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감안해도 제갈량은 서주대학살 도중이나 이후에 이주한거임 자치통감이나 헌제춘추비교해봐도 제갈근의 언급을 봐도 난을 피해왔다고 나오고 제갈현과의 예장태수분쟁에서주호를 지원한게 착융인데 착융은 애초에 도겸밑에 있다가 서주대학살 피해서 내려온거임
장굉은 애초에 낙양에서 관직하다 내려와서 계속 광릉에서 살아온게 팩트고 장소 추천으로 오로 온거임 그리고 그 시기가 194년
광릉은 상대적으로 후방에 해당하니까 직접적으로 타격을 안받은건 맞고 장소만 잘못안거임
아니 그 이전에 착융 얘기한건 쳐 보지도 않냐? ㅋㅋ 제갈형제가 제갈현이랑 빤스런해서 내려온 시기부터가 이미 193~5년사이라고
니가 말한 원술 따까리 노릇하러 예장태수 하러 갔는데 조정에서 주술인가 주호 임명해서 그거때문에 한따까리 했는데 예장태수분쟁에서 그 주호 지원한게 착융이고 이 착융이 내려온게 서주대학살 때문임 앞서 언급한 두 기록도 언제 내려왔느냐에 따라 기록이 다르고
빤스런한거지 임명해서 온건지의 차이가 크기때문에 아닐가능성도 있는건 분명하지만 서주대학살 자체는 193년에도 있고 194년에도 있는데 최소 194년되기전에 안내려왔으면 ㅋㅋㅋ 니가 말한 194년의 2차 대학살에 낭야현도 포함되는데 거기 살던 제갈량은 이미 죽었어 195년은 절대 될수가 없고 194년도 조조가 조지러 오기 전에 빤스런했을 가능성이 높아서 뭘해도 예장에 임명받아서 갔다기보단
형주로 빤스런하다가 수춘에서 원술 만나고 원술이 영입해서 태수로 보내졌다고 봐야 하는게 맞는거임
그러니까 한말에 난을 피해 강동으로 온건 장소 한정이고 장굉은 그냥 계속 광릉에 살았어 그래서 여포가 서주목 되고도 영입하려고 했는데 생깐거임 제갈근의 문제는 얘는 따로 낙양에서 공부하다가 제갈일족 죄다 형주 갔는데 지 혼자만 갔다는걸 봐선 대학살시절에는 서주에 살지 않았을거임
그 제갈량이 피해입었다식 말을 안나와서 에초에 서주대학실 피해입었다부터추정 거기에 추정이맞다쳐도 그것때문애 위나라 관직안갓것도 그냥 그럴수도있다정도지 이것도 추정 서주 호족이 위에 관직있던경우는 있으니
추정 2개나더해진 걸 말하니
에초에 서주대학살떄문에 다른곳에 붙었다 직접적으로 말안나온 애들이잖음
내정능력이 까일거 있나?
그래야 누구처럼 백년동안 웃음거리 안되고 칭송받지
좀 경제쪽이 호불호 갈린다고 함 정말로 경제를 살렸는지 아니면 빚만 쌓은채로 전쟁을 일으켰는지...
그게 1차북벌 기준으로 어느정도 따값돼라는 생각으로 한거였으면 문제가 없었음 마속이라는 트롤만 아니었으면 철저할 수준으로 모든 계획을 다 세우고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음 산 타기 전까지는
내정능력이 까일거 있나?
무리한 북벌?
유능한거랑 별개로 그게 경제적으로 좋았냐는점에서는 의견이 갈릴수도 있음
좀 경제쪽이 호불호 갈린다고 함 정말로 경제를 살렸는지 아니면 빚만 쌓은채로 전쟁을 일으켰는지...
오전에 이야기가 나와서 직백오수. 라고 찾아보니, 당시 북벌 등 때문에 촉나라에서 화폐 등에 문제가 있던 부분이 있긴 했납 ㅗㅁ
루리웹-9933504257
그게 1차북벌 기준으로 어느정도 따값돼라는 생각으로 한거였으면 문제가 없었음 마속이라는 트롤만 아니었으면 철저할 수준으로 모든 계획을 다 세우고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음 산 타기 전까지는
전략임 모를까 내정에서?
일단 새해석 학계에 나오거나 교수가 발언하지 않는이상 중국위키 따라서 화폐자체는 실패로 가야지
물론 별개로 이상한 뇌피셜 막 덮어씌우는건 안되고.
