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하프라이프: 알릭스, 드디어 깍두기에서 벗어난 VR 게임

| 제목 | 하프라이프: 알릭스 | 출시일 | 2020년 3월 23일 |
| 개발사 | 밸브 | 장르 | VR FPS |
| 기종 | 윈도우즈 VR | 등급 | PEGI-18 |
| 언어 | 자막 한국어화 | 작성자 | Sawual |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 대비하세요.
‘하프라이프’… 정말 할 말이 많은 게임이죠. 이 시리즈의 후속작이 정말로 나올 줄은 몰랐지만 그게 VR 일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상대적으로 출시가 가까운 때에 깜짝 발표로 내놓은 이 게임은 ‘하프라이프’ 팬덤을 단체로 혼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일단 후속작이 나오긴 했는데, 기다리던 그 숫자도 아니고, 주인공은 바뀐데다, 플랫폼도 달랐거든요.
그러니 이 게임이 발매 전부터 게이머와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은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동안 VR 게임들은 VR이라는 플랫폼의 태동기에 있었기에 이해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퍼포먼스, 상호작용성, 특히 무엇보다 게임의 플레이타임을 비롯한 콘텐츠량에서 그런 부족함이 두드러졌습니다. 하지만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드디어 그런 깍두기 신세를 벗어난 첫 VR 게임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흥행한 VR 타이틀인 '비트 세이버' 조차 VR 독점 AAA급 타이틀은 아니었다.
그동안 VR 게임이 AAA급 타이틀을 내지 못한 이유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게임은 만드는 재화의 품질이나 스케일에 매우 정직하게 비례해 투자금이 늘어나는 상품이고, 그 이유는 투자 개발비의 대부분이 인건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째 플랫폼 보급에도 제한이 있는 태동기의 플랫폼에 기존의 PC, 콘솔, 모바일 게임 같은 대규모 투자는 누구나 꺼릴 수 밖에 없기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연스레 VR 게임은 메인스트림보다는 소규모 개발자의 놀이터에 가까운 상황이었죠. 그런 개발자들의 목표도 기존의 메인스트림 게임을 VR로 옮겨온다기 보다는 VR 이기에 가능한 아이디어를 작은 스케일로 구현하는 실험적인 의미가 더 컸고요.
때문에 ‘하프라이프 알릭스’ 가 화제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메인스트림 개발사가 내놓은 AAA급을 표방한 첫번째 VR 타이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지금까지의 VR 게임과 궤를 달리하는 부분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바로 플레이타임입니다. 시작과 끝이 있는 스토리 게임으로서 12시간 이상의 플레이타임을 보장하는 VR 게임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게 ‘하프라이프 알릭스’ 가 6만원의 풀프라이스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볼륨이 그만큼 충분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볼륨’ 이 충분하다는 건, 단지 플레이타임이 길다는 것 외에 그 내부 또한 다채롭고 다층적으로 채워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오래 플레이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내용물이 단조롭거나 재미가 없다면 의미가 없겠죠.

비주얼로 압도하는게 특기인 회사 다운 장면.
그래서 ‘하프라이프 알릭스’ 의 실험적인 측면이 다른 게임에 비해 부족하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기존의 메인스트림 게임에서 쓰이던 문법을 가져와 VR 에서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실험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뽑아낸 게임이기 때문이죠.
VR로 구현한 '하프라이프' 전통의 문법
먼저 저는 HTC 바이브와 RTX2080 이 탑재된 컴퓨터로 플레이 했습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큰 틀로 보았을 때 ‘하프라이프 2’ 의 오마주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호러성이 강조된 몇몇 스테이지, 중력을 이용한 가젯과 총기들, 전술적인 총격전, 그리고 맵 퍼즐까지. 탐험과 발견, 그리고 머리 싸움을 중시한 슈터였던 ‘하프라이프’ 시리즈의 전통도 그대로이고 특히 ‘하프라이프 2’ 와는 비주얼 면에서나 감각 면에서나 굉장히 유사합니다. 물론 하드웨어의 한계를 많이 타는 VR 임에도 시대가 많이 흐른 만큼 전반적인 품질은 매우 좋아졌죠.


