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줄이고 RPG는 오래 갈거야, 아리아 크로니클 체험기
공개 게임이었던 서프라이시아 이후, 아티스트에서 다시 게임 개발로 위치를 옮긴 박민우 대표는 아리아 크로니클의 개발을 마치고 스팀에 정식 출시했다. 어떤 게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는 분명했으나, 게임 플레이 내부에는 조금 다른 방향성으로 설계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는 것에 성공했다.
아리아 크로니클에서 게임 플레이의 근간은 던전 탐험에 두고 있다. 더불어, 이제는 익숙해진 고용 및 리스크 관리 측면의 요소를 곁들인다. 다만 리스크를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는 플레이어가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플레이어가 선택 및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리스크를 크게 설정한 것보다는 던전탐험 그 자체를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던전을 탐험하는 과정 자체는 높은 난이도를 극복하는 형태보다, 모험마다 달라지는 방해물들을 어떻게 또는 효율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탐험 과정에서 만나는 장애물들을 제거할 수 있는 탐험 기술과 일종의 패시브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다. 플레이어가 이러한 탐험 기술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던전 탐험의 방향성 그리고 효율성 측면에서 달라지는 게임 플레이를 맞이하게 된다.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무작위 요소를 최대한 통제 가능할 수 있는 요소로 구성하고자 한 의도로 볼 수 있다.
육성 과정에 제공되는 무작위한 특질은 각 캐릭터의 전문성, 체형, 성격 등 5가지 요소가 있으며 이러한 시스템이 그렇듯이 일장일단이 있는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기본적으로는 기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게임이 설계되어 있기에, 특질은 캐릭터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에 조금 더 근접해있다. 삭제하는데는 오직 골드만 있으면 바로바로 삭제가 이루어지며, 특질을 다시 얻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기에 부담은 거의 없다.
리스크를 줄이고 캐릭터가 가질 수 있는 특징을 강화한 시스템으로 인해, 아리아 크로니클은 오직 던전 탐험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다. 강렬한 난이도와 극복의 쾌감을 주는 형태보다, 던전을 탐험하며 캐릭터를 육성하는 과정에 무게가 더 실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아리아 크로니클은 즐길만 한 게임 플레이를 보여준다.
턴제로 진행되는 전투는 무엇보다 상태이상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어려움을 가장 많이 만드는 것도. 게임을 자연스레 쉽게 풀어나가는 것도 상태이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직업 및 스킬 조합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전략적인 선택에 따라서 게임 플레이의 원활함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게임을 시작한 지 약 한시간 정도면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보스, 와이번에서 상태이상의 위험성 / 중요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직업간 조합과 육성 정도에 따라서 보스 클리어 여부가 갈릴 정도다. 특정 공격을 맞이면 3턴 이후 캐릭터가 행동 불능상태에 빠지는데, 해당 패턴을 사전에 막지 못하거나 디버프를 해제하지 못하면 거의 바로 파티가 전멸당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게임에 대해 받는 시선이 달라지게 되는데, 첫 조합을 적절히 구성한 사람이라면 할만하다는 느낌을. 그 반대라면 불합리한 난이도라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형태 게임에서 통용되는 ‘맵다’에 대척되는, ‘순하다’는 표현보다는 통제의 여지를 매우 많이 남겼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RPG와 리스크 관리가 유사 장르의 명확한 플레이 기반이었던 것에 반해서, 아리아 크로니클은 리스크 관리 측면의 어려움을 크게 줄이고 던전의 절차적 생성과 RPG의 육성 부분을 남겼다.
