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촉이 생산량이나 방어면이나 개쩌는 지역임
공세 시점을 내가 맘대로 정할 수 있는 요충지거든
방어는 당연히 되는거고 말야
다만 지리적 한계가 있었어서 형주를 갖고있었어야함
형주도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수운이 좋은 전략적 요충지였거든
그래서 촉도 형주에 관우 박아놨던거임
그만큼 중요하니까
형주 잃으면서 삼분지계 판도는 끝났다고 봐야함
크기는 작은데 저게 알짜 땅이긴 할거임.
방어는 쉽고 산지 이외의 개발지역은 토양이 풍부해서 부양인구는 충분히 먹여살림.
저기 박혀서 무한방어 시전하다가 틈 보이면 장안까지만 뻗는데 성공하면 함곡관 덕분에 중원진출과 중원측으로의 공격 방어가 수월해서 공방이 자유자재임.
삼국시대 이전에 전국시대에서 전국 칠웅 중에 최강국인 진나라 같은 플레이가 가능했을 수도 있고 제갈량이 장안까지 진출했으면 위나라 입장에서 국력 차이를 떠나서 답이 없게 골치 아팠을 확률이 높음.
그래서 제갈량도 어떻게든 형주 잃은 후에 장안까지 진출해 점령하려고 한거겠지만...
강남 일대 개발된 건 아무리 일찍 잡아도 저 시기부터니까...
그리고 촉과 오는 반란 위협에 상시 노출되어 있기도 했음. 아무래도 굴러들어온 돌이었고, 호족들이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경우는 분명 있었을 테고.
지금과 어떻게든 달랐겠지만, 당시 국력은 머릿수가 중요했고(병력이 거기서 나오니), 그걸 부양할 농업 생산력이 중요했음(머릿수를 그걸로 유지하니). 그런에 이미 개발될 대로 되고 사람들 넘치게 살던 중원과 하북을 차지한 위를, 성도와 그 주변+한중만 갖고 있던 촉과 장강 일대만 세력권에 두고 나머지는 호족들이 장악하던 오가 저지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지.
삼분지계가 성립된 이유는 위는 저자리에 위치한 이상 청 이전까지 중국의 숙적이던 북방 이민족을 막아야해서 국력을 남방에 제대로 투사하기 어려웠어.
그나마 조조 때까진 원소조지며 겸사겸사 같이 북방을 조져놔서 적벽까지도 가능했는데.
후세에 가면 조예때 흥세산 전투에서 정서군 10만을 갈아넣은 이후 등애가 산타기 전까지 위는 촉에게 공격적 전력투사가 아예 불가능했으니.
제갈량의 삼분지계는 운이 필요했던건 맞지만 불가능한건아니었어.
조조가 관도대전 이기고 그 이후는 보너스 게임 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니
실제 지배영토는 저렇고 나머지 미개발지역이라더라
형주까지 먹었을떄는 꽤 괜찮았지
근대 워낙 지형이 안좋아서 촉으로 쳐 들어오기도 어려워서 전략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천하 삼분지계가 안되는 것도 아니기도 해
자매품으로 도봉구 아서스도있다
통치 가능한 인구 기준으로 하면, 사진이 맞을듯, 애초에 파촉에서 도시를 구축할 만한 평지가 없는 것도 크고
그래서 적벽이 개쩌는거였지
촉은 최대가 저거야?
실제 지배영토는 저렇고 나머지 미개발지역이라더라
아르시온
형주까지 먹었을떄는 꽤 괜찮았지
나머진 산이고 저 지역이 그나마 평지
초한지의 유방, 삼국지의 유비가 촉으로 들어간 이유: 사방이 산이라 디펜스가 존나 쉬움
그 영토만 가지고 위정벌 나설 국력을 짜낸 제갈량이 정말 대단하네...ㄷㄷㄷ
유방은 들어간게 아니라 강제로 처박힌거지요. 사방이 산이니까 나오지 말라고..
