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3] 몬스터 헌터: 아이스본, 종횡무진의 티가렉스 사냥
사냥의 계절이 곧 돌아온다. ‘몬스터 헌터 월드’ 첫 대규모 확장팩 ‘아이스본(アイスボ ーン)’이 오는 9월 6일 한국어화 정식 발매를 앞두고 있다. 여느 게임이라면 새로운 갑옷이나 무기, 진귀한 보물 추가가 주된 관심사겠지만, 우리의 헌터들은 신규 몬스터가 또 얼마나 변태 같은 패턴을 보여줄지에 흥분하는 모습이다. 그건 헌터들이 단체로 마조히스트여서가 아니라, 좋은 사냥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리품을 얻고자 적을 제치는 것이 아닌, 맹렬히 저항하는 사냥감에게 내가 가진 전부를 쏟아내 맞부딪친다는 감각이 ‘몬스터 헌터’의 매력이다.
확장팩 출시까지는 아직도 세 달여가 남았지만, 국제게임쇼 E3 2019를 맞아 캡콤 부스에서 ‘아이스본’ 데모를 미리 체험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급 결성된 4인 파티에게 주어진 임무는 2성 ‘숲의 대식가 도스쟈그라스’, 3성 ‘맹우룡 버프바로 사냥’, 4성 ‘종횡무진의 티가렉스’까지 세 가지. 당연히 여기까지 와서 도스쟈그라스를 잡으려는 사람은 없었기에 신규 몬스터 버프바로와 오랜만에 돌아온 티가렉스에 초점이 맞춰졌다. 데모 캐릭터는 북구 전사를 연상케 하는 버프바로 세트를 걸쳤는데, 세팅이 썩 나쁘지 않아 삼류 헌터인 기자도 충분히 해볼만할 것 같았다(그리고 끊임없이 수레를 타며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다).
북구 전사의 위엄이 느껴지는 버프바로 장비 세트, 남자와 여자.
사냥의 무대인 바다 건너 극한지는 옛 설산과 같은 한랭 지역이었다. 본편의 그 어떤 사냥터보다 거대한 넓이를 자랑하는 만큼 눈 덮인 숲부터 설원, 온천, 빙벽, 얼음 동굴까지 다채로운 풍광이 특징. 추위가 심해 스태미나 회복이 더뎌지는 상태이상에 걸리므로 미리 방한 세팅을 갖추거나, 숲길 근처의 고추를 따서 핫드링크를 만들어 먹어야 했다. 그냥 온천에 잠시 몸을 담그는 것으로도 상태가 호전되긴 하는데 정신없는 사냥 와중에 그럴 여유가 날지는 미지수지만. 경사가 가파른 몇몇 장소에서는 눈사태를 일으켜 몬스터들을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바다 건너 극한지는 여타 지역처럼 고저차가 있어 얼음 동굴이 하층, 숲과 설원이 중층, 높은 언덕이 상층부라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사냥감인 맹우룡 버프바로는 이 가운데 주로 숲과 설원을 오가며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온천에 들어가거나 한다. 일단 ‘아이스본’ 초반 몬스터이긴 하나 확장팩 자체가 본편의 엔딩 이후이기 때문인지 그 위용만큼은 상당한 편. 조금 큰 버팔로쯤 생각하고 사냥에 나섰다간 화면을 가득 채우는 덩치에 꽤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거기다 나름 근성이 있어서 티가렉스와 마주치더라도 세력 다툼에서 쉬이 물러서지 않더라.
초반 몬스터치고는 대단한 박력. 패턴이 단순해서 사냥하기 어렵진 않았지만.
버프바로의 움직임은 굉장히 직선적이며 잔기술은 거의 쓰지 않았다. 가장 눈에 띄는 패턴은 뿔을 지면에 박고 돌진하는 것인데 숲이라면 통나무, 설원이라면 눈덩이가 딸려왔다. 통나무는 옆으로 매우 긴 탓에 정면에서 달려들면 피하기가 매우 어렵고, 눈덩이는 판정 범위는 크지 않지만 그걸 던지는 추가 패턴이 있다. 다만 돌진 직후에 딜 타이밍이 넉넉한 데다, 측후면은 꼬리 치기나 뒷발질이 거의 없고 육질도 연하여 여유롭게 공략 가능하다. 이처럼 쓸데없이 덩치가 크면서도 난이도가 낮은 점은 후술한 클러치 클로를 충분히 써보라는 의도로 보인다.
