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당시에는 단기 4293년이라 불리우던 해에는 혁명이 일어 났다. 4월에 국민들은 혁명을 일으켜 10년 동안 집권하고 있던 독재자를 내쫓았고, 헌법을 바꾸었으며, 그 전까지의 대한민국을 “제1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끝내고, 새롭게 “제2공화국”을 세웠다. 계절이 바뀌어 9월 즈음이 되자, 새 공화국의 총선거도 끝이 나고 세상 돌아 가는 것이 조금은 더 여유로워진 느낌이었다. 신문에는 로마에서 열린 올림픽 소식이 실리거나, 하와이로 망명한 이승만 박사가 돈이 없어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가십처럼 소개 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무렵 서울역 주변 사정은 어느 시기 못지않게 혼란스러웠다. 전쟁이 끝난지 7년째가 되어 산업이 안정되면서, 파괴된 서울은 점차 새로운 도시로 복구 되고 있었다. 돌아 오는 피난민과 전쟁통에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사람들이 같이 서울로 몰려들면서, 그 입구가 되는 서울역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그 때에는 고속도로도 없었고, 비행기를 타는 사람도 극소수였기 때문에, 서울을 드나드는 사람은 모두 철도를 이용해야 했다. 그러니 서울역에 몰려드는 온갖 사람들로 인한 혼돈은 매일이 혁명이고 매일이 전쟁 같았다.
이 무렵의 보도를 보면, 서울 시내에서 일어나는 소매치기 사건의 절반 가량이 서울역에서 벌어진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강도, 절도라든가 당시 속칭 “네다바이”라고 불리웠던 서울에 갓 도착한 시골사람들을 상대로하는 사기꾼들의 범행이 아주 흔했다. 좁은 통로로 기차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 떼가 무서운 기세로 밀려드는 것은 그 모든 죄악을 휘젓는 파도 같았다. 1월에는 열차를 타려고 사람들이 그저 갑자기 몰려 드는 것, 그것만으로, 넘어져서 깔리고 짓밟히는 사람 중 무려 31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한 기막힌 참변이 생기기도 했다.
9월 8일의 서울역도 평소처럼 같은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웠다. 아직 후덥지근했고, 하늘은 흐려서 더 찜찜하고 불길한 날씨였다. 낮에는 기온이 25도 쯤까지 올라갔으므로, 서울역 사람 틈을 헤치고 나오면 끈끈한 살 부딛기는 느낌이 답답했다. 밤이 되어도 온도는 17, 18도까지 밖에 내려 가지 않았다. 바글거리는 사람들과 귀가 멍멍한 소음 사이로 피곤하게 헤쳐 나오는 밤 승객들은 대부분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 중에 경기도 광주에서 사는 박 아무개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미 밤은 한참 깊어 시각은 새벽 3시였다. 박씨는 서울역 앞의 길가에 있던 화장실에 가는 길이었다. 전차 노선과 열차 노선 사이에 자리 잡은 화장실이었는데, 지금으로 따지자면 서울역 2번 출구나 3번 출구 어귀쯤의 위치가 된다. 도시를 움직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는 화물 열차나 화물 차량이 있었기 때문에, 깊은 밤이라고 해도 아주 적막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박씨가 화장실 건물에 들어설 때만 해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고 별다른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여자 화장실 쪽으로 들어 갔을 때, 맨 안쪽에 온통 뻘건 것이 묻은 작은 덩어리가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그것은 작은 남자 아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살아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박씨는 화장실 바깥으로 나와 경찰에 이 사실을 이야기 했다. 남대문 경찰서에서는 화장실에 가서 시체를 확인했다. 시체는 7세에서 8세 정도의 남자 어린이였다. 소년이 죽은 모습은 처참했다. 칼로 살해한 시체였는데, 사람을 그저 죽인 모양이 아니었다. 칼 자국이 머리, 배, 다리에 크게 나 있었는데, 두 허벅지 부근에는 살을 한웅큼 도려낸 흔적이 있었다. 한쪽은 손바닥만한 크기로 살이 잘려 나가 있었고, 다른 한쪽은 그 보다도 더 큰 양이 잘려 있었다. 배에도 손바닥만한 크기로 잘려 나간 자리가 있어서 훼손 된 모습이 처참했다.
조사 결과 소년을 죽인 상처는 머리 뒤에 생긴 것이었다. 뒷목 쪽을 통해 깊게 칼질을 한 자국이 있었다. 그 한 번의 칼질로 소년을 단번에 죽인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머리 뒤쪽에는 서너차례 칼질을 한 자국이 있었다. 시체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져 부검 되었고, 사건이 알려지자 언론은 다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라며 이 사건을 보도 했다.
그런데 시체가 발견 되던 것과 거의 같은 시각, 서울역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17세의 청소년 한 명이 이상한 모습으로 목격 되었다. 새벽 3시의 깊은 밤이었는데, 혼자서 목적지도 정해 두지도 않은 것처럼 원효로 일대를 걷고 있는 여성 청소년이 있었던 것이다. 어딘가에 취했거나 잠이 덜 깼다거나 혹은 강한 충격을 받은 것 같은 상황이었는지, 정신이 똑바르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옷 앞자락에는 핏자국과 같은 붉은 것이 묻어 있어서 더욱 괴상해 보였다.