촉의 전략은 번성 함락후 신야 남양 돌파하면 평야지대라 허창까지 관우가 위협하고 한중을 통해 서량 장안까지 노리는것을 목표로 했는데 그걸 손제리가 통수쳐서..
파촉이 생산량이나 방어면이나 개쩌는 지역임 공세 시점을 내가 맘대로 정할 수 있는 요충지거든 방어는 당연히 되는거고 말야 다만 지리적 한계가 있었어서 형주를 갖고있었어야함 형주도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수운이 좋은 전략적 요충지였거든 그래서 촉도 형주에 관우 박아놨던거임 그만큼 중요하니까 형주 잃으면서 삼분지계 판도는 끝났다고 봐야함
지도상 위치로 보니 유비 젊었을때 조조가 신야 친거도 저기 위치가 개사기긴 하네 유비가 저기 떡하니 앉아있으면 진짜 소화 안됐을듯 ㅋㅋ
제갈량이 들어간 촉한이 나름사기땅임. 진나라가 전국통일을 이룬것도 저 촉한먹어서임. 진나라가 저땅 하나먹고 혼자서 나머지국가 전체랑 맞먹는 체급을 가지게 된 ㄹㅇ ↗사기땅. 유방도 저기들어가서 세려기워 나와서 항우를 박살냄.
문제는 저 쥐똥만한 새끼들이 북벌 한다고 수차례 쳐들어와서 조예가 노이로제 걸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촉이 형주 잃었을때부터 그냥 게임 셋이었지. 관우가 죽은게 촉 운명 끝장난 순간임 그냥.
결국 진출방향이 한정 되다보니 답도 없고 그렇다고 오나라가 형주쪽 방면도 자국의 왕권집중이 안되는 현상때문에 군사력 동원이나 질이 딸리다보니 서주나 형주 북쪽 공략이 전혀 안됨
신야서 튀어나와서 남양 돌파하면 허창까지 다이렉트 비슷한 예로 손책이 살아있어서 수춘 돌파하고 허창까지 다이렉트로 달려서 황제 확보 이게 관도 대전때 조조의 후방 최대 불안점이었다지
크기는 작은데 저게 알짜 땅이긴 할거임. 방어는 쉽고 산지 이외의 개발지역은 토양이 풍부해서 부양인구는 충분히 먹여살림. 저기 박혀서 무한방어 시전하다가 틈 보이면 장안까지만 뻗는데 성공하면 함곡관 덕분에 중원진출과 중원측으로의 공격 방어가 수월해서 공방이 자유자재임. 삼국시대 이전에 전국시대에서 전국 칠웅 중에 최강국인 진나라 같은 플레이가 가능했을 수도 있고 제갈량이 장안까지 진출했으면 위나라 입장에서 국력 차이를 떠나서 답이 없게 골치 아팠을 확률이 높음. 그래서 제갈량도 어떻게든 형주 잃은 후에 장안까지 진출해 점령하려고 한거겠지만...
구름따라흘러가며
우주방어가능하고 생산력도 쩌는지역이긴한데 좀 눈으로보이기에 너무짜침.
