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처럼
제주도 예멘 난민문제로 강자의 숨은 발톱이 드러나고
약자를 추방시키는 국민청원에 수십만 명이 달려들 때
난 동유럽의 나치 강제수용소들을 성지순례 중이었다.
어느날 독일의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소를 찾아 헤매다가
중앙광장 근처 거의 텅 빈 마트의 진열장이 눈에 띄었다.
마트 유리문에 붙은 독일어 공고문을 친구가 번역해주었다.
친애하는 고객 여러분
어제 갑자기 갓난아기와 어린애들이 포함된
200여 명의 난민을 실은 버스들이 도착했습니다.
저희들은 난민들을 돕기 위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매장의 모든 식료품들을
구호품으로 보냈습니다.
너무나 긴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새로운 물품들은 이미 주문해놓았으며
거듭 양해를 바랍니다.
지난번처럼 고객 여러분들의 마음을 믿습니다.
악의 평범성
이산하, 창비시선 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