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웰로드 MKII는 목소리를 얻었다.
그리고 그날부로 웰로드 MKII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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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씁…….짜증나 돌아버리겠네."
자대에 배치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K11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S&T기업에서 군부대로 넘어온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본래 자신은 전술인형으로 기획되어 제조되었고,
연구와 개조가 특기라 하더라도 전장에 나서서 철혈을 무찌르는 것이 K11의 창조목적이었으니까.
상사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소속된 부대 선임인 K2는 늘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띨빵한 탓에 놀려먹기 좋은 대상이기도 했다.
억압적이거나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인형은 하나도 없었기에 상사에 대한 불만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었다.
그럼 무엇이 불만이기에 K11의 표정은 찡그러져 있는가.
답은 같은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 타 제대 리더──웰로드 MKII에게 있었다.
어쩌다보니 각 제대 스케줄표에서 휴식시간이 겹치게 된 모양이다.
쇼파에 앉아 코트를 어깨에 걸친 채 홍차를 마시며 웰로드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두 눈은 가만히 감겨 있었고, 휴게실에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에 심취한 듯 입꼬리는 자그맣게 올라가 있었다.
말을 걸기 껄그러워질 정도로 완벽한 휴식상태에 돌입한 모습이다.
저 웰로드에게 K11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K11은 반쯤 벌레 씹은 표정을 지은 채 휴식 중인 전술인형 앞으로 다가갔다.
"아~주 좋은 점심입니다. 웰로드 MKII씨."
고요한 휴식 중에 들려온 그 말에 웰로드는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꽤나 고압적인 삼백안이 두드러지는 눈매로, 웰로드는 작게 고개를 까딱였다.
무슨 용건이라도 있냐고 묻는 행동이었다.
"같이 쉬는 시간인데 인사라도 한 마디 나누고 있는 거죠. 우리 웰장군님께서도 잘 쉬고 계시죠?"
K11은, '이번에도 허사겠지'라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그래도 이번엔 뭔가 좀 다르지 않을까'따위의 상반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목적은, 웰로드 MKII로부터 인사 한 마디를 듣는 것.
단순하고도 심플한 K11의 희망사항이었지만 웰장군이라 불리는 인형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기대를 저버리게 했다.
그저 K11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고는,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다시 휴식상태에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쯧."
또네. 또 입을 안 여네.
김이 팍 새버렸다. 늘 휴게실에서 만나면서도 단 한 번 입을 열지 않았던 우리 웰장군님께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일주일 내내. 이쯤되면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시비라도 걸고 싶은 건가──아, 위험하다.
이대로 있다간 진짜로 싸워버릴지도 몰라.
"그럼 푹 쉬십쇼, 고지식한 장군씨."
무시하듯이, 다시 홍차를 입에 가져다 대는 웰로드를 뒤로 하고 K11은 휴게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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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화도 내지 않고 그냥 휴게실에서 나온 거야?"
"뭐, 그랬던 거지."
휴게실에서 나온 K11은 곧장 자대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분명 작업시간일 텐데도 불닭볶음면을 뺑처먹고 있던 K2와 만나고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게 되어버렸다.
불닭볶음면 컵에 나무젓가락으로 구멍을 뚫으면서 K2가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정말이지~ 우리 귀여운 K11 후배는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깐? 보통 그렇게 무시당하면 화를 낼 법도 한데 말야."
"뭐 어쩌겠어? 타 제대 인형인데 멋대로 화를 낼 수도 없잖아. 그 상황이면 K2도 나랑 마찬가지……K2'씨'도 나랑 마찬가지였을 걸?"
반말까진 봐줄 테니 부를 땐 "씨"를 붙이라고 했던가.
갑자기 양 볼을 부풀리며 자신을 바라보았기에 K11은 조심스럽게 말을 번복하면서 이야기했다.
훨씬 선임이면서 존칭만으로도 족했는지 그걸로 K2는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으음, 어땠으려나~ '선배'인 나도 어쩔 수 없이 참았으려나~"
창문 밖으로 컵라면 물을 버리면서 K2는 계속 말했다.
"그래도 웰로드씨도 참 나빴어. 너무한다니깐? 불러도 별 반응이 없고, 늘 고개를 까딱이거나 젓는 걸로 대답하고 말야. 입을 연 걸
본 적이 없단 말야."
"재수없을 정도로 말이지."
"맞아. 나도 처음에 배속됐을 때 말야, 그 인형은 완전 벙어린 줄 알았다니까?