제법 손맛이 좋은 총기개조
다들 알다시피 VR은 단순히 시각적인 전달 방법만 다른 플랫폼이 아닙니다. VR 은 종합하자면 모든 게임적 체험을 보다 현실에 가깝게 옮기고자 하는 노력의 총집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각적인 전달 방법 뿐만 아니라 게임에 기본적으로 쓰이는 조작계도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었죠.
게임의 흐름은 지금까지의 ‘하프라이프’ 의 구조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초반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련의 탐험이 이어집니다. 하프라이프 특유의 오밀조밀한 구성, 뛰어난 인공지능으로 압박하는 적까지 모두 익숙합니다. 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맵 퍼즐도 익숙한 느낌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쾌감도 그대로 입니다.
요는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신선하고 혁신적인 것들로 채워진 새로운 게임이 아닌, 익숙한 맛의 게임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내용물은 비록 같더라도 그걸 옮겨담은 그릇과 먹기 위한 도구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그것이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하프라이프’ 의 세계관, 그리고 플레이 핵심이 VR 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일단 내 머리를 향해 달려드는 헤드크랩은 이 게임의 몰입감을 너무 잘 사용한 예시죠.

오큘러스 VR 을 가지고 있다면 꼭 해봐야할 게임이죠.
이전에 VR 슈팅 게임의 완성형으로 거론되던 게임은 에픽 게임즈가 데모 격으로 내놓았던 짦은 길이의 게임, ‘로보 리콜’이었습니다. 오큘러스를 위해 제공되었던 이 게임은 비록 매우 짧은 미니 게임이었지만 그 안의 내용물 만큼은 어지간한 AAA급 게임들, 특히 지금까지의 슈팅 VR 게임을 모두 압살하는 퀄리티였죠. 다들 이게 VR의 가능성이고 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그런 비전의 현실판입니다. 엄폐물에 기대어서 직접 몸을 움직여 쏘고 피하고, 수류탄을 던지고 반대편 엄폐물에 가서 숨고, 때론 낮은 높이의 책상에 숨느라 쪼그려 앉은 채 홀로그래픽 사이트를 직접 눈에 가져다 대고 조준사격을 하다보면 마치 ‘타임 크라이시스’ 를 온몸을 이용해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만큼 VR 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성을 훌륭히 활용한 은엄폐 슈터는 지금껏 없었습니다.
밸브의 개발진은 여러 면에서 VR 이라는 플랫폼의 특성을 매우 잘 이해하고, 물성을 활용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밸브가 이 게임을 단순히 한 순간의 그럴듯한 발상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고민과 고민을 거듭해 만들었다는게 여러 면에서 티가 나요. 단순히 총기에 달리는 개조 부착물만 하더라도, 다른 게임이라면 레이저 사이트나 홀로그래픽 사이트 하나를 달아주는게 무슨 업그레이드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은 정말로 내 눈 앞에 가져와서 아이언 사이트로 조준을 해야하다보니 이런 업그레이드 하나의 체감이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그 센스도 좋아서, 예를 들어 권총은 정밀한 사격이 가능한 도트 사이트라면, 산탄총에 달리는 레이저 사이트는 큰 원형의 피격 범위가 보이는 형태로 변합니다. 또 수동 장전의 어려움이 있다보니 공통되게 장전을 도와주는 파츠도 있죠. 이런식으로 VR 총격전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더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또 크게 불편하지 않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이는 특히 챕터7, 제프에서 극대화 되는데 이 챕터는 호러 분위기가 매우 강한, 그리고 전투가 아닌 회피와 탈출 위주의 챕터입니다. 이 챕터에서는 소리에 반응하는 적의 반응을 피하기 위해 입을 막고 달리려고 하면 진짜 느낌이 묘해집니다. 더불어 숨이 가빠지고 긴장감도 늘죠. VR의 대단한 전달력을 정말이지 잘 써먹어서, 아니 오히려 너무 잘써먹어서 원망스러운 호러 챕터입니다.
게임 내내 등장하는 중력 글러브는 게임 플레이의 재미나 기술 양면에서 굉장한 아이디어 입니다. 실용적으로 보았을 때 게임에 수색과 수집 요소를 넣는건 일상적인 일이지만, VR 게임에서는 다소 피곤해지는 일이 됩니다. 하지만 중력 글러브는 VR 에서의 수색과 수집을 매우 손쉽고 일견 재미있기 까지도 한 플레이로 만들었습니다. VR의 특색도 살리고, 단점도 보완한 좋은 아이디어였죠. 이런 전면적이고 자연스러운 물리 엔진을 구현한 것도 정말 대단합니다.


