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침략에 대응하여 13대 국왕은 세 번이나 분연히 일어서 용맹하게 응전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고, 이는 왕에게 시대의 변화를 통감케 했다. 그는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나, 다음 왕에게 나라의 미래를 위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인정해야만 했다. 제국은 어디에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FF는 더이상 업계의 선두에 서 있지 않았다. JRPG란 실상 대단한 장르가 아니었던 게 아닐까.
처음부터 JRPG에 전성기 따위는 없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그러므로 JRPG 장르의 정신적인 맹주로써, FF15가 수행해야 할 임무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왕좌를 탈환해야 한다. 휘청거리는 FF의 위상을 되돌려 놓아야만 한다. 걸핏하면 총이나 갈기고 남자다움을 과시한답시고 스스로의 머리털을 밀거나 흉물스런 수염이나 기르는 야만스런 코쟁이 놈들에게 굴복할까보냐. 왕좌에 어울리는 것은 왕족 뿐이다.그렇게 믿고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퀘어의 저 위대하신 허당 왕자가 힘을 키운다는 명목 아래 그 젊음을 만끽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던 어느 날. 그의 뒷배를 봐주고 있던 차세대 콘솔은 왕자의 귀환을 기다리다 못해 사망,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으니, 여기서부터는 눈물겹고 치욕스러운 행보가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다 기어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정치판에서 끝없이 계속되는 암투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왕자가 몸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차차세대 콘솔까지 무수한 영웅들에 의해 점령당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랬다. 예를 들어 엉덩이 근육이 우람한 파란 쫄쫄이의 방사능 중독자는 좀 못생긴 것만 빼면 전설적인 친구로, 매우 오래 전부터 비할 바 없는 인지도를 쌓아 놓고 있었다. 허당 왕자에게는 아무래도 짐이 무겁다. 그 뿐인가. 지긋하게 쌓아둔 다방면의 경험을 무기삼아 완숙한 수컷의 페로몬과 각종 체액을 아무런 걱정도 없이 전세계에 흩뿌리는 백은발의 노검사에 비하면 스퀘어의 젊은 왕은 마냥 여리고 위태로워 보였다. 그 영웅왕들의 틈바구니에서, 젊은 차기 왕에게 주어진 그 막중한 임무는 차라리 낙인이며 저주였다. 녹티스 왕자의 이야기- FF15의 메인 스토리는 바로 그렇게 시작된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자처한 일이다. 하지만 얄궂은 일이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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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CURSE OF CRISTAL
크리스탈의 가호가 더이상 축복이 아니게 된 세계에서, 녹티스는 크리스탈로부터 그 저주와도 같은 선택을 받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나라를 지키고, 크리스탈을 지키고, 언젠가 다가올 거대한 위기로부터 별 그 자체를 지켜내야만 한다. 그러므로 망국의 왕자가 된 그가 제국으로부터 고향을 탈환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군대나 레지스탕스가 아니다.선택받은 자로써 그 자신이 언젠가 갖게 될 힘의 각성 뿐이다.역대 왕의 무기. 여섯 신의 힘. 크리스탈의 마력. 필요한 것은 신적 권능이다.
녹티스가 이어받을 그 힘이 없어서야 미래를 걸어볼 기회조차 없다. 하지만 이 작은 왕자는 아직 어리다. 전 국왕 레기스는 녹티스를 응석받이로 키웠으나, 그를 탓할 수만은 없다. 그는 왕자의 운명을 알고 있었으므로. 따라서 모두 녹티스의 각성을 위해 움직여야만 한다.녹티스가 온전히 힘을 얻고 절대적인 존재가 될 때까지 그를 지지하고, 보호하고, 길을 이끌어야 한다.나이를 먹고 힘을 잃어버린 레기스 그 자신은 물론, 아리따운 녹티스의 연인도 예외가 아니다. 루나프레나 녹스 플뢰레. 어린 시절 녹티스의 한마디를 붙들고 애틋한 사랑을 키워왔던 그녀의 운명은 녹티스 이상으로 혹독할 정도였다. 녹티스는 다만 마지막 페이지가 젖어있는 수첩을 품에 안고 길을 재촉할 뿐이다.
