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문은 당시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폭증한 사실 정도는 알고 있는대, 전쟁 때 마다 저렇게 앞라인 고기방패로 쓸 만큼 사람이 남아 돌았냐는거임.
뭐 적어도 중요 부위에 플레이트 아머나 뭐 당시기술로 가능한 방탄기능을 하는 조끼 한벌 정도는 입혔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
설마 맨 앞라인은 총알보다 싼 아일랜드 사람이거나 그러진 않았것지...?
치킨게임 같아 보이지만 저 때 머스킷 정확도가 좀 안좋아서 애매한 거리에서 되는대로 막 쏴서 탄 낭비하고 재장전 시간동안 버벅대다가 상대 돌격각 주거나 공격 기회 넘겨주는것 보다
유효 사거리 내로 들어가서 탄막 형성하면서 일제사격 해서 적 확실하게 조져놓는게 아군 생존률 더 높아서 저렇게 싸운거라고 들었음.
예나 지금이나 말단 보병은 부랑자까진 아니어도 집안 먹여살리려는 가난한 집 3남정도가 자원입대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또 초반 확정 손실을 제외하면 다른 전쟁보다 유의미하게 사상률이 높았는지는...
오히려 저거 전열 유지한다고 규율 빡세게 잡아서 후퇴에 성공했다면 사상률이 전근대보다 높지는 않았을거임
원래 전근대 사상자 대부분은 진형 깨지고 부대 모랄빵 났을 때 추격하면서 생기거든
의외로 라인배틀은 사망자가 많이 안나옴 남북전쟁당시 엄청난 사망자가 나왔다는 게티즈버그 전투조차 2차대전때랑 비교하면 사망자 비율이 적었음
물론 다치는 경우는 많았지만 라인배틀에서 가장 중요한건 베테랑 병사의 숫자였고 이 배테랑이 일정 수준까지 모일정도로 사망이나 부상으로 빠지는 인원이 많지 않았음
그 당시 최선의 전술임. 꼭 모든걸 현대 기준으로 보는 시야 좁은 바보들이 많더라고
무적의 전술인건 아니었지만 당시 최강의 전술인건 틀림없음
흩어지면 기마병한테 각개격파 당하던 시절임
안 도망가면 살 확율이 있는데 도망가면 확정으로 죽음(적이던 아군이던)
도망가면 아군이 죽임.
당시 제일 쩌는 전술 + 각잡힌군기
무적의 전술인건 아니었지만 당시 최강의 전술인건 틀림없음
당시 제일 쩌는 전술 + 각잡힌군기
피격 범위 줄어들게 엎드려쏴 하면 되지 않나..?
방진이나 재장전은 어찌?
그때만 일어서고..?
물론 실제로도 저렇게 일렬로 서 있기만 한데 아니라 저 시절에도 은엄폐나 엎드려 쏘긴 했었음.
그럼 장전을 못 함 돌격에도 취약하고 그리고 저게 명중률도 그닥이거든
최소한 방패라도 앞에 놔두면 안되었던건가...
엎드린 애들은 기병대가 사뿐히 즈려밟아줌
하긴 당연히 그렇겠지..? 하다못해 방패라도 있으면 좋을거 같은데
가스압+탄창을 활용한 자동장전 이전 시대의 총으로는 엎드려쏴의 개노가다 수준이 심각하게 올라가지.
보병이 들수 있으면서 기동하는데 불리함이 없는 수준의 방패로는 총을 막기 힘들었음...
뚫링
저시기 총만 되도 나무 방패로는 못 막음. 완전 철제 방패는 들고 다닐수도 없고
저 당시면 이미 대포도 발달했고 방탄 되는 방패는 들고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음
그럼 방패병과 라이플병을 따로 두... 너무 산으로 가나
ㅇㅇ 뭣보다 그 방패 들어도 대포는 절대 못막는데 대포 피해 줄이려면 빨리빨리 움직이면서 진형을 바꿔야해서 무리
총알 막는 수준의 철 방패보다 평민 징집해서 갈아넣는게 더 쌈
테르시오네 ㅋㅋ
허..미..
