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미국 미시간주 칼루멧의 코퍼 카운티에는 이름 그대로 구리(copper) 광산이 있었는데, 그만큼 광산에서 일하는 인부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곳에서 광산을 관리하던 회사 Calumet and Hecula 광산회사는, 광부들에게 집과 도서관, 그들이 다닐 교회, 그들의 자녀들이 다닐 학교를 지어줬다.
덕분에 회사에 충성을 다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광산 주변의 지역경제는 크게 활성화 됐다.
하지만 이러한 복지는 어디까지나 그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복지였기에
광부들은 자기 가족들이 떠나 정착할 곳이 없었기에 억지로 일을 해야만 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광산회사 측에선 광부들에게 위험한 작업, 가령 3명이서 하는 드릴 작업을 1명에게 시킨다거나 하는 짓을 벌였다.
거기다 광산회사가 광부들의 삶과, 그 가족들의 삶을 가진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 됐고
광산 회사가 운영하는 마을에서 술에 너무 취하거나, 광부들 끼리 싸움이 붙거나, 부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짤리기도 했다.
이는 퇴근을 하고 난 뒤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 때문에 마을은 회사에 계속 머무르려는 자들과, 회사에 맞서 파업을 하려는 자들로 나뉘게 됐다.
나중엔 주 방위군이 이 일에 개입하기도 해서, 일 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보호 하에 일을 하게 됐다.
파업은 5개월간 지속됐고, 파업을 하는 이들의 돈이 거의 다 떨어져서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못해주는 지경까지 이르르고, 이들의 사기도 점점 떨어지자
광보 노조에선 이탈리안홀 이라는 큰 홀을 대여, 광부들이 이곳에서 쉬고, 음식을 먹고, 오락거리도 제공해줬다.
파업에 참여한 광부들은 가족들과 이탈리안 홀에서 같이 지냈다.
그러던 1913년 12월 24일
광부와 가족들이 이탈리안 홀에 모여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
"불이야!"
사람들은 순간 당황해서 건물을 빠져나가려 했다.
몇몇 사람들은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앙 계단으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들었고, 좁은 계단은 그걸 감당할수가 없었다.
결국 계단에 사람이 너무 몰려들어, 사람들 끼리 낑겨버렸고,
사람들의 무게를 못이겨 73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사망자 중 59명은 어린이였다
당시 불이 진짜 났는지 안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료에 따라서, 진짜 불은 없었다는 추측도 있고, 불이 나긴 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났다는 추측고 있다.
일각에선 파업을 방해하려고 누군가가 일부러 '불이야!' 라고 외쳤다는 설도 나왔다.
불이 났는지 안났는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여파로 인해 73명이 사망한 사건의 영향은 너무나도 컸다.
파업은 사고 후 얼마 안가 다음 해 4월에 끝났고, 파업에 참여했던 광부들도 광산에 복귀했다.
복귀하기 전에 노조에 가입하면서 받은 카드를 사장 앞에서 찢어 버려야 복귀할수 있었다.
파업 시위에 참여한 광부와 가족들이 모였던, 그리고 사고가 났던 이탈리안 홀은 1984년에 철거됐고
그 건물의 아치형 정문만이 남아있다.
주변은 추모공원으로 꾸며져서, 당시 사망한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안타깝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