그런 녹티스 왕자에게 남은 것은 부친의 자동차 한 대와 고락을 함께 하는 친구들 뿐이었다. 간혹 루시스의 불사장군이나 제국의 용기사가 조력하기도 하지만, 그들을 감히 친구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피를 나눈 형제라 한들 이 정도까지 절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기약없는 여행 그 자체를 책임지는 이그니스가 없었다면, 가장 강대한 적에게서도 녹티스를 지켜주는 글라디오가 없었다면, 언제나 가볍게 분위기를 띄워주는 프롬프토가 없었다면- 그들 중 단 한명이라도 없었다면, 이 여행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녹티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마주하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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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TELLING: LEIDEN
FF15의 스토리는 나쁘지 않다.메인 퀘스트 분량이 전작들에 비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플롯이나 소재, 신화를 아우르는 골격, 그에 따른 세계관의 확장 가능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FF 시리즈 중에서도 돋보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퀘어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FF15의 이야기는 불친절하다. 무엇보다 설명이 부족하다.결핍되어 있다.시나리오의 많은 부분이 플레이어의 유추와 상상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제작자 스스로 오픈 월드라는 범용어를 오픈 필드라는 생소한 단어로 고쳐 말해야만 했던 근본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대사 몇 줄만 추가했다면 듣지 않을 수 있었던 비루한 비난조차 제대로 막아내지 못할 정도로 그렇다.
물론 스퀘어는 용감하게 도전했다. 적어도 남부럽지 않은 부피의 오픈 필드를 구현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가의 보도였던 금칠한 컷씬을 포기한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왕국의 수도가 함락당했음에도 다른 도시들이 평온한 이유는 NPC에 의해 지나가는 듯 언급될 뿐이다. 녹티스 일행이 헌터들의 골칫거리였던 외눈의 베히모스를 토벌한 정황은 폼나는 컷씬으로 제작되는 대신 거리에서 라디오를 타고 방송된다.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는 몽환적인 CG로 구현하는 대신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문서나 왕자의 대사, 적당히 뭉뚱그린 이벤트를 통해서만 드문드문 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컷씬은 최소한으로 억제하고,녹티스 일행의 시점에서 실시간 대화 이벤트를 중심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어디까지나 오픈 필드에 바탕을 둔 스토리 텔링이다.플레이어가 최대한 자연스럽고 능동적으로 세계관을 체험하도록 구성 했을 것이다. 후반부터 스토리가 급물살을 타는 동안에도 이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레이브스나 황제, 제국의 말로는 녹티스가 직접 보지 못했기에 설명도 간접적으로 이루어 진다. 컷씬은 여전히 짧고, 예전이라면 컷씬으로 제작되었을 법한 대사 이벤트들이 대부분 실시간으로 짧게 처리된다. 이해할 수 있다. 전작에서는 컷씬이 3보에 한 번씩 나왔고, 썩 좋은 평을 받지 못했던 참이다.다만 새로운 방식이 온전히 성공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 오픈 월드 컨셉의 장점은 검증되어 있다. 허나 어렵고 위험하다. 산더미처럼 방대한 텍스트와 엄밀한 물리 엔진이 필요하고, 세세한 배경 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오픈 월드가 자연스럽게 기능할 수 있는 물리적, 철학적 배경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고서도 어느 정도는 드라마틱한 전개를 포기해야하는 혹독한 분야다. 심지어 유감스럽게도, 스퀘어 에닉스는 이 분야에서 초보자였다. 결과물에서도 드러난다. 만족스러운 세계를 만들어 냈다고는 빈 말로도 평할 수 없다. 더 많은 대사와 충실한 텍스트가 필요했다. 유저가 수집한 상상력의 파편을 이어줄 연결고리가 절실했다. 좀 더 깊이있는 퀘스트가 필요했다. FF15가 완벽한 게임이 되기 위해 추가되었어야 했던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필자 같은 극성팬이 아니고서야, 이쯤되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법도 하다. 예를 들어 보자면, 그렇다. 근본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 못하는 것을 굳이 추구해서 말아먹을 바에야 잘 하는 것을 갈고 닦아야 했다. FF15는 JRPG다. 아무리 서양 RPG의 장점을 수용한다 한들, FF는 엘더스크롤이 될 수 없다. FF15가 오픈 월드를 표방한 것부터 실수였던 것은 아닐까. 맞지 않는 옷을 골랐던 것은 아닐까. 어설프게 한 눈 팔지 말고, JRPG가 가진 강점을 우직하게 밀고 나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니다. 현상 유지가 FF의 컨셉이어서는 안된다.
