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진지하게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이유는
민주 공화정인 나라에서 독재자를 뽑아 독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다신교인 나라에서 신같지도 않은것들이 아니라 일신교 믿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미친소리 하는데 똑똑한 양반이니 걍 추방형으로 하죠
하고 투표했는데
그거보고 감히 본좌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추방이라니? 하고 어그로 끌어서 사형당함
진지하게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이유는
민주 공화정인 나라에서 독재자를 뽑아 독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다신교인 나라에서 신같지도 않은것들이 아니라 일신교 믿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미친소리 하는데 똑똑한 양반이니 걍 추방형으로 하죠
하고 투표했는데
그거보고 감히 본좌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추방이라니? 하고 어그로 끌어서 사형당함
소크라테스가 재판에 회부된건 당시 그리스사람들 입장에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
1. 고대 아테네는 종교와 정치, 윤리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사회였는데 소크라테스는 '다이모니온'이라는 정체불명의 신을 섬긴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님.
그렇다고 다른 신들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다이모니온=양심이라는 명제하에 다른 그리스 신들(불륜, 폭력을 자행하는)을 격하한 것과 마찬가지임.
2. 민주주의의 선구자라는 아테네답게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단 한번을 제외하고 민회에 배심원으로 참여하거나 한 적이 없음.
3. 알키비아데스, 크리티아스 등 제자들 중 일부가 상상을 초월하는 ㄱㄴ들이어서 적국과 내통하여 아테네를 위기에 빠뜨림.
소크라테스가 직접 관여된건 아니지만... 사람들 시선이 어디 그렇게 칼처럼 딱딱 잘라서 구분하겠음?
4. 사실 이게 제일 결정적일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가 문답법을 실행하고 다닌건 꽤나 젊은 시절부터였음. 그때는 아테네가 페리클레스의 주도하에 황금시대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같은 괴짜도 유쾌하게 봐줄 수 있는 시기였음. 그래서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서는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의 대표격으로 조롱하는 내용의 연극으로 제전에서 상까지 탐.
그런데 역병으로 페리클레스를 포함한 성인남성중의 1/4정도가 죽고 외국과의 전쟁에서 연달아 패해 식민지를 상실하면서 아테네 사회 자체에 여유가 점점 없어짐.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을 깨고 다녔던 건 소피스트 자체를 싫어해서가 아님.
(아마 소피스트들의 행태를 싫어하긴 했겠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에 변함없는 진리가 있는지 궁금했고 그걸 알기 위해 젊은 시절에도 여러가지 학문사조를 접해봤음.
그래서 "나는 진리를 알고 있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진짜 영원불변한 진리인지 알고 싶어서 문답법을 시행해본 거임.
그렇게 수많은 소피스트, 연설가, 정치가, 장인들과 '대화'를 해본 결과 그 사람들은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믿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림.
그리고 소피스트, 연설가, 정치가, 장인들에게 "당신들이 알고 있다는 진리는 사실 만고불변한 진리가 아닌데?"라고 만천하에 공공연하게 상기시켜줌.
그러니 당시 자칭 식자라는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싫어할 수 밖에 없었음.
소크라테스가 영원불멸한 진리가 있다고 믿은 데는 수학적 정의의 존재가 컸음.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30대 중반쯤 되었을 때 "나는 자연의 거의 모든 것을 성찰해봤다. 이제 인간에게서도 같은 것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하며 그러한 수학적(=자연) 정의와 같은 것을 사람에게서 찾아보려고 했던 진정한 학자임.
근데 테스형.. 형이 그걸 못해서..죽..
진지하게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이유는 민주 공화정인 나라에서 독재자를 뽑아 독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다신교인 나라에서 신같지도 않은것들이 아니라 일신교 믿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미친소리 하는데 똑똑한 양반이니 걍 추방형으로 하죠 하고 투표했는데 그거보고 감히 본좌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추방이라니? 하고 어그로 끌어서 사형당함
그...그치만 너도 모르잖아!
양자역학에 와서야 알게됨 우리는 모른다는것을 알게됬다...
잰 그걸로 유명한 인간들에게 그런 소리함
몰라레후
몰?루
근데 테스형.. 형이 그걸 못해서..죽..
테스형이 죽어서 저게 남은거지 살았으면 포장되어서 의미도 왜곡되었을거임.
양자역학에 와서야 알게됨 우리는 모른다는것을 알게됬다...
그...그치만 너도 모르잖아!
"ㅇㅇ 나도 모름. 그러니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 소크라테스
해당 분야에 박사학위 없으면 아는척 금지인가
무명무념무상
잰 그걸로 유명한 인간들에게 그런 소리함
사실 '해당 분야' 도 기준이 애매한게 파고들면 세부 분야가 또 엄청 나눠지고 그래서 박사급도 전문지식 수준은 직접 해본거 아니면 잘 모를 확률이 높음
박사학위얘기가 아니라 그리스 사람중 현대의 박사급 지식인이라고 비유한건데 문맥좀...
어디서 댙충 만든말 가지고 딴지걸지마쇼 신전에 걸려있는 글귀다 븅딱새꺄
물론 델포이 신전에 적혀있던 글귀인건 사실이지만 소크라테스가 생전에 그의 저서에서 여러번 자신의 해석을 붙여서 사용한 것을 보면 그의 대표적 글귀라고 인정해도 되지않을까요?
