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완다와 거상, 오늘밤 거상은 또다시 잠든다

| 타이틀 | 완다와 거상 리메이크 | 발매일 | 2018년 2월 6일 |
| 제작사 | 블루포인트 게임즈 | 장르 | 액션 어드벤처 |
| 기종 | PS4 | 등급 | 12세 이용가 |
| 언어 | 자막 한국어화 | 작성자 | PforP |
나의 태양을 손으로 느낄 수 있게 되면 다신 그녀를 잃지 않겠다고 약속해.
아침이 다시 오지 않는데도 내 손은 태양을 다시 만지는 축복을 느끼네.
-Local Natives, Sun Hands
선과 거상 살해술: 리듬에 대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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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팀에서 일하던 사람이 게임 디자이너가 된 특이한 경력. 우에다 후미토(좌)와 워프 시절 참여한 '에너미 제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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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후미토를 일약 주목받는 게임 디렉터로 만들어준 '이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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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후미토는 상당히 특이한 방식으로 게임업계에 들어섰다. 우선 그는 프로그래머나 이공계 출신이 아니다. 예술학교 출신 미술 학도였던 그는 아미가와 컴퓨터 그래픽을 배운 뒤 32비트 게임 여명기에 워프라는 게임 회사에 입사했다. 그의 상사였던 이노 켄지는 고등학교 자퇴 후 일련의 실험적인 게임들로 업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인물로, '미스트'풍 어드벤처 게임을 재해석한 'D의 식탁'이라던가 소리로만 적을 파악해야 했던 '에너미 제로', 오로지 소리로만 진행했던 사운드노벨 '리얼사운드: 바람의 리그렛' 같은 게임을 만들었다. 이노 켄지는 우에다 후미토 입사 당시를 회고하며, '굉장한 센스를 가지고 있다'며 높게 평가한 적이 있다.
우에다 역시 CG팀으로 이노랑 일하면서 그의 과감함과 연출론이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워프 에서 퇴사한 우에다는 소니 프로듀서 카이도 켄지의 제의를 받아 게임 디렉터 데뷔작인 '이코'를 준비하게 된다. 본디 PS1로 개발되다가 PS2 런칭 타이틀로 넘어온 '이코'는 우에다 후미토 사단이 추구할 미학을 알리는 게임이었다. 조르주 데 키리코부터 '은하철도 999', '어나더 월드'와 '페르시아의 왕자', '레밍즈'에 영감을 받은 이 게임은 3D 액션 어드벤처 장르에 혁신을 가했다. 동반자 개념, 중간보스 없음, 정교한 퍼즐, 여백과 침묵으로 만들어낸 신비로운 분위기는 영향은 보이되 우에다 후미토와 팀 이코만의 개성이 분명히 새겨져 있었다.
부동산 재테크를 위해 거상 아파트 16채를 마련하려는 소년의 모험을 다룬 게임 (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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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건 거상을 찾아가 싸우는 것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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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게임은 그 단순한 행위만으로 독창적인 구조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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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지지를 뒤로 한 채 우에다 후미토는 후속작 '완다와 거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에다는 '완다와 거상' 만들기 전에 '이코'엔 보스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게임이었으니, 이번엔 최종 보스만 나오는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작부터 어느정도 '이코'의 거울쌍을 의도한 셈이다. 여기다가 전작보다도 분명한 '젤다의 전설' 시리즈 오마주가 게임의 기반이 되었다. 관련 인터뷰에서 우에다는 거상의 디자인은 '젤다의 전설'에 등장하는 던전을 뒤집어 놓은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만 보면 다소 이해가 안 되겠지만,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있다. '완다와 거상'의 거상들은 단순히 거대한 적이 아니며, 이들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방식이 놀랍도록 참신하다.