물론 FF15는 스스로 그 불완전한 만듦새를 통해 엘더스크롤과 같은 작품에 도달할 수 없다는 현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FF15는 그 반쪽짜리 오픈 필드만으로도엘더스크롤이 도저히 FF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놀라운 일이지만, FF는 본래 컷씬이 전부가 아니었다. FF가 JRPG로써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필요로 했던 것은 스토리 텔링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다루기 위해 나는 동료들의, 프롬프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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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자식들아 이그니스 좀 챙겨 WALK TALL, MY FRIENDS
프롬프토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일한 보통 사람이다.그는 칸나기의 부탁에 따라 왕자의 클래스메이트를 자처했을 뿐이다. 그는 싸움을 배워본 일이 없다. 체력이 약하고, 전투에 익숙하지 않고, 스스로도 자신이 보통 사람인 것을 자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자격지심을 감추고 있는 그는 눈물겹다. 최선을 다해 분위기를 읽고, 촐싹거리고, 때로는 말도 안되는 발언을 서슴치 않으면서도, 그저 가볍게 파티를 지지한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캐릭터를 가장 걱정했다. 그 경박함을 경계했다. 하지만 다름아닌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녹티스를 구원했다.현실의 무게를 잊어버리게 했다.다름아닌 왕자가 인정하는 친구다. 프롬프토의 우직한 근성은 녹티스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어서 글라디올러스를 곧바로 떠올리게 된다. 녹티스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그는 누구보다도 녹티스가 당당한 왕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는 마음 속 깊히 초조함을 느낀다. 언제까지나 어린아이 같고, 충격에 잠겨 일어서지 못하는 녹티스에게 폭발하는 일도 잦다.하지만 그는 녹티스가 다른 사람의 위에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그래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녹티스를 지킨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녹티스와 연계한다. 결연히 방패를 들어 적을 가로 막고 거대한 검을 휘둘러 일격에 적을 분쇄하는 그는 파티의 큰형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컵라면에 맛있게 먹기 위해 베히모스를 사냥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까지만 그랬다는 이야기다. 이 유쾌한 애어른은 진지하게 바보짓을 할 때 가장 생생하다. 그래도 그는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연장자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이그니스가 없었더라면. 그렇다고 이그니스를 파티의 형님으로 모시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는 오히려 그를 모욕하는 것과 같다. 이그니스에게서 느껴지는 그것은 차라리 부모의 사랑에 가깝다. 식사를 준비하고, 녹티스가 먹지 않는 채소를 대신 먹어주고, 새로운 레시피를 생각해내고, 아이리스의 요리를 기대하는 프롬프토에게 발끈하기도 한다. 실의에 빠진 녹티스, 그런 그를 엄히 대하는 글라디오를 한꺼번에 포용한다.언제나 친구들을 생각하고, 본인이 힘든 것은 잊어버린 척 감추고, 왕자를 생각하고, 오직 친구들을 위해 고집을 부리는 이그니스를 떠올리면 눈물을 막을 길이 없다.
