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는 알겠는데, 영화적 연출보다 연극적 연출이었지.
전체적으로 역사와 현실 속의 안중근보다 뮤지컬 영웅 속의 안중근에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 같다고 느껴짐.
전체적으로 설명조 대사가 너무 많고, 과다한 회상씬에 듄처럼 풍경이 너무 많이 나옴.
사형 집행 장면은 대놓고 뮤지컬 영웅의 무대 연출을 따라했고.
감독이 좀 더 도전적인 시도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음.
물론 영화 영웅의 만두 타령은 없어서 천만다행이었음.
프랑켄슈타인적인 모습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지 좀 더 설명이 필요하지만.
다양한 인간에서 일정 부분씩 가져왔다는 표현이라면.
극 중 안중근은 그런 면모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고 봄.
오히려 너무 정형적인 인물이라서 입체적이지가 않음.
초반에도 적장을 살려보내줬다가 부대원이 몰살당하고도, 후반에 배신자를 처단하지 않고 다시 기회를 주는.
과도할 정도로 강한 신념의 소유자자너.
인간 안중근이라서 일본군이나 밀정에 의해 만국공법과 인류애에 대한 신념을 시험 받아 흔들리기도 하면서도 결국 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안중근은 다 알고 있었다는 본질적으로 영웅인 안중근, 신격화된 절대적 존재로 등장한다는 거임.
중간에 밀정이 있어서 폭약과 동료를 잃는 장면에서 잠시 좌절하기도 하지만 이내 별 이유 없이 극복해버리자너.
그런 상황에서 필요 이상으로 긴 풍경 장면으로 종교극처럼 연출되는 것 또한 안중근이라는 대상을 인간이 아닌 신격화된 존재로 만드는 거지.
독립 투사들의 헌신과 역사가 위대하긴 하지만.
그건 독립 투사들 자체가 출신부터가 다른 본질적으로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계나 밀정 같은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고뇌에 시달리면서도 목적을 잊지 않고 나아갔기에 위대한 존재가 된거자너.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들이 빵 트럭을 보내서 선의를 행하는 것과, 내가 수중에 빵 하나 밖에 없어 고뇌하다가 나보다 더 힘든 자를 위해 빵은 나누는 선의는 의미가 다르지.
비평에 있어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인간 안중근이 외재하는 개념이긴 한데 이토가 영웅 운운하는 장면이나 중좌가 안중근의 고결함을 인정하는 듯한 장면들을 통해서 반동인물과 대비되는 구도 자체가 있을 수 있다곤 보고
마지막 장면도 예수처럼 그려놨지만 결국 숨소리에서 막을 내리는건 숨을 쉬기에 그도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연출이 아닐까 싶음
비영웅의 안중근을 강조할 거였다면, 필요 이상으로 긴 풍경 장면을 넣어서는 안되지.
영화 영웅의 만두 타령, "배고픈 청춘이여"가 극의 분위기를 해치면서도 존재하는 이유가 극을 통해서 신격화된 안중근을 밥도 먹고 어머니와 청춘을 그리워하는 인간 안중근으로 다시 가져오는 기능이자너.
다른 넘버인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도 이전 넘버인 "누가 죄인인가"로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진실을 고발하는 신격화된 안중근을 다시 한 인간 어머니의 아들이고 죽음 앞에서 흔들릴 수 있는 인간 안중근으로 가져오는 기능이고.
이런 장면이 있어야 인간 안중근이 되는 건데.
하얼빈의 안중근에게는 이런 장면이 충분하지는 않았다고 봄.
물론 그렇다고 만두 타령이 최고는 아니었다고 봄.
만두 타령은 좀 너무 심했어.
