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저항군 합동참모본부.
“... 뭐?”
“캄차카 반도????”
“그렇다고 하네.”
사격을 하러 가겠단 말에 방 구석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얼척이 없는데, 그 사격을 하러 간다는 곳이 어디 뭐 가까운 산이나 이런 곳이 아니라 러시아. 그것도 일본 열도 북동쪽, 오호츠크 해를 옆으로 끼고 있는 캄차카 반도로 하러 간다는 말에, 벨리코프 원수도 칸에게 사격하러 간다는 말을 들었던 고진아 의장처럼 얼탱이가 나가버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슨 사격을 하러 러시아까지 가냐고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은...
“가서 곰 잡고 온다는데...”
“... 와...”
“나 여기서 뭐라고 반응해야 돼?”
“... 뭐...”
“굳이 반응하라고 한 말은 아닌데...”
“아니, 애초에 말이 된다 생각해, 이 상황이?”
“지 부인도, 지 아들들도 다 내팽개치고 어디 홀로 떠나버린 줄 알았더니, 실은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서 달방 구해가지고 방 구석에 틀어박혔고 안 나왔던 주제에, 고작 사격하러 가자고 하니깐 나온다?”
“이야~ 그럼 여지것 우리더러 찾아오지 말라고 한 건 뭐가 되나??”
벨리코프 원수는 라자르 대장으로부터 하준이 칸과 함께 둘이서 사격을 하러 러시아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듣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격한 반응을 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대뜸 낙원까지 끼질러 쳐들어와서 너희를 죽이겠다 하면서 덤벼, 그러면서 우리 아버지 패드립까지 쳐, 그러다 실수로 자기 넷 째 아들한테 주먹 갈겨버리고, 그러곤 그대로 부산까지 다시 돌아와서는 그대로 짐 다 빼고 부인들이랑 아들들 내팽개치고는 오르카를 완전히 탈주한 줄 알았더니 해운대 앞바다에 어디 사람 들어오지 않는 골목길 달방촌에 방 구해다가 짱박혀 있어, 그러다 칸이 겨우 찾으러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이 양반도 만만찮게 동생 죽은 걸로 트라우마가 심하게 남아있었는데, 그걸 여지것 단 한 번도 말 안해줘, 그러면서 우리가 알아차려주지 못했다며 온갖 불쌍한 척은 혼자서 다 하고. 결국 근 며칠 내로 벨리코프는 친구 민하준으로부터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친구 하준이 그런 암울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들어서 알고 있었노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진즉에 라자르한테 빨리 머리 박고 사과를 하라고 했겠지. 결국은 소통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문제였다. 양보 따위도 없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은 사람 쪽의 잘못이지. 그래놓구서 자기더러 니가 앉은 자리에 책임감은 있냐는 둥, 니가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은 있냐는 둥 그렇게 말을 하니 벨리코프의 입장에선 정나미가 떨어지다 못해 지금의 하준이 증오스럽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서 장군이 최전선의 가장 앞으로 나가서 싸우게 되었다고 하였을 때 부하들을 극진히 사랑해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동생의 죽음과 부하의 죽음이 매번 겹쳐보이니 아예 자신이 부하들보다 전선에 앞서 나가게 되었다는 전말을 알게 되니, 이제는 뭐 이런 멍청한 놈이 별을 달았을까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물론 그가 머리가 비상한 건 인정한다. 실시간으로 머릿 속에 전술 지도를 그려가며 상황판을 짜며 작전을 지휘를 하는 양반은 아마 멸망 전 기준으로 봐도 저 녀석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군이 괜히 장군이겠나. 하준은 징계를 받던 그 날, 자신을 더러 합동참모의장의 자리에 앉을 만한 책임이 있기는 하냐고 물었지만, 벨리코프가 생각하게 책임감이 없는 것은 오히려 민하준이었다. 눈 앞에서 포격 지원으로 데인저 클로즈 범위 안에 있어도 자신은 결코 안 죽는다고 하지만, 그건 용기있는 게 아니고 무모한 것이었다. 직격탄을 맞으면 안 죽을 것도 죽는 게 결국 슈퍼솔져였다. 슈퍼솔져가 불로장생과 바이오로이드 출신 인간들보다 훨씬 더 튼튼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결국 우리도 사람이었다. 자신도 언젠가 죽을 것이고, 라자르도 언젠가 죽을 것이고, 민하준 또한 언젠가 죽을 것이다. 허나 자신은 안 죽는다며 휘하 병력들보다 먼저 앞서나가서 전선을 지휘한다는 것은 덕장이나 맹장으로 비춰질 지는 몰라도 결코 명장이 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본인은 안 죽는다면서 적의 총탄에 맞아 죽어버리면, 그 뒤에 발생할 지휘의 부재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지휘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죽을 것 또한 예상을 하면서 지휘를 해야만 했다. 장군들이 병사들은 전선에서 죽어나갈 때 혼자서 뒤에서 뒷짐지고 지휘봉만 들고 지휘해서 아니꼽다고? 군대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나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 것이다.