뉴소피갈
1년도안되서 나간거라 그걸로 비교하기힘들어요
조조가 관도대전 이기고 그 이후는 보너스 게임 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니
Ballman
그래서 적벽이 개쩌는거였지
그나마 황건적 각종 전란으로 인하여 하북 중원 인구가 많이 감소해서 촉오가 오래 버틴거지 가면 갈수록 차이가 날수밖에 없긴 했음 거기다 위가 북방이 병력이 있어야되다보니 최정예 병력은 동원 못했고
죽을 때까지 보너스를 주는 노래방 사장 유황숙
관우의 북벌이 찐 막차 그걸 망하고는 그냥 시간싸움일 뿐
자매품으로 도봉구 아서스도있다
영국의 도시는 1377년의 기록에 의하면 가장 큰 런던의 인구가 4만5천-5만 명 수준이었다. 도봉구 인구는 33만 ㅋㅋ 사실 중세 수준으로 치환해보면 아서스는 꽤 세력 큰거임 ㅋㅋ
그치만 유럽세계 너머로 너 넓은 동유럽과 몽골 쿠만 티무르 등 초원민족 및 이슬람 세력 등이... 아 그건 불타는 군단이랑 어둠땅 판다리아 등인가 인정
발더란
아 그랬군요.. 하지만 도봉구의 왕..하고싶네요
발더란
그렇게 설정보다 맵 좁다고 비웃는 새끼들한테 실제 설정상 면적 적용한 게임 시켰더니 '이건 뭐 하루종일 이동만 하고 자빠졌네 ㅆㅂ 이게 게임이냐?'라고 대답했다는 썰 생각나네
관도 대전에서 삼국지는 이미 끝났다고 하는 얘기가 괜히 나온게 아니지
오나라는 가로로 기이일게 장강 따라서 거의 다 먹었었네
통치 가능한 인구 기준으로 하면, 사진이 맞을듯, 애초에 파촉에서 도시를 구축할 만한 평지가 없는 것도 크고
위가 이기는게 당연하네
그래서 만날 오랑 촉이 손을 잡고 있었던거지 심지어는 이릉대전 이후로도 완전 결별은 안했으니
근대 워낙 지형이 안좋아서 촉으로 쳐 들어오기도 어려워서 전략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천하 삼분지계가 안되는 것도 아니기도 해
유방이 촉에서 재기해서 항우를 잡고 패자가 됐으니 일단 힘 키워서 중원만 나가자는게 있었던 모양
유선이 항복 안하고 버티기만 했어도 멸망이 아니라 등애가 고립되서 졌을거라는 의견이 팽배할 정도인데... 제갈량.. 아니 비의가 좀만 더 오래 살았어도..
못버팀, 제갈각이 어림군 태운거라 어림도없다
논의하는 게 항복이랑 싸우다 죽자로 나뉜거 보면 버텼다고 등애가 고립되서 졌을 거란 생각은 하기 어려움 제갈첨이 당한 시점에서 결과는 나왔다고 봐야
갑자기 왠 제갈각? 드립치려고 일부러 꺼낸거임?
각이래 첨이
따지면 머 방통이 설레발 치다 안죽었으면
진짜 방통이 안죽었으면 제갈량은 형주에 남아있을거고 제갈량이 형주에 있었다면 통수안당했을수도 있지
저 쥐똥만한 영토로 북벌 시도한 제갈량이 그래서 개쩌는거여
그리고 저 산을 굳이 뚫고 온 등애.....
진 통일도 훨씬 빨랐을 수 있었는데 이민족 봉기로 늦춰진거였지
코에이삼국지에 절여져서 위가 빨간색이고 오가 파란색인게 불편하다
ㅋㅋㅋ
고대 시절이라 현대식 영역표시랑은 좀 거리가 있긴 하지
영토만 보면 안 되지; 인구를 따져야지 글고 수치상으로 비교가 안 되도 한중일 삼국 드립치는 판에.. 세력들이 서로 견제 경쟁하는 관계면 삼분된거지
실제로 인구도 위나라가 전체의 6~70% 차지 했었는데
인구수도 압도 위 2,000만명 촉오 각각 500만명 예상임
30프로면 삼국끼리 견제 가능한 수치지 저 영토지도만 보면 거의 1/10도 안 되는 수준이구만.
뭔 저거 보고 짜친다며 뭐가 삼분이냐 따질려면 고구려 신라 백제도 국력 비교해서 삼국이라 부르면 안 돼 ㅋㅋㅋ
위 지도에서 촉+오가 위의 1/10도 안 되보인다면 시력 검사가 먼저 아님...? 합치면 1/3은 되어보이는데
촉하고 위만 따져서 그렇다는거지 내가 말을 좀 생략하긴 했다만 척하면 알아들어라 좀..
