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8/2020
몇 달 전 쓴 글이 오른쪽 베스트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니 반갑고 신기합니다.
별은 제게 아주 특별합니다. 그 마음을 조금 더 널리 공유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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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남긴 글입니다.
별을 보는 것에는 많은 기다림이 따른다. 달이 커다랗지 않은 때를, 해, 달이 지평선 저편으로 완전히 넘어가 짙은 어둠이 찾아오는 시간을, 옅게 낀 구름이 지나가기를,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가 그치기를, 내가 보고 싶은 별자리들이 뜨는 때를, 내가 보고 싶은 별자리들이 뜨는 계절을, 언젠가 남반구의 하늘을 보게 될 때를. 별을 보면서 만난 나의 아내와 나의 관계에도 많은 기다림이 있었다. 7년이라는 긴 장거리, 장시간의 연애, 진득하게 서로를 기다린 끝에 우린 함께 하게 되었고, 여전히 많은 기다림을 안고 우리는 별을 보았다. 지금, 우리는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지 조심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참 웃기는 일이다. 편안한 침대와 신선한 재료가 가득한 냉장고, 모든 것을 순식간에 보고, 듣고, 알게 해주는 와이파이, 이 모든 게 있는 따뜻한 집을 두고 왜 우리는 굳이 열악하기 그지없는 바깥으로 나가서 별을 보고, 때로는 클라이밍을 하고, 이를 위해 캠핑을 하는 것일까. 이렇게 풍족한 세상에서 왜 굳이 부족함을 찾아갈까.
문명은 발달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플로피 디스켓 따위는 없고, 이젠 USB나 외장하드를 넘어 클라우드 서비스가 자리매김하였다. 얼마 전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이제는 구글 서버에 어지간한 프로그래밍 라이브러리가 구비되어 있음은 물론, 일개 비루한 개인이 클라우드를 통하여 GPU를 이용한 평행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다. 수많은 정보들이 영상이라는 편리한 매체를 통해 제공되고, 오픈 소스, 무료로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나 많다. 온라인으로 내 .jpg 파일들을 업로드 하고 결제까지 하면 한시간 내에 간단하게 인쇄된 내 사진들을 찾으러 갈 수도 있다. 세상 선명한 전자책들을 내 아이패드에 담을 수 있다. 주문하면 신선한 닭가슴살이 몇 시간 안에 배송된다 -- 물론, 이 서비스의 댓가인 재화가 우리에겐 부족하기에 실제로 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물론 예전보단 덜 할지언정, 인간은 굳이 '필름 감성'을 대표로 한 빈티지, 아날로그 감성을 찾고, 굳이 하드커버 책의 무게를 느끼고 냄새를 맡으며, 파머스 마켓을 찾는다.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대대적인 노력으로 일구어논 컨베이어 벨트에서 생산된, 언제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들 대신 작은 로컬 브루어리에서 만든 특제 크래프트 맥주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훨씬 비싼 값을 내고서도 말이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법이다.
이 물질적이고 현대적인 세상은 나를 피곤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바깥으로 나간다. 어떤 통신도 되지 않고, 오로지 나를 둘러 싸는 것은 풀과 바람, 간간히 지나가는 도마뱀, 운이 좋으면 다람쥐나 토끼, 하늘, 땅. 그 속에선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 한편으로는 담담히 살아나가고 있는 나무들, 혹은 살아있지는 않지만 인간으로선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바위들을 보며, 나의 보잘것없음과 의미를 동시에 되새기는 경험을 가진다. 무엇보다 무섭게 춥고 바람이 불 때, 텐트 안 겹겹이 옷을 껴입고 침낭에 들어가, 가끔은 경사지고 고르지도 않은 지반에 누워 있으면 그렇게 잠을 잘 잔다.
별은 보는 일은 특히나 나를 드론 시점, ISS 시점, 객관적 시점에서 되돌아보게 한다. 기상이나, 광공해나, 나의 위도에 따라 내가 관측할 수 있는 것들은 달라지지만, 그것은 나의 문제이지 그들은 언제나 거기 있다. 바위보다도, 내가 아는 그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선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동안 그들은 거기에 있다. 게다가 별들은 밤하늘을 정말로 아름답고, 빛나고, 특별하게 수 놓는다. 그렇기에 나는, 망원경을 이용해서 관측을 하는 것도 좋지만, 맨 눈으로 밤하늘을 보는 것이 좋다. 그 밤하늘에 비친 어두운 주변 풍경의 실루엣, 그리고 우리의 실루엣을 보는 일이 좋다. 길고도 짧은 그 밤하늘이 흐르고 도는 모습을 담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는 밤 하늘의 사진을 찍고, 타임랩스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담는다.
