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군대 전역 후 23살, 20대의 남은 시간들은
2년은 공시준비로, 2년은 외식업으로, 1년은 노가다로, 1년은 히키코모리로
그렇게 29살까지 시간이 흘렀다, 뭘 했는지는 다 기억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눈깜짝할 사이에 흐른 시간에 식은땀이 났다.
24살부터 만났던 여자친구와는 결혼 이야기까지 오갔지만, 경제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과분한 사람이었기에 4년 연애끝에 헤어졌다.
나의 위축된 자존감에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게되어 29살 까지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부모님과 서로 갉아먹는 삶에 고착되어있었다.
모아놓은 돈은 있었기에 집안에 쳐박혀 정말 밥먹고 씻는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않는 생활이 1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원인은 취업실패, 연인과의 이별.. 이유를 찾으려면 충분했다
집구석에서 아무것도 하지않지만 뇌 속에서는 비상벨이 계속 울리고있었고,
나는 문득 집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숙식 노가다든, 뭐든 이 집에서 뛰쳐나가고싶었다.
며칠을 구직사이트를 뒤졌고, 친구의 추천으로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취업성공패키지라는것을 알게되었다.
평소 음식이든 모형이든 무엇인가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선물하는걸 좋아했던 나였기에
가구를 만들어보는것에 흥미를 느껴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가구디자인 1년과정에 들어갔다
집은 대전이었고, 인천에 살 집은 당연히 없었지만 기숙사가 지원이 되는 과정이었다.
생각보다 신선하고 너무나 즐겁게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면서 1년을 보내었다
목공자격증을 가지고 30살에 입사한 회사는 원목가구 제작 회사였다.
사람들도 나쁘지 않고 일도 즐거웠지만, 입사 4달차에 사장이 개인 파산을 신청하고 종적을 감췄다
2달차부터 받지못한 급여는 2달 밀린상태였고, 그대로 나는 인천에 발이 묶였다.
서른살의 늦겨울이었다. 2월의 꽃샘추위가.. 그렇게 매마르고 차갑게 느껴진것은 처음이었다.
대출 4천만원 받아 전세로 들어간 원룸 전체가 나를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는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알량한 자존심에 부모님께도 이 사실을 말씀드릴 수 없었다..
입사한지 고작 4달만에 회사가 망한다는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나 들어봤을테니, 얼마나 걱정하실까 생각하며 씹어넘겨 참았다.
그나마 받을 수 있었던 2달치의 급여로 한달에 2~30만원만 사용하며 3달을 버티다
가구디자인을 배운것을 살려 서울 경리단길에 있는 수입 유럽가구 판매직으로 일을 다시 시작했다
고작 식탁의자가 300만원, 탁자가 500만원, 소파 하나에 1000~3000만원대의 꽤나 사치스러운 유럽 가구들을 취급하였기에,
연예인이나 유명 사업가, 아나운서, 그림작가 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을 대할 때 어떻게해야하는지도 배울수 있었던 기회였다.
다만, 창고관리, 쇼룸관리, 판매, 배송, 작가 콜라보 등의 모든 허드렛일은 내가 하는데에 비해,
월급은 최저시급에서 10만원정도 더 받는 수준인 채로 2년을 일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고, 잘 사는 사람들도 언텍트 시대에 몇백 몇천만원짜리 사치품 가구를 구입하지 않게 되었고,
회사는 1년을 못버티고 쇼룸을 닫게되었다.
내 팀장은 내가 가구제작을 했던것을 들어, 가구판매에서 인테리어 설계 사업부로 이동 하기를 권유했으나,
투명한 커리어패스를 제시하진 못했고, 나는 고객과 소통하는 영업일에 흥미를 느꼈기에
한달의 유예를 요청하고 이직할 회사를 찾았다.
이직한 회사는 이전과 비슷하게 가구를 판매하지만, 침실의 침대와 매트리스를 위주로 직접 제작/판매하는 회사였다.
직접 가구를 만들고 고객들의 의견을 반영하며 제품을 판매하는 스타트업이었기에
내가 활약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인생에 있어 큰 경험과 변화를 겪은 곳이다.