마인드맵에 무슨 문제가 있기라도 한 줄 알았다구. 초면에 내가 뭘 잘못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야."
음음, 본인이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수한 컵라면에 소스를 붓는 K2였다.
"이쯤 되면 제조 과정에서 성격을 조절할 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같은 전술인형이면서 그렇게 삐딱할 수가 없단 말이지.
무뚝뚝하고, 과묵하다 못해 음침하기까지 하고. 지휘관님께도 똑같이 그럴려나 몰라."
"K2씨, 여기 나무젓가락."
"아, 고마워! 아무튼 간에 저 정도면 본인 제대서 작전을 수행할 때 문제도 있을 텐데 말이지.
정말 생활하고 있는 건지 미스테리 그 자체라니………………깐………………."
소스를 비비면서 신명나게 뒷담을 까던 K2가 갑자기 말꼬리를 흐려냈다.
갑작스런 이상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K11의 눈에, 생활관 출입문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K2가 있었다.
"…………그래도 그게 웰로드 MKII씨만의 개성이기도 하지. 과묵한 장군님 같은 모습이잖아.
괜히 그리폰 공인 5성 전술인형이 아니라니깐? 라이플 제대에는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존재기도 하고 말야.
응. 그래. 대단하시지. 참 대단하여라~"
"K2씨?"
"아아~갑자기 졸립다~~낮잠이나 한숨 자볼까?"
"어이, 기껏 불닭볶음면 다 비벼놓고 자는 척 하지 말라고. 뭔데, K2씨. 갑자기 왜……."
말을 하다 말고 K11은 뒤에서 느껴져오는 기척 때문에 뒤를 홱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웰로드 MKII가 있었다.
방금까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던 뒷담씹이용 전술인형이.
어깨 위로 코트를 걸친 채, 무심경한 얼굴로 K2와 K11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에 계셨었어요?"
여긴 웰로드네 제대도 아닌데.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은 거지? 작전 수행이 안 될 거라고 했던 거? 설마 처음부터 다 들어버린 건 아니겠지?
일났다…….
"저기, 웰로드씨. 어디까지 이야기를 들으셨을진 모르겠는데,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실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K11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이야기가 다 끝맺기도 전에 웰로드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발길을 뒤로 돌려버린 것이었다.
화를 내도 마땅찮을 상황에 못 본 체하고 무시하려는 걸까.
욕을 한바가지 먹어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던 K2에게는 실로 다행인 일이었다.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였으니.
하지만 K11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또 무시하는 그 모습이, 마치 자기들을 없는 존재마냥 여기는 것 같아서 짜증이 치밀어올라왔다.
"거기 멈추시죠, 웰로드씨."
"힉!!"
잘 수습되는 와중에 무슨 짓이냐고 K2가 바라보는 것도 아랑곳 않으며 K11은 웰로드의 왼팔을 우악스럽게 쥐어잡았다.
웰로드는 K11과 눈을 마주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웰로드는 눈짓으로 물어보았다.
"차라리 화라도 내고 가시지, 이게 대체 무슨 짓이신지요? 저희가 그렇게 같잖아보이십니까?"
웰로드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대답 대신 나온 그 행동이 K11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그럼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겁니까? 화가 났으면 화가 난다! 뒷담까지 마라! 재수없으니 그만 해라!!
아무거라도 좋으니 한 마디 하라고요! 괜히 몸짓으로 돌려 무시하지 마시고!"
"K11!"
"K2씨는 좀 닥치고 있어봐.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들어야겠으니까.……
자, 말해보시죠. 하지 말라고 당부하든 쌍욕을 내뱉든 뭐라도 말해보라고요. 웰로드 마크 투."
점점 거칠어지는 K11의 목소리에 돌아오는 웰로드의 눈빛은 조금 곤혹스러워진 것으로 변해져 있었다.
팔에 힘을 더 주어 빼려고 해 봐도, K11의 거친 악력이 그것을 허용해주지 않았다. 무력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으끄."
입을 다물고 지낸지 1년의 세월이 지나려 하고 있었다.
새된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갑자기 솟구쳐나오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마침내, 기어코 듣게 되는 목소리는 고압적인 목소리도, 전장의 장군님이 낼 법한 근엄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다정함이 마일드하게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
말하고 싶었지만, 늘 꾹 참아왔던 목소리다.
과묵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답답하다는 핀잔을 들어도,
쭉 참아왔던, 참을 수밖에 없었던 목소리.
"미안해요……흐윽……."