총이라 생각말고 사거리가 조오오온나 긴 창임 현대화기랑은 사용 개념자체가 다름
점이 아니고 모여서 면으로 때리는 무기여 저거
사거리가 짧아 육안으로 확인되는 거리에서 싸우는데 그정도 거리면 방패정도는 관통되서 무용지물이였다함..
효율성 문제엿음 방패가 총기를 막으려면 단순나무방패수준이면안되는데 그돈이면 그냥 병력한줄더 세우는게낫거든
와! 인간이 방패보다 싸고 가볍다!
중기병(기사)가 멸종하고 경기병만 남은 이유가 총앞에서는 평등하게 한방이어서... 저시대 총이라도 해도 어지간한 철판으로도 방어 안됨
저거 제일 앞줄은 무조건 죽는데 안 도망갔어?
그래서 군율이 더 엄했다고 합니다
루리웹-381579425
도망가면 아군이 죽임.
군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는 전술이라던데 저 전술이 군기를 잡는데 존1나 효율적이라 전투 도중 이탈자가 적었다 거리던데 ㅋㅋ
도망간 놈들은 기병대한테 따잇 당함
안 도망가면 살 확율이 있는데 도망가면 확정으로 죽음(적이던 아군이던)
그러지 못하게 조지는게 부사관들의 임무였음.
지금 우리 전술도 몇백년 뒤에는 "저러면 참여한 인간 중 대다수가 죽거나 불구인데 안도망갔어?" 라고 할지도 몰라
그래서 보통 신병을 제일앞에 세우고 2~3열 뒤에 숙련병을 둠 그리고 그때당시 탈영이거나 항명은 채찍질로 다스리고 저렇게 라인잡고 싸우러가는데 도망가봤자 죽게된다고 하더라고
무조건 죽는건 아님 창 방원전의 연장선이라 대열 무너지는 쪽니 죽는거지 앞열이 죽는게 아님
그럴 때는 많은 경우 줘패서(태형)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무조건 죽는 수준하고는 거리가 꽤 있었다고 함.
그래서 도망치는놈들은 차라리 그때 총맞아 뒤질껄 하고 생각하게해줌
당시 명중률이 상당히 개판이라 저렇게 포화사격을 가해도 의외로 반드시 죽는 수준은 아니였음. 물론 즉사만 아니지 제때 치료 못 받으면 죽는 건 마찬가지긴 했는데.
영국 레드코트들이 똥군기가 그렇게 쎘다더라. 툭하면 두들겨맞고 채찍질 당하고 그랬다 함.
저시대에 탈영은 걍 사형일걸? 구타가 일상인 군기도 덤이고
근데 겁나 신기한게 저 당시 총기의 정확도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앞열도 생환율이 높았다고 하더라... 오히려 저 이후에 착검돌격이나 라인 무너진 쪽이 도망가다 죽든 하니까 도망 안가고 옆사람이 맞길 바라며 따라 걸어가는게 나았다고
뒤에도 띄엄 띄엄 줄서있있는데 앞에서 뒤돌아 뛰면 바로 뒷놈들이 쏘지않을까?
뒷줄에서 총 들이밀고 가라고 하잖아 도망갈 데도 없고
둘 다 아니고 '키순서'로 배치함 ㅋㅋㅋㅋㅋㅋ
그게또 무조건은 아니예요. 저 총의 경우 총알이 무회전에 가까워서...운동에너지가 조금만 떨어지면 어디로 날아갈지 모름.
그 당시 최선의 전술임. 꼭 모든걸 현대 기준으로 보는 시야 좁은 바보들이 많더라고
사실 라인배틀이 ㅈ같은 이유는 라인배틀끼리 만나서 그런거고 라인배틀 vs 다른 진형끼리는 어지간하면 라인배틀이 이겼다지
흩어지면 기마병한테 각개격파 당하던 시절임
뭉치면 파이크병 이상으로 기병대를 잘 잡음(중요)
- 그들은 내가 본 중 최고의 기병대였지만, 우린 그걸 파훼하는 걸 수도 없이 해봤다. 팔리교 전투에서 청나라 팔기군을 썰어버린 이후 감상.
