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벌포 전투의 내용도 양측 주력군의 회전이 아니라... 신라 측 주장인 시득의 관등이 8등인 사찬이기 때문에 신라군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음... 또 첫 전투에서 패배하고 그뒤 크고 작은 전투가 22회나 이어졌다는 점에서 주력 부대 사이의 전투라고 보기 어려운 전황... 기벌포 전투가... 나당전쟁을 마무리 짓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신라는 나당전쟁에서 승리했는가? (2) - 매경프리미엄 참조>
"사찬 시득이 기벌포에서 설인귀와 싸워 이기다(676년 11월(음))... 그런데 『구당서』 권제83과 『신당서』 권제111의 열전 설인귀전에는 사뭇 다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설인귀가... 674~676... 에 중국 남부의 상주(象州)에 유배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설인귀는 670년 8월 토번(吐蕃)과의 대비천전투... 에서 패배 후 제명되었다."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문왕대(681~692)에... 신라는 한강 이북 지역을 거의 방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 후 735년(성덕왕 34)에 당나라로부터 대동강 이남의 당에 대한 영유권을 공인 받아... 헌덕왕대(809~825)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동강 남쪽 연안을 신라의 영토로 확정시켰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평양은 대동강 이북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의 영토에서 제외되었다...
신라가 애초부터 삼국 통일의 의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또한 그럴 능력도 없었다... 신라의 금석문에 신라는 자신을 당의 번(藩), 번국(藩國), 제후(諸侯)... 諸侯之外守者(제후지외수자)라 자처... 신라 하대에 만들어진 승려의 비문들에서는... 자국을 지칭할 때 대부분 有唐新羅國(유당신라국)... 大唐新羅國(대당신라국)이라 하여 스스로를 당의 속국이라고 인식하였다...
신라인은 스스로를 폄하 시키고 당을 높이 받들었다. 특히 숭복사비문에서는 당나라 황제의 은덕은 밝게 드러났다. 신라 왕은 효리(당나라 황제에 대한 효도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가르치다.)를 이룬 것이다. 聖帝之恩光著吾君孝理成焉이라 하여 당의 황제와 신라의 군주에 대한 최치원의 차별적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러한 용어가 쓰여진 글은 외교 문서와 같이 당 조정에 보내기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닌 주독자층이 신라인인 글... 자국을 폄하하고 당을 존숭하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 그러한 인식이 신라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음을 의미한다...
삼국통일(?) 이후... 이념적 실질적 사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백제의 지배층으로서 진골 이상의 신분으로 편제된 대상이 없다... 신라의 민족융합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구려 역시... 백제인들과 마찬가지로 6두품 이하의 대우를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 신라는... 계속해서 골품제를 유지함으로써 삼국민의 융합에 제약을 가했다... 김부식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왕조에서도... 삼국통일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일제강점기 하야시 다이스케는 저서 『조선사』에서... 신라의 삼국통일로 규정했다. 그 뒤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신라의 반도통일이란 이름으로 정의... 만주지역을 지배하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한국사의 범주에서 배제하려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으니... 옛 고구려 땅은 더 이상 조선의 역사가 아니라는 논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논문 -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재검토 참조>
"신라인들은... 피정복민을 무섭게 차별화... 도태시키는 정책을 율령으로 만들어 펼쳤다... 백제인과 고구려인들은... 기본적으로 하층 신분으로 편제" <... 신라, 피정복민 통합정책 대신 극심한 차별 - 중앙선데이 참조>
고려거란전쟁 보고 더 이상 당할 시청자 없다 ㅋㅋㅋㅋ 중간에 이상한 페미 스토리 넣으면서 또 산으로 가겠지 ㅋㅋㅋㅋㅋ
이번엔 풍랑으로 인한 콜드게임 되려나
ㅋㅋㅋ 또 말로만 전쟁하려나?
전쟁 묘사할 자신 없으면 처음부터 전쟁 안하는 조선시대 사극으로 그 좋아하는 궁중암투극이나 실컷 만드는게 낫지
사극 치트키 또방원
이번엔 풍랑으로 인한 콜드게임 되려나
ㅋㅋㅋ 또 말로만 전쟁하려나?
장혁 절권도 또 하겠네 ㅋㅋㅋ
전쟁 묘사할 자신 없으면 처음부터 전쟁 안하는 조선시대 사극으로 그 좋아하는 궁중암투극이나 실컷 만드는게 낫지
라우무
사극 치트키 또방원
고려거란전쟁 보고 더 이상 당할 시청자 없다 ㅋㅋㅋㅋ 중간에 이상한 페미 스토리 넣으면서 또 산으로 가겠지 ㅋㅋㅋㅋㅋ
대길이?