그리고 이런 인간 안중근론을 영화적으로 전개한다면 만국공법이 키워드라고 생각하는게 작중에 안중근을 묘사하는 말이 딱히 없음 그냥 내목숨은 내목숨이 아니다인데 두 개 정도인데
작중에서 만국공법이 단순히 이창섭이랑 대화를 하기위해 공공관념으로서의 언어적 발화가 이뤄졌을 뿐인거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인간으로서 모두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걸 드러내는 장치가 아닌가싶음 지독하게 묘사를 안하는데 초반부에 그런걸 집어넣었다라는 점에서.
원래 영화는 쪄먹는 맛이긴하지만
결국 영화라는 매체는 화면이 전부지만 화면에 모든 걸 담을 수 없으니까, 영화공부하는 사람들이야 재생산을 위해 메타적인걸 쳐내는거지만 실재 인간 안중근이 영화 밖에 있다는 점은 연극에서 숨을 쉬지 않아도 사람은 숨을 쉰다는 점 같은거지
2차원과 3차원과 4차원의 맛이 다 다른 게 생각의 재미 아니겠음
이토의 전반적인 대사들이나 중좌를 향한 이창섭의 대사가 대표적으로 너무 설명조의 대사들이었지.
거의 만두타령에 비견될 정도로 극에 대한 몰입을 깨는 대사였음.
숨을 쉬는 존재는 동물도 숨을 쉬고, 아바타처럼 대자연이 숨을 쉬는 듯한 연출을 보여주기에.
"숨"만으로 인간성을 표현하는 것은 무리라고 봄.
처형 장면이 연극적 연출이라느 것은, 연극 무대처럼 배경이 없이, 인물과 구조물만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자너.
그전까지 극 중에서 연극적 구도일지라도 배경이 없는 장면은 없었는데, 갑자기 배경이 없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너무 연극 같자너.
그렇기에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 안중근이 죽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의 배우 안중근이 죽는 것 같은 느낌이 되버리는 거지.
연극은 실제 배우의 현장감있는 연기를 실제로 마주하기에 극한으로 몰입되어 관객이 의식할 여지가 없지만.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그런 이질감을 너무 의식하게 되자너.
일단 너를 논리로 제압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구술로 진행되는 토론이 아니니까 막 너를 채근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걸 분명히 하겠음.
몇 시간이 걸린 댓글을 달아도 내가 답을 할거고, 며칠이 걸려도 답을 하겠음.
그러니 최대한 비문을 줄이고 문장을 의도에 맞춰 정돈해서, 서로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가능한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서로 최대한 노력해보자고.
그리고 "영화는 쪄먹는 맛"이라는 표현도 그냥 툭 던지기에는 일상적인 표현이 아니자너.
독창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좋지만, 상대방에게 온전한 전달을 위해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지.
극 중 만국공법이 그저 언어적 발화를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하얼빈의 안중근이 마치 만국공법의 대리인으로만 기능하기 때문에, 인간 안중근이 아니라, 신격화된 안중근처럼 보인다는 거임.
매체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얼빈은 영화로써 그 맛이 온전하지 못했다는 거자너.
영화 안에서 연극적인 맛을 추구하니까, 영화적인 맛도 아니고 연극적인 맛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맛이 났다는 거임.
ㅇㅇ 그래서 화면의 2차원으로만 보면 이런 프랑켄슈타인적인 모습들이 실밥투성이인 모습이 되는데 일부러 영화망치는 감독이 없다고 가정했을때 영웅안중근을 암시하는 듯한 두만강-회령전투-이토-열차실내싸움-블라디-사막-밀정-암살-죽음의 도식이 영웅도 인간도 아닌듯한 아쉬운 연출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부조리적으로, 메타영화적으로 실재하는 인간 안중근이 통합되면서 그는 영웅이 아니지만 영웅이라는 모순이지만 무모순인 상태를 만들려는 영화가 아닌가싶어
그런 영화를 좋게 말하면 예술 영화고 나쁘게 말하면 이도저도 아닌 영화지.
하얼빈이 감독이 전부 돈을 낸 저예산 영화였고 영화제에서 봤다면 그런 전개도 수용 가능하지만, 대중 영화로써 대중 영화관에서 상영한다면 감독의 의도 이전에 대중의 수요에 맞춰야지.