2000만명은 어디서 나온 수치인가요? 일단 '동양사개론'에 있는 책은 이런데...
개떡같이 말했으니까 그렇지 ㅋㅋㅋ 30프로면 견제 가능한 수준인데 그겁 합쳐야 30%인데 영토는 또 따로라고? 말이나 똑바로 하쇼
야 말꼬리 물고 늘어지려면 꺼지고. 말은 니가 먼저 시력검사 운운하며 싸가지 없이 턴거 알지? 내가 지도 보고 몰라서 오 촉 합쳐서 10프고 안 된다 했겠냐?
그게 뭔 말꼬리임? 그게 니 댓글 그 자체야 ㅋㅋㅋ 그 짧은 댓글도 하나 제대로 못써서 상대방이 찰떡같이 알아먹으라고? 시력검사가 문제가 아니라, 글도 못쓰고 뻔뻔하기까지 하니 총체적 난국이네.
왜 촉오가 형주를 두고 서로 통수쳤는지 이해가 되는군...
삼국시대 국력 비율을 보통 6:2:1로 잡음. 촉+오 합쳐봐야 위나라 절반 수준
한중만 지배영역이 동 떨어져 있네. 이래서 막부 거리는건가.
취급도 성도행이 어느정도 좌천처럼 묘사됌
촉은 하늘이 내린땅이라고 할정도로 생산력이 엄청난 땅이었고 자기 조상 유방이 그랬듯 관중만 도모한다면 훗날을 기약할수 있다고 생각했고 틀린말이 아니긴함
저 당시 인구도 가장 많은 지역이고 자연이 만든 천혜의 요새 막 왕조 찬탈한 위나라에 명분 내걸고 내분 유도하며 오나라와 힘 합치면 해볼만하다 여긴거.
오나라는 무슨 말라비틀어진 공룡같음
괜히 조조가 먹은 땅은 서주 예주 기주 병주 등등 다양하게 나오는데 유비가 먹은 땅은 꽤 큰데도 '익주' 하나인게 아님 ㅋㅋ 인구수로 보면 대충 그게 맞거든
근데 농사되는 땅들이 저기라 딴데 먹어봐야 관리도 안되 저시절엔
애초에 촉에서 자리잡고 존버가 아니라 기반닦고 익주 형주 양방향에서 중원 치고나가는게 목표였는데 못했으니까 당연한거지
애초에 저 시절에는 중원외에는 대부분 벽지였다.
저 파촉분지가 중국 수천년 역사 유수의 개꿀땅이긴 해
문제는 꿀땅이긴 해도 대륙내의 섬 수준으로 고립되어 있는지라 확장성이 떨어져서 저길 기반으로 대계 이룩한 사람은 그나마 유방인데, 그 유방도 실제 본거지는 저 분지 내부가 아니라 그 입구 언저리에 가까웠고... 파촉은 사실상 후방 멀티였지
촉, 오가 끈끈하기 연합해도 위에 비빌까말까인데...
유방이 촉에 갇혀있다가 북진해서 결국 항우 잡고 천하를 얻었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도 서쪽에서 시작해 천하를 얻었으니 제갈량은 성공사례가 있던걸 실행에 옮긴거지.
갇혀있던거아니지만 1년도안되서 나간게 유방인데
중원이 좀 커야지 파촉분지만 해도 넓이가 남한의 1.5배임
촉이 ㅈ만해보이지만 거대한 사천분지를 끼고있어서 농업생산량이 엄청난데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어서 막말로 금이 쏟아져 들어오는 개사기치트땅이라 저만큼 먹고도 오히려 북벌을 시도할 힘이 나왔던거임ㅋㅋ
걍 조조가 하북평야 먹은 순간 인구 부양력에서 비교 불가임
남중 파서 영안도 안되어 있고 촉은 너무 심하게 축소한 느낌인데
그리고 제일 공포는 저 촉의 영역 한곳의 실질 식량 생산량이 위가 먹은 곳 2-3개 주의 생산량과 맞먹는다는게 공포고. 실제 위나라 영역이 넓긴 한대 생산력으로 보면 남피 위쪽 발해 북평 요서 지방이랑 서주 서량쪽은 진짜 생산량이 짜칩니다....
