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혹시 죽을꺼면 연탄자살이 편할거야' 라고 말했었다. 혹시 할꺼면 엄마가 복용하고 있는 수면제를 나눠 줄 태니까, 그걸 알콜이랑 같이 많이 먹은 뒤에 연탄에 불을 지피면 자는 중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한두번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말해주었다. 그것은 마치 꼭 나보고 죽어라는 듯이 들렸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성실히 길러주었다. 나에게 손을 댄적도 한번도 없었을 뿐더러, 밥도 지어 주었다. 세탁도 했다. 모자(母子)가정이라 일도 나가, 가정을 지탱해 주었다.
엄마는 과거에 몇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제일 처음에 한 것은 목메달기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직 내가 5살 즈음이었다.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엄마는 남친에게 버려질 것 같아져, 눈 앞에서 아파트 2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목에는 밧줄을 메어 난간에 묶어 연결시켰다고 한다. 기세좋게 점프한 것과 당시 엄마의 체중이 70kg 가까이 나간것과 줄이 두껍지 않았던 탓에 찢겨져 나가 1층으로 낙하해, 미수로 끝났다고 한다.
두번째는 전차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남자한테 차인 직후였었다. 하지만 무서워서 선로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만 뒀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살미수 조차도 아니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계획하고 실행 바로 전단계까지 움직였으니까 나는 자살미수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옛날부터 손목긋기나 약 과다복용을 했었다.
투신자살을 관둔 후부터는 인터넷에서 동반자살을 해줄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속았다. 동반자살 할 장소에 가도 항상 자살하는 것은 거짓말이었고, 남자들한태 강제로 ㅁㅁ당해버렸다. 그러곤 몇 번의 ㅁㅁ으로 나를 임신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인물은 엄마를 ㅁㅁ한 사람에다가 누군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철이 들어갈 쯤, 어째서 나를 낳아버렸는지 의문이었다. 그것을 물어보니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낳아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어차피 엄마는 곧 죽을 참이었거든.'
지금도 엄마는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낳은 탓에 좀체 죽을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속아서 ㅁㅁ당했을 때 생긴 아이지만, 막상 태어나 길러보니 내가 가엽어서 혼자 남겨둔 체로는 갈 수 없었다.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내가 죽었음 해?
그렇게 물어보니 엄마는 머리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어. 라고 말했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네가 죽으면 엄마도 미련없이 갈 수 있으니까.'
그런식으로 말을 하면 나도 죽을 수는 없다. 엄마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 항상 죽을 수 없었다.
2.
엄마는 나의 눈앞에서 종종 팔을 긋는다. 처음 그 광경을 봤을 때 나는 절규했다. 원래부터 절규하듯 울었었다만은.
내가 CF에서 본 귀여운 인형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면 집에 그런것을 살 여유가 없다고 엄마는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 가지고 싶다고 땡깡을 부리면서 울면 엄마는 팔목을 그었다.
'엄마가 돈을 못 벌어서 미안해. 미안해..'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는 팔을 몇번이고 그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다시는 버릇없이 말 안할태니까' 라고. 그 후 엄마는 잔뜩 약을 먹고 잠들었다. 그것을 경험한 뒤로 나도 팔을 긋게 되었다. 8살 때였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야단맞거나, 친구에게 폐를 끼쳤을 때 그었다.
자기딴에 자신을 긋는 것이 사죄의 방식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팔을 그으면 선생님은 소리쳤다. 친구도 소리쳤다. 내 앞에서 순식간에 친구가 없어지고 선생님은 나를 더 이상 받아줄 수 없어져 노이로제에 걸려 학교를 떠났다.
그 다음으로 온 선생님은 철저하게 나를 무시했다. 설사 팔을 그어 보여도 모른척 했다. 어떤 반응도 얻을 수 없게되자 허무하게 느껴져 괜히 더 죽고싶어져, 수업중에 학교 베란다에서 투신했다.
하지만 장소가 2층이었다는 점과 밑이 풀숲이여서 타박상 정도로 끝나버렸다. 그 다음날 스쿨 카운셀러가 우리집으로 오게 되었다. 카운셀러 선생님은 젊고 멋진 남자였다. 엄마가 그에게 반해버려, 최선을 다해 우리 모자를 도와주려는 선생님을 엄마가 바득바득 유혹했다.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강하게 거부했지만 언제부턴가 꺾어버려 엄마와 선생님이 ㅅㅅ하게 되었다.
그 뒤로 카운셀링은 뒷전이 되버리고 선생님은 올 때마다 ㅅㅅ만 하게 되었다. 하지만 효과는 여러가지로 있었다.
엄마는 손목긋기를 관두게 되었다. 정신도 작게나마 안정됬다. ㅅㅅ가 시작되면 나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려 싫었지만, 엄마 상태가 좋아진다면야 라고 선생님이 오는 날마다 눈치 있게 밖에 나가 공원이나 신사 등에서 시간을 때웠다. 하지만 그 안정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는 현장을 보지못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선생님이 엄마와의 ㅅㅅ를 거부했고 한다.
