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우리를 둘러싼 나무와 숲들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어둠에 안긴 우리는 내면으로 조금씩 망명해갔네
멀리 두고 온 그리움은 여전히 멀리서 불빛처럼 반짝이
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리움은 이미 우리와 한몸이 된 듯
각자의 내면에서 또 제멋대로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네
밤이 깊어갈수록 숲에서는 바람이 불어와
쓸쓸함이 또 다른 쓸쓸함을 데불고 다른 숲으로 건너
갈 때
몇 마리 새들도 바람과 함께 망명하고 있었네
시인은 술을 마시다 문득 생각난 듯
세상의 불의와 자신의 불우를 툭툭 토해냈고
그걸 듣는 또 다른 시인은 하염없이 술을 마셨네
생은 무엇인가
오랑캐 빛깔의 밤은 또 무엇인가
우리는 각자의 상념에 잠겨 밤 속으로 더 깊어져갔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삶에 정해진 답 같은 건 없었네
밤은 깊고 바람은 불고 술통은 비어가는데
어디에도 해답은 없었네
그것만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답이었네
밤하늘의 구름들은 별빛 사이로 흘러가는데
삶은 스스로 꿈꾸는 한 편의 시
이룩하는 하나의 풍경
우리는 밤새 술을 마시지만 취하지 않고
우리는 밤새 담배를 피우지만
담배 연기에 물들지 않았네
달무리 아래 오랑캐 빛깔로 익어가는 혁명 전야의 밤
혁명이란 무엇이고 오랑캐란 누구인가?
우리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그대여, 이제는 본질적인 것을 꿈꾸어야 하리
우리는 계속 혁명을 향해 나아가고
혁명은 여전히 우리의 뒤를 따르리니
지금은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박정대, 달아실시선 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