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쓰나는 어릴 적에는 히데쓰나로 불리워졌으며, 아버지는 가미이스미
성의 성주이자 용장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노부쓰나가 처음 무예를 배운
것은 바로 이 아버지에게서였다.
그후 가마쿠라(鎌倉)로 가서 염류(念流)를 배웠고, 가시마에서는 음류(陰
流)를 배우기도 했다.
노부쓰나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검술 수련에 정진하여 마침내 신음류(新
陰流)를 이루게 되었다.
가미이스미 노부쓰나는 전투에도 여러 번 참가했는데, 특히 안쥬(安中)
성 공략시 뛰어난 공훈을 세워, [우에노 제일의 창(槍)]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나가노 16 창의 한사람]이라 불리워졌다.
그러나 기와 성 전투에서 패장 신세가 되어 적의 두터운 포위망을 뚫고
다른 곳으로 도망쳐 숨어지내기도 했다.
그후 세상이 다소 안정되자 기와 성으로 되돌아왔다.
노부쓰나는 성안 사람들에게 검술을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기와에 머물렀
으나, 여러 지방에 자신이 익힌 신음류를 널리 보급하여야겠다는 생각에
기와 성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다케다 신겐은 노부쓰나만한 검술가를 떠나보내기가 아까워 정식으로 봉
록을 내려주려 하였으나 노부쓰나는 이를 거절하였다.
하는 수 없이 신겐은 노부쓰나를 보내주기로 하되, 다른 어떤 영주도 절
대로 섬기지 않겠다는 서약을 노부쓰나로부터 받아내었다.
1563년 가미이스미 노부쓰나는 아들과 문하생들을 거느리고 조슈를 출
발, 이세로(伊勢路)로 접어들었다.
오하리의 묘흥사(妙興寺) 근처에 이르렀을 때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 연신 떠들어대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나쁜 짓을 저지른 낭인 하나가 한 어린아이를 인
질로 삼아 창고 안으로 들어가 누구든지 가까이 오기만 하면 어린아이를
찔러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도움을 청하고 있었으나, 아무도 좋
은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참이었다.
노부쓰나는 얼핏 승려가 눈에 뜨이자 그에게 다가가 부탁했다.
"그 법의를 좀 빌려주지 않겠습니까? 내가 저 아이를 구해올까 합니다."
이어 제자에게 삭도를 빌려오게 하여 머리를 깨끗이 밀어버리고 이내 중
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창고 가까이 접근하려면 그럴 듯한 구실이 있어야 하겠기에 주먹밥을 두
개 만들게 하여 그것을 가지고 낭인이 머물러 있는 창고로 가까이 접근하
였다.
벽 틈 사이로 노부쓰나가 다가오는 것을 본 낭인은 성난 소리로 외쳤다.
"조금만 더 접근하면 어린아이를 죽일 테다!"
어린아이만큼은 불쌍하니 풀어주라고 설득해 봤자 아무 소용없음에 틀림
없었다.
노부쓰나는 먼저 주먹밥을 보이며,
"어제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들었다. 하나는 어린아이에게, 또 하
나는 자비로 여기고 너에게 주겠다."
하고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노부쓰나는 가까이서 주먹밥을 던져주기로 약속했다.
낭인은 오른손으로 소도를 쥐고, 왼손으로는 어린아이의 목덜미를 쥐고
있었다.
노부쓰나가 주먹밥 하나를 천천히 던지자 낭인은 왼손으로 받아쥐었다.
이어서 또 하나를 던지자 오른손의 소도를 놓고 오른손으로 받아들었다.
순간 노부쓰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낭인에게 뛰어들어 발로 소도의
칼자루를 걷어차내고, 낭인을 몸으로 깔아눕혔다.
언제나 칼을 빼들고 맞서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검법에 뛰어나다
하더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맨손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잘 가르쳐준 일화이다.
노부쓰나는 낭인을 제압한 후 가사를 벗어 승려에게 돌려주려고 하자,
그 승려는,
"당신은 검선일치(劍禪一致)의 묘를 터득한 달인입니다."
라고 감탄하며, 가사를 기념으로 노부쓰나에게 증정하였다.
노부쓰나는 오랫동안 이 가사를 소중하게 가지고 다니다가 후에 제자에
게 물려주었다.
From - 재미있는 검객이야기 -일본편-
유니텔 무예동 검도/ 거합도 게시판.
Written by - 유재주
사무라이들은 언제나 사람죽이는데만 혈안되어있는줄 알았는데,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삭발도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