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된 사회는 사람들을 억압함
빅브라더로 대표되는, '어떠한 개념에 충족하기 위한 검열' 이 대표적임
이런 사회의 문제는, '다양한 가능성으로부터의 이득' 을 간과하는 데 있는데
즉 사회의 선호가 개인의 선호보다 우선시되며,
'그 사회를 통제하는 소수 개인들' 의 선호가 사회 전체의 개인의 선호보다 우선시되는 방식으로
왜곡될 위험성이 높다는 데 있음
즉 최대한으로 굴러가더라도 효율성에 상한이 존재하며,
상한에 도달하기는 커녕 철인이 지도자가 아닌 이상에야 독재로 변질될 가능성도 너무나도 높은 상태란 것
'사회의 선호' 라는 기준이 따로 있어서, 사회가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안정성은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안정성 그 자체도 개인을 억압하는 수단이 될 수 있어서 사회가 고이는 문제점 또한 있음
그래서 다양성, 정확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살필 수 있는 관점' 이 필요한거임
누구나 사람으로써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거기에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가치가 발견될 수 있음
즉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수단으로써, 다양성은 충분히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거임
문제는 사람은 선호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음.
특히 자기 의견에 대한 선호에 매몰되는 경향이 큰데
이 때 '모든 개인의 의견에 대한 다양성' 이라는, '나의 의견을 존중하는 수단' 을 마주하게 될 경우
다양성을 통해서 다양한 관점을 생각하는 개인이 탄생하는 게 아니라
다양성을 무기로 자신의 관점을 정당화하는 개인이 탄생하게 됨
그리고 그러한 정당화는 배척을 낳고, 또한 의견의 획일화를 낳음.
즉, 이 그림에서 빨간 사람이 다양성을 통해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사람들이 다양성을 이유로 빨간 사람을 공격하는 아이러니가 만들어지는거임.
하얀 사람들은, '내 의견 또한 다양성의 일부로써 존중받아야 한다' 고 주장할테니까.
사회의 검열을 무기로 휘두르는 단일 관점을 피하려 다양성을 주장했는데
다양성 그 자체가 정당화의 수단이 되면서 집단검열, 배척을 무기로 휘두르는 아이러니가 도출되는거임
그리고 이러한 아이러니의 결과로, 다양성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가능성의 탐색' 이라는 목적성을 상실함.
왜냐하면, 이 단계까지 이르면
다양성이 '나와 나의 집단의 선호를 정당화하는 논리'로써 작용하지 않고 '내가 선호하는 것' 밖에 있는 목적성으로 작용할 경우
자신의 선호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가능성이 높거든.
즉 '너는 내 주장을 존중해야 한다' 라는, 목적성을 상실한 폭력적 강요만이 그 자리에 남는거지.
그리고 이러한 아이러니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선호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성을 사용할 자격을 부여하고
그 결과로 자신의 선호를 사회와 타인에게 폭력적으로 강요한다는 점에서
pc와 대안우파, 둘 다에게 적용되는 일이라고 감히 생각함.
이런 거 말임.
아마 옛 사회가, 사회의 안정을 위해
그것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실제로 왜곡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동안 '개인의 선호를 억누르는' 방식의 사회 구조를 택했던 것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스스로 무너졌기 때문에, 혹은 무너질 뻔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권위적 사회로 수렴한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도구가 목적으로 변질되는 무서운 세상
왜냐면 도구를 목적으로 인식시키는 거짓말을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그 도구가 가지는 목적성이 바뀌었단 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