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아서 단토의 예술은 죽었다는 이야기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이야기나 나오면서 문학의 종언 이야기도 나오고...
실은 문화계의 종말 시리즈는 30년도 더 넘어가는 떡밥들임.
최근에는 철학자 한병철씨가 서사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도 남겼더라. 여튼 종말 시리즈는 유래가 깊음.
옛날의 창작은 무언가 삶 속의 멜랑콜리나 프로타고니스트 기질이 담겨있었는데 이게 달라지면서 이거 끝난건가? 이런 식으로 제도에서 이야기되던 것들이라.
음반이 있더라도 명연주자가 얼마나 녹여냈는가를 보고 재즈 음반의 순위를 매기는데, 그런거보면 제도권은 어떻게 조용해보여도 창작론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보임.
창작이나 연주나 촬영이나 다 중요한데, 중간에서 알맞게 붙여주는 그런 역할이 진짜 부재하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사회도 혐오로 흘러가고 그렇잖아...
그런거보면 그냉 내 이야기 부른다고 다 창작이 되는건 아닌거같아.
한편으로는 더 들어가보면 요즘거라고 아이돌 음악이라고 생각보다 그리 다르지도 않다는걸 알게되고...
지금이 욕망에 솔직해보여도 결국 무언가를 돌려서 표현했다는걸 알게될때 살면서 묘한 기분이 교차하기도 함.
창작과 예술 이론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더라.
한편으로 걱정되는건 그런 생각을 교류하는 쿠션이 없이 산업 체제에 복무한다는게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도 하게되고.
일본의 JPOP이나 KPOP의 궤적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이유가 창작 문제를 아티스트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비 인간적인 측면이 강화되어 왔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성과에 가려진 한계성을 알면서도 달려가고 있는 듯 한 것이 문제인 것 같음. 시간 지나면 상품은 분명 질리게 되거든, 그렇지만 아티스트는 속성상 생명력을 스스로 가질 수 밖에 없는데, 현 시스템은 상품을 생산하면서, 창작의 외주화에 따른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강함. 하이브와 민희진 싸움에서 건질 것이 있다면 업계가 이 부분에 대한 고찰을 해 볼 수는 있지않나 하는 그런 지점임.
가령 마틴 스콜세지가 말하는 제작자와의 건강한 긴장상태같은것...
맞음. 보이지 않는 프로듀서와 치열한 논쟁과 협업, 존중과 사랑.
옛날이랑 세상이 달라졌다 봐야지 거인 몇명이 뭔가 새로운 사조를 개척하는건 거의 끝난거 같고 이젠 그 개척된 것들을 뒤섞고 녹여내고 물고빨고 해야 하는것 요즘 인디게임들 보면 그런 선순환이 잘 일어나고 있는거처럼 보임
근데 그런 생각을 할 떄가 있음. 그림을 보는데 그림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영화가 그림보다 더 그림같고 그럴때. 살면서 그런 순간들을 많이 거치지 않았을까 그걸 생각하게 되더라. 안에서 밖을 볼 수 있고, 밖에서 안을 보듯이 그 어떤 영혼이나 정신같은게 묘한 구석이 있음.