팔기군이 후반가면 규율이 작살나서 녹영한테도 비웃음 샀다는데 요 전투에 나온 기병대는 청나라 최후의 불꽃이었나보네
그래서 토탈워에서 올기병이 예능이구나
마갑입은 올 중장이면 예능까지는 아닐지도... 아니면 파르티안 샷 날릴 수 있는 궁기병을 편성하거나
토탈워는 보통 창병이 돌격반사랑 대대형 보너스를 가지고 있고 궁병에 따잇당하는 상성이라 올인전략이 위험함 단 햄탈워 기준 브레통은 보병진이 ㅂㅅ이고 기병이 그런거 전부 씹을정도로 강력해서 자원제한 없는 캠페인에선 모루진도 기병으로 편성하긴 함
어차피 다 같이 라인배틀+제일 훈련 잘됨+훈련에서 실사격 해본게 얘네정도
영국 레드코트 부대가 저걸로 해가 지지않는 나라를 완성했다
총알 앞에서도 쫄지 않고 대열을 유지하다니 패기 하나는 멋지잖아 근데 그 총알을 분무기처럼 뿌리는 무기가 나왔을 뿐이고...
발명가: 좋아! 이 무기가 전장에서 나오면 사람들이 전쟁의 끔찍함을 알아서 전쟁을 안 일으킬거야! 핵무기: ㄹㅇ ㅋㅋ
코딩 똑바로 안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웃기네
망한 반복문
처형부대냐ㅋㅋㅋ
일단 총 장전하려면 서서 해야해.
지금 시점으론 멍청해보이는 짓도 다 이유가 있었던거지 무연화약이 나오기 전 화약연기를 생각하면 전투복이 은폐의 역할보다는 피아식별의 역할이 중요했고 무강선 라이플로는 라인배틀이 최선이었고
???: 뭐 하러 저렇게 화려한 군복 착용함? 은폐하기 좋은 색상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음? ???: 통신 및 관측 장비가 덜 발달된 시대엔 저래야 피아식별도 하고 지휘관들한테도 잘 보이니까...
저때 전술을 '총'을 쓰는 전술이 아니라 '진화한 창'을 쓰는 전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긴 하더라고
조준력이 쌉구대기라 저렇게 횡대로 쏴야 그나마 전방위 사격되며 명중이 됐다 하더라
사실 저때도 숙련되면 충분히 조준사격해서 맞추고 다 할만큼의 명중률은 나왔음 근데 정예병력 아닌이상 그렇게까지 사격훈련 다 시키면 화약도 많이 들고 전열 만들어서 쏘면 면단위 제압인것 같아서 그랬다고
조선시대 조총병이 유난히 잘쐈다는데 명중률이 60인가 70이고 당시 중국이 반도 안나왔다던것 같은데 피나는 훈련이 필요했다고 하긴했다더라그
걍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나폴레옹이 활약하던 시기임 나폴레옹도 똑같이 저 전술로 싸워서 이기고 다녓고 ㅋ
다만 갈 수록 부하들이 찐빠짓을 많이 벌여서 결국 몰락했지ㅋㅋㅋ
생각해보면 장창방진이나 라인배틀이나 거리 차이만 빼면 크게 개념적인 차이는 없긴 했구나 그게 뒤집어진건 역시 기관총의 발명이겠지
저건 현대식 사수가 아니라 길이 30미터짜리 창병진이라고 이해하라고 들었어
오 이렇게보니까 ㅅㅂ 개쩔어요
최대 100미터 이상까지도 가는 창병진임ㅋㅋㅋ
보병킬러 기병도 저건 못이겻음 바로 방진짜면 그만이라
철조망 + 기관총 조합나오기 전까지 썼었나?