이 이상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격분해 나이프를 휘둘러 위협하면서 선생님을 멀찍이 떨어트려 목에 로프를 매어 베란다에서 투신했다. 금방 선생님이 로프를 잘랐고 엄마는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져 살았다. 그 후 선생님은 우리집에 오지 않게 됬다.
엄마는 선생님에게 버림받은 것이 서러워 매일 울었다. 술을 잔뜩 마시고 쌓아둔 약을 잔뜩 먹고 잠에 쩔었다. 때때로 나도 어울려 술을 마셨다. 엄마를 응원하고 위로했다.
그렇게 엄마를 복돋으면 엄마는 나를 칭찬해 주었다.
'너는 ㅁㅁ당했을 때 생긴 애지만 낳아서 다행이야. 낙태했으면 분명히 엄마는 죽었을거야. 그래도 너를 볼 때마다 강간당했을 때가 생각나니까 사실은 복잡하기도 해. 하아...' 엄마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곧잘 말했다.
3.
자신의 존재의의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를 경계로 대부분의 가사는 내가 하게 되었다. 엄마는 돈을 벌어 와주기도 하고,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심어주고 싶어 열심히 엄마를 도왔다. 엄마에게 좀 더 인정받고 싶었었다. 거기다 나를 곁에서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좋아했던 동급생 남자아이에게 고백했다. 그랬더니
'너 손목 그어서 죽으려고 하잖아.. 무서워서 그런 애랑 어떻게 사귀냐. 기분 나쁘기도 하고.'
그런 말을 들었다. 강하게 쇼크를 받았다. 나의 모든 것을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던 사람에게 부정당하는 것이 죽도록 아플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엄마...죽고 싶어.'
엄마가 돌아오자 현관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쇼핑봉지를 양손에 들고 있던 엄마는 두번 가볍게 끄덕이고는 안쪽으로 나아가 부엌 테이블에 짐을 나두고선 엄마방에 나를 불러들였다. 서랍에서 풍로와 연탄을 꺼내, 나에게 껌테이프를 가져와라고 시켰다. 껌테이프를 가지고 엄마방에 들어가니 산같은 약 더미가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었다. 술도 있었다.
'연탄 연기가 새지 않게 껌테이프로 구석구석 막아.'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선 연탄을 풍로에 설치했다.
나는 주저했다. 확실히 죽고 싶을 정도로 상처받았지만 굳이 어느쪽이냐면,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죽고 싶다고 말한건데 막상 진심으로 자살하자 하니 무서워졌다. 거기다 아무래도 엄마도 같이 죽는 것같아 그것도 싫었다.
'엄마도 죽는거야?' 확인차 물어보니 당연하잖아 라고 말하며 엄마는 웃었다. '너를 위해서 사는 셈이니까 네가 죽으면 엄마도 죽을꺼야.'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바쁘게 자살환경을 준비했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왜 고개를 저어? 말하고 싶은게 있음 사양말고 말하렴. 어차피 지금부터 죽을꺼니까.'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상실감이나 엄마와 영영 헤어진다는 슬픔, 모든것이 사라지는 것 같은 감각이 몸에 내려와 어찌할 수 없는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목소리를 내었다. 엄마랑 살고 싶어. 훨씬 더 엄마랑 살고 싶어. 그렇게 말을 반복하며 울었다.
'어머, 생각이 바뀐거니? 아쉽네.' 그것을 끝으로 엄마는 풍로와 잡다한 것들을 제빠르게 정리해갔다. 그 날 밤은 엄마와 함께 술과 수면제를 마시곤 같은 이불에서 바싹 붙어 잠들었다. 몇일간 계속 잠들었다.
4.
중학교 2학년 때의 여름, 나에게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겼다. 거리에서 헌팅 당했다. 상대는 19살의 대학생이었다.
그는 나의 존재의의를 채워주었다. 겨우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찾은 나는 모든 것을 그에게 주고 내바쳤다.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이를 속여 클럽에서 일했다. 나는 이럭저럭 인기가 생겨 잔뜩 돈을 벌 수 있었다. 집에 생활비를 넣고, 그에게 바쳤다.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행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일하고 있었던 클럽이 적발되었다. 중3 여름 때 일이었다. 그 길로 나는 경찰에 붙잡혀 학교에 연락이 갔다.
나는 선생에게 쓸때 없는 설교를 들었다. 엄마에게도 물론 연락이 갔지만, 엄마는 선생들의 이야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엄마는 분명 19살 때부터 물장사를 시작했었어. 너는 13살에 했으니까 나보다 대단한거야.' 엄마가 나에게 말한 것은 그것 뿐이었다.
다시 다른 클럽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선생의 감시가 따라붙게 되어 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돈을 헌상할 수 없게 되자 언제부턴가 나는 사랑받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즈음 그는 22살의 새로운 여친이 생겨 갑작스레 이별을 선고받게 되었다.
'엄마...죽고싶어.'