감독의 딸딸이를 쳐주자고 투자자들이 수십 억씩 낼 이유가 없자너.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건 이 영화에서 계속 나오는게 맨손과 장갑인데 마지막에 3월의 뤼순이건 블라디던 개추운데 한손에만 장갑을 끼고 맨손으로 찌른걸 보면 진짜는 맨손 가짜는 장갑이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연출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부분에서 작중 인물들은 모두 맨손을 가지고 있고, 이창섭과 중좌의 영웅 대 인간이라는 이분법적 대화라던가 하는 부분들이 더 나아가 안중근도 그 스테이크를 손으로 먹었을것이라는 부분들이 아닌가 싶음 성리철학이건 기독교철학이건 평등이 전재되는 부분들이 있으니까.
우덕순과 김상현이 술먹으면서 한 대화에서 기억이 강조되는 것도 기억되지 못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높히기보단 자기들도 기억되지 못한 그들과 같은 개인의 존재라는 걸 그려내고자 하는 부분이었다고도 생각하고
맨손과 장갑의 메타포나 기억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영화로써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라는거임.
그런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의 꼴을 갖춘 다음에 해야지.
아니면 분노의 질주처럼 장점을 극대화시켜서 단점을 묻어버린 것처럼, 국뽕을 치사량으로 줘서 단점을 묻어버렸어야 했는데.
이 정도로 본격적인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거지.
의도는 알겠는데, 영화적 연출보다 연극적 연출이었지. 전체적으로 역사와 현실 속의 안중근보다 뮤지컬 영웅 속의 안중근에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 같다고 느껴짐. 전체적으로 설명조 대사가 너무 많고, 과다한 회상씬에 듄처럼 풍경이 너무 많이 나옴. 사형 집행 장면은 대놓고 뮤지컬 영웅의 무대 연출을 따라했고. 감독이 좀 더 도전적인 시도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음. 물론 영화 영웅의 만두 타령은 없어서 천만다행이었음.
영화가 전체적으로보면 프랑켄슈타인적인 모습이 있긴한데 안중근을 알고보면 인간이란게 원래 프랑켄슈타인적인 존재니까
풍경도 결국 인물들의 심상을 그려내는 종교극적인 장치가 되는데 만약 주제가 안중근이 아니었다면 환각 비슷하게 초현실적인 묘사를 했을거같음 라트비아의 강이 충분히 초현실적으로 멋있긴 했지만 그또한 초현실은 아니니
프랑켄슈타인적인 모습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지 좀 더 설명이 필요하지만. 다양한 인간에서 일정 부분씩 가져왔다는 표현이라면. 극 중 안중근은 그런 면모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고 봄. 오히려 너무 정형적인 인물이라서 입체적이지가 않음. 초반에도 적장을 살려보내줬다가 부대원이 몰살당하고도, 후반에 배신자를 처단하지 않고 다시 기회를 주는. 과도할 정도로 강한 신념의 소유자자너. 인간 안중근이라서 일본군이나 밀정에 의해 만국공법과 인류애에 대한 신념을 시험 받아 흔들리기도 하면서도 결국 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안중근은 다 알고 있었다는 본질적으로 영웅인 안중근, 신격화된 절대적 존재로 등장한다는 거임. 중간에 밀정이 있어서 폭약과 동료를 잃는 장면에서 잠시 좌절하기도 하지만 이내 별 이유 없이 극복해버리자너. 그런 상황에서 필요 이상으로 긴 풍경 장면으로 종교극처럼 연출되는 것 또한 안중근이라는 대상을 인간이 아닌 신격화된 존재로 만드는 거지. 독립 투사들의 헌신과 역사가 위대하긴 하지만. 그건 독립 투사들 자체가 출신부터가 다른 본질적으로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계나 밀정 같은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고뇌에 시달리면서도 목적을 잊지 않고 나아갔기에 위대한 존재가 된거자너.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들이 빵 트럭을 보내서 선의를 행하는 것과, 내가 수중에 빵 하나 밖에 없어 고뇌하다가 나보다 더 힘든 자를 위해 빵은 나누는 선의는 의미가 다르지.
