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마음
하나님은 왜 나 같은 거 살려두나 몰라, 죽으려고 버스에
뛰어들었는데 안 죽어요, 진짜, 안 죽어진다니까요
온 전철 안이 얼어붙었지 금방이라도 자기 옷을 찢을 것처
럼, 앵벌이 남자애가 떠들어댔어 돈 벌 생각이 없는 걸까?
지금 옷이라면, 찌라시만 나눠줘도 될 텐데, 사람들이 타
고 내려도 바닥에 주저앉아 연설만 했지, 듣는 사람도 없는
데…… 사람들, 이어폰을 귀마개처럼 틀어막고, 폰만 들여
다보고 있는데, 잠깐, 그렇다면 나만 얼어붙은 건가
가만 들으면 죽고 싶다는 말, 잘 들으면 죽기도 살기도 귀
찮다는 말
얀마, 여긴 안 들려, 너 그래서 장사가 되겠냐?
잠자던 촉들이 한꺼번에 살아났지 이어폰을 낀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어 낄낄낄, 아까부터 떠들어대던 아저
씨들, 어느 산악 부대일까, 모자를 맞춰 쓴 등산복 아저씨
들이 더 크게, 저 끝에서 웃기 시작했어, 순간 이동인가, 남
자애는 두 손으로 바닥 스키를 타더니 두둥, 아저씨들을 올
려다봤지
아저씨, 나 알아요?
한 번만 더 웃으면 받아버리겠다는 듯이, 남자애는 소리
쳤지 부대원들은 동시에 숨을 멈췄다가, 자세가 틀려먹었
잖아?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했어 내가 뭐가요! 불꽃놀이가
터지고, 이어폰을 뺸 사람도 있었지 나도 가방에 몸을 감추
고, 숨을 죽였어
고개를 더 숙이고 인마,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해도 모
자란데
이렇게, 이렇게! 아저씨1이 여기저기 구십 도로 인사하니
까 산악 부대 아저씨들이 한꺼번에 빵 터졌지 앵벌이 남자
애도 웃기 시작했어 오늘 잘 만났다 너, 여기 다 사장님들이
야 인마! 가방에 태극기를 꽂은 아저씨2의 말에 부대원들
가방이 열리고, 옥수수랑 먹던 백설기가 나왔지
그러지 마, 제발 그러지 마
주먹을 꽉 쥐고 텔레파시를 보냈지, 침을 흘리고 웃더니
남자애는 백설기를 먹었어 그 자리에서 반이나 먹었다 그
래, 물도 없이 그걸 다 먹는구나……
나는 알았지 아까 그 말, 다시 생각하면 살려달라는 말, 죽
을 때까지는 더 살고 싶다는 말…… ‘여기 나쁜 사람들이 괴
롭혀요’ 기관사 아저씨한테 문자를 보내려다 지웠어
생각이 깊어지면, 동굴이, 열리고, 끝도 없이, 그 속을 달
려가, 철로 긁히는 소리, 갉아 먹히는 소리, 내가 일어나서,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 먹어버려, 씹어버려, 날 좀 말려주
세요, 뷁 쾕 캻
산악 부대 아저씨들한테 구십 도로 인사하더니, 남자ㅐ가
아까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어
힘차게
정말 살 마음이 생긴 것처럼.
오늘 같이 있어
박상수, 문학동네시인선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