모든 것들을 잃게 된 나는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전보다 진심이었다. 쇼핑봉투를 양손에 든 엄마는 가볍게 두번 끄덕이고선 안쪽으로 나아가 부엌 테이블에 짐을 놔두고 나를 엄마방으로 불러들였다. 서랍에서 이미 연탄이 준비된 풍로를 꺼내고서는 나에게 껌테이프를 가져오도록 시켰다.
껌테이프를 가지고 엄마방에 들어가니 산만큼 쌓인 약이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술도 놓여 있었다. '어떻게 하는지는 기억하지? 연기가 새지 않도록 껌테이프로 구석구석 빈틈을 막는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분주하게 자살환경을 준비해갔다.
'역시 엄마도 죽는거야?' 확인차 물어보니 당연하다고 말하며 엄마는 옅게 웃었다. '네가 죽으면 엄마도 살 의미가 없잖아.' 엄마는 유리잔에 나와 엄마가 마실 술을 따랐다. 그 시점에서 이미 나는 울고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왜 갑자기 울어? 고개는 왜 흔들고. 혹시 죽기 싫어진거야?'
나는 눈 밑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역시 아직 엄마랑 살고 싶어...'
그래? 라고 말하며 엄마는 술을 한모금 머금었다. '어떻게 할꺼야?'
나는 '역시 관둘래. 미안해요 엄마.' 라고 말했다. '아쉽게 됬네. 엄마는 저녁밥 만들태니까 이건 정리해둬. 혹여라도 내가 요리하는 사이에 연탄자살 할 생각 마.'
내가 울면서 끄덕이자 엄마는 빠르게 방 밖으로 나갔다.
그날 밤, 두사람이서 술을 마시고는 수면제를 먹고 엄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깜깜한 방 안에서 나는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입에 담았다. '엄마는 나를 낳은거, 지금도 후회해?' 반 쯤, 이라고 엄마는 답했다.
'엄마는 역시 지금도 죽고 싶어?' 물론이지, 라고 엄마는 답했다. 엄마는 지금도 때때로 손목을 그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살짝 엄마 손목에 묻은 피를 닦아 내었다. 내가 손목을 그으면 엄마도 그렇게 해주었다.
'있잖아, 엄마는 어째서 그렇게 죽고 싶은거야?' 시시해서야, 라고 엄마는 답했다.
아무것도 재미없어. 사는 의미를 모르겠어. 어차피 마지막엔 죽잖아. 간단하게 사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데 어째서 스트레스를 짊어지면서까지 살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생각해보면 바보같이 느껴져.
애초에 어차피 곧 늙어져서 겉모습이 볼품없어져 갈 뿐이고, 금새 남자도 다가오지 않게 되겠지. 엄마한테 있어서 사는 것은 절망이야. 죽는게 희망이고. 그게 다야. 라고 엄마는 느린 말투로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게 엄마가 죽고 싶어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캐물었다. 엄마가 죽고 싶어하는 이유의 근본을.
'그렇네. 아마도... 엄마가 확실히 원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거야.'
나는 어렴풋이 예감했다. 혹시 엄마가 나와 같은 이유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라고.
'엄마 얘기, 자세히 알고 싶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는 말했다. 물으면 안될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뺄 수도 없었다. 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나의 상상을 가볍게 넘어서는 사실이 튀어 나왔다. 잔혹하게, 무섭게, 사는 것에 절망을 느끼는 이유를 알게되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아버지, 즉 나의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남자는 살인범. 남자가 죽인 사람은 할머니 일가족이었다. 할머니 집에 강도로 넘어 들어간 남자는 가족들과 딱 마주쳐버려 일가족 세명을 참살해버렸다고 한다. 할머니 만큼은 죽이지 않고 남겨두어 그 자리에서 ㅁㅁ해버렸다. 그래서 엄마를 임신한 것 이었다.
남자는 붙잡혀 사형당해 버렸다고 한다. 집행되어 이미 세상에는 없었다. 어째서 할머니는 엄마를 지우지 않고 낳았었을까. 그 이유는 엄마에게도 모른다고 했다. 할머니는 엄마를 5살까지 키우고서는 자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엄마는 시설에 맡겨졌다.
'엄마가 나를 낳은 이유를 몰랐어.' 그래서 나를 지우지 않았다. 그게 나를 낳은 진짜 이유였다.
'그래서 엄마는...할머니가 엄마를 낳은 이유, 알게 됬어?' 이 질문에 엄마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다만, 아마도 엄마의 엄마는 어차피 곧 죽을 참 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어차피 모두 죽어버렸으니까, 뒤를 이을 각오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임신한 것을 눈치채서... 살인범의 아이라고 해도 새로운 생명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기도 하고... 그러니까 죽이지 않고 낳아서 어느정도는 키워 준 걸까.'
