정말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포탈 칼럼에 연재해야 될 수준인데 항상 감사하게 보고있습니다
역시 과찬의 말씀 부끄럽습니다 브랜뉴님의 선플이 저도 고맙습니다.
열정과 성의에 항상감사합니다 잘보고있어용~~~^^
히야~ 날씨가 많이 덥지예? (살아오며 주워들은 걸로 표현해 봤습니다) 계신 곳은 아직 2단계로 본 것 같네요 어서 빨리 더위도, 바이러스도 물러가는 시간이 오면 좋겠습니다.
크 야구 지식이 어마어마 하십니다. 항상 정독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쏘자님 저도 고마워요.
역시 대단하십니다ㅎ
일하시랴 육아하시랴 더쇼하시랴 바쁜 삼진왕님 즐쇼입니다!!
이런 고퀄의 MLB 칼럼은 살다살다 처음 봅니다. 정독 후 처음으로 루리웹이라는 곳에 가입을 다 해봅니다.. 정말 존경 스럽습니다..
겸사겸사 가입하셔서 과분한 칭찬까지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