우연히 순찰을 돌던 경관이 이 청소년을 목격해, 사는 곳과 신분에 대해 물어 보려고 했지만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경관은 수상하다고 생각하고 소녀를 조사 했다. 조사 과정에서, 소녀가 임 아무개 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임양의 옷이 안쪽 까지 깊게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임양은 처음에 자신이 남자에게 습격을 당해 이런 꼴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임양의 속옷 쪽에서 이상한 물건이 세 덩어리 발견 되었다. 임양은 그것이 어떤 20대 남자가 자기에게 준 “쇠고기 조각”이라고 말했다. 이 수상한 소식이 퍼져 나가면서, 화장실에서 발견된 소년의 시체에 대해 조사하던 경찰도 임양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경찰은 임양과 죽은 소년의 관계에 대해 알아 보기로 했다. 결국 임양이 갖고 있었던 “쇠고기 조각”은 사람으로부터 잘라낸 살로 확인되었다.
임양과 대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임양은 한 가지 이야기를 똑똑히 들려주지 못했다. 임양은 횡설수설하며 말을 제대로 못 이었다. 중간중간 갑자기 발작해 날뛰기도 했다. 긴 대화 시도 끝에 임양은 자신이 서울역 근처 화장실에 그 소년의 시체를 버린 사람이라는 것까지는 실토했다. 즉 자신이 소년을 보았을 때 이미 소년은 죽은 상태였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임양은 칼을 든 20대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자기에게 소년의 시체를 처분하라고 협박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20대 남자 두 명이 죽은 소년의 시체를 들고 왔으며, 50센티미터 길이 쯤 되는 긴 칼을 흉기로 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체를 버리라고 지시한 뒤에, 집에 가져 가 먹으라면서 고기를 주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그렇게 긴 장검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양은 자신은 그 정체불명의 남자가 협박했기 때문에 시체를 버리기만 했을 뿐, 남자가 누구인지, 소년이 왜 죽었는지, 소년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경찰은 소년이 왜 죽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소년이 누구인지 알아내고자 했다.
그렇지만 소년의 신분을 알아낼 만한 단서는 없었다. 소년의 옷차림으로 볼 때 시골 아이인 것처럼 보인다는 정도의 막연한 느낌이 전부였다. 소년의 시체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실종된 아이를 찾는 사람들이 혹시나해서 계속 다녀 가기도 했지만, 자기 아이로 알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건은 기자들 사이에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17세의 청소년이 칼로 소년을 죽여 서울역 화장실에 버리고, 그 살을 잘라서 들고 밤거리를 떠돌아다니다가 붙잡혔다니, 마귀에라도 들린 것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나 보다. 사건 소식은 연이어 보도 되었고, 왜관이나 칠곡 등지에서 실종 사건으로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고 아이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로 올 정도였다.
수사가 진전된 것은 임양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서 부터였다. 임양은 원래 고아원과 같은 보육시설에서 자란 아이였다. 그러다가 얼마 전 자신의 두 언니를 오래간만에 만난 형편이었다. 임양의 언니들에게 연락이 닿자, 임양의 언니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임양의 범행 동기를 설명해 주었다. 바로, 임양은 사람의 살을 먹으면 자신의 발작증세를 고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약을 구하기 위해 일을 저지른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신문기사를 보면, 임양이 뇌의 질명으로 인한 발작 증세를 어릴 때부터 앓아 왔고, 경찰 조사 중에도 수시로 계속 발작을 일으킬 때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절은 이런 부류의 병을 가진 환자에 대한 편견이 많았으며, 그에 비해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는 비교적 허술했다. 그러므로, 정확히 임양이 어떤 병에 걸렸던 것인지 지금에 와서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임양 스스로도 자신이 강한 발작증세를 갖고 있다고 인정한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경찰은 임양이 발작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어린이를 유인해 죽이고 어린이의 살을 약으로 쓰기 위해 잘라 냈다고 믿게 된다. 비슷한 사건은 멀지 않은 시기 가끔 발생하고 있었다. 사람의 살이나 장기가 불치병의 약이 된다는 믿음은 중세 때부터 내려 오고 있었고, 인체의 일부를 약으로 쓰는 것은 옛 서적에도 소개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과 같은 해에 대구에서 발작증세를 고치겠다며 무덤을 파헤쳐서 시체의 일부를 약으로 쓰려는 범죄가 발각된 일도 있었다.