그렇다.캐릭터다. FF15가 가장 중요한 컨셉으로 설정하고, 가장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 바로 이 캐릭터들-친구들과의 유대감이다. 이를 구축하기 위해 제작진은 녹트와 그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문자 그대로 스크립트를 갈아 넣었다. 용기가 가상하고 노력이 칭찬받을만 하다. 결과적으로 친구들은 20살 남짓한 청년들처럼 의례 그런 것처럼 자연스럽게 농담을 지껄이며 슬렁슬렁 필드를 돌아다닌다. 대화 패턴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대화가 수반되는 이벤트를 무분별하게 남발하지 않고, 특정 순간에 반드시 특정 대사가 나오는 경우를 억제함으로써 자연스러움을 배가시킨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을 통해 FF15는 명백히 반쪽 밖에 안되는 오픈 월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저 필드를 달리기만 해도 만족감이 차오른다. 몬스터를 토벌할 뿐인 별 것도 아닌 퀘스트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순간 의미가 달라진다. 친구들은 망국의 왕자를 격려하고, 복근과 하반신이 시원찮은 친구를 놀려먹고, 편식이 심한 애어른을 걱정하고, 밤을 새고 달려 칸나기의 캠프에 도달한 동료 헌터와 함께 휴식한다. 함께 물고기를 잡고, 레시피를 기록하고, 사진을 찍는다. 이를 화제삼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시시한 대화, 장난스러운 몸짓, 함께 먹고 마시고 떠들어대는 캠프, 압축된 대사 몇 줄. 그 모든 것이 끈끈한 인연으로 얽혀 추억이 된다. 그들과 함께 하는 여행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유저에게, FF15는 틀림없는 걸작이다. FF15가 단점이라는 단어로는 숨길 수 없을 만큼 결핍되어 있음에도, FF15는 완전하다. 이런 FF는 지금까지 없었다. 특이하고 신선하다. FF 스럽다.
이 모든 추억들이 모여 한번에 폭발하는 마지막 챕터의 연출은 저 유구한 JRPG의 역사 속에서도 특필할 만 하다. 플레이어들은 제작진들이 프롬프토를 통해 그토록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다니게 했는지 절절하게 깨닫는다. 그 안에 농축되어 있는 친구들과의 추억은 처연하고 무거워 최고의 한 장을 선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제작진이 어째서 FF15의 전용 테마를 작곡하는 대신 오래된 노래Stand by me를 채용한 것인지 가슴에 새기게 된다. 겁많고 외로움을 타는 왕자님을 위한 노래가 달리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어느 덧 결전을 앞둔 녹트가 보여주는 맨 얼굴. 전부 각오하고 돌아왔음에도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 허물어지는 각오. 꼴사납게 울어버릴 정도로 무서운데도 결국 친구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결단하는 필부의 용기.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네는"가슴을 펴고 살아라"한마디는 선왕의 유언이기도 하다.FF15의 이야기는 훌륭하다.나는 이를 듬뿍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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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 SYSTEM 1: ATTACK
JRPG의 핵심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가장 먼저 전투 시스템을 꼽고 싶다. 전투 시스템은 FF15에서도 핵심으로 기능한다. 게임 전반을 통해 강조되고 있는 친구들 사이의 유대감 또한 전투 시스템을 통해 완성되며, 그러므로 FF15의 진가는 전투 시스템을 통해 실체가 드러난다. 나는 오픈 필드 베이스의 전투 시스템에서 동료와의 연계를 이 정도로 끈적끈적하게 구현한 게임을 해본 일이 없다. 백어택과 패리 카운터에서 이어지는 링크 어택이나 게이지를 사용하는 특수 커맨드부터, 랜덤으로 발동되는 오프닝 어택, 적을 쓰러뜨렸을 때의 추가타, 상태 이상 공격, 커버, 전투 보조, 회복.오픈 필드의 실시간 전투 시스템에서 용케 여기까지 동료들과의 상호작용을 구현해냈다고 생각한다.게임 컨셉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세련된 구성에 감탄한다. 심지어 이 뿐만이 아니다. 시스템 자체가 유니크하다.
시프트 어택은 FF15의 전투 시스템 중에서도 돌출된 기능으로, 녹티스의 모든 공격은 시프트 어택을 통해 시작한다 해도 과하지 않다. 조작은 잊어버리는 것이 더 어렵다. 여기에 공격력이 높고 무적 시간까지 제공한다. 또한 배틀 필드 상에 있는 모든 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상대가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설령 시야에 바깥에 있다 하더라도 유연하게 발동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언제든 자유롭게 몹을 공격할 수 있으므로, 녹티스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이리저리 번쩍거리며 사냥감을 따라잡을 수 있다. 이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다.
