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그런 일상도 솔직히 즐거웠어.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그런 일상도 솔직히 즐거웠어.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분명 당신도 이 고등학교 생활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거예요.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고
꿈처럼 지나가버렸다고.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
-아사히나 미쿠루(大)-
하루아침에 세상의 중심이던 하루히가 사라져버린 그 날.
졸지에 자신의 기억과 다른 세계에 툭하고 떨어진,
이세계인이 되어버린 쿈은 왜 정신없고 힘든 그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걸까.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은 애니메이션화 된 하루히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큰 호평을 받는 에피소드입니다.
동시에 SF학원물인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중에서도 유독 이런 SF적인 요소가 중심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오늘은 연말에 다시 만나기 좋은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가볍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시리즈의 시작점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초장부터 평범한 사람인 쿈에게 우주인(이 만든 안드로이드), 미래인, 초능력자들을 한데모여 뒷자리 여학생이 사실 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커밍아웃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엄청난 설정들을 뿌리고 이게 단순 허풍이 아니라는 걸 열심히 증명한 다음 아무 능력이 없는 쿈에게 세계멸망 직전에 키를 넘겨버리는 거죠.
그리곤 좋아하는 사람이 날 봐라 봐주지 않는 이 세상에 따분함을 느껴 무의식적으로 세계를 재구축하려는 하루히에게 기습 키스를 날리는 것으로 사건을 수습하게 됩니다.

쿈은 1화 시작 나레이션에서도 드러나듯 하루히 못지않게 특별한 일상을 동경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산타는 처음부터 안 믿었지만 외계인이나 미래인 등등이 존재하지 않는 걸 깨닫기 싫었다면서 동시에 조금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물이죠.
하지만 하루히를 만나고 그런 일들이 현실에서 진짜로 벌어지게 되면서 굉장히 골치 아픈 상황들이 발생합니다.
우울편에서는 갑작스러운 초설정 난무에 휩쓸리면서도 동시에 흥미를 느끼며 이런 비현실적인 일상도 좋다며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길 선택했지만,
어찌돼도 상관없을 동네 야구경기에 세계의 운명이 걸린다거나 여름방학이 끝나지 않았음 한다는 이유로 1만5천 번을 루프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겪으며 특별한 일상을 꿈꾸던 쿈도 매번 골치를 썩게 됩니다.
그건 함께 구르고 있던 SOS단 단원들도 마찬가지였으나 그 중 한 사람은 그 풍파를 정통으로 겪으며 남몰래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쿈은 기본적으로 상대에 따라 다른 대화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루히가 쿈에게 강한 흥미를 가지게 된 것도 3년 전 칠석 때의 옅은 기억도 있지만 그녀를 무시하거나 다그치는 것이 아닌 적당히 받아치면서도 유하게 넘어가는 영향이 컸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는 동일한데 웬만한 일은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주는 미쿠루에겐 한없이 상냥하게, 속내를 알기 어렵지만 여러모로 성실한 코이즈미에겐 편한 친구처럼,
그리고 감정 없이 일을 해결하는 기계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유키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쿨하게 대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 중 평소의 유키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눈치채지 못한 건 어쩌면 웬만한 일에 큰 반응 없이 무덤덤한 유키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시야에 두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감정’이라는 이변이 생기며 멋대로 세계를 개변해버린 유키에 의해 SOS단은 흩어지고 쿈은 진정으로 평화로운 일상에 떨어집니다.
맨날 뒷자리에서 중얼거리며 이상한 일을 꾸미는 녀석, 기분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세계가 위험한 지경까지 가는 초현실적인 여자, 여러모로 눈을 땔 수 없는 하루히가 없는 세상 말이죠.
그리곤 다시금 운명의 키는 쿈에게 주어집니다. 3년 전 칠석으로 날아갈 때 유키가 건넸던 그 쪽지로요.
사실 하루히가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생각했던 세계에는 아직 하루히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조릿대잎 랩소디 사건을 겪었음에도 키타고에 진학하지 않은, 아주 조금 다른 길을 걸은 하루히 말이죠.
물론 성격은 그대롭니다. 실제로 이세계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일을 겪은 초현실적인 쿈의 말에 납득하고 그 이유로 그 편이 훨씬 흥미롭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요.
SOS단을 한데 모으고 유키가 남긴 복구 프로그램을 기동시키며 3년 전 칠석으로 다시 날아간 쿈은 조릿대잎 랩소디 사건의 뒷면과 진상을 듣게 되며 다시금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칠석 종이와 입부신청서. 모두 유키가 건넨 물건이자 선택을 할 수 있는 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인 칠석 종이와 이곳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입부신청서.
쿈의 선택은 칠석종이였지만 그건 거절표현이 아닙니다. 엔터를 누르기 전에도 말했듯 이미 함께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SOS단으로서 있었기에 ‘입부’를 할 필요가 없던 거죠.
하루히는 다른 학교에 있고 SOS단 단원들도 평범한 일상을 지낼 수 있는 소실의 세계가 어쩌면 더 행복한 곳일지도 모르지만,
겉으론 하루히가 부재중인 조용한 부실이 좋다고, 고요한 일상이 그립다고 말하던 쿈은 사실 본인도 내심 깨닫고 있었습니다.
엉망진창에 스펙타클한 그 일상이 꽤나 즐거웠다는 걸요.
여차저차 사건이 마무리되고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쿈은 옥상에서 유키를 만납니다.
유키는 본분을 잊고 큰 사고를 친 셈이 되어 처분이 논의되지만 쿈은 사고를 친 그녀가 아닌 처음부터 제대로 된 성격을 주지 않은 정보통합사념체에게 불만을 표하며 입고 있던 패딩을 유키에게 씌워주죠.
이건 쿈이 사건을 척척 해결해주는 만능 키가 아닌 감정을 느끼는 인간, 친구로서 유키를 대하게 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리곤 말합니다. 전 우주를 뒤집어 엎어서라도 반드시 널 되찾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너의 우두머리에게 그리 전하라고 말이죠.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은 우울편에서 특별한 일상으로 되돌아온 쿈이 다시금 평범한 일상으로 말려들어가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안드로이드로서 감정과 일상 없이 업무를 처리하던 유키가 처음으로 인간다운 선택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쿈이 선택을 함으로서 진심으로 원하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런 작품이죠.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정녕 힘들기만한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 안에서도 어쩌면 즐거운 순간들을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이 말합니다.
난 이쪽을 선택해버렸다.
하루히 같은 무의식 해피 대폭주와는 사정이 다르다.
스스로의 의지로 이 세상을
헛수고 같은 대소동을 선택한 것이다.
-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