배 속 아이를 죽이는 행위가 살인범의 행동과 겹쳐 보여서 혐오한 것 일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자기 가족의 시체를 눈앞에 두고서 ㅁㅁ당했다. 죽고 싶을 정도의 절망감이나 강한 트라우마가 심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생겨버린 엄마를 지우지 않고 자기 가족을 죽인 인간의 아이를 낳았다. 생각한 것 만으로도 무서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
'너하고는 관계없으니까 신경쓰지마.'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무리였다. 나는 태어나서는 안돼는 아이였다. 역겨운 죄의 증표였다. 이 세상의 산소를 들이마셔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라도 견딜 수 없게 되면 엄마한테 말해. 언제라도 죽을 준비는 되어 있으니까.'
나는 터무니없는 환경하에서 태어난 것이다. 엄마도 그렇다. 고통받으면서 살면서 엄마도 할머니와 같이 ㅁㅁ당해 나를 가지게 되어, 출산해 지금까지 같이 살아왔다. 죽고 싶다, 라기 보다는 이제는 사라지고 싶다. 하지만 과거를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기자신을 지우기 위해서는 죽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내가 없어지면 엄마도 죽는다. 그게 정말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살 수 밖에 없었다. 이 징글맞는 절망적인 세상에서. 반강제적으로.
5.
엄마의 출생 이야기를 들은 후로 나의 마음은 급격히 까맣게 타들어 썩어져 갔다. 정신 상태가 나빠지면 엄마의 약을 멋대로 꺼내 먹고는 했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정신과의가 필요하게 되었다. 엄마가 다니고 있는 멘탈 클리닉에 다니게 되었다. 고등학교에는 무사히 진학하게 되었지만 거의 가지 못했다.
학교 생활에는 조금도 익숙해지지 못하고 그곳에 가는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못 나오면 제대로 된 직장을 못 구한다. 엄마 자신이 중졸이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으면 하다못해 고등학교 정도는 나와라고 엄마는 말버릇 처럼 말했다. 대학을 나오면 훨씬 좋지만 엄마 수입이 적으니까 대학에 진학할 경우에는 어느 정도 스스로 해결해라고도 말했다. 내가 자주 쉬는 것을 알고서는 갈 마음이 없고 혹시 죽을 생각이라면 빨리 그렇게 해달라고도 말했다.
엄마는 내 존재를 조금이나마 혐오하고 있었다. 혐오하면서도 자기와 나를 위해 일해서 고등학교에도 보내주었다. 앞으로 가슴으로 펴고 살아갈 자신은 없었지만 할 수 있다면 엄마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기에 일단은 힘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고 목표를 세웠다. 병행해서 또다시 클럽에서 일하자고 생각했다. 키스방도 생각했지만 모르는 불특정다수의 남자들과 살을 섞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일단은 구색이나마 엄마는 나를 소중하게 키워줬었고, 나도 내 나름대로 자신을 소중하게 해 왔었다. 돈 때문에 성을 싸게 팔고 싶지는 않았다. 존재에 자긍심을 가지고 싶었다. 육체적 관계는 고를 수 있는 쪽에 서고 싶었다.
나이를 속이고 클럽에 취직했다. 오는 손님들은 이상은 짓을 해오는 사람이나 결국에는 나의 몸을 노리는 사람들 뿐.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손님과 사귈 생각은 없었다. 손님이라고 선을 긋고 있었다. 즉 클럽에 오는 상대들은 모두 대상외였다. 상대가 부자여도 나는 얼마나 짜낼 수 있을까만을 항상 생각하고 행동했다.
몸을 요구해오면 반드시 피했다. 그렇게 나름 잘 해내가면서 손님에게 끌려가는 경우는 없었지만 거리에서 멋진 사람에게 헌팅당해 따라가는 경우는 몇번인가 있었다. 사귀어 본 경우도 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면 나르시스트나 골빈 남자 뿐이었다. 내 생각은 조금도 해주지 않았다. 사랑해 주어도 그건 겉치레 뿐이고, 자기만 생각하는 놈들 뿐이었다. 남자 경험이 늘어나면서 처음에 사귄 19살 대학생이 얼토당토않는 쓰레기 남자였음을 깨달았다.
'엄마, 혹시 이 세상에 제대로 된 남자는 없는거 아냐?' 밤에 엄마와 술을 마시는 중에 그렇게 질문했다. 엄마는 코로 웃었다. '너 16이잖아? 그 나이로 용케도 깨달았네. 머리 좋네.'
칭찬받아서 기뻤다. 엄마는 지금까지 사귀어 온 남자들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의존할 수만 있다면 철저하게 달라붙는 기둥서방, 자기 스스로에게 무엇하나 자랑할 수 없어 화가 나면 일단 때리고 차고 폭력을 가하는 얇아빠진 폭력남,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못생긴 나르시스트남, 자기 머리의 나쁨을 방패로 금방 사과해서 무엇하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미안해남.
엄마가 목매달기 자살을 시도했을 때의 남자는 사귀어 온 남자들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극히 평범한 남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평범한 나머지 엄마의 정신구조를 이해하지 못해 이별을 통보한 것이었다. 그 남자는 엄마가 역으로 헌팅해서 붙잡았다고 했다.
