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유스케 감독에게 듣는 V건담 이야기
'야마노스스메' 등 수많은 인기 작품으로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감독 야마모토 유스케. 그의 커리어 초기에 관련된 '기동전사 V 건담'은 동경했던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에게서 직접 많은걸 배운, 추억이 강한 타이틀이라고 한다. 방송 30주년을 맞이하는 이 타이밍에 제작당시의 일들을 다시한번 돌이켜본다.
야마모토 유스케 : 1966년생. 시마네현 출신. 일본대학 예술학부 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선라이즈(현 반다이남코 필름 워크스)에 입사. 제작진행을 거쳐 연출가로. 주요 감독작으로는 '케로로 중사' '왈큐레 로만체' 나이츠&매직' '오시가 무도관에~' '야마노스스메' 시리즈 등이 있으며 2023년 7월부터는 'SYNDUALITY Noir'가 방송될 예정.
스승인 이우치씨에게 '토미노씨랑 옥신각신 해보고 와라'라고 보내졌습니다
'기동전사 V 건담'이라고 하면,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당시를 회상하는 센세이셔널한 말투나 "안봐도 좋다"는 발언이 아직도 독보적이라는 인상이 듭니다.
그렇네요. 하지만 제가 본 V건담의 현장은 그런 인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오늘 하고싶네요. 블루레이 박스의 책자에 실린 와타나베 테츠야씨, 모리 쿠니히로군과의 이야기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조금 더 이야기해두고 싶은게 있어서. 참고로 V건담 방송 당시에 보셨나요?
세대적으로 V건담이 처음으로 실시간 체험하는 TV시리즈 건담이라 솔직하게 접했습니다. 다만 어릴때라 주변 사정을 포함해 작품의 깊은 부분까지는 이해할수 없었어요.
그렇군요.
우선 당시 상황을 확인할께요. V건담에의 참가는 시리즈 중반인 제28화 '대탈주'였는데 어떤 경위였나요?
당시 저는 '마신영웅전 와타루'나 '마동왕 그랑조트(한국명 슈퍼 그랑죠)'를 감독하던 이우치 슈지씨의 회사(리드 프로젝트)에 연출가로 소속되고 있었습니다. 이우치 씨는 '성전사 던바인'이나 '중전기 엘가임'에 참여했던 적도 있어, 토미노씨의 흐름을 짙게 이어온 감독입니다. 그런 이우치씨한테서 "V건담의 현장에 연출이 결원이라 사람을 찾는 중이니 네가 가서 토미노씨랑 옥신각신 해보고 와라"고 이야기 듣고 선라이즈에 보내졌다...는게 참가 경위가 됩니다.
원래 야마모토씨는 토미노 감독 작품을 좋아하셨다는데, 그 최신작에 참가해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나요?
그즈음 V건담의 현장은 주위에서 굉장히 두려워했습니다(웃음). "토미노 감독한테 엄청 혼나고 연출의 자유도가 적을거 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죠.
연출의 자유도?
구체적으론 '2컷 작화(※)금지' '건담 이외의 메카닉이나 인물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안된다' '폭발 장면은 (작화의) 매수가 필요하니까 1970년대 로봇물에서 한것처럼 배경미술의 대체로 처리한다"... 그런게 굉장히 엄격하고 인간관계도 삐걱댄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겁먹고 있었는데, 말씀하신것 처럼 저는 원래 토미노 감독 작품들을 좋아했거든요. 가장 좋아했던건 성전사 던바인인데, 그걸 동경해 토미노 감독이 졸업했던 대학의 학과에 감독 코스로 들어갔고, 거기에서 선라이즈에 입사해 제작진행이 되었을 정도로.
※영상의 1프레임 = 1/24초 중, 2프레임마다 동화를 넣는 수법. 일본 애니는 3컷 작화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음.
진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좋아한다는건 상당하네요.
다만 그런 경위가 있던 사람이라도 업계에 들어가면 여러가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로봇물을 만드는게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되어서, 동경한다고 해도 토미노 감독과 함께 일한다는 결단을 내릴수 없었죠. 하지만 스승인 이우치씨가 말하니 마음먹고 갈수밖에 없었습니다(웃음). 당시는 연출이 된지 2년차 정도 시기였지만, 움찔 움찔 하며 V건담 현장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 가보니 두려워하던 그런건 없었습니다.
오호.
