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랑 닉네임은 10년전쯤 루리웹 리뉴얼 때 선점해둔 건데, 그동안 사용을 안 해서 안 짤렸던 것 같고 저는 그 분, 박ㅇ욱 님이 아닙니다. 물론 (친구도 아니며) 그냥 팬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이상하게 스페셜티 업계로부터 묘한 적대감을 받는 것 같고, 이단자(?) 취급도 받는 것 같아서 너무 궁금했었는데 까먹고 지내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휴가를 내고 찾아가봤습니다. 대충 검색해보면 BOP 콩으로 석탄을 만드네뭐네 돈이 많아서 커피를 퍼주네 같은 부정적 늬앙스를 가진 말들이 많았는데, 가서 보니까 너무 재미있고 신기한 관점이 많았습니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BOP GW-3로 시작했습니다. 칼리타 플라스틱 드리퍼에 추출과 동시에 칠링 들어가는 것 재밌었습니다. 가수 없이 총 150g이고 진합니다. 추출온도도 85도로 다소 낮은 편인데, 제가 알기로 라이트한 콩은 저온에서 추출하면 자칫 찌르는 맛이 날 수 있어서 걱정했었습니다만, 전혀 그런 김은 없었습니다.
BOP 수상작들은 몇 번 마셔봤지만, 역시 정말 강렬합니다. 당연하게도 게이샤 특유의 베르가못 인텐스가 잘 느껴졌고, 신기했던 점은 후미에 자몽이나 파인애플 같이 튀는 그런 애들이 있을 것 같았은데, 그런 거 없이 영롱하고 우아하게 피니시 되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왜 업계인들이 욕하는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쥬시한 어떤 진함을 추구하는 것 같은데 그부분이 너무 집요합니다.
(좀 과장하면 이런 느낌임)
그리고 에스프레소도 주문해봤습니다. 이것도 BOP GW-6입니다. 저도 집에서 몇 번 게이샤로 에스프레소를 시도해봤었는데, 대체로 필터로 내리는 쪽이 훨씬 좋았었습니다. 꽃과 과일이라는 느낌이라서 다루기 너무 어려웠는데, 아마 많은 시도를 해보셨겠죠. 신기했던 점은 추출머신이 스타벅스 매장에서 쓰는 써모플랜이라는 전자동 머신을 쓴다는 점입니다. 모델명은 써모플랜 BW4 네오로 보이며, 이 머신을 쓰는 이유는 결국 이게 제일 추구하는 맛이 잘 나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율은 18g에 35g 추출이고 약 1:2로 특별한 건 없었는데, 제가 직접 추출 시간을 재지는 않았지만 추출 시간은 좀 빠른 것 같았습니다. (아마 20초?) 여기에서도 물론 쥬시함에 대한 집착이 잘 느껴졌었습니다. 오일리하지 않은데 엄청 부드럽고 클린컵 느낌이며, 혓바닥에 남는 쓴맛이 거의 없습니다. 후미 잔향도 복합적이라 너무 재미있었는데, 이게 에스프레소라서 35g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더 마시고 싶음)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루리커피가 지속 가능한 가게인가 하는 점에서 많은 우려가 들었습니다. (사업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고가의 옥션랏 커피를 즐기는 수요층을 공력해야 할 것 같은데, 그에 반해 별로인 브랜드 경험을 취향의 공유라는 측면만으로 접근하기에는 돌파구가 잘 보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는 경험이어서 이 가게가 잘 살아남고 스페셜티 씬에서 한 획을 그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론은 망하기 전에 즐겨라...
내추럴 내지는 무산소 게이샤를 마신 후 잔 안에 남아 있는 잔향을 맡아 보시면 디켐이랑 비슷한 향이 나긴 합니다. 마시다 보면 무슨 느낌인지 알겠더라구요.
요기가 어디있을까요? 별생각없었는데 당장 떠나고싶게 글을 쓰셔서....
명동역에서 남산타워가 보이는 3번출구로 나와서 호텔 왼쪽길로 쭉 올라오면 아 여기군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