그 목소리가 나왔을 때, 웰로드의 양 볼은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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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싶은 과거가 있다.
잊어버렸으면 하는 악몽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잊히지 않은 채,
마인드 맵의 한 구석에 남아, 웰로드를 끝없이 괴롭혀왔다.
모든 전술인형은 초기 버전에는 공통된, 똑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이는 편의성보다 실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하루 빨리 개발을 끝마친 전술인형을 전장에 즉각적으로 투입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고유한 목소리를 가지고, 개성있는 독특한 어조를 가지게 되는 것은 음성 패치가 코어 모듈에 업그레이드되는 이후로,
실제 여러 인형들이 【선 전장도입->후 고유음성 패치】를 거치게 된다.
그리고 그날은 웰로드 MKII가 그 고유음성 패치를 받고, 모두에게 자랑하게 되는 날이었다.
"웰장군님~ 준비는 다 되셨나요?"
"예, 예에…문제 없습니다."
그리폰 보급관 카리나의 장난기 섞인 웃음소리에 웰로드는 쿵쾅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날이다.
5성 최고의 권총, 버프 권총이면서 메인 탱커로 내세워도 손색 없는 능력치, 수려한 외모까지.
어느 면에서든지 팔방미인이었던 웰로드는 모든 지휘관들의 사랑을 받았고, 어떤 이는 추앙까지 할 정도로 인기 있는 전술인형이었다.
단점이라고는 조금도 없다고 여기는 지휘관들마저, 이따금 농담삼아 이야기하는 것은 "전용 목소리가 없다는 것"정도.
그리고 오늘은 그 목소리를 가지고 모든 지휘관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괘, 괜찮을까요……너무 많은 분들 앞이어서 긴장되는데……."
"문제 없어요! 웰로드씨 목소리면 분명 모두들 좋아할 거에요! 그도 그럴 게, 웰로드씨는 모두가 사랑하는 대 인기스타시니까요!"
"인기스타라니, 그 정도 까지는……."
괜히 볼이 빨개져서, 웰로드는 고개를 숙였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과분한 인기를 얻게 된 것에 대해 그리폰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 뿐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성능,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다 그리폰의 힘이었으니까.
그리고, 본인을 좋아하는 지휘관들이 있기에,
지금 이렇게 상기한 얼굴로 흥분을 감추려 노력하는 자기 자신도 있는 것이리라.
"아, 시간 됐네요. 자, 웰로드씨! 어서 무대로 나가자구요!"
"네? 아, 아니.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그런 건 무대 위에서 하셔도 되잖아요! 자, 출발!"
"우, 우와아악?!"
카리나의 손길에 이끌려 억지로 끌려온 곳은 대강당실의 위. 웰로드의 눈앞에는 수많은 무리가 좌석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무수한 눈동자들의 향연에 압도될 뻔했다.
하지만 이내 웰로드는 마음을 다 잡고, 목을 가다듬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수많은 관중들이 눈을 빛내며 지켜보고 있다.
오로지 단 한 기의 전술인형, 그 목에서 나올 음성 데이터를 위해.
무수한 이들로부터 오는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웰로드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웰로드 MKII, 도착했습니다. 환영식은 괜찮습니다. 어둠에 몸을 맡긴 제게 축하의 꽃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요!"
"……!………!!……!!!……!!……."
"홍차를 한 잔 더 끓여올게요. 지휘관도 한 잔……하실……까요……?"
천천히, 대본에 적힌 아귀들을 읽던 웰로드는 중간부터 말꼬리를 흐려버리고 말았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환호나 박수갈채와는 거리가 먼 종류였고, 의문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운 감정들이 느껴졌다. 한 명, 두 명, 그리고 여러 명.
자그맣던 웅성거림은 확성기를 채비한 것마냥 점점 커져갔고, 이내 강당 전체를 지배할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저, 저기…여러분……무슨 문제라도……."
말하는 웰로드의 앞으로 무언가가 던져 날라왔다. 피하지 못하고 무심결에 맞아버렸다.
빈 생수통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방 여러 곳에서 쓰레기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깡통, 휴지조각, 생수통, 심지어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집히는 건 다 던지고 있는 것 같은 관중들의 돌발행동에 웰로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카리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사회를 맡은 그녀는 앞으로 나서서 제지하려 했다.
"자, 잠깐만요! 진정하세요, 여러분!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건가요!"
"──닥쳐, 이 사기꾼! 그게 어딜 봐서 웰로드의 목소리라는 거냐!"