별을 단 사람은 그 만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그 만한 자리에 서서 부하들을 지휘하여 아군을 승리로 이끄는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장군(혹은 제독)이 가지는, 최고 지휘권자가 가지는 책임이고 권위였다.
“... 후우...”
“나 잠시 본청 좀 다녀올게.”
“갑자기? 뭐 때문에?”
“알고 싶어??”
민하준 때문에 며칠 새 골머리를 앓고 있던 벨리코프는, 프린터에서 뭔갈 인쇄하여 서류 봉투에 담더니 본청으로 향하려 하였다.
그런 그를 라자르가 의아해 하며 문을 나서기 전에 붙잡았고, 벨리코프는 그런 라자르를 향해 방금 막 프린트 해서 서류봉투에 담은 서류를 꺼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봐봐, 한 번 그럼.”
“뭔데, 이게 대체...”
“... 현역... 복무...”
“... 부적합 신청서...?”
“... 이게 왜...?”
“... 설마?”
“그 새끼 그렇게 전역하고 싶어하니, 이 참에 예비역도 아니고 아예 그냥 완전히 퇴역시켜주지 뭐.”
“제 정신이야? 아니 너까지 갑자기 왜 그래?”
“제 정신이냐고?”
“형, 누가 제 정신이 아닌 거 같아, 여기서 지금?”
“친구 새끼 마지막 가는 길 그래도 곱게 보내주려고 하는 나?”
“아니면 우리 둘 다 죽이려 했다가 실패해서는 지 가족들도 내팽갠채로 방 구석 히키코모리가 된 저 새끼??”
“그래도 이건 아니야, 베ㄹ...”
“형, 나야말로 이건 아닌 거 같아.”
“어쨋건 조직이잖아. 우리 군조직이잖아.”
“인류 멸망해서 우리가 어거지로 이 자리에 있는 거?”
“인정해, 나도. 우리 어깨가 우리가 앉은 자리의 이름보다 훨씬 무겁다는 걸.”
“근데 또 그 만한 혜택을 받잖아. 또 우리는 그 만한 명예를 가지고 있잖아!”
“그래, 말 나온 김에 까놓고 말할까? 우리 부인들? 인류 멸망하고 깨어나니 인류 재건 계획이라면서 다가왔던거????”
“멸망 전이었으면 어디가서 인간 취급도 못 받을 사람들이었어. 그걸 우리에게는 다시 바꿔야 할 의무가 있는 거고, 그래서 다시 바꾼거야, 알아?!”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형도 거기에 동조했었던 거고!!”
“...”
“저렇게 이쁘고, 착하고, 사랑스러운데, 내 힘든 거 그러면 충분히 부인들한테 말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거잖아.”
“근데 본인이 하기 싫다잖아...!!!!”
“... 애당초 처음부터 본인이 하기 싫었으면 안 하면 될 일이었어. 거부권도 충분히 있었다고.”
“근데 뭐? 이제와서 난 군인이 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후우...”
“...”
답답한지 벨리코프는 라자르의 앞에서 열변을 토하다 앞머리를 위로 쓸어올리며 라자르에게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원하는대로 퇴역시켜주려고.”
“어차피 퇴역해도 연금은 꼬박꼬박 나갈거고, 그 새끼 그 비상한 머리로 평의회던 어디 연구직이던 보내면 알아서 잘 하겠지, 안 그래?”
“그럼 합동참모차장은 누구 시키고?”
“형이 해. 합참본부장 자리는 마리 대장 시키면 되잖아.”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벨리코프는 다시 현역복무부적합 신청서를 서류 봉투 안에 담아 평의회 본청으로 향하려 하였다.
그 때였다.