충분히 드라마 소재가 될만했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다룬 적은 거의 없었음. 고대사 최고의 군주인 문무왕이 제발 잘 묘사되었으면 좋겠음. 전투신은 또 우천취소가 될 까봐 걱정이 되네.
"기벌포 전투의 내용도 양측 주력군의 회전이 아니라... 신라 측 주장인 시득의 관등이 8등인 사찬이기 때문에 신라군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음... 또 첫 전투에서 패배하고 그뒤 크고 작은 전투가 22회나 이어졌다는 점에서 주력 부대 사이의 전투라고 보기 어려운 전황... 기벌포 전투가... 나당전쟁을 마무리 짓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신라는 나당전쟁에서 승리했는가? (2) - 매경프리미엄 참조> "사찬 시득이 기벌포에서 설인귀와 싸워 이기다(676년 11월(음))... 그런데 『구당서』 권제83과 『신당서』 권제111의 열전 설인귀전에는 사뭇 다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설인귀가... 674~676... 에 중국 남부의 상주(象州)에 유배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설인귀는 670년 8월 토번(吐蕃)과의 대비천전투... 에서 패배 후 제명되었다."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문왕대(681~692)에... 신라는 한강 이북 지역을 거의 방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 후 735년(성덕왕 34)에 당나라로부터 대동강 이남의 당에 대한 영유권을 공인 받아... 헌덕왕대(809~825)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동강 남쪽 연안을 신라의 영토로 확정시켰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평양은 대동강 이북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의 영토에서 제외되었다... 신라가 애초부터 삼국 통일의 의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또한 그럴 능력도 없었다... 신라의 금석문에 신라는 자신을 당의 번(藩), 번국(藩國), 제후(諸侯)... 諸侯之外守者(제후지외수자)라 자처... 신라 하대에 만들어진 승려의 비문들에서는... 자국을 지칭할 때 대부분 有唐新羅國(유당신라국)... 大唐新羅國(대당신라국)이라 하여 스스로를 당의 속국이라고 인식하였다... 신라인은 스스로를 폄하 시키고 당을 높이 받들었다. 특히 숭복사비문에서는 당나라 황제의 은덕은 밝게 드러났다. 신라 왕은 효리(당나라 황제에 대한 효도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가르치다.)를 이룬 것이다. 聖帝之恩光著吾君孝理成焉이라 하여 당의 황제와 신라의 군주에 대한 최치원의 차별적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러한 용어가 쓰여진 글은 외교 문서와 같이 당 조정에 보내기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닌 주독자층이 신라인인 글... 자국을 폄하하고 당을 존숭하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 그러한 인식이 신라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음을 의미한다... 삼국통일(?) 이후... 이념적 실질적 사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백제의 지배층으로서 진골 이상의 신분으로 편제된 대상이 없다... 신라의 민족융합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구려 역시... 백제인들과 마찬가지로 6두품 이하의 대우를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 신라는... 계속해서 골품제를 유지함으로써 삼국민의 융합에 제약을 가했다... 김부식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왕조에서도... 삼국통일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일제강점기 하야시 다이스케는 저서 『조선사』에서... 신라의 삼국통일로 규정했다. 그 뒤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신라의 반도통일이란 이름으로 정의... 만주지역을 지배하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한국사의 범주에서 배제하려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으니... 옛 고구려 땅은 더 이상 조선의 역사가 아니라는 논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논문 -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재검토 참조> "신라인들은... 피정복민을 무섭게 차별화... 도태시키는 정책을 율령으로 만들어 펼쳤다... 백제인과 고구려인들은... 기본적으로 하층 신분으로 편제" <... 신라, 피정복민 통합정책 대신 극심한 차별 - 중앙선데이 참조>
신라시대에 대길이가 언년이 찾나?
지금까지 나당전쟁 제대로 다룬 사극이 없었는데 괜찮네요 ㅋㅋ 무열왕 때도 나당전쟁은 걍 스킵이었고
'Its me War record'
감독이랑 작가를 잘 봐야지
나당전쟁 때는 김유신이 고령이라 참전 못하고 아들이 참전해서 해서 패했었고 김춘추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는데 주연?퓨전으로 가는건지.. 그 전 이야기를 비중있게 다루려는건지..
몇부작 일려나
나 서라벌 똘복이야!
문화재 훼손하는 KBS가 사극 만들 자격이 있을까요? https://www.yna.co.kr/view/AKR20250103012500053?input=1195m
양심고백부터 해라
유준상씨 암행어사로 나온거 재미있었는데.
응 안믿어 고거전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