그 말이 웰로드의 움직임을 뚝 멈춰 세우게 했다.
"장군님 같은 목소리는 어디로 갔어?"
"왜 예정에도 없던 존댓말을 쓰는 거야?"
"이따구로 할 거면 목소리를 들이지 말던가!"
위험하다. 사태가 심각해지려고 한다.
모두의 화가 끝장까지 나려고 하는 사태에 웰로드는 다시 앞으로 나서서 마이크를 집었다. 어떻게든 화를 가라앉혀야만 했다.
오늘은 객석의 모든 분들이 좋아해야 하는 날. 그랬어야만 하는 날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저기, 우선 진정하시고 모두들 자리에 앉아주……."
거기서 웰로드는 말을 잇지 못했다. 끝맺기도 전에 누군가가 돌을 던져버린 탓이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웰로드는 크게 휘청했다. 시야가 순간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누가 돌을 던진 거지. 대체 왜 던진 거지…….
"듣기 싫으니까 넌 닥치고 있어!"
……아.
그렇구나.
내 목소리가 잘못한 거구나.
내 목소리가 여기 모든 사람들을 화내게 만든 거구나.
무대 뒤편에서 제대원들이 겨우 달려와 감싸줄 때까지 웰로드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가 웰로드를 꼭 껴안아주었다.
포옹을 받고 나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는 것을 웰로드는 겨우 알아챌 수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웰로드의 전용 장비는 입마개가 좋겠어.
저 목소리 하나 때문에 모든 인형들 목소리를 없애버리게 생겼는데.
저 목소리를 들을 바에 차라리 마카로프를 쓰던가 해야지.
정말 듣기 싫다. 저딴 걸 목소리라고──
"……미안해요."
터져나오는 슬픈 감정을 담아, 눈물 섞인 목소리가 웰로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안해요……미안해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린 목소리.
기다려왔던 모두를 실망시킨 목소리.
그야말로 저주나 받았다는 표현이 알맞은 목소리지 않은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목소리를 굳이 들려줄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웰로드는 그날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임무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과받을 일에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끝나는,
아이들 손에 맞춰 움직이는, 진짜 인형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웰로드는 진짜 인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지휘관들이 원하는 것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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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에 고인 눈물을 검지로 훔치며 웰로드는 터뜨려진 마음을 겨우 추스리고 있었다.
앞에서 "자, 자, 착하죠~"하면서 티슈를 주는 K2의 앞에서 이런 꼴이라는 게 부끄럽긴 했지만 동시에 고마운 마음도 드는 웰로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눈물은 거의 멎었을 시점에 붉은 음료수 캔 하나가 불쑥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요 앞 자판기에서 파는 닥터 제퍼였다.
"마셔요."
"……고마워요."
어색한 대화. 억지로 잘라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치익, 탄산 빠지는 소리가 청량하게도 터져나왔다.
딱히 음료수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받은 것이니, 고마운 마음으로 웰로드는 캔을 쭉 들이켰다.
"……사주신 건 고마운데, 이거 맛없네요."
"그야 뭐, 선택 받은 인형만이 마실 수 있는 음료니까요."
"……네?"
어리둥절해 하는 웰로드를 보며 피식 웃곤 K11도 본인 것을 쭉 들이켰다. 짜릿한 목넘김이 엄습해온다.
체리맛 콜라, 라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즐거운 맛에 K11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하지만 그 미소도, 다시금 생각나는 웰로드의 과거사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뭣도 모르고 무례하게 군 점, 사과드릴게요. 왜 그렇게 과묵하신가 생각만 했지,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예? 아, 아녜요. 계속 말 없이 입 다문 제 잘못인걸요."
"──사과하는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데 말야, 정말 목소리랑 미스매치기는 하네. 좀 더 고압적인 장군님 목소리를 생각했었는데."
"K2씨, 부탁할 테니까 입 좀 다물고 있어."
넌씨눈이잖아. 덕분에 완전 갑분싸 됐잖아.
"역시 그렇죠……?"같은 소리나 하면서 다시 의기소침해진 웰로드를 보자니 절로 두통이 느껴지는 K11이었다.
나름 훈훈해지려는 분위기에 또 찬물이라니. K2, 저딴 얼빵이 인형이 선임이라는 것이 다시금 믿겨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기운 차려요. 그렇게 이상한 목소리도 아닌 데요 뭐."
"아녜요. 실제로 목소리가 바뀐 이후로 지휘관님이 절 대하는 모습이 바뀌셨는 걸요.