라자르가 하준의 현역복무부적합 신청서를 들고 평의회를 향해 나서려는 벨리코프의 앞을 막아세웠다.
“벨,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너 이거 지금 너무 감정적으로 나가고 있는거야.”
“내가 감정적으로 나가고 있는 거라고?”
“그 새끼도 지 감정 ↗되는 대로 나랑 주변 사람들한테 지랄 한 주제에, 왜 나는 그러면 안 되는건데??”
“그래도 너까지 감정적으로 나가면 안 되지.”
“어쨋건 이 상황이 좋든 싫던 넌 군의 총 책임자니ㄲ...”
“그래서 사적인 감정은 넣지 말라??”
“하! 그거 알아? 저 새낀 깨어나고 나서부터 맨날 입에서 전역시켜줘~ 퇴역시켜줘~ 하고 타령하던 새끼였어.”
“그래서 친히 내가 이번 기회에 영원히 군에서 떠나게 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젠데, 어?!”
“왜 이제와서 되도 않는 알량한 죄책감따위 느끼는 척 하면서, 그 새끼 편 들어 주고 있는 거냐고?!?!”
- 쾅!!!!
벨리코프는 순간 홧김에 옆에 있던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고, 그 충격으로 테이블 위의 유리판떼기에 금이 가다 못해 초전박살이 나서 완전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깨져버린 유리 덮개는 작은 조각으로 조각조각이 나면서 바닥으로 흩뿌려지듯 떨어졌다. 소리도 그냥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아니고, 마치 두꺼운 물체가 둔탁하게 박살나는 소리였다. 때아닌 낮에 합동참모의장 집무실에서 큰 소리가 나자, 집무실 앞의 복도를 지나가던 수 많은 저항군의 대원들은 갑자기 안에서 들려온 고함 소리와 박살나는 소리에 덜커덕 놀라며, 본의아니게 합동참모의장 집무실의 눈치를 보며 지나가야만 했었다.
비단 집무실 앞 복도 뿐만이 아니었다. 합참의장 집무실 안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렸던지, 같은 층 복도 끝에 있던 합동참모본부 주임원사실에까지 들리는 바람에, 합참의장과 합참본부장의 말다툼에 주임원사가 찾아오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오르카 인류 저항군 합참주임원사인 임펫 미하일 원사는, 난데 없는 소란이 들려온 합동참모의장의 집무실로 찾아들어왔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에 보이는 것은, 한창 서로를 노려보고 있던 합동참모의장 벨리코프 원수와 합동참모본부장 라자르 대장. 그리고 그 옆에 널부러진 손님용 테이블과 깨져버린 유리커버였다.
“무슨 일입니까, 의장님? 방금 무슨 소리가 여기서 들렸는데...”
“아, 본부장님도 계셨군요.”
“아, 주임원사님.”
“그리고...”
“... 허어... 아주 그냥 개박살을 내셨구만.”
임펫 주임원사는 홧김에 그가 박살내버린 테이블 유리커버의 조각조각들이 집무실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은, 한심한 반응을 내보였다.
마치 그 눈빛은, 사정은 잘 알겠지만 당신들 마저 그러면 어떡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거... 에효... 아닙니다.”
“냅두십쇼, 제가 이따와서 정리할 테니...”
임펫 주임원사는 그렇게 툭- 하고 내뱉고는 다시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할 말이 정말 많았지만, 꾹- 참는 모양새가 눈에 뻔히 들어왔다.
괜스레 뻘쭘해진 벨리코프 원수는 유리커버가 깨지면서 난 작은 상처들을 다른 손으로 어루만지며 아무 말도 못하는 가운데, 라자르 대장이 그를 진정시키듯 오히려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벨, 내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 뭔데.”
“예전에, 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있잖아...”
“그게 뭐.”
“그 때 어떤 기분이었니.”
“뭐...?”
“...”
“... 하아... 뭘 물어보나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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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입니다. 아직 갈 길이 머네요.
콘챠 고진아 씨가 여러모로 고생이 참 많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본편을 읽어주시고, 댓글과 추천을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낙원 이후에도 이래저래 골치아픈 상황이군요.
벨리코프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아무리 절친이라도 저렇게 애처럼 징징대면 친구고 뭐고 정나미 떨어지겠음...무엇보다 저렇게 내비두면 조직이 크게 흔들릴수 있으니 빨리 가지를 쳐야 할 상황이겠고요...
사적인 감정이 현재로선 우선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