VR 과 뛰어난 물리 엔진의 결합은 정말 찰떡궁합, 최고의 조합입니다.
다만 극후반부를 제외하면 중력 글러브가 그저 수집용으로 밖에 쓰이지 않는다는 건 아쉽습니다. 좀더 복잡한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었다면 어떨까 하는데요. 무기 또한 3종으로 제한되는건 아쉽지만 이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건 좋은 변화이며, 사실 VR 이라는 특성상 무기 종류가 일방적으로 많아지기만 해서도 안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역설적으로 스토리가 게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사실 VR 을 이용해서 몇 시간씩 게임을 하는건 상당히 피곤합니다. 계속 서서 전신을 움직여야 하니 육체적으로도 피로가 쌓이고, 또 시청각적인 전달력이 매우 높고 자극이 강하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피곤해집니다. 거기다 저는 해당이 없지만 만약 VR 멀미가 심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힘들겁니다.
거기다 이 게임은 한 번에 오래 하기도 어렵고, 또 쉬었다가 다시 플레이하려고 해도 준비할 것도 많기 때문에 여러모로 꺼려지기 쉬운 게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스토리에 있어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이 끝에 있는게 무엇인지, 그럼 궁금증 때문에 다시 머리에 뒤집어 쓰게 됩니다.


쪼그려 앉아 은엄폐를 반복하며 치열하게 싸워야하는 총격전
비록 스토리의 중요한 반전 혹은 클라이막스가 너무 후반부에 나온다는 건 단점이고, 대부분의 플레이타임이 스토리 전달보다는 탐험, 전투, 퍼즐에 의해 결정된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 핵심 요소 3가지도 재미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다만 동기 부여의 역할만큼은 스토리가 가장 잘 해내고 있다는 말이죠.
‘하프라이프’ 시리즈는 특유의 SF이면서도 음모론적인 테이스트의 설정, 세계관 때문에 스토리 인기가 높았고 비록 고든 프리맨이라는 캐릭터의 비중이 높기는 했으나 그 캐릭터를 알릭스 벤스로 옮겨서도 높은 몰입감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작으로 증명한 셈입니다.


흥미로운 건 VR 플랫폼에서의 수집 요소가 결합된 탐험 게임이 꽤나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사실 수집과 탐험은 게임의 거의 기본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고 VR 에서 수집과 탐험을 시도한게 첫 사례는 아니지만, 이 둘은 VR 로 하기엔 다소 피곤한 요소였습니다. 시청각적인 자극만으로도 피곤하고, 이동과 동작을 통해서 물건을 뒤지고 맵을 파해치는 것도 일일히 수고로운 게임인데 그걸 공들여서 해야 한다니.
물론 ‘하프라이프 알릭스’ 라고 해서 그런 과정이 하나도 피곤하지 않은건 아닙니다. 사실 게임의 피로도의 5할은 이런 수색과 탐험에서 나오는게 맞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VR 에서는 아예 쉽게 시도도 하기 어려운 요소였다는게 중요하죠.
양날의 칼로 다가오는 VR의 장단점들
다만 VR 게임의 고질적인 난제인 이동방식에 대해서는 ‘하프라이프 알릭스’ 도 명쾌한 새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텔레포트와 조이스틱을 이용한 이동 방식 등 여러가지를 선택해서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오는 부자연스러움, 특히 각 손에 조작계의 부하가 걸리는 것 까지는 막지 못했죠.


3차원 퍼즐은 좋은 발상이고 재미도 있는 편
일반적으로 우리가 키보드+마우스 혹은 조이패드로 게임을 할 때, 왼손은 하반신을, 오른손은 상반신을 맡습니다. 물론 왼손에도 여러 동작이 부여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왼손은 이동을 전담하고 오른손은 시야와 핵심 상호작용(총을 쏜다던지)을 담당하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 몸에 비유하자면 발과 몇가지 우선도가 떨어지는 움직임은 왼손에, 양팔과 머리는 오른손에 배정되어 있었죠.
하지만 VR의 핵심 중 하나는 모션 트래킹이고, 그래서 왼손과 오른손은 현실의 왼손과 오른손을 그대로 부여받았습니다. 머리의 움직임 또한 헤드 트래킹이 대체했죠. 결국 남는 건 다리로 하는 이동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VR 에서도 이동은 양손에 든 컨트롤러 중 하나가 담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두 개의 신체 부위로 세 개의 신체 움직임을 구현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거죠.

