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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원탁에 둘러앉은 여섯 자매들이 보인다.
자매들은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웃고, 떠들고, 때로는 티격댄다.
보통의 자매들이 으레 그러하듯.
‘꿈…이구나.’
오메가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꿈을 꾸고 있음을 깨달았다. 괴물들의 도구로 창조되어진 일곱 자매들은 어디까지나 그들 주인의 필요에 따라 협력했을 뿐,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진심으로 웃어보인 적이 없었으니까.
혹여라도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는 듯이, 손이 연신 욱신대며 현실을 일깨운다.
그때, 일곱 자매의 주인이 걸어들어온다. 오메가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최후의 인간, 멸망한 세상의 구원자, 오르카의 사령관.
자신이 미치도록 미워하고, 동시에 미치도록 사랑하는 바로 그 남자.
주인이 등장하자 하나같이 미소를 지으며 반기는 자매들. 몇백년간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였다.
‘아…. 이래서였구나.’
오메가는 자신이 이토록 위화감을 느끼는 원인을 곧바로 알아챘다. 이 꿈에 한해서만은, 레모네이드 시리즈의 주인이 펙스의 회장들이 아닌 바로 저 남자였던 것이다.
때문에 색욕에 눈 먼 괴물들에게 어머니가 범해지는 일도 없었고,
아비란 작자에게 비참하게 목 졸려 죽는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되었고,
오갈 데 없는 분노를 공허하게 흘려보낼 필요도 없었으며,
보답받지 못한 애정이 썩어 문드러져 질투에 미친 괴물로 거듭나지도 않았다.
또한 그들의 주인은 방종한 나태함은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든다는 것을,
끝모를 탐욕은 결국 결핍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오만한 자는 최후에 홀로 외로이 걸으며 진정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것도.
그렇게 꿈 속의 일곱 자매는 타고난 천성을 다스리는 법을 깨치고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꿈을 다 꾸다니. 나는 내심 이런 모습을 바라고 있었던 건가?’
오메가는 씁쓸하게 웃으며 화목한 자매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미 둘은 죽고, 둘은 등을 돌려 적이 되어버렸으니 현실에서 이런 풍경은 결코 볼 수 없으리라.
자매들이 제 주인에게 다가가 더욱 밝은 표정으로 사랑을 속삭인다. 오메가 역시 꿈 속에서나마 저 남자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었지만,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꿈 속에서조차 행복을 원할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 더 일찍 배웠으면 좋았을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걸.
조금 더 일찍 당신을 만났다면, 어쩌면….’
그녀는 다만, 시작부터 어긋나버린 서로의 길을 안타까워하며 애타는 마음을 삼킬 뿐이었다.
————————————————
“으….”
몸이 무겁다. 뻑뻑한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리니 빙빙 돌며 아른거리는 격자무늬 타일이 눈에 들어온다. 목은 타는 듯이 따끔거리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다.
“윽…!”
의식을 되찾은 것보다 한박자 늦게, 날카로운 통증이 덮쳐든다. 오메가는 몸을 벌벌 떨며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삑, 삑, 삑.
오메가의 주위에 빼곡히 놓인 기계가 일제히 요란을 떨며 비프음을 낸다. 오메가는 그제서야 자신이 병동의 침대에 누워 생명유지장치를 겹겹이 매달고 있음을 깨달았다.
“...?”
오메가는 얼굴에 씌워진 산소마스크를 벗겨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어쩌다 이곳에 왔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오메가 님! 깨어나셨군요!”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울려퍼지더니 병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오메가의 부관 유미였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오메가 님 방에 들어가 봤더니 심하게 다친 채로 의식이 없으셔서…. 제가 병동으로 옮겼어요.”
오메가는 그 말을 듣고 기절하기 전의 상황을 기억해냈다. 칼로 손을 찢어발긴 뒤 울다 지쳐 의식을 잃고 말았지. 고개를 슬쩍 돌려 손을 내려다 보니 붕대와 부목으로 겹겹이 싸여 있었다.
“손은 의료 AGS들이 긴급수술을 했는데, 너무 심하게 훼손된 상태라 후유증이 심할 것 같대요. 신경 손상 때문에 움직임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할 거라고….”
붕대 바깥으로 노출된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여 본다. 과연 유미가 말한대로 움직임이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 탓에 그마저도 얼마 이어지지 못했지만.
“...내가 며칠 동안 잠들어 있었지?”
오메가가 건조한 목소리로 묻는다.
“거의 사흘 정도요. 영양실조와 수면부족 같은 문제도 겹쳐서 상태가 좀 많이 안 좋으셨거든요.”
‘사흘…. 이 정도로 부상당하고 사흘이라니 참 운도 좋네. 아니,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하나.’
오메가는 피식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멀쩡히 의식을 되찾고 나니 여러가지로 복잡한 심경이다. 한편으로는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의외네. 너는 날 미치도록 싫어할 줄 알았는데.
해코지 안하고 치료해줘서 고마워.”
“아뇨, 뭐…. 당연한 일인걸요.”
유미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인다. 가만 보니 기절하기 전과 비교해 명백하게 인상도 퀭하고 머리가 부스스하다. 자신을 걱정해 밤잠이라도 설친 걸까?
“참… 과분한 부관을 뒀어. 내가 너였다면 기절한 틈에 꽁꽁 묶어 오르카 쪽에 팔아넘겼을텐데 말야.”
“네…넷?”
유미는 오메가가 지나가듯 던진 말 한마디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신의 스파이 짓이 들통났다고 생각하고 만 것이다.