반면 얼음 동굴에 버티고 있는 티가렉스는 여전히 쉽지 않은 사냥감이었다. 강렬한 포효와 이어진 슈퍼맨 펀치 한 방에 피 1/3이 날아가자 패드를 쥔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돌진과 3단 드리프트도 건재한데, 그나마 처음 조우하는 얼음 동굴이 널찍한 편이라 패턴에 익숙해지면 피할만했다. 앞뒤 안 재고 달려들다 벽에 이빨이 박혀 바둥거리는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한랭 지역 특성상 빠져나오며 얼음 파견을 튀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가끔 얼음동굴 틈새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가 캐릭터를 띄우고, 우르그라는 작은 몬스터가 캐릭터를 감싸 속박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으니 티가렉스뿐 아니라 주위를 잘 살피도록 하자.
3년 만이라 엄청 반가웠는지 보자마자 뛰쳐나온다. 티가렉스 왔쩌염 뿌우~
헌터들과 한바탕 치받은 티가렉스는 체력이 떨어질수록 상층부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였다. 얼음 동굴은 회피 기동을 할 공간이 충분했지만 언덕을 오르는 경로는 폭이 좁아 3단 드리프트에 치이기 딱 좋았다. 심지어 이 와중에 높은 확률로 버프바로와 동선이 겹치는데 집체 만한 몬스터 둘이 휘적거리는 통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데모 캐릭터 수중에는 그 흔한 거름탄도 없었던 터라 그냥 어느 한 쪽이 제풀에 지쳐 떠나길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외에도 전체적으로 긴장감 넘치고 흥분되는 사냥이었지만, 본작만의 뚜렷한 추가 패턴이 보이지 않아 약간은 아쉽기도 했다. 그만큼 티가렉스가 이미 완성도 높게 설계된 몬스터라는 뜻이리라.
다음으로 신규 장비인 클러치 클로에 대해 살펴보자. 클러치 클로는 (PS4 듀얼 쇼크 기준)L2와 O를 동시로 누르면 전방으로 발사된다. 당초 기자는 ‘토귀전’ 귀신의 손처럼 원하는 부위에 확정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클로가 몬스터 어디에라도 걸려야 하는 노타겟팅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사거리가 그리 길지 않아 날뛰는 몬스터에게 다가가야 하는 난점이 있었다. 또한 올라타는 순간부터 스태미나가 쭉쭉 떨어지므로 순간적인 판단과 기민한 조작이 요구됐다. 내심 날로 먹는 단차를 기대했던 건데 역시 헌터의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날로 먹는 단차가 아니다. 클러치 클로로 득을 보려면 각을 잘 재야 한다.
여기서 몬스터에게 매달린 헌터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여느 단차처럼 가능한 대미지를 주고 바로 떨어지거나 올라탄 상태로 움직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가령 유도할 방향의 역으로 충격을 가하거나 아예 머리에 올라탄 뒤 함정이나 벽으로 밀어버리는 식이다. 물론 그러다 스태미나가 바닥나는 순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꼴이니 너무 심취하진 말자. 그리고 분노 상태의 티가렉스처럼 클러치 클로를 쓰면 되려 위험해지는 기믹도 존재한다. 여러모로 초급자용 장비는 아니지만 닳고 닳은 일류 헌터 여러분이라면 금세 타이밍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캡콤의 행보를 보면 E3 2019가 마무리되고 얼마 안 있어 해당 빌드, 혹은 약간의 개선을 거친 데모가 배포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자도 어서 빨리 보다 다양한 무기로 버프바로와 티가렉스에게 다시금 도전하고 싶다. 나아가 올 가을에는 잠시 수렵 무기를 손에서 놓았던 헌터들이 모두 복귀하여 다 함께 바다 건너 극한지를 탐험하길 고대해본다.
사실 기자는 PC버전 유저라 3개월 보다 더 기다려야 하는데….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