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맥아더가 중공군의 대거 잠입을 미리 탐지해 11월 24일의 크리스마스 총공세를 단행하지 않고 북한의 잘록한 허리 부분의 어느 안전한 지점을 택해 방어선을 치고 기다리면서 공군기의 폭격과 지상병력의 포격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공군을 강타했다면 전쟁의 모습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방어선이 압록강에 가까운 선천-고인동-풍산-성진 선(신맥아더 라인)이든, 훨씬 덜 올라간 정주(청천강 하구)-군우리-영원-함흥 선(맥아더 라인)이든, 아니면 평양-원산 선이든 미군 현지사령관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선에서 전진을 멈추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최소한 유엔군이 중공군의 유도작전에 속아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깊숙한 산악지대로 유인당해 올가미에 걸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 공군기를 두려워한 중공군은 쉽사리 남진해오지 못할 것이며 남쪽으로 진격해온다 하더라도 유엔군의 방어선을 뚫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미군 방어선 전방에 평야가 있는 지형이라면 미 공군기의 폭격을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유엔군도 올라가지 않고 중공군도 내려오지 않는, 또는 그렇게 못하는 대치 상태가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월튼 워커 8군 사령관의 당초 계획은 이와 유사했다. 워커의 전기 작가에 의하면 그는 유엔군이 평양을 점령한 다음부터 서부지역의 8군 병력과 동부지역의 10군단 병력이 일렬로 북진해 정주-영변-함흥라인(맥아더 라인)에서 멈춰 방어선을 칠 계획이었다.
워커는 이에 대해 도쿄의 맥아더사령부 참모차장인 힉키(Doyle Hickey) 장군과 G-3의 라이트(Pinky Wright) 장군, G-4의 에벌리(George L. Eberle) 장군의 잠정 승인까지 받았다.
워커 장군은 8군과 10군단이 이 선에 방어선을 치고 버티었다면 압록강까지의 지역 일대가 자연스럽게 완충지대가 되어 설사 중국이나 소련이 참전하더라도 이 완충지대는 유엔군에게 적절한 대응을 준비할 시간과 장소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맥아더 최고사령관은 이 같은 작전 계획에 관해 그와 채 협의도 하기 전에 워커와 아몬드에게 북진명령을 내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미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지 않는 방안은 이 무렵 합참에서도 구상했다. 합참에 의하면 맥아더가 최소한 압록강 이남의 유리한 계곡 같은 지점에서라도 진격을 멈추었더라면 미군은 압록강을 포화로 제어할 수 있었을 것이나 맥아더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맥아더가 합참의 의견을 따랐더라면 크리스마스 공세 같은 참화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만약 좀 더 역사적 가정을 해본다면 이럴 경우 설사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북한을 완전히 수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앞에서 살펴본 맥아더라인(영국의 완충지대 안에서는 유엔라인)이나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애치슨 등 미국의 국무부 수뇌들과 합참을 비롯한 국방부 핵심인사들이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평양-원산선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출처 : 6·25전쟁과 미국, 남시욱 저, 2015년 출판
실제로 서울 광진구에 있는 워커힐호텔은 낙동강 전선을 끝까지 사수해낸 월튼 워커 초대 주한미군 8군 사령관의 이름을 딴 호텔이다.
인천한타 이후의 맥아더는 ㄹㅇ 맥가놈모드로 바로 전환이라 이상할따름
맥아더는 능력은 좋은데 그 능력을 초월하는 허영심을 지닌 그런 인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