기뻐하는 얼굴로 저를 찾아오시던 분들은 이제 없어요. 그저 업무를 위해 사용되는 소모성 인형일 뿐……."
"……그랬단 말이죠."
K11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실링팬을 보고 있자니 괜히 더 마음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웰로드 MKII. 목소리를 가지게 된 이후 모두의 미움을 받게 된 최고성능 5성용 권총.
K11에게 그 이야기는 남일로 치부될 종류가 아니었다.
"있죠, 웰로드씨. 저도 언젠가 웰로드씨처럼 버려지는 날이 올까요?"
"네? 그건 갑자기 왜……."
"갑자기 왜긴, 알잖아요. 저도 아직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걸요."
K11은 씁쓸하게 웃었다.
애매모호한 성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은 K11을 끔찍히 아껴주었다.
자대에 배치 받자마자 상자째 보급받은 딸기 케이크들과 전장에 즉시 투입될 수 있도록 부여받은 작전보고서들이 그 애정의 증표이리라.
그런 K11도, 미래에 받게 된 목소리가 별로라는 이유로 구박 받을지도 모른다.
바로 눈앞에 있는 웰로드 MKII처럼.
소속된 인형들에게 애정을 주느니 마느니, 그건 지휘관 본인의 자유기는 했다.
하지만 늘 받게 될 것만 같았던 애정이 어느 한순간에 야유와 비아냥, 차디 찬 냉소로 변해버리게 된다면──
"감정이 있는 로봇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데요."
꾸깃. 다 마신 닥터 제퍼의 알루미늄캔이 K11의 악력에 찌그러졌다.
조금 분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할 수 있는 걸까. 그저 목소리만 바뀐 것 뿐인데, 그렇게 쉽게 애정을 버릴 수 있는 걸까.
미숙한 AI를 가진 전술인형에게는, 이해할 수 없이 어려운 감정이었다.
"……K11씨는 분명 좋은 목소리를 받으실 수 있을 거에요."
"그거야 모르죠. 위에서 또 어떤 목소리를 줄지."
"……아녜요. 이런 미스매칭은 저 하나가 겪는 걸로 충분해요. 다른 인형분들이……K11같은 분이 이런 상황에 직면해버리면……."
웰로드 MKII는 말을 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사람들의 야유가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깡통과 쓰레기를 던지고, 조롱하고, 비웃는, 지휘관을 비롯해 모인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들.
기대로 모인 이들은 실망과 탄식만을 남기고 떠나, 아무도 남지 않은 텅 빈 무대는……실로 차갑고, 공허했었다.
"그렇게 되면……너무나도 슬플 것 같아요……."
그 말이 K2, K11이 들을 수 있는 웰로드 MKII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흐느끼고, 펑펑 울고 난 다음 날 만난 웰로드는, 다시 차가운 가면을 쓴 채여서 전날의 상처 받은 목소리가 다시 떠올리지 않은 위엄이 있었다.
다른 지휘소쪽 일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지휘소의 웰로드 MKII에게서 목소리를 듣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래도 되는 걸까.
저대로, 기껏 받은 목소리를 다시 잃어버려도 좋은 걸까.
알 수 없었다. K11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복도에서 마주친 웰로드 MKII에게 조용히 목례를 하는 것이, K11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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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박하나 장군님 성우 배정 1주년이어서 후딱 써봤습니다
그렇게 팬아트가 양산되고 수많은 밈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기 최고의 인형이었는데 성우 배정 후 마치 그 모든 게 꿈이었던 마냥 아무것도 남지 않은, 덕질겜에 성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나 알 수 있게 된 희생양이죠. 그 이후 게임에서도 성대의 저주를 받았는지 랖딱제대 기용률도 떨어지고 고지역 등장으로 인해 권총탱이 힘들어짐에 따라 n호기를 선호하는 지휘관에게조차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 작금의 상황이 정말 안타깝네요.
그렇게 팬아트가 양산되고 수많은 밈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기 최고의 인형이었는데 성우 배정 후 마치 그 모든 게 꿈이었던 마냥 아무것도 남지 않은, 덕질겜에 성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나 알 수 있게 된 희생양이죠. 그 이후 게임에서도 성대의 저주를 받았는지 랖딱제대 기용률도 떨어지고 고지역 등장으로 인해 권총탱이 힘들어짐에 따라 n호기를 선호하는 지휘관에게조차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 작금의 상황이 정말 안타깝네요.
우중아 웰로드 좀 살려주라! 이게 뭐냐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