택티컬함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때문에 이동과 어떤 행동을 동시에 하는 건 적응하면 가능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자연스럽고, 만족할만큼 빠르거나 정확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VR 이 이제 고민해야 하는 건 다리에 부착하는 컨트롤러 혹은 센서가 아닐까요. 제 아이디어는 펌프잇업이나 DDR 에 쓰이는 패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발을 이용해 방향을 눌러 이동하는 방식은 어떨까 하는데, 어쨌든 이런식으로 이동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듯 합니다.
앞서 이동에 대해 이야기 한 것처럼,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굉장히 뛰어나고, 또 VR 의 장점을 잘 살린 게임이지만 동시에 VR이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취약점 또한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스토리와 정보의 전달력입니다. 연극을 예로 들면, 어떤 장면을 연출할 때 필연적으로 공간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인간의 시각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한 눈 안에 들어오는 평면을 무대로 삼아서 그 무대 안에서만 어떤 장면이 벌어지고, 관객은 계속 그 무대를 바라봄으로서 연출된 장면을 받아들이는게 기본입니다.


분위기는 정말 끝내준다.
하지만 VR 은 360도 전방 위를 제한 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연출과 장면의 집중이 잘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혹은 어떤 한 지점을 무대 삼아서 열심히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더라도, 플레이어가 고개를 돌려버리면 그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컷씬을 도입해서 강제로 그 장면을 평면 영상으로 보게 만들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VR이 가지는 장점이 희석되고 별반 다를 바 없는, 오히려 스크린 매체의 연출법을 VR 이라는 아직 부족한 플랫폼에 옮긴 것 밖에 되지 않는거죠. 때문에 플레이어가 연출자가 의도한 연출, 핵심적인 정보 전달을 놓치게 되는 상황이 매우 자주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우리의 언어 때문에도 더 도드라집니다. 이번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전작들과 달리 음성 더빙이 되어있지 않고, 모든 대사는 VR 시점 중하단에 자막으로 표시됩니다. 문제는 이 자막이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고, 집중해서 보기도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 하느라고 자막을 한 번 놓치면 그 대사를 다시 말해주지도 않고, 게임에는 어떤 가이드라인 UI 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흐름이 완전 끊어지죠. 그리고 이 자막은 자연스러운 감각을 추구하는 VR의 장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서도, 이 게임은 의도적으로 UI를 극도로 배제했기 때문에 주변의 상황과 가진 장비들을 통해서 정보를 확인하고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VR 에서 무언가를 깊게 들여다보는 건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같은 밀도와 구성의 방 하나를 수색한다 쳐도 키보드+마우스+모니터로 확인하는데는 1분도 걸리지 않는 쉬운 일이더라도 VR로 한다면 몇 분 이상 걸리는데다 눈과 몸이 피곤한 상황이 오는거죠. 때문에 다소 인위적이더라도 정보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 판단이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VR 게임인데다 일종의 스핀오프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게임 플레이 자체의 질적 수준만을 따졌을 때에는 ‘하프라이프 2’ 나 ‘하프라이프 1’ 에 비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특히나 중간중간 총격전이 아닌 맵의 기믹, 또는 중력건, 개미귀신 포드 등 특별한 장비를 사용해서 신선한 전투를 만들어주었던 부분이 아예 없는거나 마찬가지여서, 거의 대부분의 전투가 총격전으로 흘러 갑니다.