애초에 서주대효도때문에 같이 살수가 없었음 서주대효도를 경험했는데도 항복하라는 장소 장굉이 더 이상한거
일단 지들 고향 박살나든 말든 자기만 잘먹고 잘사는 부류는 과거에도 있음 당장 고향이 조조에게 작살났는데 조조에게 빌붙어서 온갖 악행을 벌였다가 결국 조조에게 제거당한 유훈이라는 인물도 있음
서주대학살 장소는 그이전에갔고 장굉은 그냥 난피해갔다해서 확실하지않음 제갈량도 마찬가지 서주대학살언급없는걸로알고 간이유는 원술이 숙부불러서 따라간거임
그걸감안해도 제갈량은 서주대학살 도중이나 이후에 이주한거임 자치통감이나 헌제춘추비교해봐도 제갈근의 언급을 봐도 난을 피해왔다고 나오고 제갈현과의 예장태수분쟁에서주호를 지원한게 착융인데 착융은 애초에 도겸밑에 있다가 서주대학살 피해서 내려온거임 장굉은 애초에 낙양에서 관직하다 내려와서 계속 광릉에서 살아온게 팩트고 장소 추천으로 오로 온거임 그리고 그 시기가 194년 광릉은 상대적으로 후방에 해당하니까 직접적으로 타격을 안받은건 맞고 장소만 잘못안거임
한말에 난을 피해 강동으로 왔다. 마침 손책이 죽었는데 손책사망은 200년 2차 서주대학살이 194년 제갈근 난은 그게아닐가능성도 생각해야함
그냥 직접적으로 나온사람이없다말하는거임 간접적으로 추정이 다지
아니 그 이전에 착융 얘기한건 쳐 보지도 않냐? ㅋㅋ 제갈형제가 제갈현이랑 빤스런해서 내려온 시기부터가 이미 193~5년사이라고 니가 말한 원술 따까리 노릇하러 예장태수 하러 갔는데 조정에서 주술인가 주호 임명해서 그거때문에 한따까리 했는데 예장태수분쟁에서 그 주호 지원한게 착융이고 이 착융이 내려온게 서주대학살 때문임 앞서 언급한 두 기록도 언제 내려왔느냐에 따라 기록이 다르고 빤스런한거지 임명해서 온건지의 차이가 크기때문에 아닐가능성도 있는건 분명하지만 서주대학살 자체는 193년에도 있고 194년에도 있는데 최소 194년되기전에 안내려왔으면 ㅋㅋㅋ 니가 말한 194년의 2차 대학살에 낭야현도 포함되는데 거기 살던 제갈량은 이미 죽었어 195년은 절대 될수가 없고 194년도 조조가 조지러 오기 전에 빤스런했을 가능성이 높아서 뭘해도 예장에 임명받아서 갔다기보단 형주로 빤스런하다가 수춘에서 원술 만나고 원술이 영입해서 태수로 보내졌다고 봐야 하는게 맞는거임
그러니까 한말에 난을 피해 강동으로 온건 장소 한정이고 장굉은 그냥 계속 광릉에 살았어 그래서 여포가 서주목 되고도 영입하려고 했는데 생깐거임 제갈근의 문제는 얘는 따로 낙양에서 공부하다가 제갈일족 죄다 형주 갔는데 지 혼자만 갔다는걸 봐선 대학살시절에는 서주에 살지 않았을거임
그 제갈량이 피해입었다식 말을 안나와서 에초에 서주대학실 피해입었다부터추정 거기에 추정이맞다쳐도 그것때문애 위나라 관직안갓것도 그냥 그럴수도있다정도지 이것도 추정 서주 호족이 위에 관직있던경우는 있으니 추정 2개나더해진 걸 말하니 에초에 서주대학살떄문에 다른곳에 붙었다 직접적으로 말안나온 애들이잖음
제갈량의경우 난을피해 갔다는말도없는데 말그대로 추정이니 님말대로 추정 정도는가능해도 그이상은아니라고봄
팩트는 제갈씨 일족이 전부 형주로 옮겼다는거다 추정을 해도 껀덕지가 있는데 그럴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거랑 어? `난을 피해 갔다는 기록`이 없으니까 난을 피해서 간거는 아님 단정 짓는거랑 다른거야
여기 사람이말하는것은 가능성잇다보는게아니라 그냥 확정으로말하는거여서 문제 애초에 서주대효도때문에 같이 살수가 없었음 살수가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니 추측정도가아니라
지 생각이랑 다르다고 비추 쳐 주는건 어디서 배운 인성이냐?
아니 그럼 눈앞에서 씨몰살을 하는데 정상적인 대가리면 안튀겠냐고 ㅋㅋ 말했잖아 194년 2차대몰살때 어찌됬건 안움직엿으면 제갈승상은 존재 안햇다고 낭야가 초토화가 됬는데
뭘해도 확률적으로 높을수밖에 없는거임 아니 제갈현이 누군줄 알고 꽂아넣냐고 서주에서 강남이 됬건 형주가 됫건 이동하려면 조조있는 연주 예주로 꼬라박는것보단 양주쪽으로 내려가는게 정상이고 필연적으로 원술의 영역인 수춘일대를 지나갈수밖에 없는게 맞는거임 적어도 옥새 얻기전까지는 원술이 꽤나 호방하고 나름 능력은 있었다고 하니까 유표견제랑 맞물려서 마침 본인 영토에 들른 제갈현 영입해서 보냈다고 봐야 맞는거지
그래야 누구처럼 백년동안 웃음거리 안되고 칭송받지
특)180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