실재하는 인간 안중근이 따로 존재하니까 영화 자체는 연출적으로 조각나있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인신적으로 봉합해주는 실재 안중근이 있기에 메타적으로 이 영화가 비영웅의 안중근을 강조하면서 영웅 만들기처럼 그려지는 부분들을 고발한다는 점이지.
비평에 있어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인간 안중근이 외재하는 개념이긴 한데 이토가 영웅 운운하는 장면이나 중좌가 안중근의 고결함을 인정하는 듯한 장면들을 통해서 반동인물과 대비되는 구도 자체가 있을 수 있다곤 보고 마지막 장면도 예수처럼 그려놨지만 결국 숨소리에서 막을 내리는건 숨을 쉬기에 그도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연출이 아닐까 싶음
비영웅의 안중근을 강조할 거였다면, 필요 이상으로 긴 풍경 장면을 넣어서는 안되지. 영화 영웅의 만두 타령, "배고픈 청춘이여"가 극의 분위기를 해치면서도 존재하는 이유가 극을 통해서 신격화된 안중근을 밥도 먹고 어머니와 청춘을 그리워하는 인간 안중근으로 다시 가져오는 기능이자너. 다른 넘버인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도 이전 넘버인 "누가 죄인인가"로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진실을 고발하는 신격화된 안중근을 다시 한 인간 어머니의 아들이고 죽음 앞에서 흔들릴 수 있는 인간 안중근으로 가져오는 기능이고. 이런 장면이 있어야 인간 안중근이 되는 건데. 하얼빈의 안중근에게는 이런 장면이 충분하지는 않았다고 봄. 물론 그렇다고 만두 타령이 최고는 아니었다고 봄. 만두 타령은 좀 너무 심했어.
그리고 이런 인간 안중근론을 영화적으로 전개한다면 만국공법이 키워드라고 생각하는게 작중에 안중근을 묘사하는 말이 딱히 없음 그냥 내목숨은 내목숨이 아니다인데 두 개 정도인데 작중에서 만국공법이 단순히 이창섭이랑 대화를 하기위해 공공관념으로서의 언어적 발화가 이뤄졌을 뿐인거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인간으로서 모두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걸 드러내는 장치가 아닌가싶음 지독하게 묘사를 안하는데 초반부에 그런걸 집어넣었다라는 점에서. 원래 영화는 쪄먹는 맛이긴하지만
결국 영화라는 매체는 화면이 전부지만 화면에 모든 걸 담을 수 없으니까, 영화공부하는 사람들이야 재생산을 위해 메타적인걸 쳐내는거지만 실재 인간 안중근이 영화 밖에 있다는 점은 연극에서 숨을 쉬지 않아도 사람은 숨을 쉰다는 점 같은거지 2차원과 3차원과 4차원의 맛이 다 다른 게 생각의 재미 아니겠음
이토의 전반적인 대사들이나 중좌를 향한 이창섭의 대사가 대표적으로 너무 설명조의 대사들이었지. 거의 만두타령에 비견될 정도로 극에 대한 몰입을 깨는 대사였음. 숨을 쉬는 존재는 동물도 숨을 쉬고, 아바타처럼 대자연이 숨을 쉬는 듯한 연출을 보여주기에. "숨"만으로 인간성을 표현하는 것은 무리라고 봄. 처형 장면이 연극적 연출이라느 것은, 연극 무대처럼 배경이 없이, 인물과 구조물만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자너. 그전까지 극 중에서 연극적 구도일지라도 배경이 없는 장면은 없었는데, 갑자기 배경이 없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너무 연극 같자너. 그렇기에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 안중근이 죽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의 배우 안중근이 죽는 것 같은 느낌이 되버리는 거지. 연극은 실제 배우의 현장감있는 연기를 실제로 마주하기에 극한으로 몰입되어 관객이 의식할 여지가 없지만.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그런 이질감을 너무 의식하게 되자너.