그렇다해서 시프트 어택이 전부는 아니다. FF15는 3D 필드를 구현하고 있으며, 이는 Z축을 온전히 포함한다. 시프트 어택을 통해 녹티스는 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데, 타점이 높은 적을 주로 상대하는 FF15에서 이는 높은 확률로 공중이다. 이에 더해 FF15는 게임의 극초반에 공중 이동을 3번 가능하게 해주는 에어스텝을 제공하고, 나아가 MP가 허용하는 한 무제한으로 공중 이동 능력을 부여하는 무한 에어스텝을 익힐 수 있다. 시프트 어택으로 촉발된 에어스텝을 통해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적의 공격이 닿지 않는 위치로 이동하며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에어스텝에서 이어지는 공격들은 발동이 빠르다. 거리가 떨어져 있다면 녹트는 MP를 소모해 적 근처로 순간 이동한다. 쾌적하다. 조금 익숙해졌다면 십자키로 무기를 바꿔 공격하는 것만으로 그럴 듯한 컴보가 만들어진다. 단검이나 대검은 화력이 높은 대신 에어스텝에 제한이 있고, 검과 창은 에어스텝에 제한이 없는 대신 화력이 떨어진다. 이를 감안해서 컴보를 이어나가는 즐거움도 제공된다. 이 모든 것이 쉽고 간편하다. 조작은 단순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연출은 화려해 피드백이 확실하다.
그에 비하면 지상 공격은 다소 굼뜨고 불편한 감이 있다. 지상에서는 공중에 있을 때와는 달리 순간 이동하는 대신 달려서 이동하는 만큼 템포가 느리다. 또한 지상에서는 시스템이 제공하는 자동 조준 기능과 공격의 사정거리가 엇갈려 공격을 헛치는 경우도 있고, 적이 거대해 록온한 부위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연타하지 않으면 공격이 발동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상 공격은 공중 공격에 비해 화력이 높고, 광역 공격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연계해 반격할 수 있는 패리 카운터 링크나 배후를 잡아 공격해 막대한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는 백어택 링크는 지상에서만 발동된다. 녹티스는 공중에서 빠르게 거동할 수 있는 것에 반해 지상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묵직한 공격을 노릴 수 있다. 에어스텝 중 적이 패리 카운터가 가능한 공격을 시도할 때 지상으로 급속 낙하해서 패리 카운터로 반격하는 테크닉도 성립한다. 간단한 가운데 플레이어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액션의 분배가 사려깊다.
BATTLE SYSTEM 2: EVADE
공격 만으로 액션은 성립되지 않기에, FF15 또한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회피 방법을 제공한다. 지상에서 밖에 발동되지 않아 그다지 사용되지 않는 구르기 외에도 여러가지 회피가 있어 부족함이 없다. 우선 적의 일반적인 공격은 회피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만으로 자동으로 회피된다. 이것만으로는 광역 공격으로 대표되는 적의 특수 공격까지는 피할 수 없으나, 게임 특성 상 적의 공격이 사각에서 발동되는 일도 잦은 만큼 다른 조작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회피 버튼을 지속적으로 누르고 있는 것은 언제나 추천된다. 시프트 버튼을 누르면 발동되는 시프트 회피는 공격 판정이 있는데다 발동부터 이동까지 완전 무적 시간을 제공하기에 자동 회피로 피할 수 없는 공격에 대응할 때 주로 사용된다. 성능이 좋은 만큼 동작이 커서 시프트 회피를 남발할 수록 템포가 떨어진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최고급 회피 기능인 맵시프트는 전투 상황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한다. 시프트인 만큼 무적 시간을 제공하고, 전투하는 동안 소모된 MP도 전부 회복시키기에 시프트 어택이나 회피를 사용하며 소모된 MP를 효율적으로 보충하는 동시에, 시프트 어택의 위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거리를 확보하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녹티스는 배틀 필드를 폭 넓게 누비며 적을 사냥할 수 있게 된다. 시프트 어택 위주로 안전하게 싸우고 싶다면 우선 맵 시프트 가능 장소를 시야에 두고 적과 대치할 필요가 있다. 무적 시간과 MP 회복 효과가 뛰어난 대신 장소가 제한되고 발동이 어려워지는 셈이다.