'완다와 거상'은 '이코'보다도 철저히 리듬으로만 구성된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할 수 있는 건 대지에 숨어있는 거상을 찾아가 싸우는 것뿐이다. 전작의 퍼즐은 사라졌고 유저 인터페이스는 수줍게 숨어있다가 필요할 때만 등장한다. 우에다는 친숙한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어법을 거의 따르지 않았다. '완다와 거상'에서 장르적 장치는 세이브 포인트와 체력, 스탯 강화 아이템, 무기 정도의 최소한의 장치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완다와 거상'은 선(線)으로 구성된 리듬을 따라가는 게임이 되었다. 플레이어는 말 아그로와 함께 거대한 대지를 누비면서 지평선의 무한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다가, 거상을 만나서 싸우게 된다 우에다는 이 간소화된 리듬과 디테일을 반복하면서 쓸쓸하면서 홀린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거상까지 여정 도중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음에도 몇몇 순간은 거의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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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단순할지 몰라도, 무서울 정도로 디테일에 대한 헌신과 치밀한 설계가 인상적인 게임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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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는 이 선(線) 끝에 거상을 배치한다. 이 게임의 거상은 선(線)과 대조되는 존재이며 단순히 몬스터로 그치지 않는다. 팀 이코는 거상을 하나의 지형물이자 (몇몇 소형 거상을 제외하면) 독립된 스테이지로 만든다. 때문에 이전에 나온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보스들과 달리, 복잡한 지형물을 돌파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먼저 거상의 약점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파악해야 하며, 거상에 올라타는 순간 이 게임만의 시스템인 악력 게이지를 활용해 떨어지지 않게 움직이면서 약점에 일격을 가해야 한다. 복잡한 충돌 판정과 정교한 구조물 배치, 뛰어난 물리 엔진, 훌륭한 서스펜스로 완성된 거상은 그 자체로 거대한 풍경이자, 두려우면서도 아름답다. 그 점에서 레벨 디자인을 맡은 아사노 타케시와 무수한 컨셉 아티스트들은 우에다 후미토만큼이나 기억되어야 할 이름이다. 우에다가 요구하는 미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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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점에서 우에다 후미토는 '지평선을 어디다 배치해야 할지'를 잘 아는 게임 디렉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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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다와 거상'이 감히 위대한 게임이라 말할 수 있다면, 리듬과 디테일의 반복뿐만 아니라 풍경의 구성과 배치를 고심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완다와 거상'의 배경이 되는 고대의 땅은 원초적인 매력으로 가득하다. 옛 문명은 자연의 품으로 흡수되었고, 오로지 광활한 들판과 언덕, 폭포, 강과 숲, 사막만이 플레이어 앞에 놓여져 있다. 팀 이코는 이 풍경에 다른 설명을 부여하지 않는다. 존 포드의 모뉴먼트 밸리가 그랬듯이 '완다와 거상'의 고대의 땅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서사인 거상과 완다 간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있을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냥 있다'고 해서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풍경은 끊임없이 서사의 분위기를 장악하며 의미를 만들어낸다. 대체 이 땅은 왜 버려진 것일까? 저 건물들은 누가 세운 것일까? 저 거상들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풍경은 단순히 풍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어떤 지점에서 이 게임의 주인공은 완다가 아닌 고대의 땅이라 할 수 있다. 시적이라는 매우 진부하고 뻔한 수사가 우에다 후미토와 팀 이코 제작진 앞에서 빛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플레이어가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여기다 '이코'에서 단련된 디테일에 대한 헌신과 우아한 카메라 워크, 과잉 없이 간결하면서도 인상깊게 배치된 오오타니 코우의 웅혼한 사운드트랙 같은 기술적 완성도 역시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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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복잡한 서사가 아님에도, 후반부의 여운은 상당히 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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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와 후일 만든 '라스트 가디언'에서 볼 수 있듯이, 우에다 후미토는 저주받은 운명과 닫힌 공간에서 탈출하려는 두 사람 (혹은 생물)의 관계에 매혹되어 있다. '완다와 거상'은 그런 우에다 후미토 개인의 매혹이 인상적인 장르 반전을 통해 제시되는 게임이다. '완다와 거상'의 시작은 진부하다는 단어로도 부족하다. 소녀는 죽어 있고, 주인공은 소녀를 살리기 위해 거상과 싸우게 된다. 익숙한 장르 어법을 받아들인 플레이어는 별 의심 없이 거상을 물리쳐야 할 악으로 생각한다. 별다른 사전정보 없이 이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완다와 거상' 초반부는 약간 기괴하고 쓸쓸한 '젤다의 전설'처럼 보일 것이다.
후반부의 반전은 그 점에서 지금까지 관습을 따라왔던 서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발매 당시 유명했던 캐치프레이즈 '최후의 일격은 안타깝다'는 게임의 정서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다 우에다는 제스처를 이용한 연출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죽여야 하는 완다와 죽고 싶지 않은 거상의 처절한 제스처는 긴 대사 없이도 게임을 지배하는 안타까움의 정서를 신화적 비극으로 응축한다. 그리고 이 비극은 결말 직전 등장하는 완다의 처절한 제스처로 완성된다. 하지만 상당히 우울한 이야기에도 우에다는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을 연민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인간적 감정과 섣부른 오해가 낳은 신화적인 비극임에도, '완다와 거상'은 결말에서 이어질 삶을 얘기한다. 이런 자세와 연민이 '완다와 거상'을 좀 더 성숙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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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다와 거상'은 액션 어드벤처 장르에 큰 흔적을 남겼다. '저니'(좌)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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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데드 리뎀션'(좌)와 '프레이 포 더 갓즈'(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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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 된 이후 '완다와 거상'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구조와 리듬의 게임으로 격찬을 받았고 지지자를 끌어 모았다. '저니'와 '플라워', '라임'은 선(線)으로 구성된 리듬과 비움으로써 완성되는 공간 연출을 배웠고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여기다 지형물이자 레벨로써 보스 디자인을 역수입했다. 이외에도 직접적인 후계자를 자처하는 '프레이 포 더 갓즈'부터 '레드 데드 리뎀션'이나 '제노블레이드' 시리즈, 심지어 '몬스터 헌터 4' (의외 겠지만 몬스터 올라타기와 버티면서 약점 찌르기에서 '완다와 거상'의 그림자를 찾기 어렵지 않다.) 같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게임들까지 목록은 다양하다. 찬사는 게임계만 한정된 게 아니라 기예르모 델 토로 같은 게임 외부 인사들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으며, 할리우드 영화 '레인 오버 미'에서는 9/11 테러의 은유로 쓰였다.