현장이 소화되고 있었고 오히려 토미노 감독을 중심으로 사기가 오르고 있던 상태였죠. '온화하다'까지는 아니지만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토미노 감독이 노리는걸 만들자!"하고 현장에 의식이 높아지던 상태였습니다. 그런 주변 텐션을 따라갈수 있을지 불안해졌을 정도였죠. 일을 시작하고 나서 어려운건 물론 있었습니다만, 결코 함부로 혼나는건 없었고... 다만 2번정도 감독한테 엄청 혼난 적은 있었지만(웃음), 이건 또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그게 뭐야!?"라고 생각한 토미노 감독과의 첫 콘택트
V건담에 참가하고 나서는 원 회사가 아니라 선라이즈의 스튜디오에 책상을 두고 작업하셨나요?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그런게 보통이었고, 어떤 작품에 관여하게 되면 그 작품을 다루는 스튜디오에 자리를 두고, 가급적 작품 섭외 없이 상주하며 작업했습니다. 덕분에 다른 연출분들과도 친해졌죠. 니시모리 아키라씨나 아시자와 타케시씨라는 선배분들께 일을 배우며, 동년배던 와타나베 테츠야씨나 지금은 본즈에 있는 타케이 요시유키군, 타마다 히로시씨와는 좋은 의미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며 일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리 옆에는 토미노 감독의 자리가 있었거든요.
압박이 굉장했겠네요...
아하하. 하지만 토미노 감독은 언제나 계셨던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오셨을때는 옆에서 제가 하는 일들을 들여다 보시고 여러가지로 괴롭히시고... 그런때는 과연 긴장했네요 역시. 하지만 그런 모든게 연출을 배워가는데 이상적인 환경이었다고, 돌아보면 느끼게 됩니다.
시간을 조금 돌려서, 토미노 감독에게 처음 인사드렸을때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엄청 차려입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생각했던 거랑 다른 방향이더라구요. 혼나려나 싶었는데 "당신같은 사람이 오길 기다렸어요"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그게 뭐야!?"였습니다(웃음).
역으로 무서워지네요(웃음)
무서웠어요(웃음). 그전에 자유롭게 '만든걸 하나 가져와보라"고 하시더라구요. '건담 스러운것'을 가져가보는게 어떨까 싶었는데, 이우치씨가 감독한 '엄마는 4학년'에서 그림 콘티, 연출을 맡았던 회차를 가져갔습니다. 생활물, 소녀물을 봐달라고. 그게 좋았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때 확실히 들은걸로 기억나는게 "앞으론 일체 다른 애니메이션을 보지 마세요"였습니다.
오오...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이상한 영향을 받으면 안됩니다. 지금 나오는 애니는 전부 보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딱 그 무렵에 저는 여러 애니메이션을 보느라 지쳐있던 시기였습니다. 일하면서 좋아했던 애니 시청이 즐겁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토미노 감독의 그 말에 조금 구원받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밍이 좋았네요.
네. 그리고 또 한가지 임팩트 있는 말도 들었습니다. "당신이 이 현장에 있는건 아마 반년 정도겠지만, 보통의 연출이 20년 걸쳐 느끼는걸 그 반년으로 하게 될겁니다. 그건 보증해요. 앞으로 반년, 제대로 한다면 20년은 (연출가로) 먹고살수 있을것"...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굉장한 자부심이네요.
단언할수 있다는게 굉장합니다. 듣는 쪽도 기쁘고, 그 한마디로 완전히 "따르겠습니다!!" 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상상했던 토미노 감독의 이미지와는 다 달랐어요. 게다가 '20년치'라는건 과장이 아니라, 여기서 얻은건 그후 제가 애니메이션 일을 해가는데 있어 굉장히 컸습니다. 그래서 제게 있어 스승은 연출에의 길을 열어준 이우치씨와 V건담 현장에서 만난 토미노 감독의 두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멋대로인 생각이지만 각각의 다른 좋은부분들을 제 안에 흡수시켜 주셨습니다.
하나의 프레임에 담아야 할 정보량에 압도당하다
실제 28화 대탈주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스기시마 쿠니히사씨가 그린 그림콘티를 받았을때는 어떤 인상이었나요?
전부터 알던 사이였고 관련 작품도 보고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그동안 제가 처리하고 있던 그림콘티와는 밀도가 전혀 달라 놀랐습니다. 일단 단순하게 하나의 프레임에 들어가 있는게 많았습니다. 캐릭터가 많고 안쪽에 모빌슈트도 있습니다. 앞에선 개가 짖고 있어요. 하나의 화면 안에 다양한 요소들이 들어있거든요. 거의 같은 시기에 관련된 다른 작품이라면 프레임 안에 캐릭터는 많아봐여 몇명 정도고 불필요한건 그려져있지 않았기에 굉장한 차이였습니다. 그림콘티 이전에 시나리오 단계에서 상정된, 프레임 속에 담아야할 정보량이 다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많은 것들이 화면에 등장해서 손이 많이가 큰일이다..라는것만이 아닙니다. 예를들어, 2프레임으로 PAN(Panning)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까요? 보통의 작품이라면 가로나 세로로 긴 피사체를 하나거나, 혹은 정경을 느긋히 포착하는 정도인데요.