'슬금슬금 달라붙는 남자들은 대체로 정신머리가 없어. 안 달라붙는 남자 쪽이 순수하고 성실한 경우가 많지.'
그렇구나.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순수하고 성실하니까 추근덕 거릴 수가 없는거다. 그런 남자 쪽이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라고 엄마는 분석했다.
'다가오는 남자는 싸구려야. 자기 욕망을 밀어붙이기만 하거든. 사랑스럽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남자 쪽이 젝팟이야. 그런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줘. 포용력도 있지. 엄마는 많은 경험을 해서 그걸 알게 됬어. 다음번에 그런 남자를 찾으면 미친 척 하고 가슴에 뛰어들어 봐. 그래도 질려버리면 잘 좀 엄마한태 패스해줘.'
나는 웃으면서 '알겠어, 엄마.' 라고 대답했다.
6.
내 스스로 먼저 말을 건 적은 한번도 없었다. 저 사람은 상냥해 보이네, 라고 생각하면서 스쳐지나가는 경우는 자주 있었다. 그런 매너 있어 보이는 남자들은 절때로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학교를 쉬고 클럽 출근 전에 거리에서 남자를 찾아 헤멨다. 먼저 말을 걸어오는 놈들은 전원 무시했다. 그런 사람이 아닌, 나를 빤히 바라보는 성실하고 순수해 보이는 남자를 찾았다. 발걸음이 빈번한 장소에 있으면 그런 사람은 금방 눈에 띄였다. 거의 뷔페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막상 말을 걸려고 생각하면 긴장해버린다. 간단하다고 상상했었는데 실제로 남자를 눈 앞에 두면 어떻게 말을 걸어 거리를 좁혀야 할지 몰랐다. 나를 봐주는 좋은 남자를 찾아도 옷깃만 스치며 흘깃 바라보는게 전부였다.
'엄마 좋은 남자를 찾아도 나부터 말을 거는게 너무 힘들어.'
밤에 술상을 걸치며 나는 엄마에게 상담했다. 엄마는 그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가볍게 헌팅할 수 있는 사람은 좀 머리가 이상한거야. 너는 정상이니까 안돼는거고.' 정상, 이라는 단어는 위화감이 있었다. 자기가 정상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그것을 입에 담으니, '엄마보다는 몇 백배 나아.' 그렇게 말 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엄마도 나도 쌤쌤일 정도로 정상이 아니야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키득키득 웃어 주었다. '말을 먼저 안거는 좋은 남자한테 말을 걸어봐.'엄마는 잔에 들어있던 술을 마저 마시며 나를 바라봤다.
'그럼 이렇게 하자. 다음번에 거리에 나가서 네가 남자한테 말을 못 걸었을 땐, 그 때는 엄마랑 죽자. 연탄자살로.'
역시 이딴 말을 하는 사람이 정상일리가 없다.
'알았어. 엄마.' 그리고 이런식으로 가볍게 승낙하는 나도 정상일리가 없었다.
7.
남자를 잡지 못하면 죽는다고 그걸 의식하니 내 안에 걸려있던 제어가 맥없이 풀려버렸다. 터미널 역의 넓은 실내에서 이목구비가 뚜렸한 검은 머리의 성실하고 순수해 보이는 남자를 발견해 그 사람이랑 확실히 아이컨텍트를 하고는 가슴에 뛰어들 기세로 다가갔다. 랄까, 정말로 뛰어들었다. 진부한 수법이지만 휘청하고 몸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며, 발을 휘청거려 남자의 가슴에 뛰어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자못 미안하듯이 말을 걸어보니 남자는 곤혹하면서도 '괜찮아요?' 라고 신경 써주었다. 나는
가슴을 쥐어잡고 희미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면서 괜찮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
'정말로 괜찮아요?' 남자는 붙임성 있게 웃었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상태가 안좋아 보이는데....'
이 시점에서 나의 직감이 말했다. 이 남자는 대박이다.
'정말로 조금 컨디션이 나빠져서...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사람이 많이 있으면 저 때때로 기분이 나빠지거든요.' 남자는 입을 열면서 몇 번인가 끄덕였다. '그거 알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남자는 자기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그런 다음 무엇인가를 생각하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렇게나 시선을 날리고는, 그 눈이 나와 마주쳤다.
'여기서 조금만 걸으면 녹지공원이 있는데요, 정 힘들면 거기까지 같이 가실래요? 나무 그늘에서 쉬면 조금은 증상이 가실지도 모르잖아요. 어때요?'
당연히 거기까지 같이 가기를 선택했다. 이동중에도 그는 나의 안색을 살펴봐 주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내가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자 그는 마실 것을 사올지 물어왔다. 그걸 애써 사양해도 혹시 열이 날지도 모르니까 스포츠 음료수라도 사오겠다고 말하면서 신경 써주었다. 거짓말처럼 상냥한 남자였었다. 나는 역으로 불안해졌다.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나랑 하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대화하는 도중에 저도 모르게 수상한 상품을 권유당할지도 모른다.
