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전투 중 태평양 함대는 전투식량이 부족해서 본토 전시함선국에 지원 요청을 했다. 그런데 민간 수송이다 보니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 주문을 좀 넉넉히 넣는다는 게 과도하게 주문을 해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전시함선국은 렌드리스를 실질적으로 담당한, 해상 보급과 물류에 있어서는 당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조직이었다.
태평양 함대의 보급부서는 설마하며 지켜보다가 자신들이 실수를 했음을 알고 황급히 전투식량 주문을 취소했는데, 이미 수송선 50척 중 44척이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1억명분의 전투식량을 보급받아 난리가 났다.
그 결과 진주만 서쪽의 모든 미군 기지의 창고는 전투식량으로 인해 터져나가게 되었고, 후방 보급기지인 진주만에 전투식량을 보관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16척의 수송선이 남았다. 전투식량이 부족하지 않은 게라마 열도와 사이판, 괌, 레이테 만, 맥아더 장군의 남서태평양 해역군에 잔뜩 떠넘기고도 1척이 남았다. 마지막 수송선 아셀라는 2월 25일에 울리시 환초에 정박했는데 전투식량 하역이 끝난 6월 13일까지 4개월 가까이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런 지경이었으니... 오키나와 전투에서 민정당국이 일본인 민간인들을 위한 식량을 요청하자 넘쳐나던 전투식량에 골치를 앓던 태평양 함대의 모든 전진기지들이 전투식량을 떠넘겼고, 상황을 파악한 민정당국이 황급히 요청을 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청한 20만 명의 보름치 식량의 두 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전투식량 파동은 태평양 함대의 보급부서가 신선냉동식품을 잘 보급해준 덕이 컸다. 전방 전투병력이 아니고서는 함선 승무원이든 후방기지 병력이든 신선냉동식품을 먹을 여건이 되는 한 전투식량을 먹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전투식량을 먹으라고 신선냉동식품 보급을 줄인다면 그 또한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1억명분을 요청했고 그 1억명분을 진짜 갖다준 미국의 생산 보급 능력
그때의 기합 넘치는 미국과 지금의 미국을 비교한다면..
미군이 보급을 요청하자 1억명을 먹이고도 16척이 남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