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서막을 알린 작품 중 하나인 위저드리의 두 아버지 중 한 명인 로버트 우드헤드를 RPG 코덱스에서 인터뷰했습니다. 코덱스로 말하자면...RPG 관련 커뮤니티 중에서는 특히 올드 게이머가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바이오웨어와 베데스다 아닌 서양 CRPG에 관심 있다면 눈팅 해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인터뷰 번역에서 기술적인 부분이나 너무 구체적인 부분은 일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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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비디오게임 시리즈 중 하나의 공동 창작자라는 건 어떤 기분인가? 팬 메일 많이 받나?
딱히 자랑스럽거나 하진 않다. 위저드리는 그저 컴퓨터 판타지 롤플레잉 게임의 긴 사슬 중 하나였을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한 것에서 영걈을 얻었고, 우리만의 혁신을 추가했고, 또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따금 사람들한테 게임 이야기하는 메일 받는다.
왜 서테크(위저드리의 개발사)를 떠났나? 불협화음이 있었던건가?
파트너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었다.
업계를 떠나겠단 결정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다시 게임 만드는 일을 할 생각은 없는가?
사실 90년대 초에 최초의 MMO 중 하나(코드네임 "선데이")를 만들러 일본에 갔지만, 일본의 버블 붕괴로 프로젝트의 투자처를 잃어버렸다. 동시에 AnimEigo(우드헤드가 창립한 일본 애니/영화 배급사)가 주말에 재미로 하는 프로젝트에서 실제 회사를 설립하는 단계까지 가서 그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구애하던 여성과도 결혼하게 되었다.
다른 게임을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디자인을 해야 할텐데, 나는 여전히 고독한 늑대처럼 프로그래밍을 한다. 큰 프로그래밍 팀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
아직도 당시 서테크의 동료들과 연락하는가?
안 한다. 다만 앤드류 그린버그(위저드리와 또다른 아버지)와는 가까운 친구다.
여전히 비디오게임, 특히 CRPG 즐기는가? 요즘 어떤 CRPG를 가장 좋아하나?
꽤 오랫동안 이브 온라인을 즐겨왔다. 현재 Council of Stellar Management 멤버다.
앤드류 그린버그와 힙을 합치기 전에 팔라딘이라는 RPG를 혼자서 개발하고 있었다. 팔라딘은 어떤 게임이었나?
팔라딘은 던전 크롤러였던 것 같다. 앤디가 원래 만들고 있던 위저드리와 겹치는 점이 아주 많았는데, 각자가 서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때문에 위저드리는 둘다 포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저드리의 룰셋은 D&D를 충실하게 구현하기보다는 그 변종을 만들어 썼다. 하드웨어의 제약이었나, 아니면 저작권 문제였나? 특히, 왜 D&D 스타일의 주문 시스템을 쓰지 않았나?
그게 가장 잘 작동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문 이름 같은 것들은 프로그래밍 상의 결정이었다. 주문 이름 맞추기는 공간 효율을 위해 15비트 숫자에 해싱하는 식이었다.
위저드리의 캐릭터 생성은 주사위 굴림과 스탯 분배가 혼합되어 있었다. 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나? 캐릭터 능력치를 주사위 굴림하는 게 경험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나?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시절 D&D 그룹에서 그렇게 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위저드리 I에서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끝내려면 던전의 반도 탐색하지 못한다. 어째서 그렇게 많은 레벨이 사용되지 않도록 만든건가?
사람이 얼마나 레벨을 빨리 올리는지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파워레벨링(한국말로 치면 열렙?)이란 말도 없었던 시절이니까. 지름길도 있었는데 우리는 사람들이 최종 레벨 외에 모든 레벨을 탐색한 뒤에 쓰리라 기대했었다.
초기 위저드리의 몬스터 디자인과 위저드리 II와 III의 수수께끼 작성은 누가 했나?
앤드류와 그의 대학 친구들이었다.
당시 라이벌이던 울티마 시리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했나? 리차드 개리엇이 울티마로 무얼 하는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나?
솔직히 간단한 아케이드 게임 아니면 다른 사람 게임을 하기에는 내 게임을 만드느라 너무 바빴다. 울티마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쓸 이유는 없었다.
D.W. 브래들리가 만든 위저드리 게임들은 해봤나? 해봤다면 어떻게 생각하나? 디자인 측면에서 위저드리가 나아간 방향에 만족하는가?
코딩 부분에서 도와줬고, 5편에서 변화를 가할 때도 그를 지지해줬다. 하지만 그 이후의 게임들은 플레이하지 않았다. 서테크를 떠났을 때 내 삶에서 게임 개발자로서의 부분은 끝난 것이었다. 다른 일을 시작할 때였다.
초기 위저드리 게임이 그렇게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유사한 게임이 계속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기쁜 일이지만, 뭔가 설명하자면 심리 사회 어쩌고 잡설을 늘어놓을 것 같다 :)
당신이 대학에서 위저드리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말인데, CRPG를 만들고 싶어하는 대학생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가?
아마 지금이라면 스마트폰이나 블렛으로 게임을 만들고 싶을 거다. 분명 진입장벽도 낮고 개발비도 낮으니까. 내가 누구에게든 하고 조언이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은 직접 하라는 것이다. 돈과 성공은 그저 표면이다. 진짜 달콤함은 만듦 그 자체에 있다.
스티브 마틴(미국의 코미디언)이 코미디가 가장 좋은 게 뭐냐는 데 한 말이 답이 될 것 같다. "돈 받고 이 짓을 하는 것."
세계 3대 RPG가 울티마, 마이트 앤 매직, 위저드리인 게 레알?
초창기 거물 RPG들이고 지금도 이래저래 회자되는 전설인 건 레알
울티마 빼고 아직도 살아있는 시리즈란 것이 로레알. 그러니 울티마 내달라고 이에이 개객기들아 오리진 이름만 처먹어서 클라이언트로 내면 다냐
초기 시리즈들은 난이도가 지랄같은 걸로도 유명했죠. 두시간동안 주사위 굴려서 파티 만들어 던전 들어갔더니 첫번째 적으로 마법사 두놈이 나와서 한놈이 슬립걸고 한놈이 파이어볼 날려서 파티를 전멸시켰다는 이야기는 잊어버리지도 않네요.
헐... CSM 멤버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