자기가 꼬셔 놓고서는. 나는 여러가지 상황을 생각하면서 멋대로 걱정했다. 일단은 마실 것을 사오겠다고 말하고는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케이스를 상정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그럴게 지금 버림받으면 확실하게 나의 자살희망이 부풀어 올라 오늘 밤중에 엄마와 동반자살을 해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따라갈려고 했지만 남자는 강한 말투로 기다려 달라고 말해왔다. 여기서 쉬어달라고 못 박혔다. 나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강하게 부탁하는 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기다렸다. 30초정도가 흐르니 더욱 불안이 몰려왔다. 일분이 지나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버려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자 전신이 떨려왔다. 저걸 절때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저것은 나를 정말로 걱정해주고 신경써주고 상냥하게 대해 주었으니까.
일분 삼십초정도가 지났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핸드백에 손을 찔러넣어 나이프를 꽉 쥐었다. 팔을 그을 자신을 끝도 없이 상상했다. 다해서 2분이 경과했다. 팔을 긋자고 정한 순간 겨우 그것의 모습이 보였다. 페트병을 두 병 쥐고 있었다. 나는 애써 냉정해지자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꺼내려고 했던 나이프를 놓았다. 기분이 밝지 않는 얼굴을 했다. 그가 옆까지 다가왔다.
'꽤나 멀리 사러 가셨네요.' '응? 전혀 아니에요.' 그가 고개를 젓는다.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사왔어요.'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그러고보니 도중에 편의점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여기요.' 라고 페트병을 나에게 내밀었다. 감사를 표하고 받아들어 뚜껑을 따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목 말랐어요?' 갑자기 그런말을 들었다. 자세히 보니 한 모금만 마신줄 알았는데 반절이나 마셔버린 것을 깨달았다. 사실은 꽤나 동요해서 긴장했었는데 그 탓에 마실 것이 필요했었다. 목 말랐어요, 라고 대답하고 나는 핸드백에서 장지갑을 꺼냈다. '얼마였어요?' 그렇게 물어보니 어째서인가 남자는 가볍게 웃었다.
'제 쪽에서 끌고 온 거고, 돈 내라고 할 생각도 없었어요.' 남자는 음료수를 입에 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마음 속에서는 이 상냥한 남자를 어떻게 붙잡을까하고 필사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기분은 어때요?' 남자는 병 뚜껑을 닫았다.
'조금 괜찮아 졌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남자는 부드러운 웃음을 보여 주었다. 나의 가슴은 메어질 듯 옥죄여 와 얼굴에 열이 화끈 달아올랐다. 헌팅하지 않는 남자들 중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이 넘치도록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대박을 뽑은 것일까.
갑작스레 착신이 울렸다. 아, 라고 남자는 중얼거리며 주머니를 뒤졌다. 남자의 휴대폰이 울리는 듯 했다.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고서는 만지기 시작했다. 문자 수신인 것 같았다. 지금이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됬다. 나도 슬쩍 휴대폰을 꺼냈다. 일단은 남자가 먼저 연락처 등을 묻는 것을 기다려 보았다. 이 다음 예정을 묻는다면 더욱 좋았다. 나는 어디까지라도 따라 갈 참이었다. 당일결근은 벌금을 물게 되지만 이 남자를 위해서라면 상관없었다.
'그럼 저는 가볼께요.' '에?'
갑작스럽게 내쳐져 버렸다. 그 상황이 이해가 안갔다.
'역 앞에서 누구랑 만나기로 했거든요.'
남자는 역 쪽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좋게 대해 준 것에 어떤 가능성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무서워서 묻고 싶지는 않았지만 목 안쪽에서 떨어지지 않는 말을 애써 꺼냈다.
'여자친구..?'
남자는 작게 웃으며 어딘가 부끄러운 듯이 그렇다고 머리를 긁었다. '뭐, 그런 셈이죠.'
휘청하고 전신이 흔들린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렬한 상실감에 휩싸여 소중한 부분이 한번에 사라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눈 앞이 거의 새하얗게 변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 그렇구나.' 라고 답했다. 남자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뭔가 상냥한 말을 나에게 전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서는 손을 흔들어 주길래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게 손을 흔들어 답해주었다. 눈 앞에서 남자가 사라져 갔다.
망연자실. 남자가 없어져서도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입술이 떨렸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30초정도 지나도 손을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몇 미터 앞에서 건들건들 해보이는 금발을 한 남자가 나를 가르킨다. 옆에는 검은머리의 작은 체형의 남자가 있었다. 금발남이 나를 향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눈 안에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나는 뭐가
뭔지 잘 구분이 가지않아 계속 손을 흔들었다.
두사람의 남자들은 내 곁으로 와, 검은 머리가 더듬거리는 말투로 무언가를 말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적당한 말을 내뱉었다. 금발남이 가벼운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연락처를 가르쳐달라고 말하자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건내주었다. 검은 머리가 '됐다!' 라고 기뻐했다. 휴대폰을 돌려주자 지금 한가한지 어떤지를 물어왔다.
