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가 시작된지도 어언 45년을 향해가는 이 시점.
모든 인천 야구팬들이 입을 모아 그야말로 인천 그 자체라고 부르는 야구 선수가 하나 있으니
바로 백인천이다.(끄덕)
한국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한 1982년, 41살의 나이로 감독 겸 선수로 출전해 리그를 폭격하며 양민학살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지금까지도 유일무이한 4할타율을 기록한 대타자 백인천.
바로 다음 해에 간통죄로 채포당하는 찐빠를 보여주며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잠시 야구계를 떠나 골프 사업을 하다 LG트윈스의 감독으로 복귀하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감독 백인천은 총 세 팀을 거쳤는데, LG에서는 팀의 첫 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삼성에선 원래 투수였던 이승엽의 재능을 알아보고 타자로 전향시켰으며, 롯데에서는 전설의 꼴꼴꼴꼴577의 포문을 열고 팀명을 꼴데로 개명시킨 뒤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
대부분의 한국야구 팬들이 알고 있는 백인천은 딱 이 정도, 원년크보 양학 4할과 롯데 자이언츠의 악몽 정도이나 사실 백인천은 결코 무시당할 커리어의 소유자가 아니다.
수준 낮은 원년크보에서 양학을 하다 떠났다고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30대 초중반이면 은퇴하던 시절에 41살의 나이로 4할을 찍는 양학을 했다는건 백인천이라는 타자의 클래스를 짐작하게 해준다.
전성기의 백인천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타격왕과 베스트나인을 수상한 바가 있으며 통산 209홈런-212도루를 기록하였고 누적 war는 30이 넘는데, 이는 MLB에서 추신수가 기록한 스탯과 유사한 수준이다.
특히,
1. 지금처럼 해외진출이 보편화된 시대는커녕 프로리그도 없던 1960년대에
2. 재일교포도 아니고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신분으로
3. 말도 안 통하는 상위리그에
4. 해외진출이 어려운 포수 포지션으로 진출했다는 사실은 백인천이 가진 재능을 잘 보여준다.
바로 옆에 뭔 상식을 초월하는 괴물이 하나 있어서 묻히는게 현실이지만...
아무튼 NPB로 떠난 백인천은 일본어도 열심히 배우고 중견수로 전향하기도 하고 혼이 실려 있으니 볼도 스트라이크라고 주장한 심판도 패주고 하며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그러던 그에게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찾아왔다
이제 괜찮다! 내가 왔다!
니가 와서 안 괜찮은거야 ㅅㅂ;;
일본진출 당시 2년 뒤 귀국해서 군복무를 마치겠다고 약속했던 미필 백인천은 예상보다 야구를 너무 잘했던 관계로 10년동안 일본에 체류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게 되었는데, 결국 미루고 미뤘던 군대 문제가 터진 것이다.
치프픗 똥닌겐은 어서어서 귀국해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데스
아직 한창인데 이렇게 커리어를 끝내야 한다고?
강제 은퇴 위기에 처했으나 뾰족한 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던 백인천. 하지만 운은 아직 백인천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한 정체불명의 사내가 일본으로 찾아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것이다.
아니 우리가 합법적으로 병역자원 끌고... 데리고 가겠다는데 어떤 새끼가 감히 끼어드는거야?
나다
백인천이 누구죠?
백인천이 병무청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중앙정보부. 사실 이후락 시절이지만 김재규가 더 유명하니 김재규 사진을 썼다.
아무튼 중앙정보부는 백인천에게 자신들이 "대체복무"를 시켜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해외 정보원은 상대국에도 정체가 드러나 있는 외교관 등의 화이트 요원과 비밀리에 정보를 전달하는 블랙 요원으로 나뉜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한일관계를 개선시키고 싶어했고, 중앙정보부는 일본 재계 인사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중견 프로야구 선수 백인천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겨우 알보병 하나 늘리자고 일본 재계와의 연줄을 끊어버리긴 싫었던 중앙정보부는 백인천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그를 주일 대사관 소속 화이트 요원으로 임명. 일종의 대체복무를 시킨 것이다.
당연히 백인천 역시 이 제안을 승낙, 비시즌인 겨울~봄에 걸쳐 18주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백인천은 무사히 소속팀으로 복귀하여 프로 생활을 이어가...
나싶었으나, 이번에는 일본 정계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한 국회의원이 "한국쪽 자료 보니까 백인천 공식 소속이 주일대사관으로 적혀있는데 뭐냐? 얘 한국 정부에서 보낸 스파이 아님?" 이라고 저격한 것이다.
일본 우익단체들도 이 떡밥을 물면서 큰 소동으로 번졌고, 한국의 스파이 백인천의 국외추방을 요구하는 여론까지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주일 대사관의
"그거 그냥 쌩으로 병역면제 시켜주면 국내여론 지랄날거 같아서 소속만 여기로 올려둔거임;; 백인천은 대사관에 오지도 않는데 자기 집에서 스파이 활동을 어떻게 함;;"
라는 해명이 먹혀서 논파, 백인천이 대사관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으며 백인천은 누명을 벗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타격왕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 또한 페이크. 백인천은 진짜로 중앙정보부의 스파이가 맞았다!
백인천은 대체복무 이전 18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일본으로 복귀했다고 했지만 기초군사훈련은 6주.
나머지 12주 동안은 비밀리에 남산으로 이동하여 중앙정보부의 비밀요원 양성 훈련을 받고 일본에서 블랙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참고로 이 커리큘럼에는 "집에서 대사관으로 비밀 통신을 보내는 법"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스파이로 활동하며 정부에 정확히 무슨 정보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백인천은 이를 통해 병역을 수행했다...
그리하여 백인천은 마흔 살까지 일본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자 NPB 2000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포기하고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 KBO 리그로 이적한다.
국내에 프로 리그도 없던 시절 해외진출에 성공해 파란만장한 커리어를 이어간 풍운아, 스파이 백인천...
100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