그렇기에 후반부에 RPG보다는 경영의 형태에 가까워졌던 게임들과 비교해서 영입한 캐릭터의 육성과 파밍의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캐릭터 육성이 일종의 투자이고 게임 전반에 자리한 확률을 통제하는 것이 이쪽 장르의 문법이었다면, 너그러운 판정과 더불어 육성의 여지를 늘리면서 턴제 RPG의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직업간 조합 자체가 조금 더 중요해진 느낌에 가까운데 비해서, 던전 내부에서 만나는 상황들은 크게 위협적인 것이 없다. 갑작스런 상황보다는 대비할 수 있는 것들이 자리하며, 탐험 과정에서 요구되는 능력이나 도구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모험을 지속하는 데 있어 한계로 설정된 스테미나도 중반부를 넘어가야만 빠듯하거나 살짝 모자란 정도에 그친다. 멘탈 게이지 개념이 존재하여 캐릭터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던전을 클리어하면 보통 상태로 돌아오고, 금세 회복되므로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게임이 충분히 진행된 이후부터는 던전 구성에서의 난이도가 상승하는 편. 던전 탐험에서 환경에 의한 부정적인 효과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스테미나의 부족도 발생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반복 퀘스트, 투기장 등 부가적인 파밍 요소가 맞물리면서 할 거리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여기서도 전반적으로 리스크는 적게 설정되어 있다. 캐릭터의 멘탈이 하락하지 않는 투기장에서 레벨업 겸 파밍을 할 수도 있고, 캐릭터를 강화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거대한 리스크를 앞에 두고 극복하면서 오는 카타르시스보다는 전투 전투와 파티 세팅 자체의 재미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버퍼 직업 중 하나는 특정 상태이상에 걸린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완벽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태 이상을 쉽게 걸 수 있는 다른 직업과의 연계를 생각해야 하며, 여기에 디버프를 전염시키는 직업과도 조합해서 더 큰 시너지를 노려볼 수도 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의 방향성이 다를 것이기에 다양한 조합을 시도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육성 측면에서는 ‘영웅계승’ 시스템을 통해서 부담을 덜었다. 해당 시스템은 한 번이라도 전투에 참여했던 캐릭터의 경험치를 다른 캐릭터에게 이전하는 기능이다. 편하게 육성하던 캐릭터의 경험치를 이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고레벨 캐릭터를 영입하고 다른 캐릭터에게 계승시키는 방식으로 전투 외적으로 레벨링이 이루어지는 편법적인 플레이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에서 아리아 크로니클의 방향성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던전 탐험형 RPG로서의 즐거움은 충분하며, 게임 내 시스템 또한 이를 위해서 잘 설계되어 있는 편이다. 숨겨진 요소와 도전할 수 있는 것들도 충실히 갖췄다. 특히, 시스템 설계 측면에서는 불합리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임 시스템이나 분위기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것으로 보이지만, 개발자의 이와 같은 선택은 게임 전반에서 흥미를 이어나가는 기반이 된다. 메인 스토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즐길 수 있는 던전 탐색을 통한 파밍과 육성 면에서 보자면, 게임의 완성도는 충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육성까지 도달하는 과정의 진입을 쉽게 만듦으로써 가차없는 확률과 같은 극단적 변수를 배제하고, 오롯이 플레이어가 준비한 결과물로 난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작은 규모의 게임이 가진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리아 크로니클은 게임 플레이의 근본적인 부분에서 RPG로서의 정체성은 매우 확고하다. 특히, 전투와 육성 측면에서 고민하고 조합할 것들을 많이 배치해뒀기에 꽤나 오랜시간 붙잡아도 될 만큼의 게임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었다. 플레이어가 겪을 시행착오를 줄이는 대신, 가볍게 도전하고 파고들 수 있는 거리를 늘려 게임 플레이의 다양성을 확보했다.
완전히 새롭지는 않더라도 게임 플레이의 방향성이 확고한 점. 그리고 어떠한 부분을 살리고 강조할 것인지 고민한 지점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싶다. 현재 스팀으로 정식 출시한 것에 이어, 올해 겨울에는 닌텐도 스위치로의 출시도 준비 중인 상태다. 보통 난이도 기준으로 엔딩까지 도달하는 20여 시간. 턴제 전투 RPG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몰입해서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