나는 멍하게 먼 곳을 바라보며 끄덕였다. 금발남이 나의 팔을 잡고서는 끌어 당겨왔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걸었다. 어느샌가 노래방에 들어와 있었다. 남자들이 노래를 부른다. 나는 계속 멍하게 있었다. 이상한 여자네, 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서는 금발남이 내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검은머리가 그런짓을 해도 괜찮냐며 금발남에게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약 같은거라도 먹어서 머리가 이상해진 걸꺼야. 그런 말이 들렸다. 어느샌가 쇼트팬츠도 속옷도 벗겨져서 금발남의 성기와 나의 성기가 이어져 있었다. 금발남이 가자, 너도 해라고 검은머리에게 말했다. 검은 머리도 나에게 성기를 삽입해 왔다. 검은 머리만큼은 아까 만난 남자와 같았기에, 그와 하는 자신을 떠올렸다. 그러자 조금이나마 몸이 느껴졌다.
8.
'엄마 죽고 싶어.'
엄마가 돌아오자 현관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ㅁㅁ당한 다음 일은 거의 기억하지 않았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전철에 타면서 전철에 뛰어들어서 죽을까 말까를 고민한 것은 어렴풋이 기억했었다. 쇼핑봉지를 양손에 들고 있던 엄마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세번 끄덕였다.
나는 이미 껌테이프를 꽉 쥐고 있었다. 방안의 틈새를 테이프로 메운 뒤, 엄마와 함께 술로 수면제를 잔뜩 들이켰다. 졸려 오자 엄마가 연탄에 불을 지피고는 이불에 들어갔다. 일산화탄소가 방안을 가득 메워왔다. 시종일관 아무말도 없었다.
'엄마.' 곁에서 누워있는 엄마를 불러 보았다. 이별을 말하고 싶었다. 엄마는 '응?' 이라고 다시 물었다.
'고마워요.' 엄마는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은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아 갔다.
'고마워...' 눈을 거의 감는 찰나에 엄마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무거워지는 의식에 저항하며 눈을 떴다.
'지금 고맙다고 말했어?' 엄마는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음을 띄었다.
'딸이랑 죽을 수 있어서 엄마는 기뻐.'
나도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엄마 마지막으로 소원이 있어.'
'뭔데? 어차피 곧 죽을 꺼니까, 뭐든 말해.'
나는 천천히 끄덕였다.
'머리 쓰다듬어 줬음 좋겠어.'
의외의 말이었는지 엄마는 눈을 크게 끄고서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쓰다듬어 줬음 해.'
한번 더 말해 보자 엄마는 원래 표정으로 돌아가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 손이 나의 머리에 놓인다. 내가 눈을 감자
엄마는 쓰다듬어 주었다. 정말로 좋은 느낌이었다.
'하나만 더 땡깡부려도 돼?'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뭔데?'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의식이 잠겨져 온다.
'엄마 가슴 안에서 죽고 싶어.'
그것을 나 자신은 말했는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입을 열고 말을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전해주고 싶어 다시
한번 말하고 싶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목소리를 짜낼 수 없었다. 이제 저할 할 수 조차 없었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얼굴에 닿는다. 전신이 감싸진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나를 안아주고 있다, 라는 상상을 하며 행복을 음미하면서 몸에서 힘을 뺐다. 아마도 나는 눈물을 흘렸다. 흘렸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울었다.
마지막으로 애정이나 행복감을 맛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놓아 버리는게 아쉽지만 이제 다 끝나는 것 같아서 엄마의 사랑을 향해 이별을 고했다.
멀리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린... 느낌이 들었다.
[에필로그]
하얀게 눈에 들어왔다.
새하얗다. 지금 천국인걸까. 랄까, 천국이 정말로 있었구나.
눈에 사람의 형상이 들어왔다. 안내인 인걸까. 간호사 같은 옷차림의 여성이었다. 나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몸에 힘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줬음 했다.
'.......키, 미....키...'
들은 적이 있는 말.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 몇번이고 몇번이고 들렸다. 의식이 돌아옴과 동시에 나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을 왼편으로 돌렸다.
'미키!'
시선 끝에 엄마가 있었다. 떨어진 침대에서 누워있었다. 엄마는 몇번이고 나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었다. 간호사 같
이 옷을 힘은 여성이 선생님을 불러 오겠다고 내 곁에서 멀어져 갔다. 천국에는 선생님도 있구나, 라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생각을 한 다음 순간에 겨우 사태가 이해되었다.
'안 죽은 거야?'
엄마는 끄덕이며 '나도 모르게 그만..' 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전부터 계속해서 약을 먹어 왔기에 내성이 붙어 있었다. 약빨이 늦고 효과도 그렇게 쌔지 않다고 한다. 내 머리를 쓰다듬고 껴안으면서 흐려지는 의식중에 격렬한 위기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것은 어미로써의 본능이라고 했다. 나와 함께 죽을 셈이었지만 몸이 멋대로 움직여 버렸다. 아이를 지키려는 본능이 외치는 대로.