그정도의 최소한의 대상물이 있다면 컷으로 충분히 성립하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V건담은 같은 프레임 안에 전함이 있고 모빌슈트가 있고 전투기가 있고 사람... 그것도 노멀슈트 모습의 사람이 다수 있는, 이런 상황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컷 안에서 전하고 싶은게 어쨌든 많으니까, PAN을 하면서 그 요소를 얼마나, 어떤 순서로 보여줄 것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토미노 감독의 작품이니까 대사도 쓸데없이 많습니다(웃음). 게다가 그 원래의 그림 콘티 분량도 달라요.
엑?
당시의 30분 범위의 TV애니메이션 1화분의 그림콘티는 대체로 100페이지 이내에서 끝난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V건담은 100페이지는 부족해요. 아시자와 타케시씨는 "매회 200페이지는 걸린다"고 하시던게 기억납니다. 어쨌든 콘티의 두께가 척 보기에도 달라요. 모든게 압도적이었습니다. 실은 오늘도 가져왔는데... (가방에서 자료를 꺼낸다)
귀중한게!! 분명 안을 들여다보면 그림도 문자정보도 굉장히 많다는 인상이네요.
그 압도적인 정보량을 파악하는게 우선 힘들고, 게다가 화면의 무엇을 어떤 수단으로 표현할 것인지 생각해내는게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그만큼을 어디까지 TV 애니메이션의 제약 속에서 해야하는지에 망설였습니다.
그림을 깨끗이 움직이기보다도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생각하라
TV 애니메이션의 제약이라는걸 좀더 자세히 물어봐도 될까요?
가장 큰건 (작화) 매수를 걸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작에 걸리는 시간이 짧은 부분이네요. 적은 매수와 기간으로 보통의 작품 이상의 정보량을 판단한다는건 그만큼 연출에 요구되는 허들이 높다는 것. 다만 토미노 감독에겐 "그림을 반드시 제대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 너희가 생각할건 깨끗하게 움직이는게 아니라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것"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 컷으로 캐릭터에게 뭘 시킬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연출은 생각해야 하고, 그것만 제대로 잘 되어 있으면 좋다. 그게 깨끗하게, 정중하게 움직일수 있을지 어떨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그건 특수한 경우인가요?
저도 그렇지만, 지금의 연출 분들은 "작화가 파탄날 정도면 움직이지 않고 멈춰버린다"고 하는 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 토미노 감독의 사고방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를들어, 어떤 컷에서 '캐릭터가 코끝을 낼름 핱는다' 같은 연기를 생각해내면, 그걸 시키는게 중요한 것이지 그걸 애니메이터가 제대로 그릴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건 별개 문제니까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실패해도 되니까 해 하고. 재밌는 일을 시키는게 목적이지, 그걸 깨끗하게 표현하는건 메인이 아니라는 생각이죠. 그래서 부드럽게 2컷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고, 3컷으로 충분하고 그림자도 필요 없는겁니다.
V건담의 현장의 연출 자유도가 낮은데는 확실히 이유가 있었군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건담 시리즈 일을 아무도 안한다는 현장 사정에서 오는 판단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림자 처리는 마감 부담이 큽니다. 그 컷에 그림자를 붙일지 말지 전부 연출이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룰이었습니다. 움직임에 관해선, 요컨대 "궁리해서 이겨내라"고 말씀하셨죠. 아무 궁리 없이 그냥 매끄럽게 움직이도록 요구하는건 가장 머리를 안쓰는 연출방식입니다. 그렇게가 아니라 어떻게 연출의 힘으로, 다른 부서의 스탭에게 부담을 줄이면서 그림콘티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표현하는가... 그게 당시의 TV애니메이션의 연출의 기본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야스히코 요시카즈씨가 아니었고, 코가와 토모노리씨가 아니던건 당연했고, 거기에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게 연출. 그래서 토미노 감독에게서 "작화가 좋지 않다"는 말도 거의 없었죠. 다만 지금까지 이야기한것과 정 반대의 것도 토미노 감독께는 자주 들었습니다. "이런 컷을 만들면 누가 그릴수 있나!?" 라고 콘티가 수정하거나(웃음). 모순되긴 하지만 연출의 일은 모순이 당연. "모순은 감성으로 이겨내라!"라고 하는 것이군요(웃음).
너무 길어서 뒷편은 따로 글을 파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