호러 그 자체인 챕터7 은 플레이하기 너무나 힘들었다...
그리고 맵의 스크립트가 강제된 부분도 종종 있는데, 특히 폭발물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바나클과 폭발물이 함께 잔뜩 등장하는 지역은 내가 아무리 폭발물에서 멀리 떨어져서 터트리더라도 스크립트에 의해 강제적으로 사망하게 되고, 일견 꽤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를 맞딱뜨려도 개발자가 강제한 방법 하나로만 어렵게 클리어 해야하는 구간도 많아요.
물론 이런 스크립트 중심의 레벨 디자인은 전작의 핵심이자 중추이지만, 오픈월드와 자유로운 플레이를 강조하는 요즘의 트렌드와는 전혀 반대의 성향이고, 다소 낡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특히 이런 해결책을 찾는데 어떤 힌트도 주지 않는 게임이라 분명 내가 생각하기엔 이렇게 깨면 될거 같은데 왜 안되지? 싶은 부분이 오면 더블로 피곤합니다.


종합하자면 이런 단점을 만들어내는 큰 두가지 요인은 VR 플랫폼이 가지는 한계점과, ‘하프라이프’ 의 게임 플레이 방식이 시대가 지나며 다소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게임 플레이를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까지는 아니지만,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더 잘 와닿는 VR 게임이기 때문에 사소한 단점도 가끔 방해가 될 때가 있죠.
계급장 떼고 붙을 수 있는 첫번째 VR 게임
지금까지 단점을 많이 언급했는데,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굉장한 수작이며 매우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재미도 확실하고, 타 작품이 따라오기 힘든 독특함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하프라이프’ 의 정식 후속작으로서 필요한 ‘하프라이프’ 의 정신, 특색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분명 지금까지 나온 VR 게임 중 가장 진일보했고 가장 디테일과 볼륨이 살아있는 게임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VR이 가지는 한계점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한계는 아직 VR 이라는 기기가 과도기에 있어서 하드웨어적인 부족함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개발사에서 모든 부분을 VR에 맞게 최적화하지 못한 이유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VR이 주는 직감적 상호작용을 위해서 필요 이상을 희생했지만, VR 하드웨어의 한계로 그 직감적 상호작용은 기대치에 살짝 못미치고 희생한 건 일견 이렇게까지 다 털어낼 필요가 있었나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명확하게는 단점보다는 개선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많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입니다. 분명 이 게임은 과도기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가치가 높은 게임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쉬운 부분들에서도 밸브의 고민, 그리고 선택과 집중이 보이며, 그래서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멋지게 해내어 장점도 확실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VR이 주는 현장감, 몰입감 속에서 엄폐물을 끼고 벌이는 영리한 총격전, 그리고 오직 3차원 조작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다양한 퍼즐들 등. 게임의 구성요소 중 무언가 굉장히 혁신적인 것은 없지만, 그런 출중한 AAA급 타이틀을 VR로 손색없이 옮겨놓았다는 시도 자체가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VR 게임은 갈 길이 멉니다. 특히 하드웨어적인 부족함이 아직도 많이 느껴지는게 가장 큰 아쉬움입니다. VR 은 비록 몇 년 간 발전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무겁고, 거추장스러우며,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은 아닙니다. VR 의 장점인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체험을 방해하는 요소도 결국 하드웨어의 부족함이죠.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매우 뜻깊습니다. 항상 사람들이 VR 이라는 플랫폼을 평가할 때 하는 말은 “가능성은 높지만 현재는 아니다” 였죠. 누구나 그렇게 쉽게 내뱉는 말이었습니다. 설령 VR 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요. 이게 이제는 지겹게 붙은 딱지 같아서, 거기서 벗어나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그걸 해냈습니다. VR에 붙은 깍두기 취급을 떼내어 버리고 ‘VR 은 이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어.” 라는 일종의 미래 표준을 보여주었습니다. 만약에 밸브가 추후의 ‘하프라이프’ 정식 후속작을 VR로 내겠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더불어 명맥이 끊겼던 ‘하프라이프’ 라는 프랜차이즈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것도 매우 기분 좋은 부분입니다. 엔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분명 이 게임은 전작과도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후속작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3 을 만날 수 있게 되는걸까요?
앞으로 가장 바라는 변화는 VR 게임에 대한 대규모 투자입니다. 결국 이정도 볼륨, 이정도 퀄리티의 게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메인스트림 개발사, 퍼블리셔들의 투자가 선행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실험적 투자가 아닌, 전폭적인 믿음과 비전이 있는 VR 게임을 더 만나고 싶네요.
작성 / 편집: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