'순간 풍로를 창문을 향해서 던져 버렸어. 창문이 깨졌는데, 그래도 금방 연기가 빠지지를 않아서.. 나도 거의 의식을 잃어버렸는데, 어찌해서 구급차를 부른거야. 그 뒤 일은 떠오르지가 않아. 아마 거기서 의식이 끊긴게 아닐까 해. 정신을 차리니 병원에 있었고 이불에 들어가 있었던 네가 옆 침대에 누워있었어... 엄마있지, 정말로 안심해버렸어. 죽을 생각이었는데...' 엄마 혼자었으면 깨끗하게 죽을 수 있었었어, 정말로 죽었을 꺼야,
라고 어딘가 분한듯이 그렇게 엄마는 중얼거렸다.
엄마가 의사와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고서는 의사가 나가자 한번에 조용해 졌다. 2인용 방이라 엄마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나와 등을 마주하고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엄마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침묵이 5분정도 이어진 뒤 나는 품어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엄마 고마워요.'
죽고 싶었지만 엄마가 필사적으로 나의 목숨을 지켜줬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레 감사의 말이 올라왔다. 엄마는 등친 채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 사랑해요.'
그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말한적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언제나 품어두고 있었다. 말하고 싶어도 꺼내기가 힘들었다.
'엄마는 복잡해...'
가냘픈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엄마를 죽게 해주지 못한 죄악감이 나를 질책한다.
'하지만'
라며 거기서 엄마의 말이 멈췄다. 뭘까? 라고 나는 엄마의 말을 계속 기다렸다.
'....네가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의 입언저리가 흔들렸다. 한순간에 지금까지 보내 온 인생이 생각나 왔다.
'나도 사실은 복잡해.' 눈물섞인 소리가 났다. '하지만 엄마가 날 낳아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떨어진 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라고 엄마가 중얼거렸다.
창문 밖에서는 빨간색 빛이 비집고 들어와 방안은 빨갛게 물들어 갔다. 물론 빛은 창문 밖에서 보이는 태양이 발하고 있었다. 아침 해인걸까? 석양인걸까. 어느쪽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예쁘다고 생각했다.
'엄마'
엄마의 손이 움직였다. 얼굴을 닦는 듯이 보였다. 엄마는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상관치 않고 나는 물었다.
'아직도 죽고 싶어?'
엄마는 천천히 한숨을 뱉었다. 그러고는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래..' 아주 조금, 슬펐다. 그렇게 생각되는 것은 자책감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라고 거기서 엄마의 말이 멈췄다. 뭘까? 라고 나는 엄마의 말을 계속 기다렸다.
'미키가 살아있는 한, 안 죽어.' 등을 돌린채 그렇게 엄마는 단언했다. 말투는 조금 강했다.
그것은 어느 쪽일까? 나한태 죽어라는 것 일까, 죽지 말아달라는 말 일까. 물어볼까 말까 망설여 버린다.
'너는 죽고 싶니?' 물어볼까 하는 차에 엄마의 질문이 날라왔다. 나는 작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엄마가 살아있으니까 죽을 수 없어.' 엄마가 몸을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그럼 엄마가 죽으면 죽을꺼야?' '죽겠지만... 엄마가 안죽었음 좋겠어.' 정직하게 마음을 전해보았다.
'그래... 그럼 간단해. 네가 안죽으면 되는거야.' 엄마는 무표정이었다.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나 계속 살아야겠네.'
'꼭 그런 법도 없지. 언제든 죽는 건 네 자유니까. 엄마 일은 신경쓰지 말고 죽고 싶을 때 제대로 죽어버려.'
그리고는 엄마도 죽겠지.
'쿡...' 어째서인지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왜 웃는거야?'
'아무것도 아냐.'
역시 나는 엄마가 좋았다. 엄마를 사랑했다. 나만 살아있다면야 엄마도 계속 살아갈 겄이다. 내가 죽으면 엄마도 죽겠지. 엄마는 혼자 멋대로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 절때로 죽음을 책망하지도, 삶을 원망하지도 않고 엄마는 약간 혐오하고 있는 나를 여기까지 길러 주었다. 거기에 강렬한 엄마의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죽고 싶었지만 동시에 살고 싶었다. 사는 것이 엄마에게 은혜를 갚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엄마의 삶을 이어 받고 싶었다. 엄마의 사랑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엄마를 계속 사랑하고 싶었다.
우리들이 살아가기 위한 산소는 충분히 있으니까, 아주 조금만 더 이 세상에서 둘이서 계속 숨을 쉬고 싶었다.
(끝)
원작 : 死にたいママと死にたいあたし
좌표 : http://banibaninobody.web.fc2.com/
번역 : http://danyn.egloos.com/
번역은 아침에 시작했는데 밤에 끝나네요. 아침에도 (미완성) 올렸지만 지우고 완전판을 올립니다.
재밋게 읽엇어요 뭔가감동..
번역 수고많으셨어요!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