영국군은 보어전쟁 이후로 위장색 칠하기시작함 그래서 붙은 별명이 토미고
나의 의문은 당시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폭증한 사실 정도는 알고 있는대, 전쟁 때 마다 저렇게 앞라인 고기방패로 쓸 만큼 사람이 남아 돌았냐는거임. 뭐 적어도 중요 부위에 플레이트 아머나 뭐 당시기술로 가능한 방탄기능을 하는 조끼 한벌 정도는 입혔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 설마 맨 앞라인은 총알보다 싼 아일랜드 사람이거나 그러진 않았것지...?
생각보다 저 전열 자체의 사망자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음 되려 진영유지 실패하거나 후퇴시 기병한테 우수수 따이거나 하는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이 죽음
치킨게임 같아 보이지만 저 때 머스킷 정확도가 좀 안좋아서 애매한 거리에서 되는대로 막 쏴서 탄 낭비하고 재장전 시간동안 버벅대다가 상대 돌격각 주거나 공격 기회 넘겨주는것 보다 유효 사거리 내로 들어가서 탄막 형성하면서 일제사격 해서 적 확실하게 조져놓는게 아군 생존률 더 높아서 저렇게 싸운거라고 들었음.
예나 지금이나 말단 보병은 부랑자까진 아니어도 집안 먹여살리려는 가난한 집 3남정도가 자원입대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또 초반 확정 손실을 제외하면 다른 전쟁보다 유의미하게 사상률이 높았는지는... 오히려 저거 전열 유지한다고 규율 빡세게 잡아서 후퇴에 성공했다면 사상률이 전근대보다 높지는 않았을거임 원래 전근대 사상자 대부분은 진형 깨지고 부대 모랄빵 났을 때 추격하면서 생기거든
라인배틀 관련한 프리드리히 2세 관련 내용보면 붙을때 마다 양쪽 사상자가 몇만 단위던대 거의 기병, 포병으로 인한 사상자인건가?
오히려 저렇게 싸우는게 군대만 뭉쳐서 싸우니까 민간인이고 뭐고 다 쓸어버리는 1, 2차대전보다 훨 더 죽였을거임
저당시엔 사상자가 편제의 5-10%정도 나오면 그대로 와해됐음 워털루에서 사상자 25% 나올때까지 버틴 나폴레옹 선임근위대가 대단한 이유 저당시 대부분의 사상자는 전투후 추격전, 전과확대과정에서 나옴
이게 사격전 자체의 효율은 몇발 쏘다보면 화약연기때문에 훅 떨어지기는 하는데 이제 간격조절실패해서 상대가 먼저 한발 쏘고 총검돌진같은거에 정통으로 맞아 모랄빵 난다거나 하면 우수수니까 근데 그시점에서 이미 최전열이 잘죽네 마네의 문제가 아니게됨(...)
좋은 지식 감사합니다.
그래서 사기가 중요했던거군요, 좋은 지식 감사합니다.
시민혁명이나 산업혁명 이후 시기가 기술적으로도 상대적으로 입문 장벽이 낮은 열병기들이 등장할 때도 사회 분위기도 왕의 국가가 아닌 시민의 국가 체제로 변할때라 징병제 비스무리한 시스템 혹은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군인력 자원이 갑자기 폭증하는 시기라고 들음
의외로 라인배틀은 사망자가 많이 안나옴 남북전쟁당시 엄청난 사망자가 나왔다는 게티즈버그 전투조차 2차대전때랑 비교하면 사망자 비율이 적었음 물론 다치는 경우는 많았지만 라인배틀에서 가장 중요한건 베테랑 병사의 숫자였고 이 배테랑이 일정 수준까지 모일정도로 사망이나 부상으로 빠지는 인원이 많지 않았음
저 당시 총 명중률이 엑스컴 수준이라서, 저게 최적화 전략 맞다던가.
진짜 가끔씩 저걸 이긴답시고 몽골 기병을 꺼내오는 알못도 있다....
팔리교에서 청 몽골팔기가 저 전열보병에 개박살남 ㅋㅋㅋㅋㅋ
말에다 박격포달고 이동하면서 포격전했으면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