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30일에 <이덕규의 게임 인사이드>에 올라온 컬럼을 읽고 쓰는 글.
글이 보다 넓은 독자층을 겨냥해서 썼는지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과 그 장르에서 플레이어들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의 종류에 관해 길게 글을 써 놓으셔서, 하고 싶으셨던 말(그리고 내가 더 듣고 싶었던 말)은 짧게 마무리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한국형 RPG들의 일방적 플레이는 획일성을 강요하는 한국사회와 닮았다.
아이템 빨에 집착하는 것은 과정보다 결과에만 집중하는 우리 교육현실과 비슷하다.
권력과 돈에 목을 매는 플레이는 일류대와 대기업을 선호하는 우리시대의 욕망과 닿아 있다.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는 것도 선택할 권리를 빼앗아가는 우리사회의 단면이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적어도 게임에서만은 다양한 선택의 권리를 줘야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다양한 게임들이 인정받고 즐겨져야 한다.
-이덕규의 게임 인사이드, '한국 게임이 획일화 된 이유, '선택' 할 권리를 달라!' 中-
위의 내용에서 말하는 핵심에 깊이 공감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는 현재의 모바일 게임,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의 모바일 게임을 보면 진실로 현재 시대의 욕망을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그리고 플레이 방식과 게임 기획과 같은 것을 통해 다른 형태로 '재생산(reproduce)', '재현(representation)'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 쪽에서 쓰는 용어로 말하자면, '페이투윈(Pay to Win)' 시스템이다.
돈을 내서 이기는 시스템. 돈을 많이 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이기게끔 되어 있는 시스템.
특히 모바일 게임에서 흔히 쓰이는 가장 악질적인 과금 체계이다.
'내 돈 내가 쓰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게임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디지털 게임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려 하거나 게임의 성질에 대한 기원을 얘기하고 싶을 때, 요한 하이징어의 <호모 루덴스>나 로제 카이와의 <놀이와 인간>과 같은 책을 많이 인용한다. 그 내용을 보면 놀이는 인간의 본능이며, 놀이와 게임에는 모두 룰이 존재하고,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 요소는 어떠한 것이 있으며...와 같은 놀이가 가지는 기능, 놀이가 돌아가는 원리, 놀이로부터 인간이 얻는 요소를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학적으로, 이 '페이투윈' 시스템이 게임의 본질이다라고 말하거나, 이것이 디지털 게임의 새로운 룰이다.
라고 말하는 논문이나 책은 내 짧은 식견으로는 본 적이 없다.
차라리 외국 유투버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Fucking Pay2Win! Do not buy it!'라고 외쳐대는 영상을 찾는 것이 빠를 것이다.
흔히 페이투윈 시스템을 거부하는 플레이어들이 항상 말하는 주된 논리는 이렇다.
"페이투윈은 정해진 규칙 속에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을 무너뜨리는 시스템이다." 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 돌멩이로 땅에 선을 긋고 하던 땅ㅁㅁ기에서, '내가 200원을 낼테니 나는 1, 2번을 건너뛰고 3번부터 시작하겠어'라고 말했던 친구는 없었다. 그 친구가 부자의 아들이건, 가난한 자의 아들이건 상관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아마 그 친구는 놀이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의 요인은 어떤 권위적인 요소나 문화적인 요소, 그리고 심리적인 요소에 의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놀이의 규칙'을 깨고 싶지 않아하는, 인간의 본능에 의해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규칙에는 공정하고 평등한 조건이 전제로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새 모바일 게임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인앱결제를 기반으로 한 페이투윈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들을 과금 유저와 무과금 유저 두 부류로 나눈다.
웃긴건 일단 무과금 유저에서 돈을 1원이라도 쓰는 순간, 그 플레이너는 과금 유저가 되고 더 이상 무과금 유저로 내려올 수가 없다.
이런 현상이 극단으로 치솟는다고 가정하면 '과금 유저'만이 남고, 무과금 유저는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과금 유저'계급 만이 남게되는 게임은 경쟁의 기능을 잃어 그 수명이 다해 사라지거나,
그 안에서 다시 돈을 쓴 정도에 따라 계급이 새롭게 분류되어 다시 렛 레이스가 시작되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는 것이다.
물론 무과금 유저도 과금 유저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게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허나 그러한 소수의 무과금 유저들은 과금 유저의 수 배, 아니 수십 배에 달하는 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또한 이처럼 페이투윈 시스템의 악순환을 숨기고 '공정한 척'하기 위해 많은 게임에서 사용하는 '뽑기' 시스템은
'운'이라는 단어 하나로 마치 과금과 무과금의 차이가 50대 50의 확률인 양 착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 되면서, 플레이어들 스스로도 '운만 좋고 열심히만 하면'이라는 가정을 자꾸 붙이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시스템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말이다.
비자연스러운 것임을 알면서도 꿋꿋이 돈을 쓰고 그 게임을 플레이 해주는 것은 비단 개발사 뿐만이 아닌 플레이어들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근본은 이러한 과금 시스템에 있다.
위에서 말했듯 '뽑기'와 '과금'의 결합은 무과금도 과금을 이길 수 있다는 환상을 심는 극도로 타락한 형태의 게임 시스템이다.
분명 우리가 어릴적 했던 놀이와 지금 하는 게임은 다르다.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그러나 공정한 규칙 속에 경쟁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뽑기 식의 과금 시스템은 마치 그것이 '공정한 것인 양' 가면을 쓰고 있다.
아마 지금도 많은 게임 산업 종사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겠지만,
게임도 산업이 되었고 수많은 기업들이 존재한다. 기업이 된 이상 이윤 추구라는 것을 피해갈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그러한 기업이 파는 수많은 모바일 게임들의 과금 시스템은 사실상 기업의 윤리적 경영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그러니 이제는 놀이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새로운 과금 시스템을 생각해 내야할 시기이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이 가진 놀이의 본질은 사라지고 게임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것이 되어 돈에 의해 먹혀 버릴 것이다.
무서운 현실이다.
본능만이 필요한 성스러운 놀이의 성역에 돈이 침투한 것이다.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에 대해 한번 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제가 국산 과금 게임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와우처럼 특이한 탈 것이나 팻처럼 밸런스를 맞추는 선에서 과금하게 해야지. 우리나라 게임들은 과금을 안 하면 게임이 힘들어지게 만들어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