당시 중국이 저렇다면 한반도는;;
촉이 조스로 보여도 사천분지 하나가 한반도랑 비벼서 꽤 클텐데
단순히 영토크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영토의 질, 전략적 요소, 기후, 외교적 입지 등 고려할게 많지
ㄹㅇ 고구려가 영토만 보면 신라 백제 가야 진작에 먹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강남 일대 개발된 건 아무리 일찍 잡아도 저 시기부터니까... 그리고 촉과 오는 반란 위협에 상시 노출되어 있기도 했음. 아무래도 굴러들어온 돌이었고, 호족들이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경우는 분명 있었을 테고. 지금과 어떻게든 달랐겠지만, 당시 국력은 머릿수가 중요했고(병력이 거기서 나오니), 그걸 부양할 농업 생산력이 중요했음(머릿수를 그걸로 유지하니). 그런에 이미 개발될 대로 되고 사람들 넘치게 살던 중원과 하북을 차지한 위를, 성도와 그 주변+한중만 갖고 있던 촉과 장강 일대만 세력권에 두고 나머지는 호족들이 장악하던 오가 저지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지.
강동 밑으로는 죄다 밀림이라 영토가 저런건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자연이 파괴됐는지 새삼스럽다.
저 영토도 완전히 장악한게 아니라서 반란도 일어나고 이민족도 막아야 하고
종종 관도대전 승패로 삼국의 결말은 정해졌다는 주장이 피력되던데 그거 역설적으로 관도대전 이후로도 유비와 손권을 직접적으로 강하게 의식했고 끝내 둘 다 자립하는걸 막지 못한 조조를 내려치기하는거 아냐?
그런데 저게 삼국지만 특이한게 아니라 어느 지역, 어느 시대를 가도 다 저럴걸? 지금도 우리나라 포함 여러 나라 보면 인구 밀집 분포도로 보면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는 땅은 매우 협소해짐
삼분지계가 성립된 이유는 위는 저자리에 위치한 이상 청 이전까지 중국의 숙적이던 북방 이민족을 막아야해서 국력을 남방에 제대로 투사하기 어려웠어. 그나마 조조 때까진 원소조지며 겸사겸사 같이 북방을 조져놔서 적벽까지도 가능했는데. 후세에 가면 조예때 흥세산 전투에서 정서군 10만을 갈아넣은 이후 등애가 산타기 전까지 위는 촉에게 공격적 전력투사가 아예 불가능했으니. 제갈량의 삼분지계는 운이 필요했던건 맞지만 불가능한건아니었어.
점령지는 저랬지만 실제로 저 땅들이 나라로써 굳어지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려서 판도만 한번 제대로 뒤집으면 흔들리 수 도 있었음 실제로 조조가 적벽 한중 양번 삼연타 맞고 꽤 흔들렸는데 결국 실패하고 그대로 굳어짐
가장 천하통일에 가까웠던 원소가 조조한테 당한이후 조조를 당해낼 세력이 없긴 했지
남한으로 치면 경기도에 전라도, 충청도 경상 북도 까지 먹고 강원도의 춘천근처 까지 다먹은 위나라 강원도 산맥 너머 촉나라 경상남도에서 낙동강으로 버티는 오나라.
파촉이 안에서 농성하긴 좋은데 역으로 고립된 지형이다 보니 진출교두보를 잃으면 미래가 없긴 함 장개석이 국공내전 패배후 천도할 곳을 정할때 대만 말고 충칭으로 가는 안도 고려했다 기각했다는데, 만약 충칭을 골랐으면 지금 중화민국은 패망해서 없어졌을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