이후 임양 주변 사람들이 들려준 임양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이런 신문기사들에 따르면 임양은 잔인하고 표독스러웠다고 되어 있다. 고아원에 있을 때에는 자기보다 훨씬 작은 아이와 다툴 때에도 쉽게 봐주는 법이 없이 반드시 돌멩이로 때려서라도 핏자국을 내 주어야 하는 성격이라는 기사도 보인다. 또한 정신적인 충격을 받으면 곧잘 발작증세를 보이는 위험한 아이로서 특별 대우를 받아, 다른 아이들이 하는 허드렛일이나 청소는 전혀 하지 않고, 음식도 항상 맛있는 것만 대접 받아 먹으며 지냈다는 이야기도 신문에 실렸다. 그러면서도 영리한 편이라 글씨를 잘 썼고, 특히 수학에 뛰어나 칭찬을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 도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임양은 7세 때인 한국전쟁 중에 폭격 피해를 당해 집안이 망했는데, 이때 부모는 사망하고 언니 오빠와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고아원에서 지냈는데, 그러다가 10년만에 결혼해 살던 둘째 언니를 먼저 만나게 되었고, 그 후 혼자 사는 첫째 언니도 알게 되어 첫째 언니를 찾아가 같이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않아, 발작증세를 이유로 언니에게 학대를 받아 다시 떠났거나, 혹은 발작증세 중 자신이 저지른 행동 때문에 언니에게 쫓겨 났다는 것이다.
그 후, 임양은 부랑자가 되어 서울 시내를 떠돌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발작증세가 모든 문제의 이유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발작증세 때문에 고아원에서도 외톨이였고, 오래간만에 만난 가족에게도 다시 버려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슨 수로든 그것을 고치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때, 예전에 동네 노인이 호랑이 간이나 사람의 살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헛소문을 들려준 기억이 났고, 그래서 한 소년을 유인해 살해했다는 것이 당시 신문지상에 게제된 소문이었다. 임양이 예전에 언니에게 “호랑이 간을 구해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라고 소개된 기사도 보인다.
그렇지만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보인다. 임양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자신의 죄를 자백하지 않았다. 그처럼 소년을 살해하고 그렇게 많은 양의 살을 잘라내기 위해서는 요령과 힘,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미리 큰 칼을 구해야 했고 그 칼날을 잘 들게 갈아 준비해야 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준비가 필요하다면, 17세의 청소년으로 발작 증세를 갖고 있어 곧잘 횡설수설하는 임양 보다는 “정체불명의 20대 남자” 쪽이 범인으로 그럴듯하지 않냐는 것이다.
게다가 날카롭게 잘 갈아 놓은 흉기가 필요했을 텐데, 흉기 또한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에서는 결국 화장실을 온통 뒤집어 과도 한 자루를 발견하고, 거기에 날카롭게 벼린 자국이 있다면서 그것을 흉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임양은 그 후에도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저 뜬금 없이 “쇠고기를 조각조각 잘라 먹어야 한다” 따위의 알수 없는 이야기만 강조해서 말했다고 한다.
마침내 임양은 다음해 1월 15일 이 사건의 피고로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검찰은 임양을 범인으로 보고 15년형을 구형했다. 그렇지만, 판결은 임양이 저지른 일을 인정하면서도 유죄는 인정하지 않는 기묘한 것으로 끝이 났다. 즉, 임양이 소년을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한 것이 맞다고 판단하면서도, 당시 임양이 발작 상태였고 이에 따라 이 무렵의 기억도 잊게 되었다고 보고, 정신병에 의한 심신상실로 무죄방면한 것이다.
이후로는 임양에 대한 소식은 어디에서도 알 길이 없다. 이후로 임양이 어떤 치료기관에서 관리를 받았는지, 아니면 다시 언니들의 집이나 고아원으로 돌아 갔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사망한 소년의 신원 또한 끝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역전을 떠도는 걸인이라는 추측이 돌기도 했다. 서울역의 혼란통에 버려지거나 잃어 버린, 그 시절의 많고 많은 잊힌 아이일지도 몰랐다.
지금 남아 있는 이 이야기 속 임양의 모습 중에 어떤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 지 또한 짐작할 길이 없다. 경찰의 주장대로 보자면, 임양은 자신의 발작증세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을 제압하고 편안하게 생활하다가 병을 고치기 위한 치밀한 계획으로 죄 없는 소년을 살해하고 다시 발작증세를 무기로 이용해서 처벌을 피해간 사람일 수 있다. 과연 그 가능성이 높을까? 한편으로는 전쟁 고아인 동시에 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로 여자 화장실에서 시체를 발견한 후 발작하여 착란상태에서 시체를 훼손한 것일 수도 있다. 혹는 정말로 정체불명의 20대 남자 살인범이 있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만약 임양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70대의 노인일 것이다. 치료 약물이 발달한 지금은 아마도 비교적 평범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본인은 그 때 그날 밤 있었던 일을 두고 어떤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름도 밝혀지지 못한 채 버려졌던 소년은 과연 누구였을까?
- 이상은 잡지 미스테리아 5호의 "펄프" 원고 연재분이었습니다.
이상 곽재식 작가님의 이글루스에 있던 자료의 보존본입니다
[사건] 이글루스)서울역의 시신 그리고 피묻은 옷을 입고 배회하던 사람이 품고 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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