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소설은 거울단계 이벤트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해당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으셨거나 진행중이신 유저분이 계시다면 추후에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툭.
“......아.”
보기 좋게 침대에서 굴러떨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오늘도 늦잠을 잔 게 분명했다. 눈꼽을 떼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예상대로 텅 빈 집안. 탁자 위에는 접시가 위아래로 포개져 있고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옆 마을에 잠깐 다녀올게.
집 잘 지키고 있으렴.
언니.
달력을 보니 오늘 날짜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와 함께 별 표시가 박혀 있었다. 10일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 작은 마을에서 옆 마을에서 열리는 10일장은 가뭄의 단비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날이다. 그래서 언니는 전날부터 꼼꼼하게 무엇을 사야 할지 리스트를 적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곤 했다.
“나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접시 뚜껑을 열고 어제와 똑같은 빵을 먹으며 나는 찬찬히 집 안을 돌아보았다. 거실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공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부엌. 그 옆에는 엄마의 방과 좁은 화장실, 그리고 우리 방이 있다. 정말이지 재미없는 집이다.
하릴없이 접시에 얼굴 한쪽을 대고 엄마 방을 쳐다본다. 엄밀히 따지면 엄마아빠의 방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엄마는 이상하게도 방안에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만 들여보내지 않았다. 언니하고는 종종 방 안에 들어가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곤 했으니까.
도대체 왜일까?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대충 설거지를 한 후 나는 까치발을 하고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찬장 맨 안쪽. 엄마가 항상 방문 열쇠를 두는 곳이었다. 넘어질 뻔한 위기를 겨우겨우 모면한 뒤에 어떻게든 손가락 끝에 열쇠고리를 걸었다. 그리고 그대로 밖으로 그것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어쩜 열쇠마저도 이렇게 낡아빠졌을까 속으로 탄식하며, 나는 상자를 여는 그리스 신화의 여자아이처럼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손잡이를 돌렸다.
“이, 이건......!”
엄마가 그렇게까지 나를 혼내면서도 지키고자 했던 보금자리. 그곳은, 너무나도 평범했다. 우리 자매의 방과 다른 점을 찾기도 힘들 정도로 똑같은 가구 배치에, 똑같은 구성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도 참. 좀 치우고 살지.”
정리정돈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제아무리 쓰레기장에도 질서가 있는 법이라지만 이건 허용 범위를 아득히 넘어선 수준이었다. 몇 벌 없는 옷은 멋대로 침대 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화장품 병도 뚜껑이 열린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건, 내게 있어 엄청난 기회였다.
깨끗하게 엄마의 방을 청소한다. 그럼 엄마도 분명히 좋아하실거야. 물론 몰래 엄마 방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 혼은 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지금의 나는 엄마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청소가 끝났다. 방이 작은 것도 있었지만 의욕으로 가득 찬 지금의 나에게 이 정도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마치 언니가 청소한 것처럼 깔끔해진 방을 보니 나도 모르게 뿌듯해졌다. 하지만 하나, 청소하던 중에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
침대 위에 널브러진 옷들을 옷장 안에 넣을 때 옷장 안에서 발견한 작은 나무상자. 호기심 많은 나에게 그 상자의 유혹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지금 낡은 옷장 문이 삐걱대면서 살짝 열리기까지 했다. 거대한 운명이 나를 그 상자로 인도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는, 문고리를 잡던 손을 놓고 열린 옷장문을 마저 활짝 열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있는 작은 상자를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런 무늬도 넣지 않은 평범한 크기의 나무상자. 별도의 잠금장치도 없었다. 침을 한 번 삼키고, 과감하게 뚜껑을 열어제꼈다.
“사진?”
젊은 남녀. 그리고 두 아이가 있는 가족사진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이건 우리 가족 사진이었다. 근사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사진은 아니지만 사진 속의 우리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잠깐. 우리?
“어라? 뭐야, 대체......”
첫 사진도. 그다음 사진도. 그다음 다음 사진도. 마지막 사진도. 등장인물은 똑같이 넷이었다. 엄마. 아빠. 언니. 그리고, 누군가. 물론 그 누군가는 당연히 나다. 하지만 사진 속의 ‘나’의 모습은 하나같이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왜지? 왜 내 얼굴만 이렇게 해놓은 거야? 엄마는 이것 때문에, 날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뭐 하는 거니?”
“!”
엄마가 내 앞에 나타났다. 분노와 슬픔, 두 단어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서운 표정을 한 채.