'그림 판당고'를 플레이하면서 아 20세기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은 이걸로 끝났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반대로 'GTA 3'를 처음 접했을 때는 이런 식의 어드벤처 게임이 가능하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완다와 거상' 역시 'GTA 3'처럼 21세기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게임이다. 우에다 후미토는 '완다와 거상'을 통해 게임의 구조를 설계하고 플레이하는 방식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이런 성취는 아무나 이룰 수 있는게 아니다. 당신이 21세기 게임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게임이다.
단언하건데 '완다와 거상'은 21세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언급될 게임이다
다시 한 번 대지의 노래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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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3 리마스터도 괜찮았던 편이다. 이걸로 처음 접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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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일신을 제외하면 원작에 충실한 리메이크에 속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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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다와 거상'은 2011년 PS3로 '이코'와 함께 리마스터된 적이 있었다. 이때 리마스터된 버전은 PS2 원판을 약간 다듬어서 이식한 버전으로 편의성 개선과 버그 수정, 로딩, 서라운드 지원을 제외하면 크게 바뀐 게 없었다. 이 이식판도 평이 괜찮았지만, 이식을 담당한 블루포인트 게임즈에서는 좀 더 큰 야심이 있었다. PS3 시절 '블래스트 팩터'로 데뷔해 이식 전문 회사로 활동중인 블루포인트 게임즈는 성의 있는 이식과 기술력으로 소니 뿐만이 아니라 EA와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에게 신임을 받고 있는 회사다. 어찌 보면 틈새 시장을 노려 장수하고 있는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런 블루포인트 게임즈에게 PS4 '완다와 거상' 리메이크는 꿈의 프로젝트이자 창립 이래 최대의 사건이었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그들은 PS3과 달리 게임 내 어셋을 모두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결과물은 어떨까? 오래전 HD 리마스터판을 플레이한 기억을 더듬어 비교해봤지만 그래픽을 제외하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새로이 추가된 수집 요소라던가 PS4로 넘어오면서 듀얼 쇼크 4에 맞춰진 조작법을 기존 조작방식과 함께 제공한다든가, 악력 게이지와 무기 칸이 깔끔한 디자인으로 변경된 정도가 눈에 띈다. 블루 포인트 게임즈는 원작을 철저히 존중하는 수준에서 업데이트하고 있다. 원작의 디자인을 존중하면서 깔끔하게 업데이트하는 블루 포인트 게임즈의 디자인 전략은 그들이 왜 10년 이상을 장수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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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해 늘 새로워 4K 그래픽 최고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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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풍경 뽕에 차는 게임이니 사진 모드 도입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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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다와 거상' 리메이크의 가장 큰 이유는 그래픽일 것이다. 블루포인트 게임즈 역시 상술한 원초적인 풍경과 거상의 매력을 다시 재현해보고 싶어서 자청하고 나선 걸로 보인다. 그 점에서 블루포인트의 리메이크는 성공적이다. PS2판도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좋은 그래픽이었고 PS3 리마스터도 나쁘지 않았지만 4K 기반으로 리메이크된 그래픽은 '완다와 거상'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HD 시대를 살아가는 게이머들에게 알리기 충분하다. 풍경이나 거상도 그렇지만 특히 거상의 털 묘사는 확실히 리메이크만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만약 PS4 프로를 가지고 있다면 해상도 우선/프레임 레이트 중시 옵션으로 입맛에 맞게 그래픽 설정을 할 수 있다. 여기다 블루포인트 게임즈는 사진 모드라는 기능을 제공해 플레이어가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을 좀 더 쉽게 포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게임 특성상 조작키를 놓으면 떨어지는 일이 많다 보니, 사진 찍다가 실수로 죽는 웃지 못할 일이 많이 발생할 듯 하다.
리메이크판에 대한 결론을 내리자면 비슷한 말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완다와 거상'은 추억의 게임 따위의 안일한 타이틀로 소모될 게임이 아니며, 나아가 한 매체를 알기 위해서는 고전을 접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게임을 무시하고 버리는 풍토가 만연할수록 게임은 발전하지 못한다. 그 점에서 고전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는 블루포인트 게임즈의 노력과 그들을 향한 우에다 후미토의 신뢰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플레이타임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고 심지어 가격도 많이 싼 편이기에, PS4를 가지고 있다면 돈을 빌려서 라도 꼭 사서 해보기 바란다.
한편 오랫동안 도그버드를 깎던 우에다 후미토는 최근 신작 작업 중이라고 한다
편집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