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클럽 하우스 레스토랑
언니! ‘새우와 허브를 곁들인 갈릭 프라이드 라이스’ 요
리가 식고 있어!
퍼뜩, 언니는 정신을 차렸지 통유리 전경에 빠져 있다가
겨우 돌아왔어 말이 되니 진달래랑 페어웨이가 저렇게나 앙
상블한 데는 처음 봤어! 킥킥 웃으며 언니가 수저를 들었어
너도 얼른 들어 ‘유기농 표고로 만든 스파이시 버섯 탕면’
을, 훗,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언니한테 웃어줬지
좀전까지 우린 불꽃이 튀었어 언니는 오 분마다 나를 몰
아댔지 땜빵 어시한테 너무 시킨다 언니? “사모님은 오른쪽
얼굴이 더 잘 받으시는구나” 언니가 툭툭 말을 던질 떄마다
클라이언트 얼굴이 화전처럼 익어갔어 죽이 너무 잘 맞아서
는, 클라이언트가 언니 대모님인 줄 알았어
그만해 언니, 완성 컷이 나왔는데 뭘 또 찍어?
피사체가 OK를 해야, OK지?!
던진 걸 주워먹느라 피사체는 OK를 할 줄 몰랐어 VVIP
룸이랑, 로비랑, 다시 프로 숍이랑, 어디서 찍어도 같은 얼
굴…… 배경은 날릴 건데…… 내 말은 믿지도 않았지 피사
체는 재킷을 네 번이나 바꿔 입었다 저러다 목욕 가운까지
걸치고 나오겠구나
오 분 쉴 때 언니한테 속삭였지 죽겠어 언니, 이러다 우
리 영화 찍겠어! 조용히 좀 해줄래? 나도 죽겠으니까……
죽겠으면 언니만 그러면 되는데 자꾸만 일을 시켰지 차에
가서 뭘 더 가져오래 혼자 들면 인대가 고무줄 될 것 같은
장비들, 집에 그냥 가버린다니까 언니가 복도 끝으로 끌
고 갔지
유치원 놀이 하니?
골프공으로 맞은 것처럼 띵, 했어 화장실에 들어가 살짝
울었지 세상도 모륵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그게
나…… 그래, 몰랐어 언니가 업자가 된 줄은 정말 몰랐어 난
동네 언니로 알았는데……
그런데 이 모든 게 말야, 오늘 모든 일들이 말야
여기서 이런 음식을 먹으니까 다 용서가 돼 그렇지 않아
언니? 내가 먼저 접고 들어가니까 언니가 격하게 다가왔지,
그니까 말야 여기서 꼭 널 먹여주고 싶었어!! 아일랜드 스
타일 아니니? 벨파스트 대성당 스타일! 맞아 언니, 난 화장
실에서, 핸드크림이랑 낱개 포장 면봉이랑, 기념으로 모셔
올 뻔했잖아 전면 유리창 뷰랑 헤어지기 싫어서 우린 한참
을 더 떠들었지 나도 컨디션이 좀 돌아와서, 좋은 것만 기
억하기로 결심했어
무슨 소리예요? 연락 못 받았다니?
사모님이, 전화해놓을 테니까 내려가서 그냥 먹으랬는데,
계산대 매니저는 들은 게 없대 전화라도 해보세요…… 안
받는대요?…… 언니는 갑자기 두통이 왔는지 눈을 감아버
렸어 눈썹까지 파르르 떨면서…… 언니, 그러다 멘탈 나가
겠어 그냥 언니가 내면 어떨까? 내가 속삭이니까
우리가 왜?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맞아, 어떻게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어!! 맞장구는 못
쳐줬지, 그만 여기서 나가자 오늘 본 거 다 못 본 걸로 할
게, 언니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언니는 움직이지 않았어 휴
대폰을 귀에 대고 손톱 물어뜯는 언니를 계속 지켜봤지, 이
러다 귀신 되겠어 우리 둘은 영원히 웃으면서 밥만 먹어야
하겠지…… 뭐가 자꾸 흘러나와…… 아까 화장실에서 흘리
다 만 건가……
믿을 건
언니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멈추질 않았어.
오늘 같이 있어
박상수, 문학동네시인선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