회피 성능이 뛰어난 만큼 적의 공격은 발동이 빠르고 매섭다. 회피 버튼을 누르고 있어도 보스급 몹이 슈퍼 아머를 앞세워 내가 공격하는 프레임에 중첩해 공격하는 것까지는 피할 수 없다. 자동 회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전체 공격은 전조 동작이 있긴 하지만 타이밍 맞춰 시프트 회피로 대응하기에 시간이 넉넉하지 않고, 시야 밖에서 발동될 경우에는 특히 속수 무책이다. 그리고 그런 공격일 수록 강하다. 한 방이면 왕자의 허리가 접히고 두 방이면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다니게 되는데 FF 답지 않게 불합리할 지경이다. 이런 현상은 게임의 후반부로 갈수록 심화된다. 결국 플레이어는 본인의 뱃속이 안좋아질 때까지 포션을 들이키게 되며, 불사조가 멸종될 때까지 꼬리를 뽑아다 쓰게 된다.
이 모든 난관을 한 번에 정리해 주는 어빌리티가 있으니 가히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할만 하다. 이름을 대미지 시프트라 한다. 대미지 시프트는 공격을 받은 후 특정 프레임에 가드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발동된다. 피격 당한 즉시가 아니라는 점이 특히 좋다. 저스트 프레임을 요구하기에 원버튼 조작임에도 불구하고 발동시키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숙달이 필요한 조작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대미지 시프트는 직전에 받은 대미지를 완전히 회복하는 어빌리티인 까닭이다. 이것을 통해 이론적으로 녹티스는 적에게 일격사 당하지 않는 이상 무적이고, 즉시 전선에 복귀할 수 있다. 타이밍이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아무리 숙달해도 실수할 수 있도록 해두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식으로 대미지 시프트 발동에 실수할 경우 HP가 자동 회복되거나 팀원이 회복시켜줄 때까지 몸을 사려야 한다. 그 이후에는 다시 쉴 새 없는 공격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다. 성능을 알아채기 어렵고, 얻는 시점이 늦다는 점을 제외하면 단점이 없어 FF15 액션의 최종 컨텐츠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조작이 누구나 쉽게 익숙해질 수 있을 만큼 간편하다는 점이 FF 답다. FF 시리즈는 유저가 많은 게임이기에, 여러가지 시스템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쉽고 간단한 시스템을 양립시킨다. FF15는 많은 로딩을 필요로 하는 오픈 월드 게임이며 그 공간을 살려 Z축까지 사용하는 액션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기에 조작이 어려우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을 제작진은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액션이 원버튼으로 이루어지며, 록온은 쉽고, 무기를 바꾸는 것도 쉽고, 공격 방향 보정은 전방위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마냥 쉽지 만은 않다. 적의 공격은 빠르고 강하며, 주인공의 체력과 방어력은 늘 부족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안전하게 공격할 수 있는 포인트로 움직이며 다채로운 공격을 펼치는 것은 숙련된 유저에게도 바쁜 조작을 요구한다. 오픈 월드 공간에서, 쉽지만 숙련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채로운 밸런스라고 생각한다.
공격과 회피, 회복과 반격. 녹티스는 완벽하다. 눕는 것은 당신 탓이다. BATTLE SYSTEM 3: CONCLUSION
FF15에서는 거의 모든 퀘스트가 전투와 연관되기 때문에,전투 시스템의 높은 완성도가 다행스럽다. 이제는 쓸데없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전투 시스템이 제대로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 결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아찔하다. 지금은 FF15의 감각으로 정성스레 해석된 디자인과 녹트를 한방에 눕힐 만큼 무도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몬스터를 찾아 떠나는 것 만으로 가슴이 뛰고, 이는 능동적으로 여행을 이어나갈 동력원이 된다. 방향성은 명확하고 임팩트 또한 강렬하다. 향후 스퀘어에서 발매할 액션 RPG는 결국 FF15와 비교받게 되리라.