아무리 커다란 단위의 시간을 가진 우주이지만 지구의 자전이란 시간 덕에 우주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흐름을 내가 보는 풍경과, 혹은 우리의 모습과 담아내는 것이 너무나 좋다.
나는 기본적으로 밤을 좋아하지 않는다. 밤은 어둡고, 춥고, 안 보이고, 피곤하고, 지치고, 두렵다. 내일이 두렵다. 별을 보러 가고, 캠핑을 하러 갈 때는 유일한 예외이다. 하나씩, 하나씩 총총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별들의 존재는 나를 너무나 설레게 한다.
관측을 위해 망원경을 세팅한다. 너무 추워지고 어두워지기 전에. 커지기 시작한 초승달이 아름답다.
아무것도, 정말 -- 아직은 -- 아무것도 없는 어느 사막 지역, Trilobite Wilderness에는 기차가 지난다. 안타깝게도 이 곳도 산업 시설들이 들어선다. 이 곳에도 광공해가 찾아올 것이다. 하여튼,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기차 소리가 작지 않지만 왠지 기분이 좋다. 사막의 냄새는 건조하고 따뜼하다.
반면, 해발 3000m에 자리잡은, 깊은 숲 속의 Grandview Campground. 서늘한 바람과 그에 실려오는 묵직하게 시원한 소나무 향. 내가 가 본 어느 곳보다 보다 멋진고 훌륭한 하늘을 보여주는, 나의 마음이 담긴 그 곳. 흔하지 않지만 한 번 보면 너무나 인상깊은 천체 대상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신남을 감출 수 없었다.
가끔은 그렇게 정신 없이 관측을 하다 날이 밝는다.
또 찾아오는 석양.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낮 시간은 어찌나 그렇게 신나고 재밌게 잘 가는지.
초승달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 뒤에 비치는 지구조. 지구가 다시 태양을 반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하다.
북두칠성 만큼 아이커닉한 별자리는 정말 없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진. 새벽 한 가운데 잠시 산책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 마주한 오르막길, 아내가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은하수가 땅에 닿는 지점에 그가 멈추었을 때 나는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왠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워진 몸을 녹이기 위해 캠프 파이어를 피우고, 밥을 먹는다. 그 사이에도 무심히 별은 뜬다.
바다, 사실은 태평양 위로 드리운 운해를 뒤로 밤이 찾아온다.
캠프그라운드에 걸려있던 커다란 그네. 밤하늘과 바다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은하수, 바다, 운해
그리고 우리의 집.
별을 보며 사랑하게 된 우리는 10년이 지나 아직도 제법 사랑하고 있다.
광공해는 기본적으로 안타깝지만, 가끔 빛은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달이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 새벽에 찾은 커다란 화산 분화구.
소중한 집.
따뜻한 불 앞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의 10주년을 맞이하였다.
수많은 유성우가 떨어지던 어늘 날 밤.
같이 화장실에 간다. 춥다.
자는 것이 아쉬워 크게 불을 피워놓고, 너무나 멋진 하늘 아래 나의 아내는 몇 시간을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
순전 클라이밍을 하기 위해 떠난 1박 1일 정도의 트립. 차 트렁크에 누워 루프와 옆 창문들로 쏟아지던 별빛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세상은 돌고 돈다.
다시 이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날을 지금은 그저 기다린다.
글과 사진 모두 감동적입니다... 달리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저도 저렇게 찍고 싶은데 ㅜㅜ
진짜 부럽네요. 아 부럽다 아 슬프다
진짜 너무 부럽습니다...
십수년 전 한겨울에 야간알바를 끝내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니 쏟아질듯 아름답고 청명하게 빛나는 별무리에 압도되어 십여분간 멍하니 서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진 너무 멋지네요
'세상은 돌고 돈다.'
캬~ 오리온자리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별자리인데 너무 멋진 사진이네요~
글과 사진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육안으로 은하수를 볼 수 있는곳이 있을까요....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