처음에 어떻게든 딴지걸려는 애는 있지 않았을까싶긴해서
그럴수도있겠네오
산파법?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낳게 하는 방법이라고? 그딴거 말고 내 애나 낳아라 으럇
저 말는 무지의 지에 대한 말인데 무지와 미지는 다른 영역이니까 무지에 대해 인정해야 새로운 사실을 배울수있다는 뜻 아닐까
진지하게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이유는 민주 공화정인 나라에서 독재자를 뽑아 독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다신교인 나라에서 신같지도 않은것들이 아니라 일신교 믿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미친소리 하는데 똑똑한 양반이니 걍 추방형으로 하죠 하고 투표했는데 그거보고 감히 본좌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추방이라니? 하고 어그로 끌어서 사형당함
당시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 제자들이 저명한 학자, 장군, 고위관료 등으로 재직하고 있어서 함부로 건드리기는 거시기 했던 것도 있었지
사실 그것도 그거지만 철학토론이 많았던 전성기 아테네에선 어느정도 용인되는 담론이었음. 문제즌 사형 이유가 '젊은 세대들을 타락시킨 죄' 소크라테스 제자 중 한명인 알키비아데스가 아테네 시민병 수만명을 몰살시킨 희대의 배신자라 연좌죄 적용 이유도 컸을거임.
위 내용이 타락의 자세한 내용이야
하필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던 시점은 알키비아데스가 죽은 뒤라서 본인에게 죗값을 물 수 없기도 했음
"네가 모른다고 할때까지 시비거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
알다시피 말빨로 먹고 사는 게 가능했던 독특한 환경이었는 데 그걸 망쳤으니 ㅋㅋ 그렇다고 물리력으로 줘팸하기에는 제자들도 많고
솔직히 왜 4대 성인으로 꼽히는지 모르겠음
아아 모르는가 사실 4대성인은 물리력으로 강한 사람을 뽑은 것이다
중장보병 소크라테스 전륜성왕 붓다 나자렛 몽키스패너 예수 전장의 평화주입자 공자 전투력 낮으면 끼지 못하는 라인 ㅋㅋㅋㅋㅋㅋ
그냥 네 명 다 현 세대에 큰 영향을 준 철학자 정도로 생각하면 대충 맞는 듯
시비가 민폐라는 것을 몰랐던 겁니까 소크라테스여...
테스 형은 40중반때까지 펠레폰네소스 전쟁터에서 구르던 아테네 중장보병이었다. 반박시 모가지 꺾임.
제자인 플라톤은 레슬러였음~
소크라테스가 재판에 회부된건 당시 그리스사람들 입장에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 1. 고대 아테네는 종교와 정치, 윤리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사회였는데 소크라테스는 '다이모니온'이라는 정체불명의 신을 섬긴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님. 그렇다고 다른 신들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다이모니온=양심이라는 명제하에 다른 그리스 신들(불륜, 폭력을 자행하는)을 격하한 것과 마찬가지임. 2. 민주주의의 선구자라는 아테네답게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단 한번을 제외하고 민회에 배심원으로 참여하거나 한 적이 없음. 3. 알키비아데스, 크리티아스 등 제자들 중 일부가 상상을 초월하는 ㄱㄴ들이어서 적국과 내통하여 아테네를 위기에 빠뜨림. 소크라테스가 직접 관여된건 아니지만... 사람들 시선이 어디 그렇게 칼처럼 딱딱 잘라서 구분하겠음? 4. 사실 이게 제일 결정적일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가 문답법을 실행하고 다닌건 꽤나 젊은 시절부터였음. 그때는 아테네가 페리클레스의 주도하에 황금시대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같은 괴짜도 유쾌하게 봐줄 수 있는 시기였음. 그래서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서는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의 대표격으로 조롱하는 내용의 연극으로 제전에서 상까지 탐. 그런데 역병으로 페리클레스를 포함한 성인남성중의 1/4정도가 죽고 외국과의 전쟁에서 연달아 패해 식민지를 상실하면서 아테네 사회 자체에 여유가 점점 없어짐.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을 깨고 다녔던 건 소피스트 자체를 싫어해서가 아님. (아마 소피스트들의 행태를 싫어하긴 했겠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에 변함없는 진리가 있는지 궁금했고 그걸 알기 위해 젊은 시절에도 여러가지 학문사조를 접해봤음. 그래서 "나는 진리를 알고 있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진짜 영원불변한 진리인지 알고 싶어서 문답법을 시행해본 거임. 그렇게 수많은 소피스트, 연설가, 정치가, 장인들과 '대화'를 해본 결과 그 사람들은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믿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림. 그리고 소피스트, 연설가, 정치가, 장인들에게 "당신들이 알고 있다는 진리는 사실 만고불변한 진리가 아닌데?"라고 만천하에 공공연하게 상기시켜줌. 그러니 당시 자칭 식자라는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싫어할 수 밖에 없었음. 소크라테스가 영원불멸한 진리가 있다고 믿은 데는 수학적 정의의 존재가 컸음.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30대 중반쯤 되었을 때 "나는 자연의 거의 모든 것을 성찰해봤다. 이제 인간에게서도 같은 것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하며 그러한 수학적(=자연) 정의와 같은 것을 사람에게서 찾아보려고 했던 진정한 학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