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데카르트가 한 말이잖아.
물론 데카르트가 한 말은 맞아.
하지만 그 말을 처음한 사람도 데카르트 일까?
사실 비슷한 개념은 이전부터 존재했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처음 꺼낸 건 아우스티누스라는 교부 철학자였어.
교부 철학자라면 신학자라는 말이잖아.
신학자라는 사람이 왜 그런 말을 꺼냈는데?
생각해보면 이상하긴 하지.
한 쪽은 신을 믿는 신학자. 다른 한쪽은 이성을 중시한 계몽철학자니까.
하지만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어.
[진리란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확고부동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거야.
두 철학자 모두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우리 앞에 사과가 있다고 해보자.
우리는 이 사과가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사과와 똑닮은 플라스틱 일수도 있고 먹어보면 사과가 아니라 배일 수도 있지.
우리는 외부 환경을 감각과 경험을 통해서 판단하게 돼.
감각과 경험은 쉽게 바뀌니 믿을 수 없지.
우리가 감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의심했을 때 우리는 눈 앞에 사과가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없어.
우리는 사실 통속의 뇌라서 눈 앞에 사과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심을 이어나간 끝에 한가지 결론을 내렸어.
의심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부정할 수 없네? 생각하는 나(이성)은 불변하고 확고한 의심할 여지 없는 진리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아우스티누스는 진리를 신이라 보고 신과 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성을 중요시 한거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니 내가 생각을 함으로써 하느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생각은 이와 좀 달랐어.
신이라는 존재에 도달할 필요까진 없어.
내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아예 출발지점으로 삼아보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신(진리)에 도달하는 매개로서 이성을 찾았다면.
데카르트는 철학과 사고의 출발을 이성으로 놓으며 새롭게 하나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거야.
(철학계에선 이걸 정초한다고 표현해.)
데카르트가 위대한 이유는
그리고 제목의 명언이 데카르트의 것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데카르트가 과정이 아닌 시작으로서 이성을 찾았고 그것이 새로운 철학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야.
그러면 자기 전에 한 번 외쳐보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
.
.
.
.
???:그렇다면 이성이 잠들고 난 이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기분 날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