고객 응대는 이미 인이 박혀있기에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지만, 판매에 대한 스킬은 미숙했고,
영업 스킬이 아닌, 제품제작사의 브랜드 이미지에 의존해왔던 이전 회사의 영업방식과 달리,
제품의 경쟁력을 어필하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판매하는 영업방식이었기에
고객을 구매하도록 설득하는 스킬을 배울 수 있었고,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것에 재능이 있었다.
당시 영업팀 사람들도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내가 실수한부분에대해서 즉각적으로 어드바이스해주고, 혼낼땐 혼내면서
으쌰으쌰 즐겁게 일했고, 입사 1년인 2021년 초에 연봉 2600에서 3000으로, 2년차인 2022년 초에는 개인 판매매출 1위를 찍으며 3500으로, 22년 말에는 영업팀장으로서 4050만원으로 3년동안 2600 -> 4050으로 연봉인상받게되었다.
회사는 내가 일하는 3년만에 10명에서 40명으로 인원도 늘어났고, 야유회같은 행사도 하면서 나름대로 회사의 틀을 갖춰가고있었고
대기업 초봉이랑 큰 차이는 없었지만, 어쨋든 순수한 나의 노력이 인정되어 연봉 4000만원이라는 간판을 달았던 22년 11월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사람일은 한치앞도 알수없듯이..
22년 12월 23년 사업방향을 의논한 결과, 가구와 매트리스 위주의 판매방식을 취하던 회사는, 테스트로 판매했던 침구류의 매출이 상승하자, 기존의 가구와 매트리스는 거의 접다시피하며 침구류 관련된 인력을 스카우트해 이사직에 앉히고, 모든 현금을 침구류 생산에 때려박기시작했다.
결정은 팀장 회의라는 수평적인 구조를 띄었으나, 대표의 태도는 답정너였고, 그 주장의 근거는 마케팅 팀의 광고비 대비 매출금액에 있었다.
물론, 가구와 매트리스는 상담시간도 길고,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키기에도 까다로운 부분이 있어, 마케팅비용대비 매출금액이 적을 수 밖에없었지만... 나는 가구와 매트리스로 신뢰를 쌓아온 고객들이야말로 이 회사의 근간이라고 반대했지만, 금새 묵살되었다.
그에따라 가구와 매트리스 일부는 단종, 남아있는것들조차 재고가 부족한 채로 판매하게 되었고
기존 제품을 사용하고있던 고객들의 건의사항이나, 희망사항은 묵살될 수 밖에없었다.
당시 CS / CX / 판매영업을 함께 맡고있던 우리팀에 고객의 불만이 집중 될 수 밖에 없었다.
문제가 생긴 가구나 매트리스를 고쳐달라고 제품팀에 요청해도 예산문제로 묵살되거나 지연 되었고,
심지어 매트리스 커버나, 가구의 AS가 불가능할 지경이 되어, 쇼룸의 스페어로 보관하던 커버를 보내줘야 할 지경이었다.
23년 1월부터 23년 8월까지..
팀원들과 근거를 만들어 최소한의 예산을 할당해 제품 생산과, 품질을 개선해달라고 매달 전체회의에서 요청했지만 묵살당했고
내가 팀장으로 있는 내 동료들에게 고객의 불만은 계속 누적되어져만갔다.
대표의 지시로 우리는 영업팀이었지만 더 이상 판매상담은 의미가 없었고..
CS팀으로만 기능했다, 영업팀으로 입사한 동료들에게 대표들은 희생을 강요했다.
그에 반발한 동료가 퇴사하기도 하면서..
내가 3년간 필사적으로 쌓아올린 휴대전화 속 3400여명의 고객들과의 신뢰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를 믿고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 입장에선 본인이 사용하던 제품이 갑작스럽게 단종되거나,
A/S가 불가하거나, 건의사항이 반영되지않는 상황에서 가장 괘씸한 사람은 바로 나였을것이다.