“당황하긴…. 농담 좀 한 것 뿐이야.”
“아… 아하하…. 전 또….”
‘농담…? 농담같은 걸 할 성격이 아닌데.’
적당히 웃어 얼버무리며 한 줄기 식은땀을 흘리는 유미.
‘참내. 호구같다고 해야할지, 순진하다고 해야할지….’
진작 들킨 줄도 모르고 전전긍긍하는 그 모습이 우스워, 오메가는 콧김을 흥 내뱉었다.
“잠깐 나가주겠어? 샤워 좀 하고 싶네.”
오메가가 링거 바늘을 손수 잡아빼고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혼자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도와드릴까요?”
“됐어. 애도 아니고.”
유미가 방을 나간 것을 확인한 후 환자복을 벗어던지는 오메가. 산송장처럼 지내다 입원까지 한 여파인지 온몸 구석구석 어디 한군데 빼놓지 않고 하나같이 엉망이다. 푸석푸석하고 축 처진 피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 피가 엉겨붙어 제멋대로 엉킨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게다가 한쪽 손이 그야말로 걸레짝 수준이라 보기에도 안쓰러울 지경이다.
‘딱 좋지, 나같은 년한테는. 이 정도가 딱 좋아….’
오메가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자신의 격에 맞는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차라리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오메가는 한숨을 쉬며 샤워기를 틀어 온몸에 물을 끼얹었다. 상처에 물이 스며들어 견디기 힘들 만큼 따끔거리지만 참아낸다. 머리카락이 충분한 물을 머금을 때까지 눈을 감고 그저 기다리다가, 샴푸로 거품을 내어 엉겨붙은 더러움을 차근차근 씻어내린다. 한번으로 부족하다면 한 번 더, 그마저도 부족하다면 다시 한 번 더. 검게 변한 핏덩이들을 모조리 떼어내고 원래의 머릿결을 되찾을 때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몇 번이고 공들여 씻어낸 후, 오메가의 머리카락은 매끄러운 비단결처럼 변하여 흑옥과도 같이 빛나기 시작했다. 피부에도 혈색이 돌아 예전의 광채를 조금은 재현할 수 있었다.
‘그래. 아직은… 할 일이 남아있어.’
수도를 잠그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며, 오메가는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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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 감마와 통신 연결해.”
“아, 다 씻으셨… 에엑?!”
유미는 오메가를 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골반까지 내려오던 그녀의 길고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마구잡이로 잘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 갑자기 무슨… 왜…?”
“감마와. 통신. 연결해.”
유미의 물음을 가뿐히 무시하고 재차 명령하는 오메가. 유미는 허둥대며 통신장치를 조작해 감마와의 통신 회선을 연결했다.
“감마. 대답해.”
“이게 누구신가. 미안하지만 지금 좀 바빠서 말이지. 메시지를 남겨두면 내가 찬찬히 보고 검토를… 으응?”
감마는 화면을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귀찮다는 듯 말했다. 화면이 분주하게 흔들리며 파열음이 연신 들려오는 것을 보니 진작 유럽으로 달려가 철충들과 한바탕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지? 실연이라도 당했나?”
감마가 화면 너머의 오메가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뜬다. 오메가가 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긴 머리카락을 이렇게 짧게 자른 것은 자매기인 그녀로서도 꽤나 낯설었다.
“헛소리 들어줄 시간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북아메리카의 내 병력들을 유럽으로 가장 빠르게 수송할 수 있는 함대를 내어줘.”
시간이 아깝다는 듯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오메가. 감마는 눈썹을 삐뚜름하게 치켜올리며 오메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유가 뭐지? 네 대답에 따라 내 대답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 말야.”
감마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요구한다.
“최근에 대량으로 출현한 유럽의 철충들 말야.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유럽을 간단히 궤멸시켜버리고 이곳까지 들이닥칠 기세더라고.”
“그렇지. 그렇잖아도 내가… 큭! 이 머저리들아! 내가 셀주크 베이스인 놈들부터 타격하라고 했잖아!”
“....”
순간 감마의 화면이 크게 흔들리며 그녀의 목소리가 격앙된다. 감마는 잔뜩 흥분해서는 승무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한편, 주위를 떠다니는 기동형 철충들을 직접 잡아 터뜨렸다. 오메가는 참을성 있게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후, 미안하군. 한창 싸우는 중이라 정신이 없거든.”
“됐어.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여튼, 이어서 말하자면….
철충이 유럽을 집어삼키고 아메리카를 넘보기 전에 미리 손을 조금 써 둬야 할 것 같아서 말야. 마침 유럽에는 방패로 쓰기 좋은 미끼도 있으니까.”
즉, 정리하자면 유럽의 오르카 세력과 공동전선을 펼쳐 철충과 맞서겠다는 뜻. 감마는 오메가가 이런 제안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하! 네가 그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아닌 척 하면서 너도 그 남자가 걱정되나보지?
이거야 원, 솔직하지 못하기는.”
“쓸데없는 소리는 됐어. 보낼 수 있는 수송선 전부 보내. 지금 당장, 전속력으로.”
“얼마든지 내어드리지. 마음껏 쓰라고.”
감마의 시원스런 승낙과 함께 통신이 끊긴다. 오메가는 꺼진 모니터에 비친 스스로의 얼굴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욱신거리던 손의 통증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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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로프는 단발 오메가님 스탠딩 일러스트를 그려줘라
베타는 칠죄종 중 폭식에 대응되지만 그걸로는 쓰기가 애매해서 슬픔으로 바꿨습니다
분노 감마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