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왕부인(王夫人)과 전공주(全公主) 사이에 틈이 생겼다. 손권은 일찍이 질병으로 인해 자리에 누워 있었으므로 손화가 종묘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손화의 비(妃)의 숙부인 장휴(張休)가 종묘 근처에 살고 있었으므로 손화를 초청하여 머물도록 했다. 전공주는 사람을 시켜 은밀히 감시하도록 하고는, 태자가 종묘 안에 있지 않고 오로지 비의 집으로만 가서 일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또 왕부인은 황상이 질병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기색이 있다고 말했다. 손권은 이 일로 인해 노여워했다. 왕부인은 근심하다가 죽었고, 손화의 총애는 점점 줄어들어 폐출될 것을 두려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육손(陸遜)ㆍ오찬(吾粲)ㆍ고담(顧譚) 등은 적자와 서자의 이치에 관해 여러 차례 진술하여 태자의 지위는 정리(理)에 따라야지 탈취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전기(全寄)와 양축(楊竺) 등은 노왕(魯王) 손패(霸)의 무리가 되었고, 이들의 모함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 오찬은 결국 하옥되어 주살당했고, 고담은 교주(交州)로 쫓겨났다.
이보다 앞서, 태자와 노왕의 두 궁궐이 병립하고,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이 대부분 자제를 보내 임무를 받도록 했다. 전종이 이 일을 육손에게 보고하자, 육손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제들에게 만일 재능이 있다면 임용되지 못함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므로, 마땅히 사적인 청탁으로 관리로 임명되어 영리를 구하는 일은 하지말아야만 된다. 만일 이 일을 훌륭하게 실행하지 못한다면 결국 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두 궁궐의 세력이 대적하고 있을 때는, 반드시 이쪽을 지지하는 파와 다른 쪽을 지지하는 파가 대립하게 된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옛사람들이 매우 기피했던 것이다."
전종의 아들 전기(全寄)는 과연 노왕에게 아부하고 경솔하게 교제관계를 맺었다. 육손이 전종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김일제(金日磾)[아들까지 죽여 처신을 지키기도 함]를 본받지 않고 아기(阿寄 ; 전기)를 비호하였으니 당신의 가정에 재앙이 이를 것입니다.
전종은 육손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다시 틈이 벌어지게 되었다. 태자의 자리에 있는 것이 불안하다는 의론이 있게 되자, 육손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해자로 알려진 전태자 손화만 봐도 태자인 신분에도 종묘 제사하는 사당에 있지않고 처갓집에 머물고 영수인 육손도 반대파라도 전종에게 자기 아들 죽이라고 하는 것 보면 손권의 병크로 취급하는 것이 손권에게 억울하지
손권이 불지렸다쳐도 육손도 기름 넣고했는데 육손은 피해자다 이러는거보면
코삼에서 정치 90대로 나온 것은 ㄹㅇ 고증오류지
코삼 정치는 이런 정치싸움이아니라 내정 올리는 능력같음
고옹 감옥으로 보낸 여일 능력치만 봐도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