제품을 구매할때는 그렇게 살갑던 고객들이, 어느새 나를 사기꾼 취급하기 시작했고
재고 부족으로 교환을 거부당한 고객은, 본인의 허리통증이 우리 매트리스 탓이라며,
모든 책임을 나에게 물으며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텔레그램, 라인같은 sns는 물론, 사무실이나 집 주변까지 찾아와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6개월을 버텨 23년 7월..
회사의 주요 먹거리가 가구 -> 침구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스카우트된 이사급 인원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나는 CS팀장에서 오프라인 매장 관리자로 개편을 받게 되었다.
23년 9월까지 CS팀장을 겸하면서 회사의 오프라인매장 세팅부터, 아르바이트 교육, 매니저 교육까지 전부 끝내놓았던 상황이었다.
물론 나쁘지않은 제안이었고, 그동안 블랙컨슈머 응대에 지쳐있던 나에게는 탈출구가 될 수 있어서 좋은 제안이라고 믿고있었다.
팀 내에 후임도 만들어둔 상황이었고, 그냥 그대로 근무하면 추가적인 연봉상승도 요구할 수 있었다.
사원은 대표의 지시에 따른다. 그게 월급쟁이의 숙명이기도 하니까..
내가 충성해야할것은 나에게 급여를 주는 회사이니까.. 라고 나를 세뇌하면서..
어느날, "xx씨 가구 구매했던 단골고객들을 오프라인으로 유도하면 침구를 더 잘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웃으면서 말하는 이사와 대표를 보며 문득..
심한 역겨움이 느껴졌다..
내 단골고객들은 이미 한번 버려져 신뢰가 무너진지 오래였고...
난 그것을 6개월 전부터 알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또 다시 3년 전의 내 열정을 기대하듯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대표와 이사진들.. 그들에겐 결국 답은 정해져있었으니까.. 그런것들은 들리지 않는다.
문득 쇼룸에서 나에게 상담받으면서 활짝 웃던 내 고객들의 수많은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나에게 급여를 주는건 회사지만.. 회사에게 매출을 주는건 고객이었고..
나는 지금 그 고객들을 배신한 것과 다름없는 입장이었다.
나는 23년 9월 퇴사했다.
대표에겐 그냥 개인적인 이유로 둘러댔다.
이미 오프라인 매장도 내가 세팅했고, CS팀장 후임도 정해둔 상황이었으니까 이해 할 수 없었겠지..
대표는 혹시 힘들어서 그런거라면 한달정도 휴직하는건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그냥.. 개인적인 이유로 계속 다닐 수 없다고 대화를 틀어막듯,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8월 말 대표와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한달동안 인수인계를 끝내고
3년간의 퇴직금과, 3년간 사용하지 못한 연차 52개를 댓가로 52일만큼의 급여를 정산받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이외에는 연차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는걸 이때 알고 한참을 웃었다.
내가 퇴사하고, 얼마지나지않아 마케팅팀, 물류팀, 경영지원팀의 팀원들이 줄줄이 퇴사했고
23년 회사 순수익은 22년의 순수익의 50%에 그쳤다.
나는 지금 간간히 아르바이트 이외에는 내가 하고싶은걸 하면서 지내고있다.
28살때 잠깐 꿈꿨던 일본에의 워킹홀리데이가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25살때 일본인과 함께 일하면서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간직한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일본어는 24년 6월에 4달 공부해서 JPT 610점과 JLPT N3를 취득했다.
최종목표는 N1이다.
커리어적 목표는 일본 관광 호텔이나 리조트에 취업해서 컨시어지가 되는것이다.
공항직 파견회사에서 내정을 받았지만, 경력으로 인정받기에 어렵다고 판단해서 거부했고
이력서는 도쿄와 수도권인 카나가와, 사이타마, 치바 등지에 총 23곳, 면접은 15번 진행하고있는 상황이다.
만 34살 적지않은 나이이지만, 더 이상 늦어지면 도전조차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도전하려고한다..
유게이들도 타인의 도구가 되어 현실에 안주하는것도 좋은 삶이지만..
하고싶은거 하면서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길 바란다..
열심히 살았네
글로만 읽었는데도 너 성실한 성격인거 알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