일단 너를 논리로 제압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구술로 진행되는 토론이 아니니까 막 너를 채근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걸 분명히 하겠음. 몇 시간이 걸린 댓글을 달아도 내가 답을 할거고, 며칠이 걸려도 답을 하겠음. 그러니 최대한 비문을 줄이고 문장을 의도에 맞춰 정돈해서, 서로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가능한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서로 최대한 노력해보자고. 그리고 "영화는 쪄먹는 맛"이라는 표현도 그냥 툭 던지기에는 일상적인 표현이 아니자너. 독창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좋지만, 상대방에게 온전한 전달을 위해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지. 극 중 만국공법이 그저 언어적 발화를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하얼빈의 안중근이 마치 만국공법의 대리인으로만 기능하기 때문에, 인간 안중근이 아니라, 신격화된 안중근처럼 보인다는 거임. 매체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얼빈은 영화로써 그 맛이 온전하지 못했다는 거자너. 영화 안에서 연극적인 맛을 추구하니까, 영화적인 맛도 아니고 연극적인 맛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맛이 났다는 거임.
ㅇㅇ 그래서 화면의 2차원으로만 보면 이런 프랑켄슈타인적인 모습들이 실밥투성이인 모습이 되는데 일부러 영화망치는 감독이 없다고 가정했을때 영웅안중근을 암시하는 듯한 두만강-회령전투-이토-열차실내싸움-블라디-사막-밀정-암살-죽음의 도식이 영웅도 인간도 아닌듯한 아쉬운 연출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부조리적으로, 메타영화적으로 실재하는 인간 안중근이 통합되면서 그는 영웅이 아니지만 영웅이라는 모순이지만 무모순인 상태를 만들려는 영화가 아닌가싶어
그런 영화를 좋게 말하면 예술 영화고 나쁘게 말하면 이도저도 아닌 영화지. 하얼빈이 감독이 전부 돈을 낸 저예산 영화였고 영화제에서 봤다면 그런 전개도 수용 가능하지만, 대중 영화로써 대중 영화관에서 상영한다면 감독의 의도 이전에 대중의 수요에 맞춰야지. 감독의 딸딸이를 쳐주자고 투자자들이 수십 억씩 낼 이유가 없자너.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건 이 영화에서 계속 나오는게 맨손과 장갑인데 마지막에 3월의 뤼순이건 블라디던 개추운데 한손에만 장갑을 끼고 맨손으로 찌른걸 보면 진짜는 맨손 가짜는 장갑이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연출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부분에서 작중 인물들은 모두 맨손을 가지고 있고, 이창섭과 중좌의 영웅 대 인간이라는 이분법적 대화라던가 하는 부분들이 더 나아가 안중근도 그 스테이크를 손으로 먹었을것이라는 부분들이 아닌가 싶음 성리철학이건 기독교철학이건 평등이 전재되는 부분들이 있으니까. 우덕순과 김상현이 술먹으면서 한 대화에서 기억이 강조되는 것도 기억되지 못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높히기보단 자기들도 기억되지 못한 그들과 같은 개인의 존재라는 걸 그려내고자 하는 부분이었다고도 생각하고
독립운동했다고 쳐야지 뭐 애초에 자기맘대로 안할거였으면 안나올 영화였으니
맨손과 장갑의 메타포나 기억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영화로써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라는거임. 그런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의 꼴을 갖춘 다음에 해야지. 아니면 분노의 질주처럼 장점을 극대화시켜서 단점을 묻어버린 것처럼, 국뽕을 치사량으로 줘서 단점을 묻어버렸어야 했는데. 이 정도로 본격적인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