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기준 1엔이 50센트 정도. 그러니까 저 만큼이면 75센트인데. 당시 미국에서 제일 급여 쌘거로 유명하던 포드사가 월에 100달러 좀 못되게 벌던거 감안하고 또 당시 조선인 노동자가 보통 일당 1원. 일본인 노동자도 1원 60~70전 정도 받던거 고려하면 인력거꾼치고 쌔게 번거 맞을듯.
앞줄에는 갖가지 향이 나는 박하사탕 종류가 있는가하면, 뒤쪽으로는 깨물어 먹으면 부서지면서 입안을 상큼하게 하는 드롭프스 종류가 있었다. 다음 칸으로 옮겨가면 작은 초콜릿 캔디 바가 있었다. 그 상자 뒤에는 입 안에 넣으면 볼이 툭 불거져 나오는 커다란 눈깔사탕이 있었다. 나는 이 눈깔사탕을 제일 좋아했다. 빨지 않고 그냥 입 안에 넣고 있으면 오후 내내 나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알록달록한 눈깔사탕은 마치 양파를 까도 다시 다른 켜가 나오듯이 이 사탕도 빨아먹어도 이어서 층층으로 다른 색을 지니고 나타나는 것이 신기했다.
한참 후에 어떤 색이 나타나는지를 보는 즐거움이 컸다. 사탕을 입 안에 넣고 녹이다보면 맨 나중에 사탕 한 가운데는 호두나 땅콩이나 코코넛 같은 나무 열매가 나타나곤 했다. 흑설탕과 땅콩 조각을 섞어서 만든 땅콩과자도 있었는데 일 센트에 작은 나무 숟가락으로 두 숟가락이었다. 목에 걸어도 될 만큼 긴 줄사탕도 있었다. 하나씩 떼어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내가 진열대의 반 쯤 지나 왔을 때, 이미 내 종이봉투는 내가 골라서 집어넣은 사탕으로 가득 찼다. 위그든 할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진열대 너머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늘어놓고 보니까 진짜 엄청 먹었네 ㅋㅋㅋㅋ
그냥 푸드 섹서임
잘 쓴 글이다. 글자만으로 먹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하네
인력거 하는데 많이 먹어야지
많이도 먹었네
소설 보다보면 진짜 맛있게 먹는다 싶어 나까지 배고파질때 있지 ㅋㅋㅋㅋ
저렇게 먹는거에 묘사가 뛰어나니까 설렁탕 타령할 만하지
늘어놓고 보니까 진짜 엄청 먹었네 ㅋㅋㅋㅋ
많이도 먹었네
그냥 푸드 섹서임
잘 쓴 글이다. 글자만으로 먹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하네
소설 보다보면 진짜 맛있게 먹는다 싶어 나까지 배고파질때 있지 ㅋㅋㅋㅋ
인력거 하는데 많이 먹어야지
저렇게 먹는거에 묘사가 뛰어나니까 설렁탕 타령할 만하지
기왕 먹는 거 고기도 좀 먹지
이거랑 뭐였지 노인에게 김치랑 막걸리 얻어먹는 글이 아직도 기억에남네
어이 김씨고생했어 많이 묵어
그런데 지금 읽어봐도 참 군침 돌게 묘사해놨어 ㅎㅎ
이거 전 고객한테 1원 50전인가 불렀는데 그걸로 사먹었는갑네 환산으로 얼만진 모르지만 비싼 가격이라 했으니
대충 일제강점기 조선인 기준으론 3일치 일한 임금이고 일본인 일당보다도 많은 돈임
1920년대 기준 1엔이 50센트 정도. 그러니까 저 만큼이면 75센트인데. 당시 미국에서 제일 급여 쌘거로 유명하던 포드사가 월에 100달러 좀 못되게 벌던거 감안하고 또 당시 조선인 노동자가 보통 일당 1원. 일본인 노동자도 1원 60~70전 정도 받던거 고려하면 인력거꾼치고 쌔게 번거 맞을듯.
저게 다 있는데 추어탕이랑 빈대떡 한장(치삼이랑 둘이 감)만 사먹고 설렁탕 사서 집감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
메밀꽃 필 무렵 도입부 처럼 생생함
앞줄에는 갖가지 향이 나는 박하사탕 종류가 있는가하면, 뒤쪽으로는 깨물어 먹으면 부서지면서 입안을 상큼하게 하는 드롭프스 종류가 있었다. 다음 칸으로 옮겨가면 작은 초콜릿 캔디 바가 있었다. 그 상자 뒤에는 입 안에 넣으면 볼이 툭 불거져 나오는 커다란 눈깔사탕이 있었다. 나는 이 눈깔사탕을 제일 좋아했다. 빨지 않고 그냥 입 안에 넣고 있으면 오후 내내 나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알록달록한 눈깔사탕은 마치 양파를 까도 다시 다른 켜가 나오듯이 이 사탕도 빨아먹어도 이어서 층층으로 다른 색을 지니고 나타나는 것이 신기했다. 한참 후에 어떤 색이 나타나는지를 보는 즐거움이 컸다. 사탕을 입 안에 넣고 녹이다보면 맨 나중에 사탕 한 가운데는 호두나 땅콩이나 코코넛 같은 나무 열매가 나타나곤 했다. 흑설탕과 땅콩 조각을 섞어서 만든 땅콩과자도 있었는데 일 센트에 작은 나무 숟가락으로 두 숟가락이었다. 목에 걸어도 될 만큼 긴 줄사탕도 있었다. 하나씩 떼어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내가 진열대의 반 쯤 지나 왔을 때, 이미 내 종이봉투는 내가 골라서 집어넣은 사탕으로 가득 찼다. 위그든 할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진열대 너머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지금 먹는 제육볶음 자체가 70년대 이후에나 나온 요리라서 저기서 말하는 제육은 고추장 제육볶음이 아니라 다른 돼지고기 요리임
솥에서 계속 국을 끓이거나 너비아니 굽던 화로가 있는 걸로 봐서 삶거나 구운 돼지고기를 썰어서 내주는게 저당시의 제육 아니었을까 함 지금도 제사음식으로 돼지고기 삶아서 내주기도 하고
괜히 명작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고추장 양념의 제육볶음은 80년대에 서울에서 처음 만들어져서 김첨지는 흰쌀밥에 제육을 얹어서 맛도리나게 비벼먹을 순 없었음
김훈 소설 칼의 노래에서 나오는 국밥 먹는 장면 묘사도 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