나는 FF15가 추구한 FF스러운 변화를 흡족하게 생각한다. FF15는 JRPG 특유의 캐릭터 구축과 스타일리시한 실시간 전투 시스템이 오픈 필드에서도 구현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도전의 대가가 작지 않았으나, 이 도전을 두고 FF 답지 않았다거나, 무의미한 도전이었다고 폄하할 수는 없다. FF15는 완벽하지 않아 무수한 단점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전부 잊어도 좋다. 생동감 넘치는동료들와 함께 하는 화려한 전투.다른 게임에서는 찾기 힘든 이 차별성만으로 FF15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JRPG의 역사는 전투 시스템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다종 다양한 전투 시스템이 태어났다. 그 결과 걸출한 시스템이 등장해 칭송받는가 하면, 시대에 밀려난 시스템이 버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FF15의 전투 시스템은 그 역사에 중요한 한 켠을 장식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 나는 FF15를 마음 속 깊이 즐길 수 있다. 그렇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나굴파르를 지금 이상으로 스타일리시하게 사냥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검 창 단검 대검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무기를 활용할 수도 있으리라. 이그니스를 닥달해 요리의 효과를 극대화시켜 토벌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을 테고, 글라디오조차 감탄한 철거인도, 그리폰도 원없이 상대하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느긋하게 돌아다녀 볼 생각이다. 아무도 나의 즐거움을 방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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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TURE OF FINAL FANTASY: POTENTIAL
그리하여, 녹티스 왕자와 그 친구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그 자신의 편식조차 해결하지 못한 구원자가 과연 세계에 빛을 되찾아오는 중책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루시스를 그늘에서 지키고 있는 13인의 역대왕들은 과연 녹티스를 인정하고 그 힘을 빌려주는데 동의했을까. 그 저주스러운 크리스탈은, 녹티스와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소중한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끝에 도달할 FF15의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루나프레나는, 사랑스러운 녹티스 왕자와 재회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나야 물론 FF 시리즈의 열광적인 팬으로써, 이 작고 연약한 왕자가 그의 친구들과 연인과 함께 쟁취한 포근한 세상 속에서언제까지고 평화롭게 지내기를 희망할 뿐이다.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장점에 무게를 두고 싶다. 그래도 좋을 만큼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나는 부왕 레기스가 어떤 심정으로 친구들과 루나프레나에게 녹티스를 맡겼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아들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JRPG의 왕으로써, 자랑스러운 최신작이다. 여전히 FF는 다르고 특별하다. FF15를 대체할 수 있는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FF 시리즈가 FF15를 통해 장차 이어나갈 행보에 주목하며, 시리즈가 계속 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FF15를 녹티스 왕자와 겹쳐 볼 수 있다니 얄궂은 일이다. 그리고 그런 FF15를 통해 나는 여전히 FF 시리즈의 열성팬으로 남아 있다.무엇보다도 기쁜 일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리뷰 였습니다. 다른 리뷰글도 찾아보고 싶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부 리뷰는 이 게시판에도 있고, 그 외 다른 글들은 아래 주소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blindplus
잘 봤어요 ㅊㅊ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럴 수 있지요. FF 넘버링에는 여러 작품이 있고 서로 완전히 다른 게임일 정도로 컨셉이 다양하니 다른 FF도 조심스럽게 권해봅니다. 특히 최신작인 7R이 꽤 잘만들어져 있답니다.
내인생 첫 파판이었던 15 아직도 증오한다
그럴 수 있지요. FF 넘버링에는 여러 작품이 있고 서로 완전히 다른 게임일 정도로 컨셉이 다양하니 다른 FF도 조심스럽게 권해봅니다. 특히 최신작인 7R이 꽤 잘만들어져 있답니다.
길다…
좋아하는 게임에 대한 글을 적을 때 글이 길어지는 지병이 있어요.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일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거지 싶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리뷰 였습니다. 다른 리뷰글도 찾아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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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어요 ㅊㅊ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