“어, 엄마...... 그게 아니고..... 나......아악!”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보려는 나의 시도는 너무나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무산되었다. 엄마는 침대 위에 있는 나를 두 손으로 잡고 거의 바닥에 내팽개친 다음 내가 바닥을 쓸었던 빗자루를 들고 사정없이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엄마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왜! 왜 너는 항상!”
이후 상황은 딱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엄마는 사정없이 나를 때렸다. 그리고 나는 목이 터져라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때리다가, 맞다가 서로 지쳤을 때 즈음이 되어서야 언니가 돌아와서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것이 나름의 포인트라면 포인트일 것이다.
나를 우선 방으로 돌려보낸 뒤, 언니는 엄마를 진정시키고 다시 우리 방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지고 온 거즈로 내 온 몸에 난 상처를 천천히 닦기 시작했다.
“......미안해, 마이ㄴ”
“뭐가 미안한데?”
방 안에서 상처를 치료해주는, 또 똑같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언니에게 나는 신경질을 부렸다. 이번엔 언니도 당황한 듯 몸을 살짝 움츠렸다.
“......내가 조금 더 빨리 왔으면”
“빨리 왔으면 뭐? 뭐가 달라지는데? 어차피 난 어떻게든 엄마 방에 갔을거고, 엄마한테 혼났을 거야. 그러면 그땐 어쩔 거야? 또 똑같이 미안하다고 할거잖아? 아냐?”
나의 날선 모습에, 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듯이 치료를 멈추고 나를 보더니, 다시 상처 난 팔에 거즈를 대려 했다.
“만지지 마!”
다시 몸을 움츠린다. 모든 게 다 짜증나고 싫었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언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는 침대에 누웠다. 아무래도 고민이 되는 듯 언니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삐그덕 하고 스프링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찰칵 하고 방문이 닫힌다.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까진 상처에 눈물이 스며들 때마다 쓰라림에 고통이 배가 되어 돌아온다. 하지만 진정한 고통은 그 다음에서야 찾아왔다.
“미안해, 마흐리안.”
“아니에요 어머니......”
엄마와 언니가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낡은 집이라 당연히 방음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기에 그들의 대화소리는 내 귀에 정확하게 박혀왔다.
“하이메 녀석이. 오늘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어렵게 얻은 자리였는데.”
아무래도 엄마는 직장을 잃게 된 모양이다. 선천적으로 몸이 좋지 않은 탓에 엄마는 일자리를 얻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해고당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도 이번 직장은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믿고 들어가셨던 곳이고 실제로 이전에 일하셨던 곳들보다도 꽤 오랜 기간동안 일을 해 오셨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당일날 아침에, 그것도 믿었던 사람에게서 해고 통보를 받았으니 그 충격이 꽤나 크신 것 같았다.
맞은 상처가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뭔가 엄마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함께 올라왔다. 내가 더 잘했더라면. 그냥 하라는 것만 했으면 됐을 텐데. 하지만 이런 내 감정 상태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다소 어이없는 방식으로 무너져내렸다.
“그래도, 엄마는 항상 우리 마흐리안한테 고마워. 장날이라 내리기 바쁠 텐데 미리 엄마 방도 청소해놓고.”
“아, 그건......”
“!”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왜 말을 멈추는 거야? 더 적극적으로 부정해, 언니. 내가 했다고 말해. 마이나가. 언니 동생인 마이나가 엄마를 위해서 한 거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란 말이야!
“엄마한테는 너밖에 없어. 알고 있지? 마흐리안?”
왜...... 왜 침묵하는거야? 언니도, 언니도 결국은 나 따위 신경도 안 쓴다는 거야?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어? 정말...... 정말이지......
“저런 언니 따위.....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흡.
너무나도 쉽게 내뱉은 저주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조용히 바깥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듣지 못한 듯했다. 아무리 남이 미워도 사람을 저주하면 안되는 법이라고, 특히 죽음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10살짜리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게 몰려 있었다.
욱신거리는 상처, 엄마와 언니에 대한 양가감정이 복잡하게 뒤엉킨 채 오후 내내 난 이불 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오가스에게 전해들은,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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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화에 걸친 프롤로그가 끝났습니다.
글쓰기는 참 어렵군요...
물론 세계적인 문학가 분들도 몇번이고 탈고를 하신다는데
한낱 저같은 사람은 몇일이고 붙들고 봐야죠.... 하다못해 보고서 하나도 일주일을 보는데 ㅠㅠ
3월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봄을 되돌려다오...ㅠㅠ
(본 연재분은 공카에도 같이 업로드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